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에스마일 감독은 영화 속에 2명의 ‘인간혐오자’를 등장시킨다. 한명은 주인공인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이고 다른 한명은 대니(케빈 베이커 분)라는 인물이다. 감독이 인간을 혐오하는 둘을 영화 전면에 세운 까닭은 뭘까.
![극우가 창궐한 미국을 그린 이 영화는 지금의 한국을 보여주는 듯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8/art_17400981532756_144fba.jpg)
영화 속 아만다는 스스로 인간혐오자라고 커밍아웃하면서 인간을 사랑한다거나 인간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모두 ‘가식 덩어리’쯤으로 매도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간혐오자는 대니라는 인물이다.
워낙 ‘인간’이 싫어서 큰 저택에 혼자 사는 대니는 초연결 사회의 돌발적인 붕괴사태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지만 ‘각자도생’의 원칙 아래 누구와도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비밀리에 지하실에 핵전쟁이 터져도 버틸 만한 벙커를 만든다. 아울러 1년쯤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과 물자도 비축한다. 혐오스러운 인간들은 모두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
마침내 재앙이 닥치고 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덮친다. 그후 아만다의 16살짜리 아들 아치가 극심한 두통과 구역질을 하고 멀쩡했던 이까지 하나둘 빠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아만다 부부의 13살짜리 딸 로즈는 행방불명이 된다.
아만다 부부는 패닉 상태에 빠진다. 아만다는 로즈를 찾아 정처 없이 헤맨다. 아만다에게 흑인이라고 온갖 의심과 모욕을 당한 집주인 조지(마허샬라 알리 분)는 그럼에도 그를 돕는다.
아만다의 남편 클레이(에단 호크 분)에게 자기가 아는 이웃 중에 대니란 사람이 있는데, 이 친구는 뭔가 미리 알고 준비를 해 둔 것 같다며, 분명 의약품도 있을 테니 대니에게 도움을 구해보자고 클레이와 함께 대니를 찾아간다.
대니는 현관 앞에서 커다란 장총을 들고 이들을 맞이한다. 클레이의 간절한 호소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자기 집 마당에서 썩 꺼지라고 총구를 들이댄다. 집주인 조지가 “이러지 말라. 우리 꽤 잘 지내던 이웃 아니냐?”고 당황하자 대니는 “웃기지 마라. 우리 모두 각자 살아갈 뿐”이라고 총구를 겨눈 채 대꾸한다.
결국 클레이가 “아들이 죽어간다. 제발 도와달라”고 주머니에서 1000달러를 꺼내 건넨 다음에야 대니가 총구를 내린다. 그 1000달러는 인간혐오자인 아내 아만다가 재난을 피해 찾아온 집주인인 조지를 하룻밤 지하실에서 재워주는 대가로 받은 돈이다.
아만다나 대니 같은 인간혐오자들에게는 오직 대가와 보상만이 소통의 통로가 된다. 인간을 혐오하면 결코 ‘선한 사마리아인’은 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모르는 이웃을 구하려고, 심지어 자신을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토록 모욕한 아만다의 아들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조지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는 행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8/art_17400981529559_ed0e3e.jpg)
영화가 보여주는 슬픈 현실이다. 1000달러를 받고 나서야 대니는 자신도 그런 의약품은 없고, 자기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한 또 다른 이웃인 쏜에게는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정보를 하나 던져준다. 감독은 돌고 도는 1000달러를 인간혐오 시대의 상징처럼 사용하는 듯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클레이와 쏜의 집으로 가려고 운전석에 앉은 조지는 무언가 망연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순간 조지는 재앙의 본질을 깨닫는다. 참담한 표정으로 클레이에게 인간혐오자인 아만다와 대니를 겪으면서 깨달은 ‘사회붕괴 3단계설’을 들려준다. 아마도 영화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인 듯하다.
1단계 : 우리 세상은 점점 아만다와 대니 같은 인간혐오자들로 가득찬다. 이들은 서로가 담을 쌓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2단계 : 이들은 서로 상대를 악마화하고 그들을 향해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동시에 그 가짜뉴스들을 열광적으로 소비한다. 혐오와 증오는 그 과정에서 더욱 증폭하고 확산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3단계는 2단계가 완성하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그것은 바로 ‘쿠데타’고, 그 쿠데타는 바로 ‘내란’이 된다고 마치 ‘지옥의 묵시록’처럼 예언한다. 조지는 이 모든 재앙은 내부에서 싹튼 인간을 향한 불신과 혐오에서 시작된 참혹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절망한다.
에스마일 감독은 2023년 이 영화를 극우가 창궐하면서 갈가리 찢어져 나가는 미국의 현실을 개탄하기 위해 만들었겠지만, 마치 2025년 한국 사회를 그리고 있는 듯해서 섬뜩하다.
세대 간, 남녀 간, 계층 간 혐오가 넘쳐나고, 우파와 좌파가 서로를 악마화하고 증오하고, 서로를 ‘척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짜뉴스들이 유튜브를 점령한다. 이렇게 ‘빌드업’된 의심과 혐오, 증오가 종국에는 2024년 12월 3일 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번진 모양이다.
데카르트(Descartes)의 ‘합리적 사고’를 위한 명제로 잘 알려진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란 명제는 본래 “Dubito, ergo Cogito, ergo sum(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고,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의심이 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검증해서 비로소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제아무리 훌륭한 미덕도 생각이 없으면 악덕이 될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8/art_17400981526564_120a6f.jpg)
공자도 데카르트와 같은 경고를 남긴다.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서 이렇게 말한다. “❶호인불호학 기폐야우(好仁不好學 其蔽也愚, 어진 것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❷호지불호학 기폐야탕(好知不好學 其蔽也蕩, 지식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난잡함이 된다), ❸신불호학 기폐야적(好信不好學 其蔽也賊, 신의를 좋아하면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도적놈이 된다),
❹호직불호학 기폐야교(好直不好學 其蔽也絞, 곧은 것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남의 목을 조르게 된다), ❺호용불호학 기폐야난(好勇不好學 其蔽也亂, 용감함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난동을 부리게 된다), ❻호강불호학 기폐야광(好剛不好學 其蔽也狂, 굳건함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미친놈이 된다).” 제아무리 훌륭한 미덕도 생각이 없으면 악덕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북한과 중국공산당이 개입한 부정선거가 의심된다고 그 사실관계를 확인조차 안 해보고 대뜸 계엄령을 발동한 대통령, 그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한 장성들, 그 대통령을 결사옹위하는 정당의 지도자들, 그것이 숭고한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법원을 엎어버리는 사람들 등등 모두 공자가 걱정한 몇번째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들일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