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재일교포와 결혼하여 현재 일본 나가노현 우에다시에 거주하는 우리 누나는 그곳에서 딸 넷을 낳았다. 조카들이 태어날 때마다 제주에 있는 친정엄마, 우리 어머니가 몇 개월 동안 누나네 가서 산후조리와 육아를 도와주다 오시곤 했다.
몇 해 전 일본 동경 사는 큰 조카가 자기 신랑이랑 두 살 딸을 데리고 외가인 우리 집에 다녀간 적이 있다. 그때 조카의 어린 딸이 하도 졸려 하자, 한국어는 고사하고 제주말을 전혀 못하는 조카의 입에서 어설프게나마 제주 민요 ‘웡이 자랑’이 흘러나왔다.
조카는 제주말을 전혀 못 하지만 어릴 적, 자기 외할머니가 자신을 재우기 위해 불러줬던 자장가만은 원어로 기억하고 있었다. 단순히 기억하는 차원을 넘어 자기 딸에게 그 자장가를 불러주는 게 아닌가? 생전에 누나에게 자식들 한국어 교육 안 시킨다며 역정 내시던 아버지가 그 장면을 보셨다면 뭐라 하셨을까?
자랑 자랑 웡이 자랑 어서 자랑 어서 자랑 어서 자랑
저리로 가는 검둥개야 이리로 오는 검둥개야 우리 아기 재워 주라
검둥개야 울지 말라 암 닭이랑 울지 말라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아주 예전에 제주 여성들은 집일, 밭일, 물질에 이르기까지 두루 일했다. 여성들의 삶은 늘 노동의 연속이고 일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일노래가 불렸다. 여성들은 노래를 통해 노동의 고통을 잊을 뿐 아니라 현실의 괴로움과 고통을 극복해 내는 지혜를 스스로 얻어냈다. 특히 여성요(謠)에는 여성의 애환을 노래하는 사설이 많다. 사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겪는 생활고, 서러움, 시댁과의 갈등, 좌절 등의 신세 한탄과 저항 의지, 기대, 소망들이다.
‘시집살이노래’는 시집간 여자의 생활 주변을 읊고 있다. 현실을 한탄하거나 타협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반발한다. 부당한 속박을 고발하고 항거하는 의지를 보여주며 시집 생활을 솔직담백하게 토로해낸다. 시집 식구와의 가족관계, 힘에 겨운 노동의 고통, 가난, 즉 경제적인 설움, 신세 한탄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요놈의 시집살이 못살면 말지. 시누이야 잘난 척 말아. 너도 언젠가는 시집을 간다. 나도 참다 참다 못하면 이미 잔에 비운 참기름처럼 당장에 시집살이 때려치우고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나에게 그렇게 대책 없이 함부로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암 닭 같은 시어머니 장 닭 같은 시아버지 병아리 같은 시 아기들/ 시아버지는 개 놈의 자식 시어머니는 잡년의 딸년/ 시아버지는 소라같이 이만 성깃성깃 시어머니는 전복같이 시무룩, 시누인 고셍이(놀레기 일종) 같이 이리 호로록 저리 호로록” 이래서 시집 식구들은 하나같이 밉다. 이런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데도 바보같이 그 구실을 제대로 못 해내는 무능력한 존재, ‘바보 같은 내 남편’이다. 그런 남편은 아내가 힘든 노동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껴안으려 하며 자신의 성적 충동만 채우려 한다. 그래서‘뭉개’(문어)에 비유하고 있다.
“시아버지가 죽으면 긴 담뱃대도 내 차지 시어머니가 죽으면 궤방 구석도 내 차지 시누이가 죽으면 살레(찬장) 구석도 내 차지/서방님이 죽으면 동네 건달들도 내차지/어느 때랑 시아버지 죽어 고추장 단지도 내 차지, 행장 궤도 내 차지 상석도 내 차지.”
도대체,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으면 차라리 시부모가 죽어버렸으면 했을까?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모든 게 며느리 차지가 된다. 심지어 남편이 죽으면 동네 남자들도 모두 다 내 차지가 된다. 그래서 시부모가 죽자 너무 기뻐 춤을 춘다. 그런데, “시아버지 죽어 춤추다 보니 콩 씨 뿌려 놓은 생각이 난다. 시어머니 죽어 춤추며 놀다 보리방아 물 섞어 놓으니 시어머니 생각이 다시 난다.” 그렇게 밉고, 그분들이 죽으면 세상 모두가 내 차지가 되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잠시, 매 순간 그분들 생전 모습이 떠올라 울컥한다.
‘시집살이노래’에는 처첩 간의 ‘씨앗 싸움’을 다룬 노래도 있다. ‘큰 각시(본처)’는‘큰 각시’대로, ‘족은 각시(후처)’는 ‘족은 각시’대로 구구절절 서럽고 아픈 사연들이 가득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