모처럼 서귀포 중문을 둘러싼 현안들에서 희망 섞인 얘기들이 새어 나온다. 우선, 주기적으로 ‘매각설’이 흘러나와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던 중문관광단지가 이번에는 해결의 전조를 보이는 듯하다.
사실 중문은 그 요란한 태몽만큼이나 진통이 커서 태어날 때부터 온전치가 않았다. 1973년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1972~1981)에 따라 1977년 ‘제주 중문지구 종합개발기본계획’이 수립되고 1978년 토지매입에 들어간 후 1982년에야 단지개발이 시작되었다. 10년 동안 잉태의 꿈만을 꿔 온 셈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더 흘러 2014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강산은 두 번이나 변해 가는데 이곳의 모습은 별반 달라 보이지가 않는다.
1975년 나는 중문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어느 사회 시간, ‘부모님들이 땀 흘려 농사하는 일터가 사라지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 라는 질문이 촉발되었다. 변화의 물결, 개발의 이익, 새로운 일자리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본능적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우선은 부모님들께 ‘땅을 팔지 마시라’ 하자고 우리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국민관광 기반과 국제관광 거점을 조성해 국민의 삶과 국가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 앞에서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토지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국익’이라는 명분과 나의 희생이 가져올 지역사회 발전이 일말의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더러는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혹은 자녀들의 미래 직업을 위하여 토지를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그야말로 헐값에 말이다. 참고로 중문골프장은 고작 평당 3천~4천원대(최저 1700원에서 최고 5700원) 가격으로 토지를 수용해서 개발된 곳이다. 2011년도 감정평가액을 보면 94만여㎡(29만평)에 1050억 원이니, 평당 약 37만원이다. 요즘의 시장가액은 100만∼2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어쨌든 중문지역 주민들은 ‘국가의 정책’이라는 대명제 하에 목숨 같은 농토를 내놓고 고향을 떠나는 고통도 숙명처럼 감수하였다. 30여 년 전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상처는 아직도 뚜렷하다. 바로 드라마 '씨크릿 가든'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S호텔 전경이다. 이 호텔이 고객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포인트는 ‘제주의 전통가옥으로 된 단독 별장형 객실의 독특함’이다.
개발이 되기 전 이곳은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바당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작은 포구였다. 우리 동네 대포(큰갯물)에서 너배기(ICC JEJU가 위치한 중문단지 동쪽지구, ‘넓은 들’이란 뜻으로 대부분 대포 주민들의 농토가 있던 곳)를 건너 잉건이기정(주상절리)을 지나야 갈 수 있었다. 기정이란 제주어로 ‘아주 깊은 낭떠러지’를 말한다. 파도치는 날이면 지금도 주상절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빛으로 으르렁대지만 개발 전의 잉건이기정은 내려다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검고도 깊었다.
오죽하면 삶의 끝자락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그 낭떠러지 앞에서 생의 추락을 가늠하며 떨었을까? 간혹 어머니 심부름으로 그곳을 지날 적이면 혹시나 기정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눈을 질끈 감고서 ‘나 살려’ 하고 내달렸던 기억이 아직도 소름 돋치게 선명하다.
하지만 거기를 통과해서 포구에 닿기만 하면 둥지처럼 아늑한 작은 마을이 모든 두려움을 감싸줄 만큼 다정하고 포근하였다. 그 이름 ‘베린내’처럼, 여름이면 별무리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려와 온 동네를 가로등처럼 밝히면서 은빛 소나타를 들려주고 멍석 위에 둘러앉아 보말을 까먹노라면 하늘나라 동화가 은하수 타고 내려와서 소곤거리는 별들의 고향이었다. 겨울이면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날아와 결혼식 하는 마당 위로 금빛가루를 흩뿌리고 예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식장을 벗어나 올레로 나가면 온 마을을 행진하고 돌아와야 예복을 벗을 수 있던 동네잔치의 본거지였다. 그리고 시집가서 혼자 돼버린 우리 사촌 제이가 ‘그래도 태왁 짚고 숨비질 하며 살다보면 살아질거라’며 울지 않고 씩씩하게 두 아들을 키워낸 장한 해녀들의 고장이었다.
그 베린내가 결국은 ‘국제적 관광지 속의 전통적 민속촌’ 계획에 따라 관광단지에 통째로 수용되고 말았다. 집과 고향을 한꺼번에 잃은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우리 언니 제이도 서럽게 울면서 육지로 떠나갔다. 그 후로 얼마 없어 아프다고 하더니만 ‘숨비소리 한 번 내지르고 싶어 했다’는 소문과 함께 부음이 날아들었다.
어디 제이만 그렇게 죽었을까? 이곳은 중문‧대포‧색달 주민 2500여명이 삶터와 농토를 수용당한 눈물 젖은 땅이다. 그 수많은 제이들의 고통을 안고서 중문단지는 서귀포에게 ‘신혼관광의 1번지’라는 이름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베린내는 애초에 기획했던 제주전통의 민속마을 대신에 수차례 소유주를 바꿔가며 부동산 투자용 호텔로 변신해 왔다.
한편, 1985년부터 본격적인 단지개발이 시작되어 1989년 중문 골프장이 개장될 당시에는 주변에 한국콘도, 하얏트, 여미지, 수족관 등이 겨우 완성되어 있었다. 1990년 신라, 2000년 롯데, 2003년 ICC JEJU 순으로 시설들이 들어섰지만 지금도 단지조성 공정률은 50∼60%에 불과하다. 2006년 12월 민자시설에 대한 잔여부지를 부영에 대거 매각함으로써 한국관광공사(KTO)는 중문단지의 토지분양을 완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중문관광단지의 개발계획을 완수한 것으로 간주하고, 드디어 철수의 움직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따라 KTO는 중문골프장을 포함해 단지내 지원시설부지와 시설물, 운영관련 사업 일체를 민간에 매각키로 공표하였다. 물론 이에 앞서도 중문단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에 따라서 두 세 차례 매각의 칼바람에 휘둘려 왔다. 1994년 김영삼 정부와 1998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선포된 공기업 민영화 방침에 따른 민간 매각 시도가 그 흔적들이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합리화 정책은 역대정부가 시장지향에 초점을 맞춰온데 반해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공기업과 관련된 뉴스의 키워드들이 방만경영, 비리, 부당행위, 감사 등으로 집약되고, 개혁프로그램들이 지배구조, 윤리경영, 조직 및 인사관리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개혁이 성공하려면 변화하는 공공기관 환경, 시민거버넌스, 협업,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설득과 합의 등 지배구조와 협력시스템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들어 제주도와 한국관광공사(KTO)의 실무진들이 만나 '중문관광단지는 경상북도가 경주보문관광단지를 10년 분할 납입조건으로 매입한 선례를 모델 삼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하였다’니 다행이다. 게다가 KTO의 관계자가 ‛중문단지의 공공기능을 유지함으로써 제주 관광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 하기로 약속했다니 안심이다. 그리고 원희룡 도정이 연말까지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공성 유지를 위해 제주도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고 선언하니 기대가 크다.
인수위원회가 지역주민과의 거버넌스 구조를 제대로 살리고 KTO와 실질적인 협력체계를 작동할 수 있다면, 본격적인 해결국면으로 순항할 게 예상된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올바름으로 돌아가듯이 중문단지도 ‘사필귀정(事必歸正)’에 따라 움직여 가지 않겠는가? 이번 기회에 단지 조성의 본래 목적이 처음 약속대로 실행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중문관광단지가 계획되었던 애초부터 지금까지의 로드맵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주요 사건과 행사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곳곳에 주민들의 기대와 아픔, 희망과 좌절, 꿈과 한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눈물어린 이해와 진정어린 납득 없이는 해결의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 특히 1987년에 발현된 중문지역 토지주들의 함성과 2011년에 제기된 서귀포시 대책위원회의 요청은 주목해서 다시 들어보아야 할 범시민적 목소리다.
정녕 그 음성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면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재원 조달이 쉽지 않다"며 돈 앞에 다시 무릎 꿇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세간의 보도 자료를 보면, 제주도정이 인수시의 매입대상 금액, 상환기간, 매입대금 확보 방안,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적자에 대한 해소 방안, 장기적인 운영방안 등 전반적인 사안들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다. 그리고 매스컴들은 한결같이 ‘제주도가 인수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재원 조달이 쉽지 않을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온통 돈 걱정들이다.
정작, 해결의 관건은 돈이 아니라 마음인데 말이다. 마음 가는 데 돈도 따라가는 법 아닌가? 따라서 하나의 대안으로 연평균 6백억~7백억원씩 기획재정부로부터 배분되는 복권기금의 사용을 제안한다.
1995년 신구범 도정은 ‘관광진흥 및 국제자유도시의 건설’을 꿈꾸면서 관광복권을 발행하였다. 2014년도에 제주도는 996억원을 배정받아, 노인·저소득층·장애인·해녀를 위한 복지서비스와 자연재해지구 정비, 중소기업육성·농어촌진흥 융자지원, 김만덕기념관·서귀포시예술의전당 건립 등에 지원하고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처럼 ‘복권기금으로 설립되었음’을 알림으로써 복권의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려는 정부취지에 부합되지 않는 게 문제다. 4년 동안 한결같이 제주도의 열악한 재정사정과 기금이 일반재정처럼 사용될 수밖에 없는 현지실정을 알리며 설득하느라 진땀깨나 흘렸다.
물론 그 전부를 중문에다 쏟아 부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주도의 복권기금은 이 때를 위한 하늘의 은혜요, 관광진흥을 위해 쓰고자 했던 창안자의 혜안이 아닌가 싶다. 중문은 가슴으로 다가서야 접점이 형성되는, 문화의 중심(中文) 의식에 사무친 이들의 고장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문관광단지를 위해 사라진 베린내와 그 사람들을 위해 ‘체로키 인디언의 축원기도(Cherokee Prayer Blessing)'를 기원한다.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대 집 위로 부드럽게 일기를, 위대한 신이 그 집에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그대의 모카신 신발이 눈 위에 여기저기 행복한 흔적 남기기를, 그리고 그대 어깨 위로 늘 무지개 뜨기를.’
참고로, 체로키 인디언은 미국 남동부 애팔레치아 산맥 남부에 거주하던 인디언 부족이다. 북미 대륙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가진 인디언으로서 백인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오클라호마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육지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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