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말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나는 부모님과 한방에서 지냈다. 2남7녀 중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난 두 언니를 그리워할 여유도 없이, 우리 7명은 17평짜리 초가에서 영토전쟁을 벌였다. ‘한라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모처럼 큰집을 지었다’는 큰언니의 건축소감이 무색하도록, 집은 비좁고 복잡하였다. 부엌과 연결된 안방과 마루를 사이에 두고 남향의 사랑방은 장남 차지가 되었다. 오빠는 마을에서 보기 드문 대학생이었다. 나머지 두 개 방 중 하나는 증조할머니 차지였다. 93세 할머니는 몸이 어린아이처럼 작았다. 우리 중에서 비교적 무게감이 컸던 셋째 딸이 자원하여 할머니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나머지, 부엌과 인접하여 자질구레한 생활도구들이 미리 진을 치고 있던 방으로 넷째와 다섯째 딸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안방에 체류하게 되었다. 갓난아기인 막내아들을 포함해 다섯 명이, 밤이면 또 다른 가족이 되어서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나는 주로 어머니 발밑으로 들어가, 한 발을 인형처럼 붙들고서 꿈나라 여행을 하였다. 40대 중반의 어머니에게서는 달작지근한 살 냄새와 땀이 밴 열기가 느껴졌다. 어머니 냄새
미국발 통화긴축 후폭풍이 심상찮다. 미국 뉴욕증시가 1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급락했다. 한국 코스피지수도 17개월 만의 최저치인 2600선 아래로 내려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5월 4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하자 주요국 증시가 휘청거렸다. 연준이 빠른 속도로 돈줄을 죄면서 미국 달러화 가치는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연준은 4일 빅스텝에 이어 연내 두세 차례 추가적인 빅스텝을 예고했다. 6월, 7월 잇따라 빅스텝을 밟고, 하반기 3차례 회의에서도 0.25%포인트씩 올리면 연말 금리 상단은 연 2.75%에 이른다. 그럼 올 초 제로(0~0.25%) 수준이던 기준금리가 1년도 안 돼 3%에 다가서는 셈이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초저금리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흥국으로 향했던 글로벌 자금의 이탈이 본격화할 수 있다. 달러 빚이 많은 신흥국일수록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가 급락(환율 상승)하며 빚 부담도 커진다. 다급해진 신흥국들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방어선을 쌓았지만, 인도·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통화가치는 속절없이 급락했다. 우리나라의 돈, 원화가치도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어린애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이 점에 대해 전문가들 또한 ‘삶의 여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유아는 삶의 끝자락으로 여행 중인 노인과 육체적·정신적으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식사·취침·목욕·용변 등 일상생활에서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다. 백 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로서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어느 날 한밤중에 어머니께서 베개를 안고 우리 방으로 오셨다. ‘무서워서 도무지 혼자 잘 수가 없다’시면서. 그 모습이 꼭 ‘엄마와 함께 자겠다’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92세쯤 되셨을까? 그즈음에 어머니는 부엌의 가스 불을 끄지 않아 냄비를 태우거나 ‘이러다가 집을 태울 수도 있겠다’ 싶은 상황을 드문드문 만드셨다. 화재보험에 가입하고, 수시로 부엌을 점검하다가, 결국은 취사도구를 정리했다. 우리와 함께 사신지 10년만의 일이다. 81세에 17년간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혼자서 부엌을 쓰고 싶어 하셨다. 당신이 좋아하는 자리젓, 마농지,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조림, 옛날 냄새가 진동하는 재래식 된장국 등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드시면서 여생을 제주도 식으로 보내보리라’는 뜻이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막시무스와 함께 음산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게르만과의 전투를 지휘해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황태자 코모두스는 전투가 끝난 뒤에야 전선에 도착해 설친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코모두스에게 “황제 자리를 막시무스에게 물려준다”고 통보한다. 분노한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다. 아버지와 막시무스가 이뤄낸 승리의 영광을 모두 가로챈 코모두스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 꽃을 뿌리며 로마로 개선한다. 그러나 길에 늘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냉랭하다. 몇몇은 난생처음 보는 불쾌하고 불길한 짐승을 대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코모두스의 로마 입성 장면을 잿빛으로 처리한다. 분명 화창한 날씨인데 화면은 음산하다. 잿빛 화면 속에 흩날리는 붉은 꽃잎들이 방사능 낙진처럼 음산하기 짝이 없다. 코모두스는 원로원 앞에서 마차에서 내린다. 새 황제를 맞이하는 원로원 의원들의 표정은 시민들만큼이나 떨떠름하다. 코모두스는 족히 50여개는 돼 보이는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원로원 의원들은 까마득한 계단 위 입구에서 새 황제 코모두스를 기다린다. 아무도 계단을 내려가 황제를 맞이하거나 에스코트하지
한국은 현재 떠들썩한 대선 시기를 지나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맞이하고 있다. 제주도는 얼마전 코로나 방역 해제와 봄이라는 계절을 동시에 맞아 다시 관광의 성수기를 지내고 있다. 대선 시기에 제주도에 관한 작은 공약들 중 제주도민이 계속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바로 제주도 ‘입도세’, ‘환경세’, 내지는 ‘관광세’ 관련 논의다. 관광세는 조세 정책 중 하나로, 지나치게 많은 수의 관광객 방문이 예상되는 관광지의 환경과 관광자산(문화재·유적지) 보전,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이나 이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방지 등의 취지하에 관광지의 현지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생활과 관광 환경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관광객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제주도의 경우 최근 10년새 관광객이 급증했다. 2005년부터 매년 발간되는 '통계로 본 제주의 어제와 오늘'에 따르면 제주도 관광객은 2009년 976만명에서 10년 뒤인 2019년 1529만명으로 134.3% 증가했다. 이 중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은 63만명에서 173만명으로 173.0% 늘어났다. 특히 코로나 방역 여파에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내국인의 제주 관광 쏠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올 초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강행 처리한 3일 윤석열 정부 출범을 준비하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검경 각자 수사책임제’를 4번째 국정과제로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의사표현이자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대선 공약집에서 검찰 관련 사법개혁은 맨 마지막 순서였다. 선거 때 민생을 돌보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정치권은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협조는커녕 주도권 다툼을 일삼고 있다. 감사원 감사위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한국은행 총재 인선 등을 놓고 갈등을 빚은 데 이어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이쯤 되면 1987년 대통령직선제 부활 이래 역대급 신구 정권 간 갈등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갈등이 윤 대통령이 취임한 5월 10일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여야가 경제난 대처를 뒷전으로 미뤄놓은 채 정쟁을 일삼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대내외 경제 상황은 엄중하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쳤던 2008년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사람이라면 가슴 뭉클하게 의미가 느껴지는 말이다. 아이를 안고 마실을 나갔을 때, 백일과 돌잔치와 명절에, 그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저절로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아닌가. 아이가 어엿하게 자라서 동네를 떠날 때까지 이웃들의 따뜻한 시선은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된다. 사려 깊은 언어와 다정스런 미소 없이 어떻게 한 생명을 무사하게 키워낼 수 있었으랴.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구십을 넘기면서부터는 온 동네가 이웃이자 친척이 되어 주었다. 특히 대소사를 맞은 동창생들의 한결같은 ‘어머니 사랑’은 누가 딸인지 헷갈릴 정도다. 경조사의 분주한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바지런히 챙기는 손길들.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는 ‘정옥이 어머니 반(몫)’이라면서, 저마다 자기들의 쟁반을 비워줄 태세다. 어디 고기뿐이랴. 떡과 찬을 곁들여서 불룩해진 어머니의 검은 봉지는, 그야말로 사나흘은 족히 먹을 식량으로 거듭난다. 십시일반이 이런 기분일까? 친구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은 마트에서 사온 고기와 다른 맛의 감동을 선사한다. “게무로사 다
콜로세움에 모인 로마 시민은 ‘찝찝한’ 새 황제 코모두스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기획한 ‘자마 전투’의 재연에서 ‘한니발의 야만군대’를 이끌고 스키피오의 로마군단을 쳐부순 우두머리가 다름 아닌 로마의 위대한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마 시민은 막시무스에게 열광한다. 스키피오 로마군단의 전멸이라는 ‘라이브 콘서트’의 ‘공연 참사’에도 아랑곳 않는다. 그날로부터 로마에 ‘막시무스 열풍’이 몰아친다. 노예검투사 막시무스가 검투경기에서 그들의 황제 코모두스를 조롱하고 무참하게 죽여버리는 꼭두각시 놀음까지 거리에서 벌어진다. 당황한 코모두스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다. 막시무스에게 열광하는 시민들에 섭섭하다 못해 분노하고, 막시무스의 등장으로 뭔가 변화를 기대하고 술렁이는 원로원도 괘씸하다. 더욱이 한때 막시무스의 연인이었던 사랑하는 누이 루실라도 코모두스를 미치게 한다. 실망, 분노, 증오, 질투가 뒤범벅이 돼 코모두스를 짓누른다. 황제의 공연기획 자문위원 카시우스가 또 한번 묘책을 올린다. 막시무스를 역사상 유일무이한 무패의 기록으로 은퇴한 최강의 검투사 티그리스와 대결시켜 로마 시민 앞에서 정당하게 제거하자는 게 묘책의 골자다. 만약의 경우
선거 때만 되면 각종 개발공약이 난무한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대형 토목공사가 빠지지 않는다. 공항을 비롯해 철도·고속도로 건설이 대표적이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공항이 하나씩 생긴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가 예외일 리 없다. 4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가덕도신공항 건설계획을 의결했다. 숱한 논란이 일었던 거대한 토목사업을 밀어붙일 요량으로 지난해 4월 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손잡고 특별법을 제정하더니만,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엔 정부 차원에서 ‘대못’을 박았다. 이튿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역균형발전 비전을 발표하면서 윤석열 당선인의 8개 지방공항 공약을 모두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가덕도·대구경북·제주2·새만금 등 4대 신공항을 건설하고, 무안·청주·서산·울산을 비롯한 기존 4대 공항을 확장하는 내용이다. 임기를 10여일 남긴 정부나 출범을 10여일 앞둔 새 정부 가릴 것 없이 지방공항 건설사업을 거론하고 나섰다. 신구 정권 공히 공항건설 프로젝트를 내세운 것은 지방선거에서의 표를 의식한 지역개발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 그도 그럴 것이 국토교통부가 국무회의에 올린 가덕도신공항
저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자취도 하고 하숙도 하고 가정교사도 하면서 선친의 높은 교육열 덕에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선친께 감사드립니다. 가난은 유비무환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고 어머니의 요절은 아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스승으로, 저에게 가난과 어머니의 요절은 잊을 수 없는 스승이고 영원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봉사를 하겠다고 신문에 1000여 편의 글을 썼고, 원고료는 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냈습니다. 신문에 글을 쓰는 것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가 하고 중단했던 적도 있고 지금은 별로 안 쓰지만, 신문에 글쓰기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입니다. 이번에 칠순기념 문집 출판으로 모두 17권의 책을 냈고 1권당 평균 314쪽입니다. 이 17권의 책들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출판했습니다. 세월이 좋고 나라가 잘살다 보니 필리핀․뉴질랜드․호주․중국․영국․프랑스․스위스․독일 등 11개국을 여행했으며, 중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등 7개국은 아내와 함께 여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 지구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11개국을 여행하고 나니, 두
로마의 전쟁 영웅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계략에 빠져 처형당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다. 어깨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가족이 있는 스페인 고향집까지 말을 몰아 달려간다. 지금으로 치면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스페인까지 말 타고 달려간 셈이니 대단하기는 하다. 하지만 고향집은 막시무스를 절망에 빠뜨린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내와 어린 아들은 이미 코모두스가 보낸 군인들에게 살해됐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코모두스는 선을 넘었다. 이제는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아내와 아들을 묻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난 막시무스는 얼마 못 가 황야에서 탈진해 쓰러지고 만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노예사냥꾼 무리가 막시무스를 발견해 ‘주워’간다. 거의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지만 노예사냥꾼들은 놀라운 ‘선구안’으로 치료만 잘하면 쓸 만한 ‘검투노예’가 될 재목임을 알아챈다. 노예사냥꾼에게 사냥당해 끌려가던 주바(Juba)는 썩어가는 막시무스의 상처에 ‘구더기 치료’를 해준다. 구더기는 모양새가 고약하긴 하지만 고름만 빨아먹고 항생물질을 분비해주는 신통한 벌레라고 한다. ‘구더기 치료’는 19세기 유럽에서 개발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수많은 생
▲ 인플레이션은 서둘러 진화하지 않으면 잡기 힘들다. 새 정부가 공약 이행을 명분으로 재정으로 과도하게 풀어선 안 되는 이유다.[더스쿠프=뉴시스]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S 공포(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5%,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0%로 수정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고물가 터널’로 접어들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지난 1월 전망과 비교하면 성장률을 0.5%포인트 낮추고 물가는 0.9%포인트 올렸다. 불과 석 달 만에 이렇게 큰폭으로 조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IMF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국내외 기관의 성장률 하향 조정이 잇따를 전망이다.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은 코로나 불황에서 벗어나 회복되리란 기대가 사그라지고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다시 고꾸라지는 모습이다. IMF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4.4%에서 3.6%로 낮췄다. 세계은행(WB)도 같은날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1%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