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절에 내리는 비는 영등할망이 흘리는 눈물

  • 등록 2019.05.17 13: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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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참가한 영등축제 ... 즐거운 교육의 현장

섬 속의 섬 우도는 지금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그려진 우도점마(牛島點馬)에서 보듯 우도는 말들의 세상이었다. 그러다 1844년부터 김석린 진사를 비롯한 구좌·조천 출신의 궁민들이 대거 입도하여 밭일과 바다일을 하며 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햇볕이 따사하게 내리쬐던 날, 우도학교 초·중학생 70여 명도 저마다 제작한 가면과 탈을 쓰고 영등 길거리 축제에 나섰다. 행렬 맨 앞에는 풍물패가, 그 뒤에 영등할망 대형 조형물과 나란히 깃발을 든 나도 따라갔다.

 

풍랑으로 외눈박이 거인 섬에 갇힌 한림읍 한수리 뱃사람들을 도와준 죄로 영등할망은 온몸이 찢겨 머리는 소섬, 사지는 한수리, 몸통은 성산으로 떠밀려왔다. 그 후 제주선인들은 할망을 영등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단다.

 

당나라의 포목장수가 제주로 오다가 비양도 근처에서 태풍을 만났는데, 머리는 협재, 몸통은 명월, 손발은 고내·애월에 떠밀려 영등신이 되었다는 설도 전한다. 이런 연유로 영등절에 내리는 비는 영등할망이 흘리는 눈물이라 하고, 날씨가 나쁘면 흉년의 징조로 영등할망이 며느리와 함께, 날씨가 좋으면 풍년의 징조로 딸과 함께 온 것으로 제주선인들은 여겼다.

 

동네를 지날 때마다 어촌계에서는 영등할망 조형물 앞에 제물을 차려 절을 하고 내게도 음복하기를 권했다. 반면 아이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햇볕 아래서 1시간 이상 걷다보니 갈증이 난 아이들은 그저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이를 알아 차린 관계자들이 음료수와 과자를 나눠주자 아이들은 이내 원기를 회복하여 잘도 걸었다. 4개 동을 거친 축제행렬이 목적지인 천진항 광장에 도착하니, 많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이미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도의 길목인 천진항 광장에 차린 제단에서는 큰심방이 울긋불긋한 의복을 입고 신칼과 요령을 흔들며 사설을 읊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호기심 많은 눈으로 신기한 듯 구경하기에 바빴다. 굿 구경, 사람 구경 신나게 하는 아이들은 굿도 보고 떡도 먹고 싶겠지.

 

무당의 사설이 확성기를 타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해녀들의 안전과 우도면의 발전, 면사무소 직원들의 친절한 대민봉사와 관광객들의 안녕을 비는 사설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면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한 사설은 없었다. 거리축제의 일등공신인 우리 아이들은 이번 행사의 소품 같은 대상이었단 말인가?

 

참여 학생들을 배려한 적절한 사설 한 마디가 곁들여 졌다면 학생들은 체험학습에 대한 보상도 받고 다시 참여하려는 의지마저 키울 것인데…. 나의 제안을 들은 관계자도 이 점을 놓쳤다며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걸어서 30여 분 거리인 학교로 오는 발걸음이 더디었던지 학생들이 나를 앞지르며 재잘거리며 잘도 걷는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에서 귀중한 경험을 즐겼음을 엿보기도 했다. 이래서 체험학습은 유의미하고 즐거운 교육의 현장이 되는 것 이리라.

 

 

12개의 신당이 있는 우도에서 영등굿은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하지만 면민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굿이 아니라 마을마다 별도로 행사를 치른다. 해녀들은 바다의 영역권을 서로 존중하며 물질에 나서기에, 같은 우도에 살아도 비양동 해녀는 하우목동의 바다에서 물질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 한다.

 

음력 2월에 찾아오는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을 잘 대접해야만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영등신앙은 한반도에도 분포한다. 육지의 영등신앙이 개인 신앙으로 남아 있는 반면, 제주는 마을공동체의 신앙으로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 차이이다.

 

영등굿의 한 대목이다. ‘요왕 너븐드르 씨 뿌리러 가자. 동서드레 뿌리자. 전복씨 성게씨도 뿌리자, 미역씨도 뿌리자.’ 요왕 너븐드르는 제주어로 용왕이 관장하는 넓은 들 곧 바다 속의 넓은 땅이다.

 

꽃샘추위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다림의 세월이고 시련의 세월이다. 온갖 생명체들이 모진 추위를 견딘 후 대지를 뚫고 나오는 탄생의 세월이고, 겨울 땅속보다 더한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야 하는 인고의 세월이다. 그래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꽃샘추위가 시작될 즈음 바람의 신 영등할망은 가족과 함께 강남 천자국에서 남방국인 제주도로 산구경 물구경 하러 오는데, 맨 먼저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 포구로 들어온다고 전한다.

 

제주선인들은 매서운 기후변화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신께 제사를 올리는 축제의 장을 마련했으리라. 비바람이 거세어 고기잡이도 어렵고 소라와 전복도 껍데기 뿐이었으니, 배를 띄우는 일도 물질도 밭농사와 집안일도 금하는 기간으로 정하곤 물질과 농사에 지친 몸을 쉬게 하는 황금연휴로 삼았으리라.

 

이렇듯 보름동안 한바탕 바람 축제의 장으로 영등할망을 맞이하고 보내는 굿을 치르고 나서야 제주에는 겨울이 가고 비로소 새봄맞이가 시작됐던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문영택 yeongtaek24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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