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능영어 36번은 가장 어려운 문제에 속했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인지 심리학 용어를 들이댔는데, 고민하다 시간만 잡아먹기에 딱 알맞은 문제였다. 이 지문에 나온 확증편향의 정의는 이렇다.
“Confirmation bias is a term for the way the mind systematically avoids confronting contradictions. It does this by overvaluing evidence that confirms what we already think or feel and undervaluing or simply disregarding evidence that refutes it.”
(확증편향은 마음이 반대하는 것에 맞닥뜨리는 걸 체계적으로 회피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우리가 이미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는 과대평가하고, 그것에 모순되는 증거는 과소평가하거나 그냥 깎아내리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지문을 출제위원들은 어디서 가져왔을까 추적해 보았다. 미국의 원로 언론인 잭 풀러(Jack Fuller)가 2010년에 낸 “뉴스의 현재(What is Happening to News)”라는 책이었다. 신문을 읽지 않는 요즘 세대에 언론은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철학과 심리학을 동원해 풀어놓았는데,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미국 대학생이나 읽을 수준의 텍스트였다. 224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거두절미하고 이 지문을 딱 떼어다가 시험에 냈으니 어렵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겠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답률이 34%나 되었다니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영어실력은 놀라운 경지에 이르렀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확증편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는 버리거나 애써 외면하고 유리한 정보만 찾아내어 합리화시키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견해에는 너무나 긍정적인 반면 다른 견해에는 너무나 배타적인 경우 말이다. 소위 색안경을 쓰게 되기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뭉치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번져간다.
잭 풀러는 이 지문에서 미국의 어느 인디안 부족을 사례로 들었다. 까마귀족(Crow tribe) 사람들은 버팔로(물소)가 떠나버리자 억장이 무너졌고 다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으나 그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Nothing happened after that.)” 는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들의 절망감이란 역사가 끝장이라도 난 것처럼 큰 것이어서 그 후에 평범한 일상이 계속 존재한다는 증거를 뇌가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과연 수능 치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확증편향의 사례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출제위원들이 어떻게 하면 어려운 변별력을 가진 문제를 출제할 것인가에만 매달린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확증편향의 사례는 까마귀족이 아니라 주변에 널려 있다. 정치와 종교에 특히 그러하다. 공산당은 나쁘다. 공산당은 빨갱이(요즘은 종북)다. 이런 전제를 깔아놓고 세상 사람들을 빨갱이와 빨갱이 아닌 사람으로 구분해 버리면 세상을 이해하기에 수월하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신은 내 편이다. 고로 신의 뜻을 거스른 것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 문화, 생각은 타도해 마땅하다. 이렇게 하여 자신이 기대한 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기쁨을 느끼게 된다.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말을 할 때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정치인들도 이런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적을 강조함으로써 집단 내부의 응집력을 증가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권력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즐겨 쓰던 분이나,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원칙과 신뢰만 들이대는 분도 이런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 대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막상 집권하자마자 과거의 경험과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고 강화시키는 꼴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옳은데 왜 많은 사람들은 딴죽을 걸지?” “내가 생각하는 법과 원칙을 왜 사람들은 따르려고 하지 않지?” 이러면서 측근의 잘못은 그저 잠깐 실수로 인한 사소한 것이므로 용서되어야 하고 타인의 잘못은 사소한 것이라도 국기를 문란케 할 수 있으므로 “단호히 대처하고 결코 묵과하거나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요즘은 자기 아이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가진 엄마들이 많다. 다른 아이의 물건을 상습적으로 훔치는 버릇이 드러나 담임교사의 호출을 받았을 때 교무실에 쳐들어가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담임 따위는 내가 목을 잘라버릴 수 있어.”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경우다. 반면에 자기 아이에게는 알아서 버릇을 고치라, 즉 ‘셀프 개혁’을 주문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원칙’과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작동하는 경우다.
이처럼 확증편향은 타인에 대한 경직된 태도를 보이며 쉽게 폭력과 파괴적인 성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히틀러는 집단적인 피해의식을 가진 국민들을 선동해 독일인이 가장 우월하다는 편견을 심었다. 결국 그 편견은 집단 간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엄청난 전쟁과 파괴를 불러왔다. 히틀러도 수많은 양민을 학살할 때 당시의 법과 원칙을 따랐다. 다만 자기 생각에 맞춰 법과 원칙을 만들었고 철저히 적용했을 뿐이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전문가 집단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번 수능영어 33번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정책에 참여할 때 일어나는 폐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역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행정학과 교재에나 등장할 이 지문의 요지는 전문가에 의한 정책 입안이 객관적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지만, 지역 주민의 참여를 배제시키고 퇴행적인 정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Scientific and professional expertise often relies on a particular type of knowledge that is limited to utility and rationality considerations. This approach to policy typically does not consider values and cultural factors that cannot be measured empirically. Scientifically designed policies can serve interests that run counter to the public interest.”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은 유용성과 합리적인 의견에 한정된 특정 유형의 지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식은 경험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가치와 문화적인 요소들을 대개 고려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입안된 정책은 공공의 관심사에 역행하는 관심사에 맞춤형이 될 수 있다.)
리더나 의사결정자는 확증편향의 유혹에 늘 노출되어 있다. 매 순간 자신의 생각이 옳은가에 대해 회의를 품고 검증해 보기에는 이미 확증편향이 강화될 만큼 강화되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고 치우침은 넘침만 못하다고 했으니, 연말의 화두로 삼아 나 자신 돌아보고자 한다.
☞강민수는?
=잉글리시 멘토스 대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영자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대기업 회장실과 특급호텔 홍보실장을 거쳐 어느 영어교재 전문출판사의 초대 편집장과 총괄임원으로 3백여 권의 교재를 만들어 1억불 수출탑을 받는데 기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영어 스토리 Rainbow Readers 42권을 썼고, 제주도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관한 제주문화 콘텐츠 전국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ELT(English Language Teaching)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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