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순간 더욱 강해지는 제주 여성 ... '한번 해병 영원한 여해병'

  • 등록 2025.04.24 11: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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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제주여성 126명의 특별한 이야기 (2)

 

수많은 전사(戰史)가 있지만, 여성해병대 이야기는 40년 가까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4년 8월 10일자 동아일보와 1994년 8월 15일에 발간된 ‘해병 전우 신문’에 보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96년에 강기천 장군의 회고록 '나의 인생 여로'에 해병대 여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방송을 탔다. 제7대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강기천 장군은 여군을 훈련한 당시의 해군 신병훈련소 소장이었다.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자서전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에서 "우리나라 여자 군인 역사는 1948년 간호장교 후보생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일반 여자 군인으로 범위를 좁혀 보면 6.25 전쟁 발발 후 해군·해병대에 입대한 해병대 4기 해병 126명이 그 출발"이라며 "육군의 여자 군인이 같은 해 9월 5일 탄생했으니 해군·해병대가 6일가량 빠른 셈"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불행하고 불운한 세대였어요. 나라에 충성하려면 부모 가슴 아프게 하며 총을 들 수밖에 없었고,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나라를 저버리고 병역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저 쓰라린 한국전쟁 당시 우리 소년 소녀 병사들은 위기에 놓인 내 조국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며 펜 집어던지고 총을 선택했던 겁니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들도 있는 거니까요.”(해병 4기 문인순, 한마음회 회장, 중학교 3학년 재학 중 입대)

 

조선 시대에도 제주에 일종의 여군이 있었다고 한다. 제주어로 ‘예청’이라 불리던 여정(女丁)이다. 1601년 안무어사(지방에 파견된 특사)로 온 김상헌이 쓴 기행문인 남사록(南槎錄)에는,

 

“내가 알아보니 제주의 성안에 남정(男丁)은 500명이고, 여정은 800명이다. 남성이 적어서 만약 사변이 발생해 성을 지키게 되면 민가에서 건강한 부녀자를 골라 성 맨 앞 돌출부인 ‘살받이 터’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도는 늘 왜구의 침략에 시달렸다. 왜구는 밀물을 타고 들어와 3~4시간 마을을 분탕질하고 농산물과 가축들은 물론 여성을 납치해 가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에서는 왜구에 대한 방어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왜구를 방어하는 데는 관군만으로 한참 모자랐다. 하는 수 없이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집마다 당번제로 번을 서게 되었으며, 여성들도 왜구를 방어하는 데 가야 했다.

 

이처럼 제주 여정은 여성으로서 관방 시설을 지키는데 나선 수성군(守城軍) 중에서 여군을 말한다. 이들은 관방 시설 중 가장 핵심이 되었던 곳에 보초를 서 왜구의 침탈을 방비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정은 제주도 여성들에게만 상시로 부가된 군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정은 조국의 위기상황에서 국가 수호를 위해 나선 해병 4기 제주 여성들처럼, 국가 유사시 성정군(城丁軍)으로 동원되어 군사 역할을 담당했던 요역(徭役) 대상자로 보인다. 한편 요역이란 국가의 필요에 따라 민의 노동력을 대가 없이 정기·부정기적으로 징발하는 세의 한 항목을 말한다.

 

조선 시대 제주도의 여정이나 대한민국 해병 4기 제주 여성 모두, 비록 여성은 국방의 의무가 없지만, 나라의 위급함 앞에서 남성 못지않게 구국 활동에 앞장섰다는 국가 사랑과 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또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위기의 순간에 더욱 강해지는 제주 여성이라는 점도 같다. 그렇게 제주도 여성들은 험난한 역사적 조건과 한반도와 다른 지리적 여건 속에서도 닥쳐오는 고난과 힘든 역경을 피하지 않으며, 삶에 대한 악착같은 의지로 삶을 창조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해병대 출신 제주 여성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고순덕 할머니는 6남매 모두 군대식으로 키웠다고 덤덤하게 회고했다.

 

그는 “난 지금도 내가 군대 다녀온 것이 잘했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그는 “아마 내가 군대 안 갔다 왔으면 지금도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아기지, 아기! 그전에는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는데, 군대 다녀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죠. 군대 생활 덕분에 지금도 바른 몸가짐과 당당함을 가질 수 있었지.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도 알았고”라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아있는 전우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도 동기 모임을 하며 해병대 기념행사에도 줄곧 참석한다. 해병4기 여군전우회를 조직하여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대부분 80~90대 나이다. 여자해병대 출신으로 구성된 한마음회에서는 1997년 7월부터 매달 해군 제주방어사령부를 방문, 몸에 맞지 않거나 헤진 군복을 수선해 주고 진급 장병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그 시절 군복이 몸에 맞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나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기 때문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j3698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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