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하는 음해공작 ... '익명의 투서'에서 '휴대전화 메시지'로
“사과하라” 정체불명 문자 ... 제주지사 경선에 등장한 ‘투서 정치’
제주 차귀도 남서쪽 90㎞ 해상서 선박 화재 ... "인명 구조중"
대만·일본에 추월당한 1인당 국민소득, ‘신산업 발굴’ 시급하다
제주 해상서 어선 화재, FRP 선박 가연성에 진화 난항 ... "2명 실종"
민주당 제주도의원 공모에 43명 '우르르' ... 연동갑 5명 ‘최다 경쟁’
“완성의 4년 달라” ... 오영훈 제주지사, 재선 도전 선언
제주지사 도전 민주당 3인 '경선 모드' 돌입 ... 정책 대결 본격화
민주당 제주도당, 도의원 5개 선거구 후보 확정
제주 '탐나는전' 누적 2조4485억원 발행·28만명 가입
국민의힘 제주도지사 후보로 최종 확정된 문성유 전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이 선거 캠프를 꾸리며 본선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제 관료 출신이라는 이력을 앞세워 ‘제주를 살릴 경제도지사’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눈길을 끈다. 19일 제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최근 최고위원회를 열고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가 단수 추천한 문 전 실장을 제주도지사 후보로 최종 의결했다. 이에 따라 문 후보는 공식 후보 자격으로 본격적인 지방선거 체제에 돌입하게 됐다. 제주도당 역시 문 후보를 중심으로 선거 체제로 전환할 전망이다. 문 후보는 최근 제주시 연동 진현빌딩 2층에 선거사무소를 마련하고 캠프 정비에 나섰다. 사무소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인 문대림 의원과 위성곤 의원의 준비사무소 사이에 자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도 함께 모으고 있다. 캠프 인선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후보 일정은 전용식 전 국민의당 제주도당 사무처장이 맡아 관리하고 있다. 당무 경험이 있는 만큼 도당과 캠프를 잇는 실무 역할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공보와 대외 메시지를 총괄할 대변인에는 한영진 전 제주도의원이 낙점됐다. 한 전 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바른미래당 비례대표로 제주도의회에 입성한 바 있다. 문 후보 측은 정책 구상과 조직 정비를 위해 추가 인선도 이어가고 있다. 핵심 공약 방향은 1차산업과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 바이오 산업 육성, 문화콘텐츠 고도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맞춰질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출마 기자회견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정책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부각할 수 있으면서도 상징성을 갖춘 장소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문대림 의원은 각각 칠성로와 탐라문화광장에서 출마를 선언하며 민생경제를 전면에 내세웠고, 위성곤 의원은 제주대 정문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어 젊은층 공략에 나선 바 있다. 문 후보 역시 차별화된 메시지와 공간 연출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가 제주도지사 본선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4년 전 지방선거에서도 출마를 시도했지만 경선에서 허향진 전 제주대 총장과 장성철 전 제주도당위원장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국민의힘이 제주도지사 후보를 경선 없이 단수공천한 것은 8년 만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원희룡 지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자유한국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김방훈 전 제주도 정무부지사가 단수공천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선거가 거물급 무소속 후보 없는 양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문 후보가 어느 정도의 본선 경쟁력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로 떠오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허향진 후보는 오영훈 지사와 맞붙어 39.48%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지방기상청이 오는 21일부터 30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2026년 기상·기후 사진 전시회'를 연다. 세계 기상의 날(3월 23일)을 맞아 마련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제43회 기상·기후 사진·콘텐츠 공모전 입상작과 이전 전시회에 걸렸던 사진 중 제주에서 촬영한 사진, 기후변화를 소재로 한 달콤기후 공모전 그림 등 총 52점을 선보인다. 또 제주지방기상청의 근대 100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과 관련 기록물, 기상관측장비 등도 전시한다. 주말에는 전시 작품에 대해 기상·기후 전문가의 해설이 진행되며, 관람을 기념하기 위한 포토존이 운영된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 전역에 분포한 360여개 오름(기생화산)은 각각 언제 형성됐을까? 일단 지금껏 조사한 바로는 가장 오래된 기생화산이 91만7000년 전 분화한 것으로 보이는 군산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18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유산본부가 자체 조사와 기존 연구 성과를 종합해 정리한 결과 현재까지 90개 오름의 형성 시기(분출 연대)가 확인됐다. 90개 중 가장 오래전 형성된 오름은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군산오름이다. 91만7000년 전에 처음 분출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월라봉은 86만3000년 전, 각시바위는 79만9000년 전, 산방산은 78만5000년 전으로 분출 연대가 확인됐다. 한라산 정상부는 1만6000년 전 분출했으며 성산일출봉은 6000년 전, 송악산은 3700년 전으로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젊은 오름'은 한라산국립공원에 있는 돌오름으로, 2000년 전 분출이 이뤄졌다. 다만 이 분출 연대는 향후 추가 연구와 연대측정 기법 발전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다고 유산본부는 설명했다. 제주 오름은 수주에서 수년에 걸친 단기간 화산 분출로 형성된 화산체로, 화산학적으로는 '단성화산'으로 분류된다. 오름 연대측정 연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초기에는 기법의 한계와 높은 비용 등으로 제약이 컸다. 이후 2000년대에 아르곤(Ar) 연대측정법이 도입되고, 2010년대 이후 정밀 기법이 확대 적용되면서 분출 시기 규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20∼2024년 한라산 지질도 구축에 이어 2025년부터 제주도 전역 지질도 구축 과제를 추진하고 있는 유산본부는 향후 2028년까지 최대 200여개 오름의 형성 시기를 단계적으로 규명할 방침이다. 또한 그간 축적된 오름 연대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공개해 연구 필요성과 학술적 중요성을 공유하고, 국내외 관련 연구기관과 협력을 넓혀갈 계획이다. 김형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제주 전역 지질도 구축 과정에서 확보되는 고토양 분포, 암석 조성, 오름 분출물 분포 영역 등 주요 연구 성과를 단계적으로 공개해 제주 화산활동 연구 활성화와 학술적 활용도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경선을 앞둔 문대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갑)이 "도지사에 당선되면 이재명 정부가 국무회의를 공개하듯 도청 실·국장 회의를 생중계하겠다"고 19일 밝혔다. 문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회의 공개는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인 대표적 사례”라며 “제주도정 역시 이러한 흐름을 계승해 도민주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후 설명 중심 도정 운영에서 벗어나 정책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전 과정을 도민과 공유하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며 “정책의 출발 단계부터 결정 과정까지 도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실·국장 회의는 유튜브 생중계 방식으로 공개하고, 공약으로 제시한 도민 소통 플랫폼 ‘모두의 숲’과도 연계해 소통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공개 대상 회의와 일정은 실무적으로 논의해 정한다고 덧붙였다. 문대림 의원은 “실·국장 회의 전면 공개를 통해 도민이 정책의 전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참여하는 도민주권 도정을 실현하겠다”며 “유튜브 생중계와 도민 의견 수렴을 제도화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기반으로 제주도정 혁신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야외활동 증가에 따른 '길 잃음'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는 봄철을 맞아 제주 소방당국이 주의보를 발령하고 대응 강화에 나섰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는 20일부터 '봄철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오름 탐방과 고사리 채취 등 야외활동 안전관리를 강화한다고 19일 밝혔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도내 길 잃음 안전사고는 모두 558건으로 연평균 111건 이상 발생했다. 이 가운데 부상자는 8명으로 집계됐다. 사고의 60.5%는 봄철(3∼5월)에 집중됐으며, 특히 4월이 38.7%(216건)로 가장 많았다. 사고 유형별로는 고사리 채취 중 발생한 길 잃음 사고가 41.6%(232건)로 가장 많았고, 이어 등산·오름 탐방 30.6%(171건), 올레길·둘레길 탐방 27.8%(155건)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동부 읍·면 지역이 56.3%(314건)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서부 읍·면 25.8%(144건), 제주시 동지역 11.8%(66건), 서귀포시 동지역 6.1%(34건) 순으로 나타났다. 소방당국은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 산불감시원과 제주산악안전대 등 민간단체와 협업해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생활밀착형 홍보를 확대한다. 또 차량 접근이 어려운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소방헬기와 119구조견을 투입한 광역 합동 수색훈련을 추진해 신속 대응 체계를 강화한다. 박진수 제주소방안전본부장은 "사고 예방과 대응을 위해 지역 여건에 맞는 안전관리 대책을 추진하겠다"며 "탐방 전 기상과 경로를 확인하고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길을 잃으면 무리하게 이동하지 말고 119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기본소득당이 6·3 지방선거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후보로 제주 출신 김누리 제주지역위원장을 내세웠다. 기본소득당은 18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누리 위원장을 제주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소개했다. 제주시 이도2동 출신인 김 위원장은 한국외국어대 중국어통번역학과를 졸업하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수료했다. 그는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가 ‘5년 내 5회’로 제한된 제도 아래 두 차례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시험 응시 기회를 잃었다. 이후 임신·출산도 응시기간 유예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며 이른바 ‘오탈자 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해 주목받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본소득 도입과 아동돌봄지원 제도의 공백을 메우고, 도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핵심 공약으로는 아동돌봄 통합지원 실속화, 제주형 학생교육수당 도입,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 추진 등 3가지를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제주에서의 실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저 역시 제주에서 요망지게 따지고, 요망지게 버텨 결국 바꿔내겠다”며 “말에 그치는 정치가 아니라 작동하는 정치, 구호만 앞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책임지는 정치로 도민의 삶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어 “제도의 공백을 일상의 희망으로 메우고, 제주도민 모두의 것을 도민의 권리로 돌려드리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원 유세를 위해 제주를 찾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도 함께했다. 용 대표는 김 위원장에 대해 “두 아이를 키우며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겪는 부당함을 몸으로 경험한 사람”이라며 “그 경험을 개인의 고충으로 남겨두지 않고 제도 변화의 동력으로 바꾸기 위해 정치에 나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저출생 사회를 바꾸는 정치를 할 수 있는 후보이자 아동친화도시 제주를 만들어갈 적임자”라며 힘을 실었다. 김 위원장의 삶의 경험이 곧 정책의 출발점이자 경쟁력이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용 대표는 또 이번 6·3지방선거에서 기본소득당이 ‘기본소득 지방시대’를 핵심 기조로 내세우겠다고 밝혔다. 그는 “행정통합과 산업혁신, 지역소멸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서 선명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공유의 섬 제주야말로 기본소득 지방시대를 가장 먼저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한국 민화와 제주문자도(文字圖)를 통해 옛사람들의 정서와 소망을 살펴보는 전시가 마련된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올해 첫 특별전 '뜻을 품은 그림 민화: 제주가 빚은 마음의 글자 문자도'를 오는 24일부터 8월 23일까지 연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해학과 풍자, 보편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민화가 제주의 기층문화와 정서를 만나 육지와는 다른 독창적인 '제주문자도'로 변화한 과정에 주목한다. 전시 1부 '일상과 상상을 담은 민화'에서는 가정의 평화와 행복, 무병장수, 부귀영화와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와 '봉황도', 양반문화와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은 '소상팔경도' 등을 선보인다. 2부 '민화에 담긴 길상과 벽사'에서는 과거 합격, 다산, 벽사(나쁜 기운을 막음)의 의미를 담은 '어해도'와 조선 후기 불평등한 신분 사회를 풍자한 '작호도' 등을 통해 조상들의 다양한 소망을 살핀다. 3부 '제주가 빚은 마음의 글자 문자도'에서는 육지의 문자도가 19세기에 '신들의 섬, 제주'로 건너오면서 제주의 자연과 신앙, 지역민 정서를 만나 '제주문자도'라는 독창적 문화유산으로 발전한 사례를 담는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 서귀포에서 음주 측정을 거부하며 도주한 중국인 불법체류자가 경찰 추격 끝에 붙잡혔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거부·무면허운전·난폭운전)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40대 중국인 불법체류자 A씨를 검거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일 오후 4시 6분께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화물차를 운전하며 중앙선 침범과 신호위반을 반복하는 등 난폭운전을 하고, 경찰의 정차 명령에 불응해 도주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경찰은 "파란색 화물차량이 중앙선을 넘는 등 이상한 운전을 한다. 음주운전 같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A씨가 모는 화물차를 발견하고 정차명령을 했다. 그러나 A씨는 이를 무시한 채 서귀포시 남원읍 일대 약 10㎞ 구간을 도주했다. 경찰은 순찰차로 화물차를 막다른 길로 유도했고, 오후 4시 30분께 남원읍 한 포구 인근에서 차량을 버리고 농로로 달아나는 A씨를 붙잡았다. 신고접수 20여분 만이다. 다행히 추격 과정에서 시민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중국인 불법체류자로 무면허 상태로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오영훈 제주지사를 겨냥한 정체불명의 비방성 문자 메시지가 대량 유포되자 오영훈 지사 측이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오 지사 측은 17일 “비방성 문자를 수신한 선거준비사무소 관계자와 일부 도민들의 사례를 토대로 개인정보 무단 수집 및 활용 정황이 있다”며 전날 제주경찰청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에도 공직선거법 제251조(후보자 비방 금지)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문제가 된 메시지는 16일 오전 10시 30분대부터 제주지역 도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발송됐다. ‘오영훈 지사는 제주도민 앞에 사과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이 문자는 인터넷 기반 시스템을 활용한 ‘웹발신’ 방식으로, 발신자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 문자에는 1번부터 5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항목과 함께 언론 보도 링크가 첨부됐다. 각 항목마다 ‘오영훈 지사는 사과해야 한다’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담겼다. 링크된 기사들은 ▲12·3 계엄 당시 행적 ▲행정체제 개편 ▲건설업 취업자 감소 ▲지방채 발행 ▲서광로 BRT 섬식정류장 등을 다룬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라진 3시간’, ‘혈세 낭비’, ‘재정 무능’, ‘지역경제 붕괴’ 등 자극적인 표현이 나열되면서 사실상 특정 후보를 겨냥한 비방 메시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날 오후에는 오 지사 배우자 관련 언론 보도를 묶은 유사한 형태의 문자도 추가로 유포됐다. 두 차례 모두 발신 주체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사용된 번호는 과거 여론조사 등에 활용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안은 형식 면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발신자를 밝히지 않은 채 특정 인물에 대한 문제를 나열하는 방식이 과거 정치권에서 등장했던 ‘익명 투서’나 ‘정체불명 유인물’을 떠올리게 한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경선 과열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경선은 문대림·위성곤 국회의원과 현직인 오영훈 지사가 맞붙는 ‘3자 구도’로, 여론조사에서도 뚜렷한 우열 없이 접전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각 후보 진영이 사실상 캠프 체제로 전환한 상황에서, 위성곤 의원이 ‘네거티브 없는 경선’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익명 문자 공격이 등장하면서 향후 공방 격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오영훈 지사 측은 “문자의 출처와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며,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은 제주4·3 제78주년을 맞아 '기억의 달 4월'을 주제로 특별 기획공연 시즌을 운영한다고 18일 밝혔다. 공연은 4월 4일부터 12일까지 문예회관 대·소극장에서 펼쳐진다. 4·3의 비극부터 세월호 아픔까지 시대의 고통을 기억하고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총 3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4월 4일과 5일 오후 5시 소극장에서는 창작 이미지극 '죽은 자가 산 자를 운구하듯'이 공연된다. 운구와 애도의 과정을 몸짓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삶과 죽음의 춤 '지신무' 창시자인 서승아가 연출과 출연을, 영화 '지슬' 감독인 오멸이 조연출을 각각 맡았다. 4월 11일 오후 5시 대극장에서는 4·3 최대 비극지 중 하나인 북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이 무대에 오른다. 마을 개발을 둘러싼 갈등 속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분임 할머니'와 서울에서 온 작가 '연수'가 과거의 슬픔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회복과 화해를 모색하는 드라마다. 마지막으로 4월 12일 오후 2시와 5시 소극장에서는 어린이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숨바꼭질'이 공연된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기억의 소중함을 다루는 내용으로, 세월호의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와 물가가 오르고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제주 소상공인들이 담보 없이 자금을 최대 1억원까지 낮은 금리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제주도는 19일 오후 제주신용보증재단 대회의실에서 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제주신용보증재단과 소상공인 위기극복 특별보증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225억원 규모의 특별보증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5억원, 하나은행 4억원, 신한은행 3억원, 우리은행 3억원 등 4개 시중은행이 총 15억원을 특별 출연하면 제주신용보증재단이 이를 재원으로 15배 규모 보증을 공급하는 구조다. 지원 대상은 중동 정세 변화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도내 소기업·소상공인이다. 업체당 최대 1억원까지 보증을 받을 수 있으며, 평소 담보가 부족해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업체도 완화된 심사 기준으로 신청할 수 있다. 보증수수료는 일반 대비 0.5%포인트 감면된 연 0.7%로 고정해 이자 부담을 낮췄다. 제주도 추천서가 있는 업체는 중소기업육성자금을 활용한 이차보전 지원도 함께 받을 수 있다. 제주신용보증재단 '보증드림' 앱으로 비대면 신청하면 별도 방문 없이 앱에서 심사부터 보증 발급까지 한 번에 처리된다. 지원은 재원 소진 시까지 계속된다. 도는 이번 지원으로 약 750개 업체 금융비용이 업체당 평균 150만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에서 감귤 농번기가 시작되면서 가지치기 작업 중 손가락 절단 등 중대 사고가 잇따르고 잇다. 소방당국이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지난 13일부터 ‘농번기 전정가위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농업인들에게 안전수칙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제주에서 발생한 전정가위 관련 사고로 228명이 다쳤다. 연평균 45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도 이미 이달 15일까지 26명의 부상자가 발생해 예년과 비슷한 증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사고 건수 역시 뚜렷한 상승세를 나타낸다. 2021년 24건이던 사고는 지난해 60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최근 사용이 확대된 전동 전정가위가 사고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수동 전정가위 사고는 88건인 반면 전동 제품 관련 사고는 157건으로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사고 시기는 가지치기가 집중되는 3~4월에 절반 가까이가 몰렸다. 피해자의 상당수는 60~70대 고령 농업인으로 나타났다. 빠르고 강력한 절단력을 가진 전동가위 특성상 순간적인 부주의가 손가락 절단과 같은 중증 외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사고 이후 대응 여건도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제주 지역에는 절단된 손가락을 접합할 수 있는 전문 의료진이 부족해 초기 대응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 서귀포시 안덕면에서는 50대 남성이 전동가위 작업 중 왼손 검지 손가락이 부분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같은 날 표선면에서도 70대 남성이 엄지손가락을 다치는 등 유사 사고가 잇따랐다. 소방 관계자는 “전정 작업 시 가지를 잡은 손과 절단 부위의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반드시 보호장갑을 착용해야 한다”며 “잠깐의 방심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이 과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특정 후보를 겨냥한 익명 문자 메시지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문대림 국회의원은 18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열린 기자회견 직후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제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거리를 뒀다. 그는 “관련 내용을 접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판단하거나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문자 메시지는 지난 16일 제주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발송된 것으로 파악됐다. 발신자 정보가 없는 이 메시지는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나선 오영훈 제주지사를 겨냥한 내용으로 도정 운영 전반을 비판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문구가 담겼다. 해당 문자는 선거캠프 관계자와 언론인 등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자 내용에는 계엄 관련 행적 논란을 비롯해 행정체제 개편, 청년 인구 감소, 교통체계 문제, 지방채 증가 등 주요 정책 이슈가 나열됐다. 일각에서는 정책 비판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익명으로 대량 유포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발신자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선 시점에 맞춰 확산됐다는 점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조직적 행위일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오영훈 지사 측은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섰다.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 조사를 요청했으며, 제주경찰청에는 개인정보 무단 수집 및 활용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오 지사 측 관계자는 “경선 국면에서 반복되는 유사 사례에 강한 우려를 느낀다”며 “정상적인 정치 경쟁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에서 일하면서 휴가도 즐기는 워케이션(휴가지 원격근무) 참가자들에게 숙박·오피스 비용이 지원된다. 제주도는 민간 파트너사와 함께 운영하는 워케이션 바우처 사업 참가자를 4월 1일 정오부터 모집한다고 19일 밝혔다. 지원 대상은 제주 워케이션 시설을 3박 4일 이상 이용하는 도외 기업 근로자와 개인 사업자다. 숙박비와 업무 공간 이용료를 합산해 1박 기준 최대 5만원, 총 3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올해는 민간 파트너사 15개사가 총 17개 워케이션 오피스를 운영한다. 지원 기준도 조정됐다. 지난해 워케이션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 5∼7일 체류가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점을 반영해 올해부터 최소 체류 기준을 기존 2박 이상에서 3박 이상으로 높였다. 신청은 제주 워케이션 통합 누리집(https://www.jeju.go.kr/workation/index.htm)에서 할 수 있다. 원하는 민간 워케이션 오피스를 선택해서 신청·승인·결제를 완료한 뒤 워케이션에 참여하고, 이후 정산 서류를 제출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지난해에는 워케이션 바우처 사업을 통해 309개 기업의 참여자 917명을 지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최근 러닝 열풍이 이어지면서 다양한 이벤트성 행사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이 가운데 ‘달리기’가 아닌 ‘휠체어’로 참여하는 이색 행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센터장 송창헌)와 장애인이 꿈꾸는 사회적협동조합(대표 전성환)은 다음달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19일 첫 휠체어대회를 연다. 장애인의 날 전날인 4월 19일(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시작해, 제주시 탑동광장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진행된다. 세화리에서 출발할 경우 탑동까지 42km, 구좌읍 동복리에서 합류 시 21km, 제주국립박물관에서 합류 시 5km 구간에 참여할 수 있다. 참가자는 자신의 체력과 컨디션에 맞는 구간을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세화리에서 출발 시간은 오전 8시, 동복리는 오전 11시 30분, 제주국립박물관은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다.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휠체어 뿐만 아니라 유아차로도 참여할 수 있다. 만약, 달릴 경우에는 1km당 8분 정도 소요되니, 이 점 참고해 함께하면 된다. 참가비는 없으며, 현재 구글폼을 통해 100명을 선착순으로 접수 받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064-751-9100)나 장애인이 꿈꾸는 사회적협동조합(010-2350-0607)으로 문의하면 된다. 송창헌 센터장은 “이번 행사는 기록과 경쟁이 아닌 함께 공존하는 의미로 마련된 대회”라며 “첫 대회인 만큼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장 자크 아노(Jean Jacques Annaud) 감독의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ㆍ1989년)’은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ㆍ1932~2016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기호학 외에도 에코의 분야는 철학, 해석학, 중세학, 문화비평, 사회비평, 소설 등에 걸쳐 있어서 그의 ‘전공’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에코를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에코에게 썩 어울리는 별호別號일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그 명민함으로 이름난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 분)가 교황청의 명을 받아 문제의 수도원으로 향하고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윌리엄 신부가 수도원 정문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 소설에서는 수도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담는다. 에코는 이 장면 속에 논문으로 치면 논문의 ‘문제 제기(research question)’를 담은 셈인데, 아노 감독은 이 장면을 과감하고도 난폭하게 쳐내는 이해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지른다. 원작 속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수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000달러대에 머물며 대만과 일본에 뒤졌다. 2023년과 2024년 연속 일본ㆍ대만을 앞섰던 국민소득이 역전당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았지만, 원화가치 약세(원ㆍ달러 환율 상승) 영향도 적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명목 GNI는 3만6855달러. 전년 대비 110달러(0.3%) 증가에 그쳤다. 원화 기준으로는 5241만6000원, 1년 새 229만6000원(4.6%) 늘었지만 원ㆍ달러 환율이 뛰며 까먹었다. 2024년 1364원이었던 연평균 환율이 지난해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과 외환 수급 불균형으로 1422원으로 오른 탓이다. 지난해 환율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394.97원)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276.35원)을 제치고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이 오르면 원화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도 달러로 환산하는 1인당 GNI는 맥을 못 춘다. 2022년에도 연초 1200원 수준이었던 환율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 올라 연평균 1292원에 이르렀고, 그해 1인당 GNI는 전년보다 7.0% 줄었다. 2023년부터 3년 연속 3만6000달러대를 벗어나지
많은 문학 사가(史家)들이 메리 셸리가 그려낸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고 오만에 빠진 당대의 영웅 나폴레옹의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메리 셸리를 비롯한 당대 유럽인들에게 나폴레옹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phenomenon)이었고, 특히 메리 셸리와 같은 작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면서 또한 비판의 대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1797년생인 메리 셸리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며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에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인 윌리엄 고드윈은 자유주의 무정부주의자였고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 나폴레옹의 혁명적 가치와 그에 따른 독재를 비판적 논쟁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그의 연인이자 후일 남편이 됐던 바이런과 쌍벽을 이루는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Percy Shelley) 역시 나폴레옹의 광기 어린 전쟁과 독재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의 대표작인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를 쓴 인물이다. 메리 셸리가 결코 나폴레옹에게 우호적이 될 수 없는 환경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분명 뛰어난 과학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마치 이카루스처럼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영향으로 주식ㆍ외환시장이 나흘째 요동쳤다. 3일과 4일 이틀간 하락률이 18.4%로 세계 최악이었던 코스피지수가 5일 9.63%(이하 전일 대비), 6일 0.02% 상승하면서 반등했다. 4일 ‘천스닥’이 깨졌던 코스닥지수도 5일 1100대로 올라섰다. 6일에도 전일 대비 3.43% 상승해 1154.67로 한주 거래를 마쳤다. 원ㆍ달러 환율은 3일 야간거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00원을 넘어섰다가 5일 1460원대로 내려갔다. 중동 전쟁 탓이라지만 세계 최대 하락폭에 이어지는 급등으로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ㆍ매수 호가 일시 효력정지)와 서킷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가 발동되는 등 변동성이 너무 컸다. 게다가 서울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이 4일 리터(L)당 1800원을 돌파했다. 중동 전쟁의 불똥이 한국 경제를 직격했다. 전쟁이 이란의 결사항전으로 격화하며 장기화하면 한국은 고환율ㆍ고유가ㆍ고물가의 ‘3고高’ 비상 상황에 갇히게 된다. 정부는 최악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3고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 아시아 주요국보다 한국 주식ㆍ외환시장의 충격이 심각한 것은 증시 비중이 큰 몇몇 대기업이
1994년 12월 초의 일이다.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에서 주재기자 신분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 시절 사무실에 묘한 편지가 배송됐다. 수신인만 적혀 있을 뿐 발송인 이름은 없었다. 내용은 현직 신구범 지사를 겨냥한 제보였다. 그해 구좌읍 이장단협의회의 동남아 여행이 시빗거리였다. “현직 신 지사가 이장단협의회 회장인 신모 이장에게 일화 30만엔을 줘 선거를 앞두고 그를 매수했다”는 내용의 제보가 투서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한 곳만이 아니라 여러 언론사로 그런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다. 그 다음해 첫 민선 1기 6·27지방선거가 예고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확인을 했지만 신 지사 측의 답변은 “이장단이 해외시찰을 한다고 할아버지 뻘 친족인 신 이장이 도와달라기에 공금을 지원할 순 없어서 과거 일본 방문 중 친족회에서 ‘활동비나 보태라’며 받은 일본 돈을 개인적으로 드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예산엔 도지사의 ‘재량사업비’가 있었지만 그는 예산을 쓰지 않았다. 스스로 사비로 처리했다. 그것도 나중 예기치 않던 구좌읍 관내 교통사고로 여행일정이 취소되자 보탰던 여행경비는 돌려받았다. 더 사안을 확인해보니 그 익명의 투서는 언론사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행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담쟁이가 뒤덮인 돌벽 한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색 방수포가 뒤덮은 객석 바닥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공연을 품던 무대는 무너진 채 흉터처럼 갈라진 흔적만 남았다. 한때는 웃음과 박수로 가득했던 자리에 이제는 공사 차량 자국과 철거 상흔만이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제 잔해와 철거의 상처로만 존재한다. 청춘의 기억을 간직한 무대, 가족과 함께한 영화 관람, 동네 아이들이 뛰놀던 객석의 풍경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건축물과 그것을 지켜보는 허탈한 눈빛뿐이다. 현장을 찾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무대를 배경으로 보낸 낭만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벽체를 손으로 짚으며 "아직 숨 쉬는 건물인데 왜 이렇게 급히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0일 오후 이중섭 거리를 찾은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멈췄다. 회색빛 공사판 가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무너진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이는 "관광지에 왔더니 왜 철거 현장만 남았느냐"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전국은 요동쳤다. 17개 시·도가 일제히 비상 체제로 흔들렸다.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그 때 제주에서는 도청 본관 출입문이 닫혔다. 밤 11시 17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3분까지다. 이 조치가 단순한 '출입문 통제'였는지, 아니면 '청사 폐쇄'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제주도정은 곧바로 '불법 계엄 동조' 의혹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부재'가 있었다. 오 지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날 저녁 저는 제주에 없었다. 서울에서 기업인들과 면담을 마친 뒤 오산에서 식사를 했고, 오후 9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택으로 이동해 비서실장과 특보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새벽 1시 30분 도청 회의를 소집해 "군·경은 상부 지시가 있더라도 따르지 말라"는 불복 지침을 명확히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단의 질문은 한 가지로 모였다. "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달 3일 새벽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속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제주남초)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이었다. 정당 참관인과 투표 사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5시 30분, 개시 준비가 본격화되자 사무원은 참관인을 상대로 투표지와 도장, 봉인 스티커를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봉인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고, 투표소는 긴장감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6시 35분. 한 50대 남성이 조용히 투표소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내민 그에게 여성 사무원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던 순간, 전산 시스템에는 이미 '사전투표 완료'로 명시돼 있었다. "혹시 사전투표 하지 않으셨어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원은 옆 동료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재차 "29일에 혹시 사전투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분증을 챙겨 빠르게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관인과 사무원들
고온다습한 기후를 갖는 제주도에서는 어떤 시설이나 구조물, 형상을 나무로 만들 경우, 목재 부분이 쉽게 부식되어 1~2년마다 한 번씩 새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모든 걸 돌로 만들자, 주의였다. 제주도 각 마을 중요한 곳에, 세워지는‘거욱’이나 읍성 취락 입구에 세워졌던 돌하르방 역시 그랬다. 제주도의 대표 캐릭터 돌하르방의 주요 기능은 수호신적 기능, 주술 종교적 기능, 위치 표식 및 금표 기능 등이다.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동자석, 망주석, 옹중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완옹중 석상에서 유래했다 해서 옹중석(翁仲石)이라는 이름이 많이 통용되었다. 북촌 돌하르방공원에서 만난 김남흥 돌하르방 장인(1967년생)은 먼저 인문학적 소양 얘기부터 꺼내 들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15년 전 돌하르방에 인생을 걸면서 처음 매달린 일이 돌하르방에 관한 인문학적 탐구였다. 돌하르방이 어떤 연유로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유래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에 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때문에 김남흥 장인은 몇 년간 도서관을 찾아 관련 사료를 발굴하여 탐독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돌하르방 장인 김남흥 관장은 15년간의 열정과 노력으로 창조한 그의 ‘상상의 나래’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 줬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1754년 김몽규 제주 목사가 옹중석을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진시황 때 흉노족 등 북방 이민족을 물리쳤다는 거인 완옹중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죽은 후 진시황이 그의 동상을 아방궁 앞에 세웠다.” “김몽규 목사는 본토 사람으로 막상 제주에 와보니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당시 전염병이 돌아 8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이 상황에서 흩어진 민심을 모아야 했던 김몽규 목사 역시 완옹중이란 인물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삶이 든든해지기를 기대하며 관 주도로 옹중석을 만들어 동·서·남 성문 앞에 상징적 문지기를 세웠다. 우석목, 무석목 등으로 불리다가 1971년 제주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제주 목성을 지키던 돌하르방은 우락부락하고 무장을 한 모습으로 키가 크다. 반면 정의현성(서귀포시 성읍리)이나 대정현성(서귀포시 대정읍) 돌하르방은 각각 12기로 제주목 절반에 불과하며 키도 작다. 제주 목사가 주도했고 정의현과 대정현에서 따라 했다. 당시 지역마다 부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돌도 달랐기 때문에 석수들의 표현이 다르게 나타났다. 다만 돌을 가장 적게 깎아내면서 형태를 끌어낸 기법은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고등학교 시절, 당시 월남 참전용사 출신인 미술 선생님이 “돌하르방은 주변 현무암을 가져다가 대강 파놓은 예술적 가치가 별로 없는 싸구려 관광 공예품에 불과하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 때문에 여태껏 내가 '제주 돌하르방을 희화화하고 평가 절하했었구나'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제주의 돌인 검은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그 재질을 잘 살려 입체감을 더하며 조금씩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큰 눈, 자루 같은 코, 다문 입, 넓게 뻗는 귀 등 해학적이면서 인정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벙거지를 눌러쓴 머리는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하체는 옷자락으로 발이 보이지 않고, 배 중심에 위아래로 골이 있다. 두 손은 배에 올려놓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돌하르방은 손의 위치에 따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진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文人)을 상징하고, 왼손이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무인(武人)을 상징한다.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 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한때 돌하르방 코를 만지면 남자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한 기대로 혹은 재미 삼아 돌하르방 코를 만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하르방의 코 부분을 부수고 가루 내어 물에 타 마시는 풍습도 있었다. 2007년 작고한 제주도 마지막 석장(石匠) 고 고흥옥 옹은 돌 깨는 일을 하다 독학으로 동자석과 문인석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무덤에 동자석을 세우는 사람들이 줄었고 찾는 사람도 없어지면서 더 이상 동자석을 만들지 않았다. 동자석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 모습을 한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형상이다. 동자석은 동제석, 동ᄌᆞ석, 동주석, 동제상, 애기동자, 자석 등으로 부른다. 제주 민묘(民墓)는 부등변 사각형의 산 담으로 둘러 있고, 그 속에 둥근 봉분이 있으며 묘주(墓主)의 시중꾼이라 할 수 있는 아담한 동자석이 쌍으로 마주 서 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작고 귀여운 동자석은 제주의 대표적 석상이다. 무덤을 지키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를 지닌 제주 동자석은 현무암이나 화산암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 동자석과 다르다. 제주 동자석은 손에 홀, 부채, 문자, 수저, 붓, 칼, 술병, 술잔, 부채, 뱀, 새, 음양의 성기 등 다양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다이아몬드형, 타원형 등 기하학적 무늬도 있다. 2024년 고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제주 동자석과 문인석 55점이 국립제주박물관 옥외정원에서 선보였다. 이 동자석과 문인석은 2021년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2만1000여 점 작품 가운데 일부다. 2006년 제주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돌 문화를 집대성한 제주 돌문화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제주 지역 최초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조성 중이다. 제주 돌문화공원은 곶자왈 지대에 있는 326만9731㎡(100만 평) 부지에 야외 전시장뿐만 아니라 제주 돌 박물관, 설문대할망 전시관, 오백장군갤러리 등의 다양한 실내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 전시장을 제외하고 실내 전시실만 합쳐도 4만2900㎡에 달하는 전시시설이 들어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공간 3만7719㎡를 넘어서는 규모다.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돌 문화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돌 문화공원 야외 전시장에는 48기 돌하르방, 사악한 기운과 액운을 몰아낸다는 방사탑, 제주의 상징인 정주석,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 등이 망라돼 있어 제주의 풍성한 돌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조선의 해금(海禁)과 공도(空島)정책 한국 사료에 왜구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사료에 의하면 고종 10년(1223)이며, 이때부터 공양왕 4년(1396)까지 약 169년 동안 519회에 걸쳐 침략한 사실이 있다. 주로 조운선 약탈이나 납치를 시도한 것으로 보아 식량과 인적 자원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인 경우 『명사(明史)』와 명실록(明實錄)』에 의하면 홍무(洪武) 원년(1368)부터 홍무 7년(1374)까지 중국 연안에 왜구가 침략한 곳은 23회 이상이 되자 당시 신생왕조였던 명나라의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 이에 홍무 4년(1371) 연해민(沿海民)들이 아무 때나 바다로 나가는 것을 제한하는 해금령을 내렸으며, 연해 지역에 해구(海寇)·왜구(倭寇)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방정책을 실시하였다. 해금(海禁)은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 즉 “바다에 나가 오랑캐와 통교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말의 약칭이었다. 이러한 해금령은 중국 영향권에 있는 조선과 일본에 해방정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간혹 해금이 완화돼 해외무역을 허용하는 범위에서 개해(開解)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해금은 명·청 시대의 국가의 외교, 무역, 국방 등의 안보 정책이 되었다. 조선은 중국의 해금정책과는 다른 공도(空島)정책으로 주민들이 바다에 나가는 것을 통제했다. 원래 공도정책의 시초는 고려말 한반도 연안에 왜구가 극성을 부리면서 시작되었고, 원종 12(1271)년 왜구가 거제도를 공격하자 고려 정부는 거제도민을 내륙지방인 거창과 진주로 이주시키면서 사실상 시작되었다. 공도정책이란 말 그대로 섬에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두는 것을 말한다. 14세기 말엽부터 15세기 중엽에 이르도록 서남해 도서 지역에 출몰하여 미역을 채취해 가거나 배를 만들어 가는 등 섬주민들을 괴롭혔다. 사실상 15세기 조선 정부는 왜구들의 노략질 대상인 주민들을 섬에 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왜구들이 약탈할 것이 없으면 그들이 빈 섬에 오지 않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왜구나 수적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공도정책의 본뜻이었다. 바야흐로 성종 연간에 「도서거주금지령」과 「추쇄령」이 내려졌다. 이때에 주민들에는 강력한 단속이, 수령과 만호에게는 감독 책임이 주어졌다. “쇄환해온 자가 다시 섬으로 숨어들면 해당지역 만호나 수령은 이유를 막론하고 본인은 파직시키고 가족들은 변지(邊地:변방)로 보낸다.” 하지만 이 정책 또한 왜구들과 유랑민이 다른 피해를 끼치게 된다. 왜구들은 빈 섬을 점령하여 그곳의 나무로 배를 만들고 임시 생활 근거지로 삼는 것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포작인과 국내 유랑민들도 빈 섬을 드나들면서 숨박꼭질하듯 추쇄(推刷)와 쇄환을 피하기도 했다. 이주민들도 섬을 선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세금이 싸고 요역의 부담이 적어 섬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했다. 왜구에 대한 정의,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왜구는 누구인가? 왜구의 발생 원인과 그들의 활동 근거지, 왜구의 구성원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차는 매우 크다. 먼저 일본 고등학교용 6개의 역사 교과서에서 보이는 왜구에 대한 시각을 종합해 보면 왜구의 근거지로는 대체로 쓰시마, 이키, 마쓰우라 지방과 제주도의 해민, 히젠마쓰 우라, 고토(五島)열도의 삼도(三島), 북규슈와 세토내해, 마쓰우라 등지로 보고 있다. 왜구가 등장하게 된 발생 원인으로는 6개의 역사 교과서 중 4곳이 불분명하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2곳의 교과서에서는 ▲식량 자급의 어려움 ▲식량부족 내란기의 일본 국내 정치 혼란 상황을 이유로 들고 있다. 왜구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5가지가 있는데 ▲왜구라 불리는 해적집단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으로 구성된 일본인 중심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三島)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북규슈와 세토내해의 주민 ▲일본인 해적 집단, 쓰시마, 고토(五島) 등지의 일본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국내 정치 혼란기의 식량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왜구의 주체에 있어서 두 가지가 특이한데 왜구에 제주도의 해민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왜구를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학자들의 왜구를 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한국 연구자들은 왜구를 일본 해적, 혹은 일본인으로 보는 견해다. 왜구의 근거지를 일본의 삼도(三島)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서 삼도는 쓰시마(對馬島), 이키시마(壹岐島), 마쓰우라(松浦)를 말한다.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듯이 왜구를 해적집단으로 인식하면서도 규슈(북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제주도 해민, 쓰시마 고토 등지의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한·일간 왜구를 보는 이러한 시각적 편차는 급기야 무라이 쇼스케(村井章介)처럼 “왜구(倭寇), 왜인(倭人), 왜어(倭語), 왜복(倭服)이라는 말의 왜(倭)는 결코 ‘일본’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왜구는 “반(半)한국, 반(半)중국, 반(半)일본이라는 민족적으로 애매한 주변지역의 경계인”이라고 동아시아의 특수성과 시대상황을 무시하여 무리하게 뭉뚱그려 정의하기도 한다. 사실상 왜는 삼국시대부터 신라를 중심으로 자주 침략해 약탈한 사례가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도 ‘왜구(倭寇)’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왜구의 어원이 되고 있다. 여기서 왜구는 “왜(일본)가 약탈했다. 왜가 침략했다”라는 사실이 왜와 왜구가 중첩되고 있는데 단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한 점도 많다. 그래서 왜구의 정의가 매우 포괄적이며 다의적이어서 쉽게 개념을 내리기가 어렵다. 물론 왜의 침략은 일본 국가 차원의 행동이라는 사실 면에서 일본인 해적집단이기도 한 왜구와는 다르다. 왜라는 말이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 왜(일본)에서 쓰시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해적 무리인 왜구들에게 외교의 책임을 물어 체포해 고려로 압송한 사실도 왜구와는 다른 왜(일본)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1350년 경인년 왜구의 대규모 침략 이래 왜구들의 한반도 침략이 잦아졌지만, 후세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왜란의 성격이 '왜적이 침략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로 굳어버려 왜라고 하면은 바로 왜구를 연상하게 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특수성을 동시에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구들은 누구였는가가 항상 문제라는 사실이다. 대개의 왜구 연구자들은 일본 남북조 내전으로 규슈가 혼란해진 시기가 고려에 왜구들이 대거 출몰한다는 시기와 같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규슈 내의 남북조 내전으로 해상 세력의 공권력에 대한 통제력이 약한 데서 찾고 있다. 나아가 규슈 내 남조 세력을 지지하고 있는 군벌이 식량을 얻기 위해 자신의 휘하의 군사들을 고려에 투입한 것이 경인년 왜구의 실체라는 주장도 한다. 왜구의 근거지로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었지만, 다수의 연구자들 또한 쓰시마(對馬島)가 삼도(三島) 중에 하나이며, 더불어서 이키시마(壹岐島), 규슈 북부의 마쓰우라시마(松浦島), 또는 히라도(平戶島)를 꼽고 있다. 이와 같이 왜구의 근거지가 되는 지역들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제주에 가깝고, 언제라도 바다 해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해상 운용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세력 중 하나로 유력한 규슈 서북부 지역의 마쓰라토(松浦黨)나 쓰시마의 소다(旱田)씨 등이 있는데 이들 해상 집단이 쓰시마를 집결지로 삼아서 왜구를 이끌었다는 주장이 설득을 얻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심한 경우도 있었다. 거지 단체가 그걸 기회로 함부로 협박해 재물을 강요하였다. 진우문(陳雨門)의 『개봉춘절구침(開封春節鉤沉)』에 한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설 전후 연말연시 때에 거지가 많았다.” 『개봉기구전불진노인담(開封耆舊傳拂塵老人談)』 기록을 보자 :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음력 섣달부터 음력 섣달 그믐날까지 상국사(相國寺)의 속인들과 잡팔제(雜八弟, 강호에서 상하구류의 한 분파를 말하는데 소매치기, 유괴범, 사기꾼 등을 포함한다)가 결합하여 귀신, 부녀자로 분장해 북을 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매일 저녁 상점이 문 닫을 즈음에 길을 따라서 사기치고 강탈하였다. 섣달 그믐날이 가까워지면 더 심해졌다. 그러면 상국사 두목 노요(魯耀)가 친히 나서서 중재하였다. 연말마다 거상들이 대표를 선발하여 약간씩 갹출하여서 거지 두목에게 전달했는데 ‘송년(送年)’이라 불렀다. 민국 8년 이후에서야 처음으로 단속되었다. 중일전쟁 이전에 연화락을 실연하며 다니는 거지들이 있었다. 어린아이 머리에 부들로 엮어 만든 꾸러미를 씌우고 코와 입만 보이게 구멍을 낸 후 그 위에다 석회로 자라 모양을 그리고 가운데에 ‘왕팔(王八)’ 두 글자를 써서는 목에다 삼밧줄을 묶어서 끌고 다니면서 불운한 기운을 없애라 소리치며 구걸하였다. 상점에 이를 때마다 상점의 크기에 따라 반드시 8수(80문, 800문, 최소한 8문)를 주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였다. 경험이 있는 상점에서는 80문이나 800문을 주면 행운의 말을 몇 마디 읊고는 떠났다. 그렇지 않으면 불길한 말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쏟아내었다. 쟁반에 4색의 연말 선물을 올려놓고 먼저 새해 인사를 하고 그에 따라 후사(적으면 100문, 많으면 1000문)하라고 강요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위와 같은 사례는 모두 옛날 설날 풍속 중의 구성부분이다. 거지도 상응하는 관습을 형성하였다. 재미있는 일은 따로 있다. 평상시에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는 심리와 선량한 마음이 생길 때에는 힘이 닿는 데까지 거지에게 기꺼이 보시하고 구제하였다. 그런데 일단 자기 가정의 운명과 절실한 이해관계가 있는 금기와 상충될 때에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택했다. 눈치가 있는 거지들은 금기가 많은 설날 기간에는 구걸하는 것을 피했다. 설날 전에 강압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식으로 구걸했더라도 설 때에는 습속 제약에 얽매여 교묘하게 순응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쌍방이 공유하는 케케묵은 낡은 습관이 되었다. 옛날에 하남(河南) 거지는 ‘돈을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8수로 하여야 했다.’ 왜 그랬을까? 한족의 수(數)문화를 교묘히 이용한 까닭이다. 한족은 ‘8’을 길한 숫자, 정해진 운명, 정액의 숫자로 생각하는 관습이 있었다. 거지가 조왕신에게 제사하다 연말에 거지가 관례대로 강압적인 방식으로 구걸하는 행태는 송대에 이미 선례가 있었다. ‘타야호(打夜胡)’라 한다. 송대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10권 「십이월(十二月)」의 기록이다. “이 달이 되면 가난한 자 서너 명이 한 무리가 되어 귀신 부인으로 분장하고 쟁과 북을 치면서 대문을 돌며 구걸하였다. 민간에서는 ‘타야호’라 불렀다. 요괴를 몰아내는 법이다.” 이런 ‘타야호’는 양언령(楊彦齡)의 『양공필록(楊公筆錄)』에는 ‘打夜狐’, 조언위(趙彦衛)의 『운록만초(雲麓漫抄)』에는 ‘打野胡’라 되어 있지만 실제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갈취한다는 뜻인 ‘타추풍(打秋風)’과 마찬가지다. 어떤 곳에서는 재신을 건네주고 어떤 곳에서는 도깨비 모양으로 가장해 잔꾀를 부리는 것일 따름으로, 실제로는 형태를 바꾸고 기회를 틈타 동냥하는 것으로 명목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청대 소주(蘇州)에 거지가 조왕신에게 제사지냈다. 청대 고록(顧祿)의 『청가록(淸嘉錄)』 12권 「십이월·도조왕(跳竈王)」의 기록이다. “음력 초하루에 거지 서너너덧 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조왕, 조왕부인으로 분장하여 각자 대나무 가지를 잡고 문 앞에서 시끄럽게 굴면서 구걸하였다. 24일이 되어야 그치는데 ‘도조왕’이라 부른다. 주종태(周宗泰)는 『고소죽지사(姑蘇竹枝詞)』에서 ‘또 늦겨울이 되니 분주하게 재촉하여 길거리에 재신화상이 상점마다 열리게 하네. 조왕신으로 분장한 사람이 오니 사람마다 아양 떠는데, 결국은 돈으로 주머니를 채울 속셈이라네.’ 라고 읊었다.” 이에 대하여 고록은 평어 방식으로 고증해 인증하였다. “이랑(李廊)은 『경청사(鏡聽詞)』에서 ‘상자에서 거울을 꺼내 조왕(竈王)에게 고별하였네.’라고 했는데 조신(竈神)을 조왕이라 부른 것으로 당(唐)대에 이미 그러하였다. 또 이작(李綽)은 『진중세시기(秦中歲時記)』에서 ‘섣달 그믐날에 나(儺)가 들어왔는데 모두 귀신 형상이었다. 안에 둘이 있었는데 나공(儺公), 나모(儺母)다.’라고 했는데 가설정(家雪亭)이 『토풍록(土風錄)』에서 현재의 조공(竈公), 조파(竈婆)라고 하였다. 채철옹(蔡鐵翁)은 시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돈을 요구하니 결국 쌍을 이루었다.’ 『양서(梁書)』에서는 ‘나(儺)는 야운(野雲)이다.’ 『남사(南史)·조경종전(曹景宗傳)』에서는 ‘일찍이 음력 섣달 에 사람을 시켜 가택에서 사악함을 쫓도록 하였다.’……유독 강지(江志), 진지(震志)에서는 ‘24일에 거지가 얼굴에 분칠하고 모습을 바꾸어 남녀 귀신으로 분장해 구나(驅儺) 제사를 지내고 재물을 요구하였다. 민간에서는 도조왕(跳竈王)이라 한다.’ 주밀(周密)은 『무림구사(武林舊事)』에서 말했다. ‘24일, 시정에서 나(儺)를 맞이하였다.’ 오만운(吳曼雲)은 『강향절물사(江鄕節物詞)』 서론에서 ‘항주의 풍속에는 조왕에게 제사지낸다. 거지는 음력 섣달 하순에 얼굴을 검게 칠하고 시가로 나가 깡충깡충 뛰면서 돈과 쌀을 요구하였다.’라고 말했다.” 이 사이에 현지에서는 또 거지들이 종규(鐘馗)에게 재사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청가록』 12권 「십이월·도종규(跳鐘馗)」의 기록이다. “거지는 낡은 갑옷과 투구로 종규처럼 분장하여 문 앞에서 춤을 추면서 귀신을 쫓았다. 음력 초하루에 시작해 섣달 그믐날에 그쳤다. ‘도종규’라 한다. 주종태(周宗泰)는 『고소죽지사(姑蘇竹枝詞)』에서 ‘흰 머리 낡은 모자 헌 옷, 만 량의 황금으로 향화 드리네. 보검을 새로 갈아 귀신을 쫓아내니 확실히 나라를 지키는 충량이구나.’ 라고 읊었다.” 거지가 종규에게 제사지내는 ‘도종규’도 돈을 버는 하나의 명분임은 분명하지만 관습이었다. 사람들은 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도 즐기면서도 ‘인격을 잃어버리는’, 자신이 직접 귀신으로 분장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돈주머니를 풀어 거지와 같은 ‘천민’을 고용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보시 방법으로 거지를 매수하여 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도 즐기는 목적을 달성하였다. 거지에게 속세 사람과 귀신 사이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담당케 하였다. 신을 공경하면서도 거지에게 신을 희롱하는 역할을 맡겨 거지의 인격을 희생시켰다. 거지를 사람과 귀신 사이를 중개하는 사자로 삼을 셈이다.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논리다. 예부터 지금까지 여러 습속 중에서 이러한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고 모순되는, 자가당착인 상황이 어디 한둘이던가. 일정한 의미에서 말하면 습속은 특정한 모순의 산물이라 할 수도 있다. 습속은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다. 습속은 특정한 모순을 조정하고 균형을 잡는 공구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무협소설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연재했던 무협소설의 시즌 2입니다. 무협은 무술(武)로 협(俠, 의기로울)을 이룹니다. 창작인 소설이 더해져 무협소설이 됐습니다. 퓨전무협 소설입니다. 무협의 묘미는 살리기 위해 일상적인 무협용어는 사용했지만, 해석이 힘든 용어는 현대어로 풀어썼습니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습니다. 이름을 차용 당한 인물들은 제주에서 ‘공인’입니다. 공인다운 아량으로 소설인 점을 이해 부탁합니다. 무협소설 주인공들이 매번 외치는 기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갈(喝)∼” 적막했다. 텅 빈 수련장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수백조 원 중원무림 예산을 쥐고 흔들었던 게 엊그제였다. 정신이 어수선할 정도로 수많았던 휘하들은 나른한 봄날의 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내 수련장에 노크 소리가 들린 적이 언제였던가. 도무지 기억에 없었다. 타의적 독고다이(独孤多異) 무사가 되고만 것인가. 인지도 상승 수련을 위해 시전을 한 바퀴 돌 때는 “누구라 마씸?” 하는 통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 성유검이우다” 했지만, 반응은 눈만 껌벅껌벅.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수련하고 있는가. 제주무림은 왜 이렇게 나에게 매정하게 대하는가. 국민의힘방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안싸움으로 몸살을 앓고, 전국무림 판세도 TK(대구, 경북)무림만 빼곤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중원 지원 없이 각자도생(各自圖生) 하라는 말인가. 3자 대결로 경선 흥행몰이를 하는 민주방 무사들이 생각났다. 살짝 배가 아픈 상황이었지만, 가소로웠다. “정책설계와 운용 무공엔 관심이 없고 행사장 무공에만 익숙한 자들이다. 영훈공은 지난 4년 동안의 성과에 대해 도민무림인으로부터 낙제점을 받았다. 대림검은 오랫동안 정치무공을 펼치면서 수많은 약속을 했지만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성곤검은 또 어떤가. 3선 중원무림의원을 지내면서 서귀포무림에서 해놓은 게 뭐가 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성유검은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가슴 벅찬 ‘4전 5기’ 신화였다. 눈을 감고 내공 급충전 명상을 시작했다. 금세 충전 100%. 눈이 번쩍 뜨였다. 성유검은 호검의 무림 플랫폼에 무사회원 가입을 하곤, 자신의 초미니 자서전을 리얼타임으로 썼다. 제목은 ‘달려라, 날아라 성유검!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시각, 호검은 정체 모를 이에게서 긴급 카톡을 받았다. ‘영훈공, 이번 주 공식 출마 선언. 단, 예비무사 등록은 4.3 맏상제 핑계로 미룰 듯. 출마 선언 후 비무준비캠프 공식 오픈.’ 호검이 탄식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바쁜 거야. 영훈공 공식 출격 첩보에 성유검 초미니자서전까지. 우선 내 회원무사로 가입한 성유검 초미니 자서전부터 읽는 게 상도의지.” ◆ 마루치 아라치 주제곡의 예언 무림 1964년 3월, 제주시 용담동 출생. 초등 무림시절 그를 무사의 길로 이끈 MBC방 라디오 연속극 프로가 있었다. 60년대생 아동무사들을 열광하게 했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였다.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 정의의 주먹에 파란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애창곡 마루치 아라치 주제가를 흥얼거리던 성유검은 멈칫했다. 지금 자신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했던 것이었다. “내 미래를 위한 예언 곡이었던가. 파란색(파란해골 13호)은 민주방의 상징색. 마루치 아라치 이름 색은 공교롭게도 국민의힘방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내게 불의를 물리치는 정의감을 심어줬어. 내 반드시 파란 해골 13호를 물리쳐 전국무림 지도 색깔을 바꾸고야 말 거야.” 성유검은 다시 집중했다. 아버지는 높은 직책을 지낸 포졸간부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초등무림 때부터 혹독한 가정수련을 받아야 했다. 용두암 인근 얼음장 같은 용천수가 솟는 곳에서 혹독한 겨울에도 냉수마찰수련. 덕분에 아버지는 목욕탕수련비를 아낄 수 있었다. 세월 급가속 모드, 연세대무림 경제학과에 입학한 시절이었다. 소년 급제를 하고 싶었다. 대학무림 1학년을 마치자마자 전지훈련장인 절에 들어가 고시수련 플랜을 세웠다. 고된 수련의 서막이었다. 진시(辰時)부터 해시(亥時)까지 고시무림방 ‘경헌제방’에서 수련하다 3학년 때 1차 관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멀고도 먼 길이 예고되어 있었다. 낙방을 거듭하며 소년급제의 꿈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캠퍼스 낭만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도 한 번 못 하며 대학시절 시간을 몽땅 투자했는데 말이다. 대학무림 졸업 후엔 좀 복잡해졌다. 1차 고배, 1차 합격 후 2차 실패, 또 2차 실패였다. “실패도 반복되면 습관이 되는구나.”, 하곤 깊은 한숨을 지었다. 하지만, 무림 1989년 최종 관문을 통과한다. 전적을 보면 1차 관문 3번 합격, 2차 관문 4번 탈락 후 통과. 말 그대로 ‘4전 5기’였다. 성유검은 남에겐 쉽사리 털어놓지 못할 고뇌가 있었다. 결혼 얘기만 나오면 몸이 움츠러들었다. 권위주의적 가부장제 무사 집안의 장손, 1년에 12번이 넘는 제사수련, 성격과 내공이 센 누나검과 여동생검. 가벼운 소개팅비무도 힘든 악조건이었다. 가문의 소개로 만난 이화여대무림에서 약대 무공을 익힌 경민낭자에게 비장한 각오로 집안 내력을 상세하게 고백했다. 경민낭자는 약처방을 찾는 듯 당황해하며 잠시 고심하더니 결혼을 수락한다. 3번의 만남, 45일이란 초스피드로 결혼에 성공한 것이었다. 서울집에 신혼집을 차렸던 당시였다. 경민낭자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아버지가 헛기침하며 쑥스러운 듯 봉인한 봉투를 내밀었다. 사랑스러운 며느리무사에게 주는 시아버지의 첫 선물. 감사해하며 받았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보곤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빼곡하게 적혀 있는 제삿날 명부였다. 집에서 모시는 제사수련이 일 년에 12번이 넘었다. 그중 5번의 제사는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제주무림으로 내려와 출전해야 하는 제사였다. ◆기재부 컨트롤타워 핸들 잡은 성유검 중원무림 기획재정부 소속 무사가 된 후였다. 중원무림 예산 수백조 원을 배분 계산을 하곤, 그 무거운 돈을 등짐으로 나르는 곳. 힘깨나 쓰는 무사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성유검은 출세는 못 해도 ‘변방 무사여서 무능하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는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고,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기도 전인 꼭두새벽에 출근하는 강행군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무림 2011년 예산총괄과장 무사의 직위에 오른다. 이후 무림 2019년,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까지 오른다. 중원무림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핸들을 잡은 것이었다. 장차관을 빼곤 넘버1 운전무사. 그뿐이 아니었다. 중앙부처 제주무림 출신 무사 모임인 ‘제공회’ 수장으로도 선출되며 무사인생 황금기를 맞는다. 당시, 여식에게서 받은 편지. “사랑하는 아빠검, 흔히 차를 운전하면 본래 무사의 성격이 나온다고 하는데, 핸들을 잡고서도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아마 그래서 저도 성향이 화를 내는 편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나 봐요.” 그는 회고했다. 자나 깨나 제주무림에 대한 애정, 제주대병원방, 국립제주호국원방, 기상청 제주청사방 등 예산확보에 많은 힘을 썼다. 무림 2019년 12월엔 30년 공직무사 생활을 마무리하곤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하 2,000여 명, 자산 7조 원에 달하는 공기업방이었다. “0.2% 인구의 유대무림인이 세계무림을 움직이는 것은 무사 네트워크 덕분이다. 30년 동안 구축해 온 무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원무림과 긴밀한 협력적 관계를 조성하면서 제주 무림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밀알이 되고 싶다.” 성유검은 돌연 캠코에 사표를 내곤 무림 2022년 4월, 국민의힘방 제주맹주 후보 비무에 첫 출전한다. 결과는 향진검 40.61%, 성철검 37.22%에 이어 28.45%. 꼴찌로 탈락했다. ◆ 성유검 “결선비무 진출 ‘성곤검과 대림검’, 최종 경선승자 성곤검” 성유검 초미니 자서전을 완독한 호검은 몹시도 궁금해졌다. 지금 제주무림 최대 관심사는 민주방 경선에서 누가 승리할까였다. 본선에서 맞붙을 무사라면 의미 있는 예측이 나올 것 같았다. 성유검에게 카톡을 보냈다. “경선비무 룰은 확정됐어. 과반수 득표 무사가 없을 때 누가 결선 비무 후보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가? 또 경선 최종 승리 무사는 누구일 것 같은가?” 성유검은 미리 준비했다는 듯 초스피드로 답변 톡을 보냈다. “결선투표 진출 무사는 성곤검과 대림검이 될 것이다. 결국, 경선 최종 승리 무사는 성곤검이 되겠지. 감점 요인도 없고, 정치행보를 보면 큰 약점이 없기 때문이지.” 호검은 고심했다. 호시탐탐 성곤검의 중원무림의원직을 노리는 기철검이 생각나서였다. 성곤검이 민주방 후보가 되면 서귀포무림에선 중원무림의원 보궐비무가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유권자 무사들은 월 천 원만 꾸준히 내면 권리방적을 보유할 수 있다. 민주방과 국민의힘방에 양다리를 걸친 무사들은 너무 많았다. 호검이 탄식하듯 말했다. “만약, 기철검이 몰래 자신의 수하들을 가동해 민주방 경선비무에 개입한다면 성곤검이 경선비무 승리무사가 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지. 선관위방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역선택무공 말이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