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야기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에서, 유일하게 멀쩡히 남은 황궁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이며 시작한다. 아파트 주민과 생존자들의 갈등이 생기고, 주민 중에서도 ‘자가주민’과 ‘전세주민’을 나누며 사회의 궂은 면을 보여준다. 영화 내용 중 법률적 쟁점이 되는 줄거리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지진 발생 후 기온이 영하 26도까지 이르는 이상저온 현상이 발생하고, 생존자들이 혹한을 피해 황궁아파트로 몰려든다. 생존자들은 아파트 복도, 공동현관에서 생활하다가, 한 생존자가 아파트 호수를 차지하기 위해 아파트 주민을 찌른 뒤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아파트 주민은 주민회의를 통해 생존자들을 추방하기로 하고 물리력을 행사하여 추방한다. 시간이 지나고, 추방된 생존자들은 진열을 갖춰 황궁아파트로 진격하고 주민들을 살해한 뒤 아파트를 차지한다.
대지진 발생 직후, 아파트 주민이 아닌 생존자들이 아파트로 들어가도 괜찮은 것일까? 매정하지만, 어찌 됐든 타인의 주거지로 허락 없이 들어갔으니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닐까?
형법에는 영화에서처럼 현존하는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는 원칙, ‘긴급피난’이 있다.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하지 않는다. 외부인들이 혹한을 피해 아파트에 무단 침입한 것은 현존하는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임은 분명해 보인다. 작품에서 아파트 침입의 방법을 제외하고는 혹한을 피할 방법이 없어 보이고, 아파트 침입으로 보호되는 이익(생존자들의 생명)과 침해(아파트 주민들이 주거의 평온)를 비교해보면 보호되는 이익이 질적으로 우위에 있으므로 침입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생존자들은 주거침입이라는 행위를 하였으나, 위법성이 조각되어 주거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아파트 주민들이 외부인들을 추방하는 행위는 어떠한가. 아파트 외부는 영하 26도이며, 아파트 외에 혹한을 피할 장소는 없어 보인다. 결국, 이들을 추방하면 외부인들은 사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외부인을 추방하였으니 살인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외부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추방한 것은 아니므로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인가?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그 유명한 ‘미필적 고의’다. 아파트 주민들이 외부인들을 추방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외부인들이 사망할 가능성을 인식하였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의사로 추방한 것이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추방행위와 외부인들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문제 될 수 있겠는데, 양자 사이의 시간적 근접성, 추방 당시 외부인의 건강상태 등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될 것이다.
외부인들이 아파트로 돌진하며 주민들을 살해하고 아파트를 차지한 것은 어떤가. 여전히 긴급피난으로 의율되어 살인죄의 죄책을 면할 수 있을까. 주민들에 대한 살인으로 침해되는 이익(생명)과 보호되는 이익(생명)이 질적으로 동등하므로 긴급피난의 상당한 이유가 결여되어, 살인죄의 죄책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형사법 관점에서 영화를 살펴보았으나, 당연하게도 법률 쟁점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아니다. 영화는 재난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고 관객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묻는다. 외부인을 바퀴벌레라 칭하며 ‘방역’을 해야 한다는 아파트 주민, 반대로 외부인을 몰래 숨겨주는 주민, 아무런 조건 없이 다친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 등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처벌은 법의 문제이지만 법 이전에 인간에게 다가오는 건 도덕과 양심이다.
☞김대현은?
= 제주도 감사위원회, 법무법인 현답에서 근무하다 제주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제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