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5기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3월13일 오후 3시.
제주시청 인근 하나은행 3층 사무소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6년이란 야인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정치전선에 나선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예비후보 사무실 개소식 현장이었다.
우 지사는 그 자리에서 힘주어 말했다. 그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 무효화 된 2002년 6·13선거를 회상하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온갖 정치적 음해와 테러가 난무했고 ··· 성추행범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지만 ··· (도민들은)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셨다”며 그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현장에서 그는 자신이 당선된 2002년 6·13선거를 5·31선거라고 반복해 말했다. 취재하던 기자들이나 일부 유권자들은 그 기억까지 수정해줘야 했다)
그는 한술 더 떠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 시절 논란이 된 성추행 전력과 관련해 “저는 성범죄 전력을 갖고 있지 않고, 더더욱 성추행범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부가 ‘비록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라도 가슴에 손을 댄 것으로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성립된다’며 저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결정했고, 법원도 저의 기대와 달리 여성부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고 말았지만 아직도 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억울한 사연을 다시 한번 냉정하게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정치권을 중심으로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마녀사냥식 정치테러에 대해서는 비록 안타깝지만 ··· 믿어주시는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 도민들에게 당당하게 심판과 선택을 받겠다”며 자신감도 내비쳤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명백히 밝혀진 사실에 대해 그가 사용한 단어들은 ‘정치테러’, ‘음해’, ‘마녀사냥’, ‘억울’, ‘몰아붙이기’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복당한 민주당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의 성희롱 전력이 문제가 돼 ‘공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탈당 뒤 무소속으로 나서 상대인 현명관 후보가 ‘금품살포’라는 무리수에 직면하자 반사이익을 챙기고 당선됐다.
우근민 지사는 2010년 바로 그 선거에 나서면서, 또 당선소감을 빌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2010년 6·2지방선거가 마무리되고 그가 도지사직 인수위원회를 꾸린 무렵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던 필자는 그를 인터뷰하고자 그의 인수위 사무실로 갔다. 제주시 연동에 있는 건설회관 안에 차려진 사무실이었다.
당선자 인터뷰를 하며 그의 답변을 빠뜨리지 않고자 녹음기능을 활용, 그와의 인터뷰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올려놨다. 하지만 우 지사는 극구 “녹음은 하지 말자”며 손사래를 쳤다. “잘 아는 사이에 그냥 잘 써달라”는 것이었다. 속으로 그가 과거 성추행 논란을 겪으며 녹음·녹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라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그의 뜻을 수용해줬다.
그와의 인터뷰 말미에 “이번이 마지막”이란 말의 의미를 물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고, 유권자 모두가 받아들인 뜻 그대로 “이번이 마지막 출마”이며 “차기 선거엔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입을 빌어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게 옳다고 보았기에 그걸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 기자! 내가 군인출신이잖아. 군인은 전장에 임할 때 언제나 이게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전쟁터에 나서거든. 앞으로 지사직 업무를 하는 것도 이렇게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열정적으로 하겠다는 소리야.”
“그렇다면 다음 선거에도 출마한다는 소리냐”고 묻자 그의 답은 “지금 답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말로 말문을 닫았다. 물론 그의 제지로 녹음된 내용은 없다.
지난해 5월 말 오찬간담회 장에서 그가 ‘4·3 폭도’와 ‘간첩기자’ 등의 막말을 쏟아낼 때 그 내용이 기사화되자 그는 발언사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그는 말문을 닫았다. 그 내용을 특종보도한 본사에게 “강력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며 협박하듯 해명보도자료를 냈지만 그후 제주도 공보관이 본사를 찾아와 사과하는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지었다.
그는 지난 1월 새누리당의 신년하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당권유를 받았다”는 식으로 말한 보도가 나가자 또 사실을 부정했다. 그러다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와전된 것”이라며 주장하다 결국 입을 닫았다.
2002년 2월 제주여민회가 그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하자 “명예훼손”이라며 사실을 부정하다 피해여성과 그와의 대화내용이 녹음 테잎과 녹취록으로 세상에 공개되자 그는 “조작된 내용이자 날조”라고 맞섰다. 하지만 그것 역시 검찰 수사와 대검의 판정결과 “조작흔적이 없는 원본이 맞다”로 결론났다.
<제이누리>는 지난 1월14일 새누리당 제주도당내 지사후보 주자인 김방훈·김경택·양원찬 3인이 내세우는 ‘우 지사의 경선참여 불가론’의 근거로 2012년 총선에서 적용된 새누리당의 당헌·당규와 경선 세부규정을 들었다. ‘성희롱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자’ 등을 ‘파렴치 범죄전력자’로 포함하고 있어 아마 경선참여가 어려울 것 같다는 논평·해설기사였다.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 ‘우 지사의 성희롱이 명백하다’고 확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성추행 등 4대 악(惡)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 당시 “4대악 전력자는 시기를 막론하고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친절하게도 새누리당은 당시 이와 관련 브리핑도 했다. 2012년 1월17일 새누리당의 이두아 원내 공보부대표의 당시 브리핑 내용이다.
“도덕성 검증을 위해 강화된 기준은 세금포탈 및 탈루, 금융비리 및 부동산 투기 사범, 성희롱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 특히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성범죄로 벌금형 이상을 받은 자에 대해서, 또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 및 성범죄, 뇌물, 불법정치자금 수수, 경선부정행위 등을 4대 범죄로 해서 이 4대 범죄에 대해서 형이 확정된 자에 대해서도 도덕성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다. 또 병역문제가 야기된 사람도 도덕성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다. 파렴치 범죄와 부정비리 범죄는 범죄시기와 무관하게 공천에서 배제할 것이다. 파렴치 범죄와 부정비리 범죄에 대해서는 당규 공직후보자추천 규정 제9조의 7호와 8호에 나와 있다. 특히, 파렴치 범죄와 부정비리 범죄는 범죄시기가 언제든 무관하게 공천에서 배제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 파렴치 범죄는 강간, 강제추행, 성희롱, 아동·청소년 관련 범죄 등이다. 부정비리 범죄라 함은 수뢰·증뢰를 포함한 뇌물죄, 불법정치자금 수수, 경선부정행위,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을 포함한다.”
법적으로야 다르겠지만 새누리당은 파렴치 범죄에 강간·강제추행·성희롱 등을 포함했다. 그게 새누리당의 입장이었다.
그런 이유로 성희롱 확정판결을 받은 우 지사의 경우 ‘파렴치범’의 범주에 포함돼 새누리당의 경선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우 지사가 문제를 제기한 기사의 핵심이었다.
그런 본사에 대해 우 지사가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은 “파렴치범도 아니고, 형사범도 아니고, 성추행(성범죄) 전력도 없고, 다만 여성부의 처분이 대법원에 의해 확정받았을 뿐”이란 것이다.
새누리당의 기준을 원용, 기사화했지만 우 지사가 억울할 만도 하다. 스스론 고작 그 정도인데 새누리당내 기준에서 공천배제대상에 포함될 판이니 그럴 수 있다. 결국 그가 억울하다고 제기한 소송의 칼 끝은 2012년 당헌·당규와 경선세부규정, 브리핑을 제공한 새누리당이 감내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우근민 지사가 새누리당 중앙당을 향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만만한 언론사를 상대로 핏대를 올리고 으름장을 놓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비록 억지일지언정 대외적으론 항변의 효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초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추태가 다시 오버랩 되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차이가 있다면 사건이 발생시점이 12년 전 한낮 도지사 집무실, 1년여 전 한밤 호텔숙소라는 것과 두 가해자의 손이 닿은 여성의 신체부위가 다르다는 것 정도다.
사건이 터지고 종적을 감춘 윤창중 전 대변인에 비해 틈만 나면 사실을 부정하고 모든 걸 뒤엎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우 지사. 두 사람의 퍼스낼리티도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자신이 저지른 추태를 어떻게든 또 선거판에서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꼼수가 보이니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 그를 ‘제주도정 최고 책임자’로 만든 우리 제주도민들이 한 없이 측은하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