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가슴을 안으면서 사랑한다고 한다. 또는 가슴을 안지 못하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품는다. 그러나 우리는 품는다는 의미를 알 만큼 성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였다. 안겨야 하는, 보이는 사랑에 갈급할 뿐 마음 안에 숨겨진 사랑을 헤아리기엔 아직 미숙한 어린 아이였다. 비록 그것이 더 깊다하여도. 깊이는 아이에게 있어 어려운 단어였다. 감정이 아니고 이해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이 강제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속박일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나이에 뭣 모르고 저지른 놀이를 세 살 위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였고 나와 같이 강제와 속박된 사랑에 싸여있었던 오빠가 그 때 왜 그럴 수 있었을까, 얼굴을 붉히면서도 되돌아보곤 했다. 회한이 아니다. 회상이다. 내게 상처를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단지 부끄러움만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내게 안겨준 느낌으로 채워진 행복, 그래, 바로 그 행복감에 다시 젖어보고 싶기에 회상이며 그리움이다.
오빠의 우표첩에는 벗어나고 싶다든가 떠나고 싶다는 글귀가 유난히 눈에 띈다. 오빠 방 벽에 붙여 놓은 <온전하기에 흔들린다>도 같은 의미 같았다. 흔들린다는 건 벗어나 떠나고자 하는 마음일진대, 오빠는 갇힌 지금이 온전하다고 여기지 못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더 가두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무서운 일이 닥쳤을 때, 도망 가 벗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멈춰 서 눈을 감고만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용기는 행동이 아니다. 의식이다. 의식을 사로잡는 압박은 블랙홀과 같아 다 몰아넣을 뿐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폭발해야 끝난다. 끝내는 것이지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끝내고난 뒤에나 벗어날 의식이 깨어난다. 용기는 깨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게 용기다. 구속은 잠식이다. 가둬 죽이는 것이다. 말살은 의식을 포함하기에 의식인 용기도 죽인다. 결국 용기를 죽이는 게 구속의 목적이 된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서양 속담을 잘 알고 자주 말하곤 한다. 하지만 미인을 얻는 용기 있는 자를 주변에서 봤는가?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히 희박하다. 있더라도 용기라기보다는 상황이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용기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의식의 전환에 더 가깝다. 의식의 전환 없이 행동을 앞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기 십상이다. 행동하지 못한 용기는 ‘용기가 없어 난 미인을 얻지 못해’ 라는 자괴로 돌아온다. 이러한 속담은, 돌려 말하길 자기암시라고 하는데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여길 때는 자기암시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속담은 사전에나 나오는, 그리고 인용을 위해 들춰보는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 역시 단어와 같은 관념이다. 다짐만 연속될 뿐이다.
오빠는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기보다는 벗어나고자 한다는 의식 속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일탈의식은 벗어남이라는 일시 현혹의 유혹에 빠지게 만든다. 일탈로서 용기를 숨긴다. 일탈은 그래서 늘 벗어나지 못함의 집착으로 중첩될 따름이다. 오빠는 그러한 글귀를 쓸 때마다 쓰는 것으로 일탈하고 있었다. 글자에 묶고 말에 묶이고 관념에 묶이게 되었다.
용기를 가져라, 이 말은 더욱 관념인 말 속에 빠져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듣고 말하고 이것이 거듭될수록 쌓이는 것은 공허감이며, 무력감의 축적은 허무를 만들어낸다. 함부로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포분열처럼 관념은 관념 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관념을 급증시킨다. 세포수를 증가시키듯 성취욕구의 발전으로 그 안에 더 가둬두고 갇힐 뿐이다.
오빠는 스스로 용기라고 하며 여동생에게 놀이로 가장된 일탈로 공허를 잠시 채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각만이 행동하게 했다. 그래서 자각은 일회성의 반복의 거듭이다. 거듭된다 해도 매번 한 번에 그친다. 자각하고 또 자각하지만 언제나 한 번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오빠와 나와 같이 어린 시절을 갇혀 보낸 사람들이 대체로 온순하다. 정확히 말하면 온순하게 보인다. 온순은 안주와 안일의 자세로 타협적인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다. 모험적일 리 없다. 내성적인 성격과 달라서 온순이나 착함은 성격이 아니라 만들어진 가면이다.
오빠는 어차피 판검사나 변호사가 될 수박에 없고, 나는 의사로 만들어지게 돼 있다. 타협은 가장 소극적 모험이기에 쉽다. 하라면 하면 되고 이렇게 얻은 성취는 까라면 까라는 대로 타협을 잘 한다. 이런 오빠가 가엽고 이런 나도 가엾다. 오빠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아쉬움은 엄마의 초인종 소리였다. 오빠의 자유와 나의 평화를 깬 엄마의 귀가가 너무나 빨랐다는 것이 아쉽다. 초인종이 울리기 전 오빠가 내 볼에 입맞춤을 할 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듯 들려온 기억이 남아있다. 오빠는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을지 모른다. 기억은 마음으로도 남고 그것으로 사실이 되기도 한다. 오빠의 그 때 마음을 나는 한참 뒤 어른이 되어서 느낄 수 있었고 그 느낌을 속삭임으로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품는다는 게 이런 것인가. 나이가 든다는 게 깊이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인가. 품고 사는 우리는 모두가 동병상련을 앓으며 나이가 든다. 나이는 먹는 것이다. 오해를 이해하고, 갈등을 화해시키며, 불안을 평화로 이끌고, 구속을 자유화하는 뒤섞임이 정돈되기 위해서 앓음의 과정이 있었다. 섞어야 가라앉힐 수 있다.
미국에 와서 가끔 바다로 나간다. 바람이 불고나면 바다가 그립다. 바다로 가기엔 꽤 먼 미국 땅이지만 오랜 여행 뒤에 마주치는 바다는 언제나 의미를 안겨주었다. 나도 어느새 엄마처럼 의미의 노예가 되었는가. 그러나 내게 의미는 삶의 원초적 자극이다.
세차게 바람이 불면 바다도 뒤섞인다. 바람과 비로 떠 내려온 세상의 잡동사니들만을 뒤섞지 않는다. 바다는 속을 겉으로 드러내고, 겉을 속으로 솎아낸다. 바다 속의 것들을 위로 올리고 겉이 속으로 파고들며 뒤집히고 솎아진 바다는 몸살을 앓는 우리의 마음과 같다. 쓰레기장이며 진흙탕물로 변한 바다는 바람이 잔잔해지면 바람 불기 전과 같은 맑고 푸른 본색을 다시 드러낸다. 이것을 보여주는 바다가 내게 의미로 와 닿는다. 변하는 것을 보여주는 바다. 변하면서 다시 찾는 원래의 모습. 바다는 맑은 대로도 흐린 대로도 정지하고 정체하지 않는다. 율동의 바다는 머물지 않는 섭리를 일깨운다. 물의 종착일 것 같던 바다는 더 요동을 치며 순환의 평온으로 화합한다. 나는 바다에서 견딜 힘을 건져온다. 버틸 힘을 낚아서는 끝내 벗어나곤 한다. 벗어나서야 새로움이라는 용기를 내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깊은 바다는 과거며 솎아진 바다에서 나는 과거를 건진다. 과거는 멈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을 늘 요동치게 한다.
바다와 같은 환자가 많이 찾아온다. 그들은 하나 같이 호수 같은 바다를 그리워한다. 죽음을 피하고자 하면서 죽음에 가까이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과거를 수용하지 못하기에 환자가 된 이들은 과거를 부정하면서 미래를 쫓는다. 이들이 원하는 미래는 언제나 허상이며 환상일 수밖에 없다. 긍정은 잘 될 거야, 가 아니다. 부정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부정을 부정하면 어떤 출발도 불가능하다. 출발선에 서지 않는 육상선수와 같다. 출발도 하지 않고 도착지에 닿기만을 고대하는 관중에 불과하다. 긍정의 힘은 힘이 돼주질 못한다. 이럴 때의 긍정은 허공의 비목표물이다. 긍정은 힘으로 씌워져 긍정의 순환으로 돌고 돌 뿐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제 자리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다람쥐도 자기가 뛰고 있고 그래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달리고 달리지만 제자리걸음을 거듭할 뿐이다. 긍정은 우리를 이렇게 속여왔다. 긍정이 속였겠는가. 긍정에 힘을 가세한 단어놀이꾼들로 인해 속임수로 전락했다. 역시 긍정도 관념이 되고 말았다. 긍정은 부정으로 솎아내야 비로소 힘으로 결집될 수 있다. 긍정의 힘은 그래서 부정이다. 부정을 인정하는 데에서 긍정의 싹을 틔울 수가 있다. 부정이 긍정의 토대이다.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빠져나온 탈북자는 남한을 선택하지 않았다. 베트남을 통해 프랑스로 들었고 지금은 미국에 와 있고 환자로 내 앞에 앉아있다.
“어디에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십여 년을 표류한 그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서 내가 마주하곤 하는 바다를 본다. 부유물 같은 그를 바다 위에서 본다.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본다. 언어장애, 문화적 간극 등등 운운하는 것도 나의 과거와 결코 다를 게 없었다.
“당신한테는 어느 것이 바다냐?”
물으며 두 장의 바다 사진을 내놓았다. 바람 없는 잔잔한 바다와 파도가 요란한 바다였다. 그는 평화를 손으로 찍었다.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면서 그가 들은 서방세계는 자유와 평화의 천국이었다. 찾기 위해 도망쳤다. 죽음을 수 차례 무릅쓰고 찾아온 세상은 듣던 것과는 달리 자유의 천국도 평화의 천국도 아니었다. 오히려 북한보다 더 구속·압박의 땅이었다. 경쟁에 의해서 받는 구속감. 북한에서 느껴보지 못한 비교된 삶의 정신적 압박감. 북한에서 갖고 있던 불안과는 사뭇 달랐다. 비교하위, 무능력, 부러움에 찬 불안감이었다.
다시 그림 두 장을 그 앞에 내놓았다. 절규하는 뭉크의 <비명>과 자른 귀를 붕대로 감은 고흐의 <자화상>이었다. 이번엔 묻지 않았다. 그의 표정을 읽었다. 두 그림 모두에 안면경련을 일으키며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또 두 장의 그림을 내보였다. 남매인 듯해 보이는 코코슈카의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치히로의 <모녀>였다. 한참을 보고 있던 그가 눈물을 떨어트렸다. 처음 보여줬던 바다 사진 두 장을 책상 위에 다시 올려놨다. 또 물었다.
“당신한테는 어느 게 바다냐?”
처음과 달리 그는 혼돈의 바다를 손으로 집었다. 희망을 현실로 착각하는 데에서 혼란이 가중된다. 희망은 유혹일 뿐이다. 용기나 긍정처럼 희망도 행동이 될 수 없다. 의식될 뿐이다. 의식을 행동으로 오인하는 데에서 착란현상을 빚는다. 착란은 현혹이다. 현혹은 거짓이다. 의식으로 각인시키는 의학 학술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희망도 용기도 긍정도, 모두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의 치료도구의 방편일 뿐 처방이 될 수 없다. 안과 의원 벽에 걸려있는 시력검사용 숫자표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으로 고쳐지는 게 아니다.
그를 치료하려들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혼돈의 바다 사진을 갖고 가겠냐고 물었다. 주저하는 그에게 선물이라며 그의 손에 쥐어줬다. 예약한 대로 일 주 후에 그를 다시 만났다.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간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했다. 갖고 간 바다 사진을 내게 돌려주며 그는,
“북한을 떠난 뒤의 내 모습 같았습니다.”
애써 자기의 모습을 기피해왔다고 덧붙였다. 그의 대답에 ‘남을 보려하지 말고 나를 먼저 보라.’고 하려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또 같은 꿈을 꿨다. 다 벗은 오빠와 갯벌 바다로 걸어가고 있는 나. 이번엔 오빠와 손을 잡았다. 오빠도 나도 몸은 이미 어른이 돼 있었다. <글.그림=오동명/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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