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에 이기고 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

  • 등록 2013.08.13 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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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30)

6 여름방학이 끝나 이 학기의 첫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방학과제물들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서울에선 돌 구하기 힘들잖아.”

 

방학 동안에 정선에 있었다며 세종이,

 

“그곳에서 모은 돌들이야. 암석을 채집해오라는 과학방학숙제를 난 시골집에서 손쉽게 해결했지. 같은 종류의 돌을 두 개씩 골랐어. 하나는 너 주려구. 서울과 같은 도시에선 암석을 채집하기 어려울 거 아냐. 자, 여기 규범이 니 꺼야.”

 

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세종이 곁으로 몰려들었다. 뒤 끝자리에 앉은 덩치 큰 친구가 세종이가 규범에게 건넨 돌상자를 낚아챘다.

 

“잘 됐네. 과학 꼰대, 워낙 성질이 더러워 숙제 안 해 오면 작살을 내고말 텐데.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고맙다, 꼬맹이 친구들.”

 

세종이 내놓으라며 달려들었다. 멱살까지 잡혔으나,

 

“이건 규범이 꺼라구. 내놔!”

 

“그래? 그럼 니 껄 바치지 그래.”

 

덩치 큰 뒤 끝자리가 다른 친구들을 합세시키며 세종의 돌상자까지 빼앗았다.

 

“너희들, 이러는 거 아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야. 강도짓이라고. 이쯤에서 그만하고 바로 세종이에게 다 돌려줘.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너 좀 공부한다고 그 똑똑한 주둥아리로 나불거리는데, 어디 보자. 어디부터 손봐줄까?”

 

규범의 팔을 꼭 쥐고 잡아끌었다. 덩치는 옆의 친구들에게도 동조를 구했다.

 

“이 팔을 작살내 줄까, 아님 다리를 박살내줄까? 아니다. 저 주둥아리를 좆아버리는 게 좋겠지? 나중에 선생 꼰대에게 고자질을 못하게. 어때, 너희들 생각은.”

 

팔을 잡힌 규범이가 동요하지 않고 점잖게 말을 받아쳤다.

 

“힘으로 하겠다면 내가 응하겠다. 이 팔 놓고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니가 깡패야?”

 

덩치도 지지 않았다.

 

“그래, 나 깡패다. 샌님 한번 덤벼보시지.”

 

 

이때 세종이가 끼어들었다.

 

“좋아. 내 꺼 가져가. 대신 규범이에게는 돌려줘야해. 그리고 싸움 그만하자.”

 

덩치는 고개를 느리게 저으며 깔깔깔 웃어댔다.

 

“이게 누구 건데. 지금 누구 손에 있는 게 안 보이는가보네. 근데 내가 왜 이걸 저 꼬마자식한테 돌려줘야하는 건데. 원래 이것도 저 자식 게 아니잖아.”

 

그리고 다른 덩치에게 갖고 있으라며 돌 두 상자를 넘겼다.

 

“딴 소릴 해댔다가는 가만 안 놔둔다. 너희 둘 다. 내 성질 알지? 싸움? 상대가 돼야 싸움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번엔 봐준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혼쭐을 내주지 싸움 따위는 니들하곤 할 수 없지. 자존심 상하게. 격이 맞아야 싸움도 되는 거야.”

 

규범이 돌상자를 건네받은 다른 덩치에게 말을 걸었다.

 

“침묵하고 무조건 따라만 하면 너도 죄인이 되는 거다. 어서 세종이에게 되돌려줘.”

 

덩치가 다른 덩치를 제 뒤로 물러서게 하며,

 

“침묵은 금이다. 공부 잘하는 네 놈도 별 수 없네. 이런 유명한 명언도 모르다니.”

 

규범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흰 생각이 없어? 제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할 거야?”

 

다른 덩치가 덩치 뒤에서 술래잡기하듯 얼굴을 내밀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 새끼가 우릴 뭘로 보는 거야. 생각이 없다고? 자, 맛 좀 봐라. 내 생각이 날아가니.”

 

주먹이 날아와 규범의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방어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규범의 코에서 붉은 코피가 흘러내렸다. 세종이 달려들어 다른 덩치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았다.

 

“한 주먹도 안 되는 새끼들이...”

 

덩치가 세종의 등을 세차게 내려쳤다. 세종이 다른 덩치의 다리 앞으로 빌듯이 고꾸라졌다. 규범은 코를 훌쩍거리며 흐르는 코피를 가래 뱉듯 들이마셔 입 안에 모았다. 그리고 덩치의 얼굴에 입 속의 가래 섞인 코피를 뿜었다. 다리미질할 때 엄마가 입으로 뿜어내듯 피가 낭자하게 덩치의 몸에 흐드러지게 뿌려졌다. 눈에도 코피가 튀어 들어갔다. 그러나 덩치의 주먹이 또 한 방 규범의 얼굴에 매겨졌다. 이 순간 고꾸라져 있던 세종이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제 몸을 위로 솟구쳐 덩치의 턱을 치받았다. 세종의 머리 정수리 부분이 덩치의 턱을 정확하게 강타하자 덩치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다른 덩치가 넘어진 덩치를 부축하기 위해 돌상자들을 팽개치듯 교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세종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날쌔게 달려들어 돌 두 상자를 제 가슴에 품었다.

 

“이제 됐다. 규범아 그만 하자.”

 

연거푸 두 번 면상을 그들의 손아귀에 내놓고만 규범이 의외로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 싸움이 공부보다 훨 재밌는걸. 맞는 것도 재밌고. 때리는 맛은 어떤지 무지 체험해보고 싶어지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덩치에게 달려들어 덩치의 머리통을 오른발 끝이 야무지게 갈겨댔다.

 

‘태권도는 방어로 배우는 것이지 폭력용으로 써먹어서는 절대 안 된다.’

 

태권도 사범의 훈계가 마음 안으로 들려왔다.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포기한 태권도, 태권도 삼단의 실력이 자신감으로 규범을 깨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왼발로 덩치의 허리를 갈겼다.

 

방어용이야.

 

혼자 중얼거렸다.

 

“재밌는걸. 싸움이 공부보다 훨 재밌어.”

 

“그만해, 규범아.”

 

세종이 겁먹은 얼굴을 하며 돌상자들을 내려놓고 규범의 몸을 휘잡았다.

 

“아니야. 혼을 내줘야 해. 이런 것들은.”

 

돌려차기를 생각해내자 생각이 몸에 실렸다. 놀란 표정으로 꼼짝도 못하고 있는 다른 덩치의 가슴이 돌려차기의 정확한 표적물이 되어줬다. 규범은 발끝에서 나무판이 두 조각이 나 땅바닥에 떨어지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규범이 쓰러져있는 덩치에게로 다가가 오른발 발바닥을 그의 턱 위에 얹었다. 그리고 한 번은 짓누르고 또 한 번은 그 발바닥으로 덩치의 얼굴을 좌우로 쓸어 넘겼다. 마치 공책을 넘기듯이. 더 멋있는 말을 해야 할 타임이라는 것을 감지하고는,

 

“더 까불다가는 정말 죽는다.”

 

그리고 덩치의 얼굴에 코를 들이마셔 모은 걸쭉한 피가래를 뱉었다. 덩치의 얼굴이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이때였다. 또 다른 패거리가 가방에서 드라이버를 꺼내와 그만 두지 않으면 드라이버로 배를 쑤셔놓고 말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그는 책상 위에 서 있었다. 태권도 삼단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알도록 공격기술을 익혀놓고 있었다. 왼발을 축으로 삼고 오른발을 돌려 드라이버의 오금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드라이버는 들고 있던 드라이버를 손에서 떨어트리며 책상 위에 주저앉더니 아래 바닥으로 제 몸을 내동댕이쳤다.

 

과학선생은 덩치가 예상한 대로 학생들을 몰아붙였다. 방학과제물을 내놓지 못한 덩치의 머리통은 과학선생의 마스코트인 통나무 지휘봉에 의해 난자당했다.

 

“너희 둘은 어떻게 해서 똑같은 돌들을 모을 수 있었지? 거짓말은 나중에 언제라도 들통이 나게 돼 있다.”

 

과학선생이 규범과 세종에게 물었다. 평소 거의 말이 없는 세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학 때 규범이가 저희 고향에 놀러왔어요. 강원도 정선인데 저의 큰아버님께서 광산에 근무하고 계셔서 그곳에서 모은 돌들입니다. 돌이름은 큰 아버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규범이가 둘이 똑같은 돌을 채집해 과제물로 내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선에서 정말 재미나게 지냈습니다. 비록 하루였지만요.”

 

규범이 이내 세종의 말을 받았다.

 

“정선에는 여량이라는 아우라지가 있습니다. 두 강물이 모이는 곳이라는데, 세종이와 저는 그곳에서 우리의 우정을 합쳐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마음이 똑같은 돌로 모아진 것 같습니다.”

 

과학선생은 큰 아버지가 가르쳐줬다는 돌이름이 모두 맞다며 규범과 세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다. 너랑 정선에서 늘 같이 있는 것 같았거든.”

 

세종이 규범의 어깨를 감쌌다. 덩치와 그 패거리들은 교실 맨 끝 뒷자리에서 얻어맞은 상처를 달래며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과학수업 시간이 끝나고 규범이 덩치에게로 다가갔다.

 

“오늘 방과 후에 보자.”

 

덩치가 주변을 살피더니,

 

“난 너랑 더 볼 일 없다.”

 

등을 돌렸다.

 

“내가 알기론 너 현철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떡볶이가 먹고 싶지 않다는 말이지?”

 

중학교 일학년들은 언제 싸웠느냐 싶게 학교 앞 분식가게에서 재잘거리며 떠들어댔다.

 

“너 언제 싸움질을 배웠냐?”

 

“싸움을 배우다니... 엄마의 극성이지 뭐. 태권도 쫌만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힘으로 싸웠나? 아무튼 깡패 쪼가리들처럼 굴지마라. 할 게 없어 그런 못나고 못된 걸 흉내내냐?”
분식점을 막 나와서 였다. 덩치가 더 놀고 싶었던 게다.

 

“우리 탁구 치러 갈까?”

 

규범이가 정릉에서 잠깐 놀며 만든 종구를 떠올렸다.

 

“우리가 게임 하나 만들었는데 그거 하며 놀면 되겠네. 아무 공이나 있으면 돼.”

 

시합은 끝이 나지 않았다.

 

“네가 이길 수 있었는데 왜 공을 넣지 않지?”

 

덩치가 규범에게 물었다.

 

“이기고자 함이 아니라 함께 오래오래 노는 게 목적이니까. 우리 친구 사이에 이기고 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함께 어우러져 노는 게 최고지.”

 

종구를 끝내고 학교운동장을 나오는데 덩치의 표정이 진지했다.

 

“규범아, 우리에게 공부를 가르쳐줄 수 있겠니?” 글.그림=오동명/ 5편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오동명 작가 momsal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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