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사실이라도 법정에선 인과관계 입증해야 한다

  • 등록 2023.11.14 1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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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人 릴레이 법률산책=한동명 변호사] 교통사고 후유증 증명은 '신체감성서'로

 

최근에 상담하였던 사건이다. 편의상 내용을 일부 각색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의뢰인은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허리를 다치게 되어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치료 이후 사고 부위인 허리는 이제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전신에 견딜 수 없는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어 여러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아보았다.

 

의뢰인은 예전 교통사고의 후유증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의사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계속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전신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일단 통증이 생기면 너무 고통스러워 서있을 수조차 없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의뢰인은 이러한 후유장애를 근거로 가해차량의 보험회사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은데 사건을 맡을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나는 사건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였고, 그 이유는 과거 교통사고와 현재 전신통증의 연관성, 즉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의뢰인은 과거 교통사고도 사실이고,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전신통증도 사실이며, 그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담당의도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였다.

 

문제는 소송절차에서 교통사고와 전신통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신체감정을 받는 부분이다. 신체감정을 통하여 인과관계에 대하여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에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으로 보여 맡기 어렵다고 추가적으로 이야기 해 주었다.

 

의뢰인이 겪고 있는 후유장애인 전신통증을 의학적으로는 ‘신경병증성 통증’이라고 부르며, '통증을 지속시키는 기전이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의 체감각성 과정의 이상으로 기인된 어떤 종류의 급성 또는 만성병적 통증증후군'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주요 증상은 ‘전신통증, 이로 인한 수면장애 및 정서장애, 우울증, 사회적응력 저하’이며, 그 병인으로는 ‘당뇨병, 영양 불균형, 알코올, 항암화학요법, 감염, 자가 면역, 신경외상 등’ 다양한 원인들이 환자별로 개별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신체기관이라는 것은 유기적으로 연관된 것이기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다른 부분에도 충분히 이상이 생길수도 있다. 비록 의뢰인의 허리 부상은 완치되었지만 사고 과정에서 손상된 신경계가 치료 이후에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전신통증으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증거가 되지 않으며, 전문가의 견해를 담은 ‘신체감정서’가 증거로 쓰여 소송의 결과를 좌우한다. 그 중요한 ‘신체감정서’에 어떠한 내용이 담길지 확신할 수 없다.

 

허리 부상이라면, 허리에 통증이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허리를 다쳤는데 전신이 아프다고 하면, 이러한 인과과정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교통사고 이후 통증이 다른 부분으로 옮겨질 수 있고, 현재 그러한 통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교통사고 환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라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신체감정서’가 필요하다.

 

실제 후유장애에 관하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 상대방인 보험회사는 교통사고와 전신통증과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답변한다. 그러면 소송에서 원고가 된 의뢰인에게 입증책임이 생기며, 교통사고와 전신통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한 입증을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서 ‘신체감정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공정성을 위하여 법원에서는 치료한 병원을 감정기관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치료한 병원에서는 그동안 환자로서 형성된 관계가 있으니, 사실이 아님에도 교통사고와 전신통증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의뢰인이 담당의를 통하여 교통사고와 전신통증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신체감정을 맡아 감정서를 작성하는 의사는 다른 사람이기에 감정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만약 의뢰인이 당뇨병이나 뇌경색 등의 다른 질병을 앓고 있다면 이러한 질병을 기왕증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기왕증이 호르몬이나 혈관 등에 영향을 주어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의뢰인이 후유장애라 생각하는 전신통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되어 감정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법정에서 대기하다보면 다른 재판을 방청하게 되는데, 유사하게 후유증으로 인한 전신통증이 문제가 되는 재판에서 감정인으로 지정된 의사들이 재차 감정을 거절하여(아무래도 감정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피해자 측에서 입증이 어려워져 소송대리인이 재판부에게 입증의 곤란함을 호소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전신통증을 느낀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송을 제기하면 소멸시효의 문제도 숨어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별다른 차도가 없다가, 주변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소송을 준비하다 보면 3년의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일지라도, 그 사실이 재판에서 인정되는 것에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들이 있다. /한동명 법무법인 더바로 변호사

한동명 변호사 easternb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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