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막내 아들의 깜짝 귀향 선물

  • 등록 2024.09.30 18: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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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막내 아들 기운 담뿍 받은 어머니, 이 가을도 무사히'

 

주말에 막내가 집으로 왔다.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아들이다.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난 동생은, 반가우면서도 낯이 설다. “용익아, 어떵 이추룩 때 맞췅 와저니? 어제 오늘 어머니가 많이 쇠약해지셔서 걱정해신디....”

 

‘서귀포 강창학 축구장에서 열리는 국제시니어 축구대회에 참석하려고 왔다’는 동생은 여전히 씩씩하고 듬직하다. 어머니를 성큼 안아보더니, 지갑을 꺼내서 돈을 한 웅큼 집어 드린다. 우람한 아들 품에 안긴 어머니는 마치 아기처럼 웃는다. 역시 막내가 최고다. 어머니 속을 많이 태운 만큼 정도 깊이 들었으리라.

 

등산, 낚시, 운동 등 모든 종류의 힘쓰기를 좋아하는 동생은 몸이 매우 튼튼하다. 그만큼 사고도 많이 따라서 어머니의 애간장을 어지간히 녹였다.

 

한 번은 육지의 태백산 자락에 등산을 갔다가 추락해서 내가 보호자로 간 적이 있다. 두 팔과 어깨를 붕대로 칭칭 동여맨 동생을 택시에 태우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왜 또 산에 갔는냐, 그러다가 죽는 수가 있잖나. 네가 죽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머니 아버지 생각을 해야지 않겠나.... 하나 마나한 잔소리를 들으며 불같은 성미를 꾹 꾹 눌러 참는 동생을, 운전기사가 흘끗거리며 노심초사 안절부절이다. 다행히 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실어 보내고 나서야, 다친 부위는 어떤지, 많이 아프지는 않은지..., 한 마디도 안부를 묻지 않은 게 걸렸다. 아, 버스는 그렇게 지나가고 말았다. 동생이 20대 중반, 내가 20대 후반, 그러고 보니 30년도 더 된 일이다.

 

올해로 ‘환갑이 된 덕분에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동생의 얼굴에도 지나온 세월이 녹록찮게 묻어 있다. 마음이 짠하다. 미국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동생은 손재주가 뛰어나서 그럭저럭 사업이 잘 되어가는 눈치다. 요즘은 아들한테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는데, ‘남들처럼 많이 배워서 월급쟁이를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며 웃는다.

 

“그래, 참 잘했다. 동생아. 나는 네가 중학교 때 탐라문화제 같은 제주도 전체 경시대회에서 미술 부문 대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게 손재주만은 아닐 텐데.... 그 때 좀 더 네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 분야로 진출하도록 격려하고 부모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지 못한 게 참으로 미안하다. 그 땐 내가 학비 때문에 장학금을 준다는 실업학교에 들어가서..., 밤 낮으로 대학 생각뿐이었단다. 하루는 갈 수 있을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가, 하루는 도무지 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렸으니까. 마치 망망대해를 혼자서 태우 타고 항해하는 느낌이랄까.

너도 알아지크냐, 아버지가 태우 만들어서 마치 노인과 바다처럼 혼자 나가서 자리 걸엉 오시던 일.... 그래도 그 때가 좋았는데.... 그 자리가 담긴 촐구덕에 우리 다 같이 모여들민, 아버지가 자리를 손질해영 하나씩 우리 입에 넣어주셨는데..., 우리는 마치 새끼제비처럼 입을 쩍 벌리고서 아버지의 손끝이 내 입에 닿기만을 기다렸는데.... 누가 누가 입을 더 크게 벌리나 용을 쓰면서. 그런데 용익아, 저 바다보다도 넓고 험한 미국에 가서, 그 손으로 자동차의 미세한 고장을 만지며, 실력 있고 유명해져서 워싱턴지역 유지들과 함께 이렇게 고향을 방문하러 오다니.... 내 동생아,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때 일은 정말 미안하다. 너도 알다시피 그 시절이 아마 우리 집 가세가 매우 힘들게 기울어지던 차라, 나도 남의 집 가정교사 하면서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더 이상의 공부는 구름결에 날려버렸어. 그냥 은행에 취직을 하고 보니, 이게 내 인생인가 싶어서 마음이 참 삭막하고 성격이 각박해지더라. 그때 일은 정말 미안하다. 이 누나를 용서해 주라 이. 그땐 왜 그렇게 사는 게 초조하고 절실하고 간절했었는지.... 이렇게 늙어지는 게 인생인 줄 알았더라면, 그저 구름에 달 가듯이 운명이니 하고서 그저 하루하루를 물 흐르듯이 펜안하게 살아갈 것을....”

 

“아니우다게, 누님! 다 지 성미대로 처지대로 살아가는 거고, 살당 보민 또 자기 소망대로 허구정 헌 일 허게도 되는 거우다. 누님은 워낙 공부에 뜻이 있었주만은, 난 밤 세시까지라도 자동차 고장난 거 고치는 게 좋아 마씸. 미국 젊은 아이들 8명이나 고용해서 정비소 일을 헐 때는 정말 밤낮이 어서수다. 고향 떠나서 타국에 가민, 다 처음에는 죽을 둥 살 둥 목숨 걸고 일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가 어서 마씸. 지금은 아들한테 기술을 전수 중인디, 자동차 미숀을 고치는 고난도 일이라든지 밤새워서 끝까지 달라붙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은, 우리 때영 다릅디다. 배가 고프지 않으니까 험한 일,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것으로 배우려는 의지가 약한 거 닮수다....”

 

그 동생의 손을 얼른 맞잡고 보니, 아..., 손이 얼마나 크고 무겁고 거치른지.... 무슨 바위처럼.... 눈물이 울컥거려서 얼른 바다로 눈을 돌린다.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이 아스라하게 한 점으로 어른거리며 사라질 때까지 한 없이 바라보며 서 있으려니, 그제야 어머니가 걱정으로 떠오른다. 아, 어쩌다가 우리 막내가 어머니 얼굴을 보러 왔을까. 이게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었을까. 우리 용익이 얼굴 한 번 봐지민 여한 없이 이제는 갈 길로 떠날 건디...., 기도하셨을까.

 

동생이 안겨 준 돈봉투를 머리맡에 두고서 어머니는 하룻밤 낮을 그저 주무신다. 깨워도 두드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눈을 뒤집어도 귀에다 소리를 질러도 감감하다. 그래, 뜬금없이 막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가시려고 어머니가 부르셨나. 마지막으로 막내 아들 얼굴 보고 저 하늘로 떠나시려고 작정을 하셨구나. 애타는 마음으로 언니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의 상태를 알린다.

 

“언니, 어머니가 이상허우다. 그저 기척 어시 숨만 쉬엄수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드시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내처 주무시기만 햄수다. 큰 일이우다게”. “그냥 놔두라. 어머니 사실 만큼 사셨저. 우리 목숨은 하늘에 달린 거여. 경 허당 기운이 모이민 저절로 일어나실 거고, 기력이 다 허민 어쩔 수가 어신 거여”라는 언니 말에 맥 없이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아침이 되었다. 오늘 미국으로 떠난다는 막내에게 언니가 전화를 걸었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으니, 어머니 얼굴 한 번만 더 보고 가라고. 서귀포 칼호텔이 숙소인 동생이 걸어서 집으로 왔다. ‘40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인데..., 매일 아침 다녀갈 것을....’이라며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세상에! 어머니가 눈을 뜨셨다. 그리고 막내를 보더니 희미하게 웃으신다. 얼른 어머니를 안고 일으켜 세우는 막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그렇게 어머니는 다시 하루를 시작하셨다.

 

막내가 마지막 장이 아니라 오히려 제 2막을 열어주고 떠나간 게다. 언제나 담대하고 씩씩한 동생의 기운을 담뿍 받은 어머니가 이 가을을 무사히 보내시면 좋겠다. 시시 때때로 2남7녀의 기운을 하나 둘 받아 가면서 생명의 힘을 더해 가시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 가을의 열매로 생명을 더 이어가게 하소서. 문득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생각나, 가슴 속으로 불러본다. 어머니의 가을이 아름답게 물들어가기를 기도하면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hhospi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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