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몇 신문사의 고정필진으로 참여하여 여러 유형의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중 제주역사문화에 관한 칼럼들을 선정하여 여기에 실는다.
흔히 뜻한 바를 이룰 경우 3대의 덕을 잘 쌓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1977년 교직에 입문해 2017년 2월 퇴임하는 내게도 3가지 덕이 쌓이고 있으니, 조상덕.스승덕.제자덕이 그것이다. 특히 요사이는 제자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우도초.중학교 백여 명의 학생 모두에게 선물을 보내온 제자, 우도에 자원한 은사가 자랑스럽다며 난분을 보내준 제자, 건강을 염려해 주는 제자 등.
세월을 나는 화살에도 비유하곤 한다. 교직 초입에 내가 쏘아 올린 교육의 화살은 어디쯤 날고 있을까. 교직생활에서의 나의 교육 과녁은 ‘사제동행이 일상화 된 학교’이다. 변화의 세월이라 화살도 진화해 미사일 수준이 됐나 보다. 화살은 궁사의 마음을 읽고 거리도 시간도 재며 날고 있는 병기이기도 하다. 제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화살이 나를 겨냥하기도 한다.
‘학생은 있으나 제자는 없고, 선생은 있으나 스승은 없다.’라는 말이 들릴 때면 화살이 심장을 겨누고 있다는 생각으로 뜨끔하기도 했다. 내가 학생들의 롤 모델이 된다면 그들은 나의 애제자가 되어, 나를 선생을 넘어 스승으로 여겨줄 것이란 믿음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려 한 지난날이다. 그러한 바람으로 본교 교직원들과 함께 정한 학교비전이 ‘사제동행 하여 창의·인성을 함께 키우는 행복한 학교’이다.
사제동행의 교훈을 때로는 제주선인에게서 얻곤 한다. 1968년 만장굴에서 촛불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부종휴(1926- 1980) 교사는, 꼬마탐험대라 명명한 제자들과 함께 짚신 신고 횃불 들고 암흑 속에 감춰져 있던 만장굴의 비밀을 밝혀냈다. 이를 교훈 삼아 본교에서도 사제동행하여 ‘우도사랑 역사문화 탐험대’를 조직해 활동하여 그 결과물로 펴낸 우도여행 안내서가 ‘우도탐험대가 들려주는 우도 이야기’이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친다고 자조 하던 시절을 지낸 우리는 지금, 도시는 물론 도서벽지의 학교도 선진국 못지않은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가난과 아픔을 후세들에게 들려주지도, 과거에서 교훈을 배우라 하지도 않은 건 아닐까. 점차 우리는 거만한 부자가 돼가고 있는 듯하다. 거만한 부자 3대 가지 못한다는 선인들의 말씀은 영원한 교훈인데도.
1907년 제주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사립의신학교(현 제주제일중학교와 제주고등학교의 전신) 설립을 위한 연의문(捐義文)에 담겨진 내용 중 ‘학교라는 것은 오직 나라의 기초요, 백성을 가르치는 근본이다.’라는 명구가 나의 눈길을 끈다. 그럼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학교가 나라의 기초요 근본’이라는 말에서 무엇을 떠올릴까?
한 아이라도 잘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함을 선인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실행했었음이다. 당시 윤원구 제주군수와 철종의 부마인 박영호 등과 함께 제주선인들은 후세교육을 위해 중면(제주읍), 구우면(한림·한경), 신우면(애월), 구좌면, 신좌면(조천) 등 5개 면의 면장들과 88개 마을 이장들과 함께, 관덕정 앞에 모여 의신학교 설립모금을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던 것이다. 후손을 위한 교육의 터전을 닦으려 한 선인들의 노력이 지금의 제주를 낳은 모태임을 다시 깨닫는다.
과거는 또 다른 미래라는 말을 떠올린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집단은 다시 불행의 역사를 되풀이 한다는 교훈일 게다. 1970년 남영호 침물사건(326명 사망)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304명 사망)를 막지 못했으니….
정체성 교육은 인성·창의성을 동시에 높이는 최고·최적의 교육임을 실감한 지난날이다. 정체성 교육은 궁극적으로는, 제주학생들이 제주를 사랑하고 세계를 누비며 꿈을 실현하는 국가인재로 자라게 하여, 미래의 제주·국가·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로 성장하는데 있음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