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건을 소개받게 되면 우선 하는 일이 있다. 의뢰인과의 상담을 통하여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게 시작이다. 의뢰인들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말하는 본인도 사건에 대하여 파악이 안 되는 경우에는 설명이 뒤죽박죽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을 듣다가 겨우 이야기의 줄기를 잡게 된다. 사건 내용 자체도 정말 다양해서 10분 만에 모든 설명이 끝나는 간단한 사건도 있는가 하면, 사실관계가 복잡해 한 시간을 넘게 들어도 상담의 끝이 안 나는 사건이 있다.
처음부터 사건내용을 타이핑을 쳐서 정리해서 오시는 의뢰인도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의뢰인도 나름대로 정리를 하면서 타이핑을 쳤을 것이기에 이해하기에도 편하고, 변호사로서는 귀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서류를 읽는 것이 시간도 절약된다. 직업 특성상 독해에 특화되었기에 정리된 내용을 읽는 것이 더 좋다.
사건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의뢰인이 가장 잘 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다. 의뢰인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는 의뢰인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형사사건이라면 자기방어의 본능 때문인지 중요한 내용을 숨기기도 하고 각색하기도 하며, 민사사건이라면 주로 자기 입장에서만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
그래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집요하게 추궁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부딪혀 논쟁을 벌여 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의아했던 부분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의심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만약 사건이 납득할 수 없으면 글로 표현할 수 없기에 서면이 작성될 수 없고, 순탄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 없어 수임을 거절한다.
변호사로서 여러 유형의 사건을 진행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재판에서는 사실관계 확정이 우선이고, 법리적인 판단은 뒤에 따라 온다는 것이다. 계약서와 같이 객관적인 증거만 하나 있으면 쉽게 해결될 사건이, 증거라고는 마땅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술뿐이며, 그조차도 변호사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관계를 유리하게 확정하고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확정이 안 되면 재판이 흔들린다. 그래서 의뢰인의 이야기 자체는 믿음이 가더라도, 핵심적인 사항에 관하여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은 맡기가 꺼려진다.
상담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는 사건도 맡기 어렵다. 높은 확률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 있게 맡은 사건도 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심지어 지는 사건이라고 판단했음에도 의뢰인과의 관계(예컨대, 여러 사무실에서 거절하여서 더 이상 상담을 받으러 돌아다니기 힘들다며 “져도 좋으니 맡아달라”고 의뢰인이 간청하는 경우나 지인의 사건이어서 거절할 수 없는 경우)나 또는 일말의 기대로 맡게 되는 사건(재판이라고 하여 항상 진실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법리적인 부분을 파고들어 다퉈보는 경우)의 경우에는 여지가 없다.
물론 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건에서도 당사자 사이에 화해나 조정이 이루어져 '무승부'가 되거나,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이 쟁점으로 떠올라서 승소하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 이러한 경우는 요행일 뿐, 수임한 사건을 처리하며 과거의 나를 원망할 미래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단호하게 승소할 가능성이 없는 사건의 수임을 거절하고 있다.
결국 변호사에게 있어서 상담은 시작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끝이라고도 생각한다. 가능한 정확한 상담을 통해 본인이 맡아서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인지, 그 결과까지도 예측해야 한다. 물론 예상대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훈련과 반복을 통하여 점차 예측력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시작인 상담에서부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 /한동명 법무법인 더바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