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렇게 깊이 내 속에 들어올지는 몰랐어"

  • 등록 2013.07.01 09: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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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24)

12 규범은 엉뚱하다 싶은 제안을 내놓으면서 ‘너하곤 다 벗고 있어도 아무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한 방금 전 선희의 말을 떠올렸다. 제안이란,

 

하나, 다 벗고 마주앉아만 있기

 

둘, 다 벗은 그대로 등을 대고만 있기

 

셋, 다 벗은 그대로 포옹만 하기

 

이 모두를 각각 20분씩 하기.

 

“인내를 시험하자는 거니? 어째 엽기 같기도 하고.”

 

선희가 벗은 몸을 규범의 앞에 앉혔다. 그는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 둘 사이의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왜 하필 이십 분이고 한 시간이어야 하는 거지? 줄여도 좋을 듯한데.”

 

“이 분씩 육 분만 하려고 했어. 남녀의 성욕을 통제하기엔 이 시간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지. 육 분을 넘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길어지면 감정이 다를 것 같아. 그러나 어떻게 달라질지는 나도 모르겠고 해서 그 시간을 무조건 연장해 보았는데, 통제가 자제로, 그리고 욕정이 진정으로 바뀔 것 같기도 하고. 즉흥을 조응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 너무 많다. 설명적이야. 그냥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겠니? 통제? 자제? 이게 넌 가능하다고 보니?”

 

“어색하긴 하네. 내가 말이 많아지는 걸 보니.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래, 그럼 시작해보자.”

 

선희는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규범은 부풀어 오르는 성기를 무의식적으로 가리기 위해 다리를 모으려다가 만다. 그녀는 꿇은 양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가부좌한 자세로 허리를 곧추세운 그가 그녀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 둥 마는 둥 어줍은 표정을 짓던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한다. 이렇게 멀리서 남자의 성기를 본 적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거리는 일 미터 남짓. 안고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그것은 떨어져서 잘 보였다. 위로 솟구치는 그것이 생물처럼 좌우로 움직였다. 그녀는 제 성기가 팽창하며 남자의 것처럼 밖으로 돌출되고 있다는 압박감을 받는다. 그리고 다물고 있던 문이 벌어지더니 온기가 그 안의 은밀한 벽을 감싸며 촉촉해지는 것을 느낀다. 단전으로 올라온 따뜻함이 배로 퍼진다. 얼굴이 붉어지고 달아오른다. 온기로 감싸였던 자기 것에서 물기가 벽을 타고 배어나온다. 소변을 볼 때처럼 몸이 옴찔해지며 후우 만족의 소리를 입 밖으로 뿜어낸다.

 

규범은 넣고 싶다는 충동에 눈을 감아버린다. 손바닥이 축축하다. 자기 것의 끝에서 흘러나와 이슬 같은 작은 물방울로 맺히는 젖은 촉감을 감은 눈 안에서 느낀다. 눈을 떴다. 이슬방울을 머금은 붓꽃줄기 같은 자기 것을 바라보다 선희에게로 눈길을 옮긴다. 그가 눈을 감자 따라 감았을지도 모른다. 눈 감고 있는 그녀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허벅지를 말며 뻗은 안쪽 선이 만들어내는 직선형 곡선에 가슴이 울렁거리며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 있다. 벌려 만지고 싶다. 그녀가 눈을 뜨며 또 입 밖으로 휴우 내뱉는다. 그의 것이 두어 번 발끈 흔들거린다. 그에게 다가가 안기고 싶다. 입을 맞추고 싶다. 또 다시 자기 것의 내벽을 감싼 온기가 물기로 모여 아래로 흐른다. 따뜻한 물줄기가 선희의 허벅지를 가늘게 타고 내린다. 선희는 생각한다. 성은 눈으로써 눈을 뜬다. 최초의 성적 접촉은 눈이다. 눈으로 흥분한다. 지금 이전의 섹스는 눈이 무시 되었다. 뜨고 있든 감고 있든 눈으로 첫 나눔이 시작된다는 것을 처음 느끼면서 그녀는 그를 바라본다. 그의 그것이 작아져 있다.

 

시계를 내려다본다. 5분이 지나고 있다.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그녀는 말이 하고 싶어진다.

 

“20분이 꽤 기네.”

 

 

규범이 눈을 감은 채로 집게손가락을 펴 입에 갖다 대며 말을 멈추게 한다. 그의 그것이 다시 솟음을 시작한다. 선희의 아래로 그것이 들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생각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것이 빡빡하게 채워진다. 벌어졌던 자기 것이 오므라든다. 쪼인다. 발에 힘을 준다. 간지럽더니 데워진 듯 따뜻한 물이 밑으로 흐른다.

 

“휴우. 더는 못 참겠어.”

 

그는 계속 눈을 감고 그녀에 말로 반응하지 않는다. 아랫배가 꽉 차 오른다. 오줌이 마렵다. 팽팽해진 자기 것을 다시 느끼는 순간 오줌줄을 타고 밀려 나오는 것이 있다. 항문에 힘을 주어 그 흐름을 멈춘다. 불거진 끝이 간질거린다. 꽉 채운 팽만감이 지속된다. 꽉 들어찬 팽창감에 가슴으로 또 울컥 치오르는 그 무엇이 굵고도 묵직하다. 넣고 싶다. 쏟아 붓고 싶다. 또 한 번 항문 주변에 힘을 모아 용출을 막는다.

 

그도 그녀도 감은 눈을 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는 것을 다 아우른다. 평온해진다. 국지적 용솟음이 분출되며 평화를 온 몸으로 퍼트린다. 눈이 자연스럽게 감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나비를 본다. 그는 그녀에게서 꽃을 본다. 나비가 날아와 꽃에 앉는다. 키스를 하고 싶다.

 

20분이 지나 등을 기대고 앉기 위해 서로 몸을 돌린다. 선희가 입을 맞추려하자 규범이 피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해. 한 시간도 참지 못하고서 사랑이랄 수 없지.”

 

“우리가 임상실험용 쥐나 원숭이 같다.”

 

등을 기댄 이십 분의 시간은 마주 앉을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고 수월했다. 잠이 스르르 몰려왔다. 규범은 졸기도 했다. 지루하기까지 했다. 시렸던 등이 따뜻해올 즈음 잠이 몰려왔다. 선희가 잠을 뿌리치려고 애쓰고 있을 때 규범은 꿈을 꿨다. 시소의 양쪽에 규범과 선희가 앉자마자 선희가 공중으로 날아가버렸고 규범의 엉덩이가 얹힌 시소의 끝이 바닥을 쳤다. 다시 시소에 앉는다. 이번엔 규범이 선희 쪽으로 다가가 앉는다. 선희는 처음처럼 시소의 끝자락에 앉았다. 시소는 허공에서 가볍게 몇 번 출렁이다가 수평으로 허공에 멈췄다. 선희가 꿈에서 외쳤다.

 

‘삶은 저울질로 살 게 못 돼. 삶이 시소놀이 같으면 좋겠다.’

 

규범이 선잠에서 깼다. 등 뒤의 선희는 몸집이 작다. 시소 위에서 다가가듯 규범이 앉은키를 낮춰 선희의 어깨에 제 어깨를 맞춘다. 선희의 머리가 규범의 머리에 기대어온다. 등으로 전해오는 접촉의 감흥은 짧았다. 맞춤, 그랬다. 등지고 돌아서서는 맞추고자 하려 했다. 키를 맞추고 마음을 맞추고. 등을 지고도 마주보듯 가슴이 느껴왔다.

 

“고마워.”

 

선희가 등 너머로 울먹였다. 바라보고 있어야 그녀의 입을 제지할 수 있지만 뒤돌아서서는 어떤 제스처로도 그녀의 입을 막을 수 없다. 규범은 듣기로 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당신이 이렇게 깊이 내 속에 들어올지는 몰랐어. 삶이 내겐 이벤트였는데. 단속적이었지. 그리고 미안해. 내 처지로 당신이 불편해 하거나 마음 상하지 않으면 좋겠어. 우리가 더 어린 나이에 만났더라면 그 때는 우리가 사랑으로는 만날 수 없었을 거야. 모든 일엔, 특히 사랑엔 다 때가 있는 것 같아. 지금이 늦었다고 후회하지는 말자. 지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안 될까?”

 

등에서 등으로 전해오는 언어가 가슴에 울려왔다.

 

‘내 남편도 포기할 순 없어.’

 

차마 그녀가 할 수 없는 말이 가슴 속으로 울려왔다. 침묵이 길다. 등이 다시 시려올 즈음 둘의 몸은 포옹해야 할 놀이시간임을 알려왔다. 다시 마주보고 서자 선희가 먼저 팔을 벌려 껴안는다. 이내 서로의 얼굴을 서로의 얼굴에 묻는다. 가슴이 붙고 허벅지도 붙어 한 몸이 된다. 밀어내듯 밀착한 몸이 다시 뜨거워지고 솟구친다. 몸이 정신을 서두르게 하고 성급하게 만든다. 언제나 말이 앞섰다.

 

“사랑해.”

 

선희가 규범을 더 꼭 안는다. 몸은 언어에 의해 통제되고 언어로서 무너진다. 규범은 이십 분이 채 되기도 전에 안고만 있어야 할 약속을 깨고 선희의 입술을 핥는다. 자기가 짐승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거칠어진다. 시간은 먹이가 되고 언어는 먹잇감이 된다. 다 벗고도 아무 일 없을 것 같다던 믿음은 수작으로 전락하고, 한 시간도 참지 못함에 사랑은 충동으로 추락한다. 사랑해, 다 용서되는 이 말 한 마디로.

 

여자는 남자보다 현명하기보다는 현실적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는 언제라도 변할 수 있고 언제라도 타협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포장지는 내용이 아니라 대상을 담는다. 두 사람은 급격히 몸으로 가까워졌고 말을 줄여갔다.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로 대화는 함축됐다.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사랑일 수 있게 하는 사랑은 무절제하더라도 용인되고 용서되었다. 사랑하니까. 무절제는 한정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랑의 방패이며 창이기도 하다.

 

규범은 어느 날, 선희의 잠자리에서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인 것을 본다. 남편이 왔다갔구나. 규범은 선희와 사랑한다는 말로 몸을 섞기 시작한다. 그러나 잠시 뜨거울 뿐 바로 식고 마는 자기의 몸을 느끼며 애써 베개 두 개를 지워 보려하지만 정신이 지배한 몸을 자기의지로서 어찌 바꿔볼 수 없었다. 그녀가 그의 몸을 거절할 때는 남편이 다녀간 다음 날 밤이었다. 포옹과 키스만은 허락하는 그날 밤, 그녀의 몸에서는 평소보다 진한 샴푸내가 난다. 그녀의 향내인 대나무향도 지워져 있다. 다른 여자를 안고 있는 기분이 든다. 거부하는 선희를 껴안으며 그녀가 더 안쓰럽단 생각을 한다.

 

‘절정의 순간에 남편한테서도 나에게 하듯 여보라고 하니?’

 

차마 묻지 못할 말이 머리에서 자꾸 맴돌았다. 하지만 식어야 할 사랑은 그러하질 못했다. 포기하기엔 너무 늦었다.

 

“절도란 말을 난 좋아한다.”

 

여자에게 돌려 절개를 요구하지만 그녀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이 나라에 그런 검사가 몇이나 있을까.”

 

빗겨가는 여자는 현실적이면서도 현명하다. 글.그림=오동명/ 11편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오동명 작가 momsal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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