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신질환의 영향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정신질환의 종류만큼이나 범죄유형도 다양하다.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행인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고, 신의 계시라며 타인이 거주하는 주거지로 들어가 물건을 가지고 나오기도 한다. 자신을 위협하는 내용의 환청에 시달리다가 자동차, 벽, 공중화장실 등에 마구잡이로 낙서해버리기도 하고, 국가기관이 자신을 미행하고 도청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주변 이웃들을 의심하다가 폭행까지 하게 된다.
비정신질환자가 보기에는 그저 망상이고 환청이지만, 그들에게는 실존하는 위협이다. 혼자서는 헤어나올 수도 없고 귀를 틀어막아도 들리는 괴로움 속에서 나름의 해결방법을 찾다가 결국 범죄에까지 이른다.
정신질환자가 피고인인 사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사건 해결을 위한 협조가 요원하다는 점이다. 의뢰인을 만나 사건에 대하여 묻더라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고,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변호인을 자신의 인식 속 위협요소와 ‘같은 한패’로 생각해 욕설을 하기도 한다. 욕 듣는 것이야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수 있으나, 의뢰인을 설득하는 과정이 어렵다.
피고인의 변호인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의뢰인이 적절한 치료를 받아 그들이 매 순간 겪을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무고한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 진료(정신감정)를 받아보자고 권유해도 대부분은 거절한다. 자신은 정신질환자가 아닌데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정신질환자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정신질환 치료에는 무의미한 교도소 수감 대신 치료감호(병원과 같은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처분)를 통해 치료를 해보자고 해도 역시나 마찬가지다. 피고인이 병원 진료 및 치료감호를 원하지 않는다면 변호인으로서는 그 의사에 반하는 소송행위를 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어르고 달래가며 병원 진료를 받도록 설득한다.
피고인을 어렵게 설득하더라도 다시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신감정을 신청하더라도 법원은 기각결정을 할 수 있다. 대부분 소송절차 지연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 내의 정신감정 기관은 이미 예약이 가득 차 있어, 정신감정을 위해 수개월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법원은 꼭 정신감정을 해야 할 중범죄 위주로 정신감정 신청을 허가한다. 그만큼 정신감정 기관이 부족한 실정이다.
치료감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내 치료감호 기관은 공주치료감호소가 유일하다. 의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도 평균 157명에 달한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른 정신과 전문의 1인당 적정 환자 수 60명을 아득히 넘긴 수치다.
정신질환이 치료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환청과 망상 속에서 고통을 겪다가 ‘나름의 해결방법’을 반복할 것이고 그만큼 무고한 피해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피고인이 정신질환자인 경우 재범방지를 위해서라도 치료에 더욱 방점을 두어야 하는 이유고, 정신질환 범죄자 진료 및 치료를 위한 인프라를 확충해야 하는 이유다.
☞김대현은?
= 제주도 감사위원회, 법무법인 현답에서 근무하다 제주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제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