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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12)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주온(朱溫 : 852-912)은 주전충(朱全忠)이라고도 하는데 송주(宋州) 탕산(碭山) 사람이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후량(後梁)의 개국황제이다. 개평(開平) 원년(907)에 당(唐)나라 애제(哀帝) 이축(李柷)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개봉(開封)을 수도로 삼고 국호는 대량(大梁)이라 하였다. 역사서에서는 후량(後梁)이라 부른다. 이로써 당나라는 289년 만에 끝나고 중국은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로 들어간다.

 

재위 중에 농업을 중시하고 세금을 함부로 징수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잦아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활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주온의 성격이 잔인해 밥 먹듯이 사람을 죽였고 음란무도하기까지 해 며느리까지 범했다. 건화(乾化) 2년(912)에 셋째 아들 주우규(朱友圭)에 의해 피살되었다.

 

후량의 개국 황제 태조 주온은 역사가들에게 ‘탐식(貪食), 어색(漁色), 기살(嗜殺), 멸륜(蔑倫)’한 폭군으로 배척받는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런 인물이 순진한 사랑을 했다는 점이다. 현덕(賢德)한 비 장혜(張惠)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오랜 기간 그의 잔혹함이 장혜의 부드러움에 제지당해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어찌된 일일까?

 

 

 

 

당나라 말기 국력이 쇠락하고 지방 군벌이 할거하면서 천하는 혼란에 빠졌다. 문인 학사들은 배척당하고 본바닥 불량배들이 발호하였다. 주온은 일찍 부친을 잃고 모친을 따라 지주 집안에 품팔이꾼이 되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게으르고 행실이 좋지 않았다. 늘 물건을 훔쳐 욕을 먹거나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굴욕과 곤궁 속에서 자랐다. 한 번은 사냥 도중에 기풍이 비범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송주자사(宋州刺史) 장유(張蕤)의 딸 장혜를 우연히 만났다. 사랑에 빠져 흠모하였다. 마음속으로 장래에 대관이 되어 장혜와 결혼하기로 스스로 맹세하였다.

 

오래지 않아 그는 자신의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황소(黃巢) 농민봉기군에 의탁하였다. 남정북전하면서 자신의 교활함과 흉폭함,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능력 등을 이용해 무명소졸에서 대장군이 되었다. 광명(廣明) 원년에 황소는 장안에서 황제라 칭하고 대제(大齊) 정권을 세웠다. 2년 후 주온은 여러 차례 전공을 올려 동주자사(同州刺史)에 임용돼 대군을 거느리고 보무당당하게 동주 성으로 진주하였다. 그때 포로 가운데 봉두구면의 소녀가 보였다. 꾀죄죄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첫눈에 자신의 첫사랑임을 알아보았다. 온 마음을 빼앗았던 장혜였다! 주온은 그 우연한 만남이 하늘의 뜻이라 여겨 곧바로 장혜를 집으로 데리고 가 자신의 흠모의 정을 말했다. 자기처럼 유리표박하고 포로 신세로 전락한 곤경에 빠진 여자를 용맹한 장군의 사랑을 받다니. 장혜는 감동받았다. 그리고 주온 장군에게 시집가기로 결정한다. 주온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중에 주온은 당나라에 투항하고 대장군이 돼 ‘전충(全忠)’이란 이름을 하사받는다. 그 후 황소를 패퇴시키고 여러 할거세력들을 평정하면서 20여 년을 남북으로 정벌 전쟁을 진두지휘하였다. 마침내 모든 적들을 소탕한다. 그 기간 동안 장혜의 말이나 계획을 듣고 따르며 매사에 고분고분 순종하였다. 우락부락한 주온이 장혜 앞에서는 그야말로 말 잘 듣는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주온은 흉악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밥 먹듯이 살인을 저질렀다. 전공을 축하하는 연회를 틈타 황소를 토벌하는데 힘을 보탰던 이극용(李克用)을 역관으로 불러 포위한 후 불을 놓고 화살을 쏘아댔다. 이극용은 요행히도 탈출했지만 그의 부하 300여 명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가 동방 4진을 공격할 때 병졸들을 참살하고 백성들을 죽여 서(徐), 사(泗) 3군의 절반이 죽임을 당했다. 그는 또 주근(朱瑾)과 전투 때에 3000여 포로를 참살하였다. 이런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중에 다행히도 장혜가 끊임없이 간언하자 주온이 잔악한 행위를 하지 않게 되고 보이는 족족 주살하던 행위가 줄어들었다. 이는 장혜가 군졸들과 백성들을 호랑이의 아가리에서 건져 낸 것이나 다름없다.

 

주온의 맏아들 주우유(朱友裕)도 장혜가 도와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나게 된다. 경복(景福) 원년 주우유는 군대를 이끌고 서주(徐州)를 공격해 주근을 대패시켰다. 성격이 관대했던 주우유는 승세를 타고 쫓아가 패잔병들을 추살하지 않았다. 이 일로 주온에게 관직을 삭탈당하고 조사받게 되자 겁먹은 주우유는 숨어버렸다. 장혜는 편지를 보내 죄를 인정하고 정중히 사죄하라고 권하면서 자신이 직접 나서 주온에게 부탁해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주온은 장혜가 있을 때는 무절제하게 성욕을 탐하지 못했다. 주온이 주근을 패퇴시킨 후 그의 처에게 시침하도록 하자 장혜가 듣고는 “변량(汴梁)이 불행을 당해 지키지 못하게 되면 나도 그녀와 같은 처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요?”라고 하면서 울었다. 주온은 부끄러워하며 사악한 생각을 거둬들였다. 주온이 박주(亳州)를 정벌할 때 기녀에게 시침하도록 해 나중에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감히 데리고 오지도 못했다.

 

천우(天祐) 원년 장혜의 병세가 위중하자 주온은 즉시 말을 달려 변량으로 돌아갔다. 곤경 속에서 서로 의지했던 몇 십 년의 세월 동안의 금슬을 되돌아봤다. 황제의 자리가 막 손에 잡힐 때가 되었음에도 사랑스러운 아내가 황후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되지 않았는가. 독하고 악랄한 무부는 비통한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장혜는 남편의 최대 약점이 살생을 좋아하고 색을 밝힌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임종 때 주온에게 “살육을 멈추고 색을 멀리하세요”라고 유언을 남겼다.

 

장혜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주온은 당 소제(昭帝)를 퇴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梁(양)’을 건국하였다. 이때부터 ‘어진 아내’를 잃은 주온은 방자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황제가 돼 버렸다. 제멋대로 굴면서 잔혹하고 음탕한 본성으로 되돌아갔다.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학살하였다.

 

주온은 도살이라는 수단으로 천하를 위협하려 하였다. 당나라의 군신과 관료를 도살하였고 자기의 부장까지도 살해하였다. 말을 검열하다 말이 수척하다는 핑계로 자신의 용맹한 장수 등계균(鄧季筠)을 주살하였다. 군령을 위반했다는 핑계로 대장 이중윤(李重允)과 이당(李讜)을 죽이고 살인멸구를 목적으로 자신의 양자 주우공(朱友恭)과 노장 씨숙종(氏叔琮)을 주살하였다. 죄명을 날조해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이사안(李思安)과 맹장 주진(朱珍)을 죽이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주변 인물들과 민심이 등을 돌린다.

 

 

 

 

그는 또 음란한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공허함을 달랬다. 그가 낙양을 순시할 때 위왕(魏王) 장전의(張全義) 집에 머물면서 장전의의 며느리와 딸들을 겁탈하였다. 또 ‘소시(召侍)’의 명분으로 자신의 며느리를 하나하나 강음하였다. 그의 아들과 양자들은 후안무치하게도 자신의 처들에게 시침하도록 하면서 총애를 받도록 종용하였다. 건화(乾化) 2년 주온이 병이 들어 후사를 준비할 때 시봉하고 있던 며느리 장(張) 씨가 양자 주우문(朱友文)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남편 주우규(朱友珪)에게 곧바로 알렸다. 주우규는 침전에 난입해 주온을 죽이고 황위를 빼앗았다.

 

일세를 풍미했던 난세의 효웅 주온은 현모양처인 장혜의 유언을 잊어버리고 도살을 일삼고 주색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인과응보라 하지 않던가. 자식의 손에 황천길로 들어서게 됐으니.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태조 주전충(朱全忠)을 살해한 큰 아들 우규(友珪)도 동생 우정(友貞)에게 살해되는 골육상잔이 벌어졌다. 나중에 우정도 이극용의 아들 존욱(存勖)에게 패하자 자살한다. 그렇게 후량은 멸망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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