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한숨이고 어쩌면 탄식 같은 어머니의 숨결

  • 등록 2024.11.26 10: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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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평범한 일상을 알려주는 어머니의 소리 ... 오늘 하루도 무사히

 

어제부터 두 눈을 단단히 감고서 작정하신 듯 주무시기만 하는 어머니. 며칠 동안 “허태행씨, 허태행씨, 나를 두고 어디로 갔나?”라고 하시더니, 아버지를 찾아서 꿈 속으로 깊이 들어가셨나 보다. 입에 달고 하시는 말씀이 “나 살려 줍서, 나 살려줍서!”였던 엊그제까지가 행복이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끄덕끄덕 조시던 시간이 기실로 선물이었음을 알겠다.

 

지난주에는 바지에 대소변을 묻히고도 모르시는 눈치였다. 너무 적게 드셔서 그런지, 염소똥 같은 방울 똥이 굴러서 내의 안으로 들어가도 모르시는 거다. 그런 어머니가 너무 가엾어서, 서글퍼서, 내 가슴이 절벽에 눌린 듯 먹먹해 왔다. 비록 기저귀를 차지만 실수하게 될까 봐, 휴지를 몇 장 개켜서 기저귀 위에 놓았다가, 젖으면 다시 갈아 놓으시는 게 습관이다. 기저귀를 아끼려는 마음과 냄새가 나지 않게 하려는 조심에서 나온 당신만의 비결이리라.

 

동시에 전에 없이 잠꼬대나 헛소리를 자주 하신다. “아기들 밥 멕여사 될 건디....”라고 하시면서 팔을 허공에 대고 휘적인다. 아직도 2남7녀의 입속으로 숟가락이 드나드는 꿈을 꾸시는 걸까? 어쩌면 마음으론 일어나고 싶으신데, 몸이 뜻대로 안 움직이니 그러시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뒤척여보고 애쓰시다가, 벌컥 한 말씀을 뱉으신다. “고생시키지 말앙, 나 돌앙 갑서!”라고. 하늘을 보고 내지르는 소리에 억장이 무너진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나를 보고 '선생님'이라 부르시는 거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잘 몰라서 틀려졌어요”라며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실은 엊그제 어머니가 개켜 놓은 빨래를 내가 다시 풀어서 개키는 것을 보고선, 본능적으로 내뱉으신 말씀이다. 오히려 내가 참 무심하게 실례한 것인데도 어머니는 매사를 당신 탓으로 돌리신다. ‘당신이 얼마나 어머니에게 까다롭게 굴었으면 선생님으로 여기겠냐’는 남편의 지적에, 뼈가 시리게 후회가 솟는다.

 

그래 ‘있을 때 잘 하라’고 했는데, “나 살려 줍서!”라고 하실 때 부둥켜안고서 “걱정맙서, 나영 오래오래 살게 마씸! 어머니는 104살까진 틀림어시 잘 사실거우다, 예!”라며 손가락을 걸고서 가슴 따뜻하게 안아드릴 것을.....

 

오랜만에 요양보호사 교재를 펼쳐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요양보호사를 자처하면서도, 그 돌봄의 태도에 대해 학습해 본 게 까마득하다. 첫눈에 들어오는 게 ‘윤리적 태도’다. ‘요양보호사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허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대상자가 ‘어머니’라 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너무 쉽게 굴었음이 깨달아진다.

 

‘요양보호 업무는 요양보호사에게 신체·정신적으로 고된 일이다. 대상자의 배설 요양에서부터 건강 관찰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쉽게 지치고 힘들 수 있지만 항상 초심을 잊지 않고 요양보호사 자신을 점검한다.’ 요즘 들어 하루가 고단하게 여겨지고 매사를 짜증스럽게 대하는 이유와 그 위기를 새삼 알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실체가 보인다.

 

이쯤에서 조심스럽게 ‘임종기 단계’를 살펴본다. ‘임종징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⓵대부분 누워 있게 되며 음식 및 음료 섭취에 무관심해진다. ⓶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⓷맥박이 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진다. ⓸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가래가 끓다가 점차 숨을 깊고 천천히 쉬게 된다. ⓹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점차 피부색이 파랗게 변한다. ⓺대소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실금하게 되며 항문이 열린다.

 

다행히 어머니는 아직 1단계의 시작점에 계신다. 몇 장을 더 지나자 ‘임종 대상자 지원’이 눈에 띈다. 호흡수와 깊이가 불규칙하고 무호흡과 깊고 빠른 호흡이 교대로 나타난다. 이때에 돕는 방법은 상체와 머리를 높여주고 대상자의 손을 잡아주며, 부드럽게 이야기하여 대상자를 편하게 해 준다. 연하게 가습기를 켜둔다. 체온의 변화가 시작되는데, 대상자의 손·발부터 팔·다리로 점차 싸늘해지면서 피부의 색깔도 하얗게 혹은 파랗게 변하게 된다. 혈액순환의 저하로 점차 몸의 중요 기관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에는 대상자에게 담요를 덮어서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좋으나, 보온을 위해 전열기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가만히 어머니 이불 위에 담요 한 장을 더 덮어 드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수면양상의 변화’다. 대상자는 점차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며 의사소통이 어렵고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대상자 옆에서 손을 잡은 채 흔들거나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상자가 없는 것같이 말하지 말고, 대상자가 반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상인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한다. 특히 대상자에게 ‘내가 누구냐’고 묻기보다 ‘내가 누구’라고 밝혀주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소화기능의 변화’에 눈이 멎는다. 대상자는 음식이나 수분을 잘 섭취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상자의 몸이 소화보다 다른 기능을 하는 데에 에너지를 소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교재를 덮고서 어머니에게 다시 가본다. 여전히 주무신다. 하지만 호흡이 고르다. 어머니를 부르자 눈을 뜨신다. 지금은 아침 8시다. 전에는 하루 종일 주무시다가 저녁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신 적이 있다. 어제부터 식사를 잘 하지 않으신 게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가만히 기다리는 것도 돌봄이다.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한다. 반성의 기회를 한 번 더 허락해 주시기를.

 

왕(증조)할머니가 함께 사실 때였다. 70평 땅에 부모님과 2남7녀, 소와 말, 닭, 돼지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마치 동물농장과 같았다. 96세 할머니는 몸이 작고 얌전하신 어른이라 다섯번째 손녀와 한방을 썼다. 나와 일곱번째와 막내아들은 부모님과 안방에 잤다. 대학생인 큰 오빠는 독방을 차지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오빠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대학생이었다. 네번째 언니는 부엌에 딸린 방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워낙 착하고 조용한 언니는 다섯번째에게 매사를 양보했던 것 같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얼굴이 밝은 건 이상하게도 할머니와 같이 자는 다섯번째였다. 워낙 체구가 작으신 할머니는 저녁이 되면 한술 뜨시고 나서, 일찍이 잠자리에 드셨다. 그러므로 언니는 룸메이트가 있지만 독방을 쓰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자기만의 거울을 달고, 옷가지도 나름 정리할 자리가 있었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 발 아래에다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래서일까? 요즘도 어머니는 저녁때마다 “여기 왕, 나영 발 막앙 누우라”고 하신다. 옛 생각에 체온이 그리우신 거고, 많이 외로우신 게다. “알아수다” 해놓고, 내 방으로 가서 꾸물대다가 자버리는 게 일상이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슬그머니 어머니 발밑에 기어들어간다. 양말이 벗겨진 어머니의 발이 차가우면 두 손으로 잡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눕는다. 나의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노인이 되고서도 어머니와 한 이불에 잘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세상이 부럽지 않은 시간이다. 그 기운으로 하루를 그럭저럭 견뎌내고자! 오늘도 그렇게 아침을 맞는다. 부디 어머니가 눈을 떠서 흰쌀밥 위에 옥돔을 얹고, 언니가 만들어 놓은 쇠고기 미역국에 한 두 숟가락만이라도 뜨셔서 기운 내셨으면...

 

그 사이에 강아지 맥스에게 밥을 주고, 우리집 가장의 아침밥을 차리고, 거실의 중심부를 대충 걸레로 훔치고, 마당에 엎어진 화분을 바로 세우고, 마당가의 수돗가를 정리하고 들어 왔다. 아, 그 사이에 어머니가 일아나셨다. 새벽에 갈아 놓은 기저귀가 다시 젖어 있다. 어머니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하루에 몇 번을 갈아야 한대도 행복이라 여기리라.

 

다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책상 앞에 앉은 사이 어머니는 웅얼거리면서 요강에 앉아 있다. 요강 뚜껑이 달그락 거리며 여닫히는 소리... 아, 이 소리가 오늘의 평범한 일상을 알려주는 신호요, 어머니가 하루를 살아갈 기운이 있으시단 얘기다.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하루가 무사히 이어지기를 기도해 보는 시간, 어느 시의 한 소절을 떠올려 본다. ‘어쩌면 한숨이고 어쩌면 탄식 같은 어머니의 숨결 다정한 눈길 속에..... 그리움 고리로 엮인 눈물과 사랑, 새벽녘 이슬 같은 청명한 소리, 어머니의 숨소리가 들려옵니다'(어머니의 숨소리, 석정희).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hhospi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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