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더라면"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다

  • 등록 2013.04.15 09: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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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13)

23 시내버스를 세 번, 시외버스를 한 번 바꿔 타고 도착하니 그곳이 정선이었다. 눈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버스를 집어타니 정선에 닿았다. 아우라지, 두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마음도 두 줄기로 흐른다. 그것은 유지와 포기다. 현재와 같은 미래와 현재와 다른 미래라는 두 줄기의 흐름이다. 물은 흘러가라고 하지만 바위에 휘도는 물은 멈춰 돌아보라고 말을 걸어온다. 자연은 소리로 말을 하고 울림으로 듣게 한다. 이 년 또는 삼 년, 늘 그렇듯 책에 묻혀 지나고 나면 어제 법정에서 보았던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돼 있겠지. 너는 그들과 다를 것 같니? 유지의 물줄기가 바라본다. 너도 그들과 같아선 안 돼, 포기의 물줄기가 바라본다. 강물이 출렁이듯 착각이 인다. 법정에서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방청인도 모두 내게 주목하지 않았는가. 법정의 주인공은 피고인인 나였지 않았는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오빠는 다시 강을 내려다보았다.

 

휘돌던 물줄기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아 흐르던 방향으로 합류한다. 흔들림이 휘도는 물과 같아 보인다. 흔들림은 그러다가 찾아가는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그저 피고인이었을 뿐, 법정에선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들에 의해 풀려났을 뿐이다. 송천 쪽에서 엄마가 흐른다. 골지천 쪽에서도 엄마가 흐른다. 한쪽은 웃고 한쪽은 운다. 아우라지에서 어우러져 만난 엄마는 표정이 없다. 멈춰 물끄러미 쳐다보는 엄마는 실제와는 다른 연약한 여자였다. 물은 출렁출렁 파동을 일으키지만 엄마는 말 한 마디 없이 물 위를 넘실넘실 흘러간다. 꿈 같이 엄마가 흐른다.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장마가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강 위로, 산들 사이로 아리랑이 흐른다. 우리가 무엇을 알리오. 내 심사조차 알 길 없건만. 아리랑이 ‘알리’에서 유래되었다고 스치는 바람이 알려줄 듯할 무렵, 경찰차가 멈춰 선다. 신분증을 보잔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멀리 떠나왔어도 기껏 와 있는 곳이 학교 앞 정문이라니. 검문에 순순히 응했다. 학생증을 보여주니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경찰 둘이 뭐라 자기들끼리 말한다.

 

“여기서 며칠 전에 투신한 일이 있었다.”

 

검문의 이유를 설명하고 돌아서며 경찰들끼리 또 수군수군한다.

 

자살할 학생이 아니네. 서울법대생이라잖아.

 

전에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현상유지의 점괘를 그들이 쑥덕거리는 것 같았다. 오빠는 그 때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귀희니?”

 

“오빠 어디야? 엄마가 오빨 얼마나 찾고 있는지 알아?”

 

“응. 여기 강물 위.”

 

“뭐? 왜? 뭘 하려구?”

 

“생각나니? 엄마랑 기차 타고 강촌에 갔을 때 우리가 한강을 내려다 보았었잖니.”

 

나는 흐르는 강 위에 나를 띄우고 한없이 나를 떠나보냈던 기억, 당연히 생각나지 했고, 오빠는 흐르는 강보다는 강을 따라 달리는 버스를 타고 있었던 그 강촌의 다리 위도 생각난다고 말했다.

 

“오빠, 지금 강촌이야?”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엄마 보고 걱정하시지 말라고 말해주겠니? 며칠 시골에서 쉬었다가 집으로 갈 거야.”

 

 

 

 


엄마를 바꿔줄까?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대신,

 

“오빠, 나도 그 강촌에 다시 가고 싶다.”

 

“여기 강촌 아냐. 한강이긴 한데... 그렇구나. 엄마 말이 생각나네. 강촌은 북한강이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남한강 쪽이야. 엄마는 언제나 우리를 앞지르게 하셨지. 이렇게 내가 여기 어떻게 와 있을 줄 알고.”

 

오빠의 목소리가 우울하게 들려 불쑥 걱정이 들었다.

 

“오빠,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지?”

 

수화기 너머로 오빠의 웃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귀희야. 우리 언제 바다에 함께 가자.”

 

가보고 싶은 바다를 오빠가 가자고 했다.

 

“언제? 어느 바다? 서해? 동해? 남해?”

 

바다로 가자는 오빠의 말이 방금 전 걱정을 다 잊게 했다.

 

“귀희가 가고 싶을 때. 귀희가 가고 싶은 바다로.”

 

오빠는 아빠는 잘 계시지? 묻고는 내 대답도 다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쯤 오던 집마저 거의 발을 끊었다. 집으로 돌아온 오빠가 이년 이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보이겠노라고 엄마에게 다짐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적어도 이 년 내로는 바다구경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지만, 하기야 대입을 앞둔 내가 언감생심, 바다구경은 무슨? 스스로 체념하고 오빠처럼 시험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 남매는 시험에 익숙해져서 시험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두려움은 시험 외의 해보지 못한 다른 일이었다.

 

오빠는 잊었는지 내가 미국을 떠나는 날까지도 바다를 구경시켜주지 않았다. 오빠의 약속을 유난히 고대했던 나는 미국에 와서 자주 바다를 찾게 되었다.

 

비행기는 알래스카를 벗어나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를 날고 있다. 좌석 앞 작은 화면에도 비행기가 날고 있다. 베링해 상공, 서너 시간을 지나면 일본땅 육지가 화면에 나타날 것이고 한국이 가까워질 것이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바다는 바다 외에 보여주는 것 없이 단조롭지만 흰 도화지 앞에서처럼 갖은 것들을 머리 속에 섞어 담고 또 풀어내놓는다.

 

 

 

우리집은 이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했다. 이 또한 엄마의 주관에 의해서다.

 

“이 년 동안 묵혀둔 먼지를 터는 일이다.”

 

엄마는 손쉬울 포장이사를 하지 않는다.

 

“결혼 이후 5년 만엔가 이사를 처음 할 때란다. 이렇게 많은 먼지 속에서 살았단 말야? 먼지에 얼마나 놀랬는지.”

 

엄마는 무척 깔끔한 편이었지만 결혼 후 첫 이사는 포장이사에 맡겼다. 이내 후회를 했다. 일꾼들의 손은 재빨라서 짐들은 수월하게 처리됐지만 이것이 눈에 거슬렸다. 일꾼들의 손에는 먼지도 함께 실려 갈 짐이었다. 옮겨야 할 모든 물건들이 다 같은 짐에 불과했다.

 

이거, 깨지기 쉬운 건데 조심...

 

이건 안방, 저건 주방...

 

숙달된 손에서 생각·기억·추억들은 버려졌다. 물건 하나하나에 다 과거를 갖고 있는 엄마로서는 그저 짐으로 한데 뭉뚱그려져 처리되는 소중한 기억들이 그럴듯한 포장이사로 포장이 해체되는 것을 보았다. 털어내지 않은 먼지가 짐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고는, 힘들어도 내가 다 털고 싸야 했는데, 후회했다. 짐은 저장의 공간만은 아니었다. 잊힌 과거를 되살려주는 재회의 시간이었다. 이런 때도 있었구나, 과거주어담기는 그리움이었다. 엄마는 마음을 먹었다.

 

포장이사는 절대 안 하며, 2년에 한 번은 이사를 한다.

 

묵은 분위기를 쇄신해보자는 의도에 엄마는 흡족해했다. 생활 속 안주가 생각을 안일하게 할 수도 있어, 엄마는 편의나 편리가 사고나 의식을 죽인다고 믿고 있다. 짐을 정리하고 있던 엄마에게 내가 그랬다.

 

“우리는 유목민 같아.”

 

그때 엄마가 정돈 중인 짐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이게 뭔지 아니? 너희들 젖병이란다. 이건 너희들 신발이고. 요렇게 작았단다. 깜찍하지? 이렇게 작은 장난감을 너희가 신고 다녔다니.”

 

엄마는 평소 엄마답지 않게 호들갑스럽다 할 정도로 들떠서 또 내 얼굴 앞에 무엇인가를 들이밀어 보였다.

 

“귀희가 처음 쓴 글씨란다. 여기 오빠 것도 있네. 어쩜 이렇게, 삐뚤삐뚤한 글씨가 정말 귀엽다. 어때?”

 

우리 남매의 중학교·고등학교 교복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엄마에게 생각·기억·추억, 과거주어담기가 된 이삿짐싸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짐을 싸다말고 생각에 젖곤 하는데 그 생각 속엔 후회가 대부분 들어있었다. 매사 긍정적인 엄마는 한 시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랬더라면’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라고 한... 후회를 말한다. 그때로 돌아가 다시 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결코 돌아오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지금을 부정할 뿐이다. 만약은 없다. 다하지 못한 일은 지금을 자각하지만 대체로 후회는 거듭 순환하기 마련이어서 후회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이 순환은 고통을 일시 진정시키는 진통제인 ‘그랬더라면’의 연속이다. 내가 영어단어 외우기에 열중하던 초등학교 때였다.

 

“regret이란?”

 

“후회한다.”

 

내 대답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어단어를 물어야 할 엄마는 ‘더 이해하기엔 아직은 이르지만’말뿐 더 말이 없었다. 입속에서 중얼거렸지만 내 귀에 분명하게 들려와 잊힌 적이 없는 엄마의 ‘후회한다’의 해석. regret은 ‘후회한다’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다시 운다’는 뜻도 있다. 통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후회는 통절하게 울고 우는 것이다. 엄마는 다른 단어를 다시 묻기 전에,

 

“영어든 우리말이든 regret, 후회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어야겠지?”

 

우리집 가훈을 상기시켰다.

 

<시간을 내 것으로>

 

우리 남매는 엄마와 시간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었다는 생각이 베링해를 넘어 오호츠크해 위를 지나고 있다. 십삼 년 전에는 이곳을 거슬러 반대방향으로 날고 있었을 것이다. 그땐 창밖의 세상엔 관심이 없었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두려웠지만 이보다는 엄마의 슬하로부터 벗어난다는 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내 안의 엄마는 붕어빵틀을 떠올리게 했고 붕어빵이 되어 나오는 나를 떠오르게 했다. 이것은 두려움이긴 하지만 공포에 가까웠다. 스물세 살이 되어도 엄마품은 요람이었다. 요람은 어릴 적에나 안전하고 편할 것이었다. 요람을 떠나온 미국행 여객기가 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포대기를 찾는 아기가 되어 엄마젖을 더듬고 있던 나는 공항에서 엄마가 내 손에 쥐어준 편지를 속주머니에서 꺼냈다.

 

“열두 시간을 가려면 지루할 게다. 가는 길에 잠이 안 오거든 읽어보렴.”

 

 

 


붉히면서도 참아내려는 엄마의 눈시울이 보였고 놓지 못하며 떨고 있는 엄마의 손이 느껴졌다. 엄마는 그 후 다시는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품에 더는 안겨보지 못하고 엄마를 멀리 보내고 말았다. 너무나 멀리. 남은 것은 후회이고 그것은 다시 우는 것이라고 말해주던 엄마는 이제 없다.

 

 

 

사랑하는 내 딸 귀희에게,

 

편지를 쓰려하니 너무 많은 말을 내 딸 귀희에게 해온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구나. 편지 또한 손으로 쓰는 말일진대, 마주 볼 시간을 잃게 될 지금, 가슴부터 먹먹해 손이 서툴구나. 헤어짐이 서툴러서겠지. 우리가 늘 붙어있었으니. 정확히 말하면 이 엄마가 우리 귀희를 늘 붙잡고 있었다는 표현이 옳겠지? 유별나게 억척스런 엄마를 만나 귀희와 규범이가 많이 힘들었지? 공부하러 떠나니 꽤 긴 시간의 이별이 될 수 있을 거란 예상을 하면서 헤어지는 순간이 함께 한 시간의 집약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아쉬워서 후회하게 하고, 안쓰러워서 회한하게 하는구나. 이 자리 그대로 머물러 있는 나를 이렇게 동요케하는데 하물며 낯선 곳으로 떠나는 내 딸은 더 어떨까?

 

지금, 엄마는 늘 붙어있을 땐 헤아려보지 못한 사랑을 되돌아보고 있단다. 가슴으로 품어야 할 사랑이 너희들에겐 등에 짊어진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귀희가 일 년 전쯤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할 때 이런 반성을 하게 했단다. 어떤 사랑도 따뜻해야 하는데 엄마의 사랑은 따뜻하기보다는 차가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짧은 시간은 차가워도 훗날 더 긴 시간이 따뜻해야한다는 궤변을 엄마의 사랑이라고 변명하고 있는 지금, 못내 아쉽고 아프구나. 잃으면서 얻게 되더라도 그것은 고통이라는 자괴심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내 딸하고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라도 마시면서 도란도란 달콤한 얘기를 나라고 왜 나누고 싶지 않았겠니. 내 딸하고 눈을 마주하며 소소하고 단란한 대화로 여자가 돼주고 싶은 마음이 나라고 어찌 없었겠니. 시장도 같이 보러 다니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귀희가 더 좋아할 미술전시장도 같이 관람하고 싶은 마음, 여느 엄마처럼 이 엄마도 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겠니.

 

쓰고 있는 편지지 앞에는 찻잔이 놓여 있는데, 이 찻잔마저도 쓸쓸해 보인다. 혼자이기 때문일 것이고 함께 하지 못함 때문이겠지. 외로운 찻잔 옆에는 귀희의 그림노트도 있단다.

 

미안하다, 내 딸.

 

그것이 사랑이라 하더라도 엄마가 딸의 것을 엄마 맘대로 빼앗았단 생각이 드니 엄마가 훔친 딸의 노트가 엄마를 원망하듯 쳐다보고 있어 가슴이 무척 시리고 저릿하다. 그림노트 안의 귀희 글들을 자주 꺼내 훔쳐보곤 했단다. 엄마가 참 나쁘지?

 

‘좋다. 꽃을 보고 있을 때.’

 

‘좋다. 그림 그리고 있을 때.’

 

엄마를 화나게 했던 이 글귀들을 헤어지는 이제야 보듬으려드는 엄마가 참 얄궂지?

 

‘싫다. 공부.’

 

‘싫다. 의대.’

 

네 노트를 던지게도 했던 이 글귀들을 헤어지는 이제야 품으려드는 엄마가 참 야속하지?

 

다 얻으려하면 다 잃는다는 교훈을 철저하게 맹신한 엄마는, 그래도 지금 사랑하는 내 딸과 헤어지면서도 이건 엄마의 지혜였고 자식사랑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진 않구나. 우선 큰 일을 성취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엄마가 소중한 딸의 그림노트를 빼앗으며 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단다. 야멸차 보였겠지만 이래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쓰렸단다.

 

너희들을 기다려주지 않은 엄마로 알고 있겠지만, 너희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기다림이라는 것, 기다림은 오해를 푸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해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하다. 귀희와 헤어져야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란다.

 

엄마는 또 기다릴 거야. 사랑스런 귀희가 자랑스런 귀희로 돌아올 때까지.

 

엄마는 너희 둘, 귀희와 규범이에게는 악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악인도 종내 은인이 된다는 확신도 분명 가지고 있단다. 이것이 엄마의 기다림이란다. 이것이 여느 사랑은 아닐지라도. 이 엄마는 헤어지는 내 딸에게 또 야속하고 야박하게 굴고 마는구나. 기다리겠다고, 아직은 엄마가 차가운 여자일 수밖에 없다고.

 

내 딸아, 미안하다.

 

엄마는 너희들에게 덜 후회하는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 친구로, 그리고 여자로 마주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엄마가 내 딸에게.

 

 

 

건강하게 잘 다녀와라, 한 구절 없는, 십삼 년 전 당시엔 읽고 바로 구겨졌던 엄마의 편지가 이제는 새삼스럽다. 엄마는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의도대로 엄마를 이해할 것 같은데, 이해하려니 너무나 가슴이 쓰려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내게 이해는 빈자리 같은 아픔이었다. 엄마, 그랬구나. 고마워.

 

승무원에게 커피 두 잔을 부탁했다. 그 두 잔을 마주 앉혀놓고 차를 마시는데 한 잔이 아닌 두 잔도 혼자였다. 언제나 혼자 차를 마셨을, 그리고 기다렸을 엄마가 지금 없다. 기다려줄 엄마가 없다. 엄마의 커피도 내가 마셔야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마시고 있다. 먹먹하다던 엄마의 가슴이 이런 것인가. 글.그림=오동명/ 22편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오동명 작가 momsal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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