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선거 명당(明堂) 은 어디?" ... 제주지사 선거판, 자리가 말하다
‘시즌2’ 보궐비무 열리나? ... 신상품 출격 태세
부정선거, 정치판, OTT까지… 가히 무당들의 전성시대
국민의힘 제주지사 후보 문성유, 캠프 가동 ... 출격 채비 들어갔다
김광수 39.1%·고의숙 22.8% ... 제주교육감 선거, '선두-추격' 구도
제주의 왜구 침략을 막은 ... '구진포'
국제e모빌리티엑스포, ‘모빌리티 다보스'로 대전환 ... 제주 신화월드서 24일 개막
롯데관광개발, 사상 최대 실적 ... 드림타워 개장 후 첫 당기순이익 흑자
'제주특별법 처리' 놓고 문성유·위성곤 충돌 ... 지방선거전 격화
민주당 경선 흔든 '정체불명 문자메세지' ... 경찰, 수사 착수
제주도내 국가유산 100개를 탐험하며 제주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2026 제주 국가유산 방문의 해'가 오는 27일부터 11월 22일까지 운영된다. 25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100개 국가유산 방문 인증 여행은 핵심 코스(36개)와 일반 코스(64개)로 구성된다. 참여자는 핵심 코스만 완주하거나 핵심·일반코스를 모두 도전하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참가자는 국가유산 거점을 방문해 인증수첩 도장 찍기, 블랙야크 BAC앱 인증 또는 휴대전화 사진 사후 인증 등 3가지 방법으로 참가할 수 있다. 완주하면 향사당에 있는 방문자센터에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유산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유산 주간(헤리티지 위크)도 운영된다. 특정 기간 제주 국가유산을 집중적으로 탐험할 수 있도록 국가유산 탐험원정대를 모집해 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4월·6월·8월·10월 마지막 주에 진행된다. 대표 유산 기획 프로그램(시그니처 헤리티지)은 1박 2일 체험, 유산 달빛 기행, 테마 탐방 등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완주자 349명은 올해 홍보대사로 위촉돼 참여 확산 역할을 맡는다. 개막 행사는 27∼28일 제주국제공항, 향사당, 성산일출봉에서 열린다. 공항에서는 '방문의 해 탐험가' 모집 홍보와 함께 향사당 방문자센터, 성산일출봉에서 진행되는 행사를 안내한다. 향사당 방문자센터에서는 인증수첩 한정판 400부 배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벤트를 진행한다. 성산일출봉에서는 참가 등록, 안내 소책자 배부, 사진 촬영 부스를 운영하며 행사 참가자에게 무료 입장 혜택을 제공한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도교육청은 제주의 특성을 반영한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용 디지털 문해력 교육자료를 개발해 도내 모든 초·중학교에 보급했다고 25일 밝혔다. 초등 5∼6학년용 '바로 쓰는 디지털 리터러시 수업 가이드'는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이미지와 실제 사진을 비교하고, 챗봇에 제주 자연환경을 직접 질문하며 답변의 정확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또 '디지털 발자국' 점검표를 활용해 저작권 준수, 출처 표기, 사이버 폭력 예방 등 디지털 책임과 윤리를 스스로 점검하게 했다. '제주를 담아 수업에 녹여 쓰는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중학교용 교육자료는 국어, 사회, 수학, 과학 등 교과와 디지털 소양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교과 융합형으로 구성했다. 이번 교육자료 개발에는 지난해 10월부터 도내 초등교사 8명과 중등교사 10명이 참여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약 10년 동안 끊겼던 제주~인천 국내선 하늘길이 다시 열린다. 국토교통부는 24일 제주항공이 신청한 제주~인천 국내선 운항을 공식 허가했다고 밝혔다. 제주~인천 정기 노선은 2016년 운항이 중단된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 이번 재개는 약 10년 만이다. 제주항공은 오는 5월 12일부터 제주와 인천을 연결하는 노선을 주 2회 왕복 운항할 계획이다. 5월에는 화요일과 토요일에 운항하고, 6월부터는 월요일과 금요일로 운항 일정이 변경된다. 투입 기종은 189석 규모의 B737-800 또는 174석 규모의 B737-9 항공기가 활용될 예정이다. 제주항공은 운항 재개를 앞두고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내 국내선 체크인 카운터와 수하물 처리 시스템 등 관련 인프라 점검을 마무리하고, 사업계획 인가 절차를 거쳐 정식 운항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번 노선 재개로 제주~수도권 이동 선택지가 확대되면서 항공 수요 분산과 이용 편의성 개선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업무보고에서 "인천공항에서 지방공항으로 이동하려면 김포공항을 거쳐야 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며 국토부에 개선책 마련을 주문했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내년 1월 제주에 영·유아가 기후환경에 대해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문을 연다. 제주도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모한 2026년 유아기후환경교육관 신규 조성 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됐다고 25일 밝혔다. 도는 이번 선정으로 조성비와 운영비를 포함해 3년간 국비 3억8000만원을 지원받는다. 사업 대상지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도 환경교육센터 내 노후 교육 전시실이다. 올해 안에 조성을 완료해 2027년 1월 개관할 계획이다. 교육관은 '놀이·체험 중심의 경험형 교육'을 핵심으로 유아가 오감으로 기후변화를 받아들이고 탄소중립을 일상 속 실천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할 예정이다. 그동안 제주는 만 5세 이하 유아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기후환경교육을 실시해 왔으나 체험형 전문 교육시설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인성과 생활 습관이 형성되는 유아기에 전문적인 환경교육을 제공할 공간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이번 교육관 조성의 의미가 크다고 도는 설명했다. 현재 전국에서도 충북·전북·강원권 등 3곳만 운영 중이며, 경북 포항시·전남 강진군·경기 가평군 등 3곳이 지난해 추가로 선정돼 운영을 준비 중으로 전국적으로도 아직 드문 시설이라고 도는 전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1948년 11월 교사였던 채진규는 마을로 내려온 무장대에 붙잡힌다. 무장대원 중엔 학교 동창도 있었고, 그는 "우리가 이겨야 평화가 온다"며 채진규에게 입산을 종용했다. 채진규는 그렇게 '납치 입산자'가 됐다. 이명복은 시대의 모순과 폭력에 맞서 스스로 산에 올랐다. 1947년 6월 친구의 권유로 남로당에 입당했고, 탄압이 잦아지자 경찰의 눈을 피해 입산했다. 제주 4·3 사건 78주년을 앞두고 출간된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서로 다른 이유로 '산(山)사람'이 돼 4·3의 폭풍에 휘말렸던 채진규와 이명복의 삶을 통해 4·3을 재구성한 책이다. 제주 출신 전 한겨레신문 기자로서 지난해 퇴직 전까지 4·3 진실 규명에 주력해 온 저자 허호준 씨는 당사자들의 육성과 관련 기록 등을 토대로 4·3을 다른 방식으로 거쳐온 두 사람의 삶을 복원한다. 두 사람은 산에서 만나 삶과 죽음을 함께 오갔다. 채진규는 1948년 12월 18일 주민들이 군경 토벌대에 희생됐던 다랑쉬굴에서 유해를 직접 정리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아이 1명과 여성 3명을 포함해 다랑쉬굴에서 희생된 11명의 유해는 지난 1992년에야 발견됐다. 그곳에서 본 끔찍한 모습을 오랜 시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채진규는 유해 발견 후 찾아온 저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참상을 전한다. "굴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귀·코에서 피를 흘리고, 여기저기 머리를 처박고 죽었더란 말이오! (중략) 그 불쌍한 어린 아이까지, 연기가 들어오니까 살려고 코를 흙 속에 묻은 거잖소." 개인의 선택이었든, 누군가의 강요였든 산에 오른 채진규와 이명복도 시대의 희생자가 됐다. 둘은 가족을 잃었고,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도피와 체포, 석방, 또다시 도피를 이어가야 했던 이명복은 1953년 밀항선에 올라 일본으로 간 후 그리웠던 제주 땅을 두 번 다시 밟지 않았다. 저자는 "채진규와 이명복의 삶은 시대의 증언이자 이 섬의 기억"이라며 "4·3은 대의명분이나 수많은 죽음의 서사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4·3은 인간의 존엄이 짓밟힌 자리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하려는 처절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2023년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에서 4·3을 세밀하게 재구성했던 저자는 이번 책과 더불어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도 함께 내놨다. 미군정 문서와 외교 전문, 신문기사, 개인 기록 등을 망라해 1945년부터 1957년까지 4·3의 전개 과정을 100개의 장면으로 담았다. 혜화1117. 300·536쪽.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제주를 찾는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도민들과 마주 앉아 지역의 미래를 직접 듣고 논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주 방문 계획을 공개하며 “유채꽃이 피는 봄날, 제주에서 만나겠다”고 밝혔다. 일정의 중심은 ‘타운홀미팅’이다. 주민들이 직접 현안을 제기하고 대통령이 답하는 방식의 공개 소통 자리로, 그동안 전국을 돌며 이어온 프로그램이다. 이번이 12번째다. 이번 제주 일정에서 가장 강조된 키워드는 ‘에너지’와 ‘관광’이다. 이 대통령은 제주를 태양광·풍력 중심의 청정에너지 전환 거점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 탄소중립을 이끄는 핵심 지역으로 키워야 한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동시에 체류형 관광과 K-컬처를 결합한 새로운 성장 모델도 제시했다. 결국 이번 방문은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제주 과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역이 직접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다만 다음달 3일 예정된 제78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같은 시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국빈 방한 일정이 겹치면서다. 정상회담과 공식 일정이 예정된 만큼 대통령 일정 조정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제주 방문 당일 4·3평화공원 참배나 유족들과의 별도 만남이 이뤄질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타운홀미팅은 오는 30일 열린다. 보안상의 이유로 시간과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참여 인원은 도민 200명 규모다. 신청은 오는 24일까지 온라인으로 받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 숙박업소 객실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에 악용되는 불법 무선중계기가 설치된 사례가 적발돼 이용객과 업주의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해 4월 제주 한 모텔 객실에서 청소 중 침대 뒤편에 숨겨진 무선중계기가 발견돼 수사가 시작됐다. 피의자를 특정해 추적하던 경찰은 4개월 뒤인 지난해 8월 관련 장비를 들고 다시 제주로 입국한 40대 중국인 A씨를 검거해 구속한 바 있다. 무선중계기는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이 발신한 인터넷 전화번호를 국내 일반 전화번호로 바꿔주는 장치로 피해자들이 의심 없이 전화를 받게 유도하는 데 사용된다. 주로 객실 내 냉장고나 침대 뒤편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제주경찰청은 24일 오후 제주전파관리소, 관광협회 등 유관기관과 합동으로 도내 숙박업소 객실 내 무선중계기 설치 여부를 확인하는 현장 점검을 벌였다. 경찰은 이번 점검을 통해 숙박업소 관계자들에게 객실 관리 시 의심스러운 장비가 있는지 확인하도록 당부하는 한편, 피해자를 숙박업소에 머물게 하며 돈을 송금하도록 압박하는 일명 '셀프감금' 수법에 대해서도 주의를 요청했다. 이날 점검 과정에서 적발된 무선중계기는 없었다. 경찰은 앞으로도 제주도청, 금융기관과 협력해 보이스피싱 예방 활동을 확대하고, 불법 중계기 단속과 첩보 수집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가 해상 기름 유출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로봇형 유회수기를 도입했다고 25일 밝혔다. 유회수기는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수거해 저장용기로 보내는 장비다. 기존 장비는 유압 방식으로 매연과 소음이 발생하고 무게가 무거워 크레인 차량을 비롯해 많은 인력과 장비가 필요했다. 이번에 도입한 장비는 정부가 인증한 혁신제품으로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구동 방식이어서 경량화됐고 현장 요원이 직접 운반해 즉시 투입할 수 있다. 무선리모컨으로 조종할 수 있어 선박이나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해역에서도 안전하게 방제 작업을 할 수 있다. 서귀포해경은 장비 도입에 맞춰 방제 요원과 해양자율방제대를 대상으로 운용 교육을 하고 실제 기름 유출 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했다. 서귀포해경 관계자는 "로봇형 유회수기 도입으로 더 신속하고 효율적인 사고 대응이 가능해졌다"며 "첨단 기술을 활용해 깨끗하고 안전한 서귀포 바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봄철 제주에 전정 작업이 늘면서 전정가위 안전사고가 3월에 집중되고 고령층에서 주로 발생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제주특별자치도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도내 전정가위 사고는 44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34건이 3월에 집중됐다. 봄철 감귤나무 간벌과 가지치기 작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연령대별로는 60대와 7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 고령층 사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고, 농업 활동이 많은 서귀포 지역에서 사고가 다수 발생했다. 전정가위는 절단력이 강해 사고 시 손가락 절단 등 중증 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제주소방은 지난 13일 전정가위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의용소방대와 함께 농가를 찾아 안전수칙 안내와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농업기술원도 신규 영농인 30명을 대상으로 전정 작업 안전교육과 응급처치 교육을 진행했다. 소방당국은 전정 작업이 집중되는 3∼4월 교육과 홍보를 병행하고 사고 발생 시 신속 대응 체계를 유지할 방침이다. 박진수 제주소방안전본부장은 "사고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고 발생 시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하고 즉시 119에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6·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국회의원(제주시 갑)이 대규모 투자 펀드 조성을 통해 제주 경제 구조 전환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문 의원은 24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조5000억 원 규모의 ‘제주도민 성장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제주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민생 회복과 산업 성장의 기반을 동시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타 지역 사례를 들어 펀드 조성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전북도가 약 900억 원의 도비를 기반으로 1조1000억 원 규모 벤처펀드를 조성하고, 정부와 민간 자금을 결합해 78개 기업에 3300억 원 투자를 이끌어낸 점을 언급하며 “제주 역시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향후 4년간 매년 300억 원씩 1200억 원을 출자해 1조5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정부의 국민성장펀드와 지역성장펀드, 민간 투자자본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투자 분야는 에너지 전환 산업, 관광 고도화, AI·미래기술 산업, 도민 참여형 지역경제 모델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문 의원은 “펀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경우 연간 1455억 원의 수익이 예상되고, 제주도 지분에 따른 수익은 약 164억 원 수준이 될 것”이라며 “이 수익은 추가 투자 재원과 제주형 기본사회 정책 추진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외부 자본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제주 내부에서 투자와 수익이 순환하는 경제 구조를 만들겠다”며 “도민이 경제의 주체가 되는 성장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취임 후 100일 이내에 추진단을 구성하고, 출자 구조와 운용 원칙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제주 경제의 판을 바꾸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4·3 피해 마을 터에서 재배된 조로 빚은 제주 전통 고소리 술이 제주4·3 위령제 제단에 오른다. 24일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4·3 유족 등 주민들은 마을 내 과거 자연마을이던 '무등이왓' 지역에서 직접 조를 재배해 빚어 제주 전통 고소리술 50병을 제조했다. 이 중 10병은 재단에 기증해 다음 달 3일 제78주년 4·3 위령제를 맞아 각 지역 위령제에 쓰이게 된다. 이번 기증은 2022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다섯 번째다. 동광리 주민들은 제주도의 후원으로 탐라미술인협회 회원들과 함께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조를 직접 재배했다. 무등이왓은 4·3 당시인 1948년 11월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마을이 전소됐다. 살아남은 주민들도 당시 마을을 떠나 현재까지 복구가 되지 못한 채 '4·3 잃어버린마을'로 남아 있다. 4.3사건의 참상을 다룬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의 배경이 됐던 장소로 4.3 순례지로도 손꼽힌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한라병원(이사장 김성수)은 세계적인 의료기기 기업 메드트로닉사의 ‘휴고 로봇수술 시스템(Hugo RAS System)’을 도입, 「로봇내시경센터」를 설치했다고 24일 밝혔다. 로봇수술은 장비의 성능 못지않게 이를 다루는 의료진의 경험과 숙련도가 수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제주한라병원은 풍부한 임상 경험을 갖춘 의료진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로봇수술 체계를 구축하며 환자에게 보다 정교하고 안정적인 수술 환경을 제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은 로봇수술 시스템을 이용하여 대장암 수술을 시작으로 전립선암 수술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재까지 2건의 로봇수술이 이루어졌는데, 지난 13일 김민수 외과 과장이 휴고 로봇을 이용한 대장암 수술을, 이어 20일에는 이상은 교수의 집도로 비뇨기암 로봇수술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이번 비뇨기암 환자는 수도권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오던 환자다. 당초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이상은 교수의 제주한라병원 진료 소식을 접한 뒤 직접 제주를 찾아 수술을 받았다. 이는 그동안 중증질환 치료나 고난도 수술을 위해 제주도민들이 수도권을 찾던 ‘원정진료’와는 반대의 사례다. 제주 지역 의료 수준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상은 교수는 1990년대 초 전립선암 조기진단을 위한 PSA(전립선특이항원) 검사법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서울대병원에서 최초로 로봇수술을 시행했으며 2500례 이상의 수술 경험을 보유한 국내 대표적 로봇수술 최고 권위자다.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분당서울대병원 비뇨의학과 과장, 서울대 의과대학 주임교수, 창원경상국립대병원 전립선센터장 등을 역임하는 등 국내 비뇨의학 권위자다. 제주한라병원이 도입한 휴고 로봇수술 시스템은 모듈형 구조로 설계돼 수술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양한 수술 분야에 적용 가능한 범용성과 의료진의 조작 편의성이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주한라병원은 다음달 18일 메드트로닉과 로봇수술 교육을 전담할 ‘휴고 아시아 트레이닝센터’ 지정 및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다. 교육훈련센터가 본격 운영되면 제주한라병원은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 의료진이 최신 로봇수술 기법을 배우기 위해 찾는 교육·훈련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한라병원 관계자는 “로봇수술의 핵심은 장비가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의료진의 경험과 역량”이라며 “도민들이 더 이상 원정진료를 떠나지 않고 제주에서도 수준 높은 진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 역량 강화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한밤 중 제주의 한 빌라에서 불이 나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5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50분께 제주시 아라일동 4층짜리 빌라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거주자가 취침 중 3층에서 연기를 확인하고 대피한 뒤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장비 17대와 인원 35명을 투입해 진화에 나서 오전 2시 2분께 큰 불길을 잡고 2시 12분께 완전히 진압했다. 이 불로 건물 세탁실 일부가 소실됐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당시 건물에는 6세대 16명이 거주 중이었으며 모두 대피했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재산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약 70일 앞두고 국민의힘이 제주도의원 공천 작업의 첫 단추를 끼웠다. 국민의힘 제주도당 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고기철)는 23일 3차 회의를 통해 도내 32개 선거구 가운데 12곳을 단수추천 지역으로 확정했다. 제주시갑에서는 삼도1·2동(윤용팔), 용담1·2동(김황국), 연동갑(강경문), 애월읍갑(강재섭), 한림읍(이남근), 한경면·추자면(김원찬) 등 6곳이 포함됐다. 반면 제주시을 지역은 단수추천이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서귀포시에서는 송산동·효돈동·영천동(강충룡), 동홍동(오현승), 대륜동(이정엽), 안덕면(조훈배), 표선면(현경주), 성산읍(현기종) 등 6개 선거구가 이름을 올렸다. 경선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정방동·중앙동·천지동·서홍동 선거구는 강상수 의원의 탈당 의사 표명으로 공천 발표가 미뤄졌다. 또 일도2동과 연동을, 노형동을 선거구는 후보자 등록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공천 공백이 발생했다. 당협위원장과 지도부가 후보 발굴과 설득에 나선 상태다. 국민의힘은 현재까지 지원자가 없는 19개 선거구에 대해 외부 인재 영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제주시을 전 지역에서 후보가 없는 상황이어서 여성 후보 중심의 전략공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국회의원(서귀포시)이 초대형 해상풍력 개발 구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00조원 규모 '해상풍력 슈퍼그리드’ 구축을 통해 제주를 에너지 생산 거점으로 탈바꿈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도민에게 ‘에너지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위 의원은 23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의 바람을 국가 핵심 산업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만들겠다”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 구조 전환과 도민 환원형 수익 모델을 동시에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제주 해역에 대규모 민간 투자를 유치해 10GW급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하고, 생산된 전력을 초고압직류송전(HVDC) 방식으로 수도권 산업단지에 직접 공급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보내 국내 첨단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겠다는 전략이다. 위 의원은 “현재 제주는 풍력 자원이 풍부함에도 전력 계통 한계로 발전을 제한받고 있다”며 “독립형 전력망을 구축해 계통 부담 없이 생산·송전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해상풍력 단지 운영을 통해 연간 4조2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창출하고, 이 가운데 1조원 이상의 순수익을 확보해 도민에게 균등하게 환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 수익을 ‘에너지 기본소득’ 형태로 지급해 도민 모두가 혜택을 체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단순한 발전 사업을 넘어 지역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을 이끌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 유출 문제를 완화하고, 제주를 글로벌 에너지 산업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위 의원은 “이 프로젝트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 정책,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국가 전략사업”이라며 “제주를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환의 중심으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의 바람으로 K-반도체를 뒷받침하고, 그 성과를 도민과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중동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의 대치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과 이란의 주변국 에너지시설 보복공격으로 치달았다. 석유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는 금지선(레드라인)이 깨지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았다. 중동전쟁 격화 소식에 19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9원 급등한 150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올랐던 주가도 급락했다. 이날 환율은 낮 거래 종가 기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0일 이후 17년만의 최고치다. 그만큼 고환율ㆍ고물가(유가)ㆍ고금리의 ‘3고高’ 파고가 거세졌다. 경제 및 외교안보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특히 석유ㆍ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자원 공급망은 불안정(Unstable)ㆍ불확실(Uncertain)ㆍ예측 불가(Unpredictable)의 ‘3U’ 상태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언과 달리 중동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장기전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석유 의존도, 특히 중동산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선 고유가 충격이 길어질 것이란 걱정이 더 커졌다. 전쟁이 3~4개월 지속되면 국제유가는 120달러를 웃돌고, 6개월까지 길어지면 150달러를 넘어서리란 관측이
장 자크 아노(Jean Jacques Annaud) 감독의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ㆍ1989년)’은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ㆍ1932~2016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기호학 외에도 에코의 분야는 철학, 해석학, 중세학, 문화비평, 사회비평, 소설 등에 걸쳐 있어서 그의 ‘전공’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에코를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에코에게 썩 어울리는 별호別號일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그 명민함으로 이름난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 분)가 교황청의 명을 받아 문제의 수도원으로 향하고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윌리엄 신부가 수도원 정문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 소설에서는 수도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담는다. 에코는 이 장면 속에 논문으로 치면 논문의 ‘문제 제기(research question)’를 담은 셈인데, 아노 감독은 이 장면을 과감하고도 난폭하게 쳐내는 이해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지른다. 원작 속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수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000달러대에 머물며 대만과 일본에 뒤졌다. 2023년과 2024년 연속 일본ㆍ대만을 앞섰던 국민소득이 역전당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았지만, 원화가치 약세(원ㆍ달러 환율 상승) 영향도 적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명목 GNI는 3만6855달러. 전년 대비 110달러(0.3%) 증가에 그쳤다. 원화 기준으로는 5241만6000원, 1년 새 229만6000원(4.6%) 늘었지만 원ㆍ달러 환율이 뛰며 까먹었다. 2024년 1364원이었던 연평균 환율이 지난해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과 외환 수급 불균형으로 1422원으로 오른 탓이다. 지난해 환율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394.97원)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276.35원)을 제치고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이 오르면 원화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도 달러로 환산하는 1인당 GNI는 맥을 못 춘다. 2022년에도 연초 1200원 수준이었던 환율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 올라 연평균 1292원에 이르렀고, 그해 1인당 GNI는 전년보다 7.0% 줄었다. 2023년부터 3년 연속 3만6000달러대를 벗어나지
많은 문학 사가(史家)들이 메리 셸리가 그려낸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고 오만에 빠진 당대의 영웅 나폴레옹의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메리 셸리를 비롯한 당대 유럽인들에게 나폴레옹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phenomenon)이었고, 특히 메리 셸리와 같은 작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면서 또한 비판의 대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1797년생인 메리 셸리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며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에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인 윌리엄 고드윈은 자유주의 무정부주의자였고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 나폴레옹의 혁명적 가치와 그에 따른 독재를 비판적 논쟁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그의 연인이자 후일 남편이 됐던 바이런과 쌍벽을 이루는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Percy Shelley) 역시 나폴레옹의 광기 어린 전쟁과 독재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의 대표작인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를 쓴 인물이다. 메리 셸리가 결코 나폴레옹에게 우호적이 될 수 없는 환경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분명 뛰어난 과학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마치 이카루스처럼
1994년 12월 초의 일이다.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에서 주재기자 신분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 시절 사무실에 묘한 편지가 배송됐다. 수신인만 적혀 있을 뿐 발송인 이름은 없었다. 내용은 현직 신구범 지사를 겨냥한 제보였다. 그해 구좌읍 이장단협의회의 동남아 여행이 시빗거리였다. “현직 신 지사가 이장단협의회 회장인 신모 이장에게 일화 30만엔을 줘 선거를 앞두고 그를 매수했다”는 내용의 제보가 투서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한 곳만이 아니라 여러 언론사로 그런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다. 그 다음해 첫 민선 1기 6·27지방선거가 예고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확인을 했지만 신 지사 측의 답변은 “이장단이 해외시찰을 한다고 할아버지 뻘 친족인 신 이장이 도와달라기에 공금을 지원할 순 없어서 과거 일본 방문 중 친족회에서 ‘활동비나 보태라’며 받은 일본 돈을 개인적으로 드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예산엔 도지사의 ‘재량사업비’가 있었지만 그는 예산을 쓰지 않았다. 스스로 사비로 처리했다. 그것도 나중 예기치 않던 구좌읍 관내 교통사고로 여행일정이 취소되자 보탰던 여행경비는 돌려받았다. 더 사안을 확인해보니 그 익명의 투서는 언론사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행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담쟁이가 뒤덮인 돌벽 한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색 방수포가 뒤덮은 객석 바닥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공연을 품던 무대는 무너진 채 흉터처럼 갈라진 흔적만 남았다. 한때는 웃음과 박수로 가득했던 자리에 이제는 공사 차량 자국과 철거 상흔만이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제 잔해와 철거의 상처로만 존재한다. 청춘의 기억을 간직한 무대, 가족과 함께한 영화 관람, 동네 아이들이 뛰놀던 객석의 풍경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건축물과 그것을 지켜보는 허탈한 눈빛뿐이다. 현장을 찾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무대를 배경으로 보낸 낭만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벽체를 손으로 짚으며 "아직 숨 쉬는 건물인데 왜 이렇게 급히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0일 오후 이중섭 거리를 찾은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멈췄다. 회색빛 공사판 가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무너진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이는 "관광지에 왔더니 왜 철거 현장만 남았느냐"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전국은 요동쳤다. 17개 시·도가 일제히 비상 체제로 흔들렸다.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그 때 제주에서는 도청 본관 출입문이 닫혔다. 밤 11시 17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3분까지다. 이 조치가 단순한 '출입문 통제'였는지, 아니면 '청사 폐쇄'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제주도정은 곧바로 '불법 계엄 동조' 의혹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부재'가 있었다. 오 지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날 저녁 저는 제주에 없었다. 서울에서 기업인들과 면담을 마친 뒤 오산에서 식사를 했고, 오후 9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택으로 이동해 비서실장과 특보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새벽 1시 30분 도청 회의를 소집해 "군·경은 상부 지시가 있더라도 따르지 말라"는 불복 지침을 명확히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단의 질문은 한 가지로 모였다. "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달 3일 새벽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속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제주남초)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이었다. 정당 참관인과 투표 사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5시 30분, 개시 준비가 본격화되자 사무원은 참관인을 상대로 투표지와 도장, 봉인 스티커를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봉인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고, 투표소는 긴장감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6시 35분. 한 50대 남성이 조용히 투표소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내민 그에게 여성 사무원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던 순간, 전산 시스템에는 이미 '사전투표 완료'로 명시돼 있었다. "혹시 사전투표 하지 않으셨어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원은 옆 동료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재차 "29일에 혹시 사전투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분증을 챙겨 빠르게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관인과 사무원들
“어둠의 무공, 마타도어 무공이 드디어 등장했어. 선거비무에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 근데, 문장이 살아 있어.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아. 도대체 누구지? 제주무림에 이 정도 문장을 쓸 무사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괴문자를 들여다보며 혼잣말하던 호검이 무릎을 쳤다. 무림플랫폼 애독자, 한평생 소설무공만을 수련한 콘치스검이 생각나서였다. 괴문자 문장을 한 자 한 자, 분해한 후 재조립하면서 그 속에 담긴 스토리텔링 기법도 찾아낼 수 있는 무사였다. 호검은 톡을 보내 긴급회동을 요청했다. 한식경이 지난 후였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에 2000원인 저비용 커피집에서 호검과 콘치스검이 마주 앉았다. 호검이 물었다. “문장이 예사롭지 않아.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 호소력도 짙어.” 한참 동안 괴문자를 들여다본 콘치스검이 말했다. “선거 선수무사군. 잘 봐. ‘영훈공은 사과해야 합니다.’라는 문장만 6번을 썼어. 전형적인 동어 반복 초식이야. 시(詩)무공에선 자주 쓰이지. 반복을 통해 운율을 만들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초식 말이야.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 듣는 상대무사는 세뇌될 수 있거든.” “그렇네. 수만에서 수십만 무사에게 보내는 문자비용을 감안 하면 단 한 자라도 줄이려고 할 텐데 말이야.” 콘치스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렇고보니 순번에 그냥 번호를 적지 않고 대괄호를 쓰고 띄어쓰기까지 했어. 가독성을 최대한 고려한 초식이야. 근데, 대괄호는 자주 애용되는 문장부호가 아니잖아? 강조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절로 모르게 나온 습관일까?” 호검은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을 씹으며 물었다. “소설무공에선 한 문장 초식만 봐도 금세 알잖아. 어떤 무사가 썼는지 말이야?” “그렇지, 글씨체만 무사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문장에도 무사의 지문처럼 짙게 배겨 나오지. 문장 하나만 읽어도 버릇, 실수, 왁꾸(틀), 스타일, 철학 등을 한방에 알 수 있어. 조정래공과 황석영공, 이문열공, 요새 뜨는 김기태주니어검의 문장을 비교해 봐. 단박에 알 수 있지.” 호검과 콘치스검은 괴문자 읽기에 몰두했다. 100번을 읽으면 단서가 보일 수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리필한 후였다. “찾았다!” 호검이 외쳤다. “뭔데?” 콘치스검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호검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이었다. “[5] 불통과 혼란으로 점철된 섬식 정류장, 오영훈 도지사는 사과해야 합니다. 여기에 뭔가 이상한 게 안 보이나?” “맞아! ‘점철된’ 이 단어는 70·80년대생들은 좀처럼 쓰지 않는 단어야. 아직은 아기무사인 90년대생은 아닐 것이고, 은퇴를 앞둔 50년대생 무사들도 아닐 것이야. 그렇다면 괴문자 작성무사는 60년대생이 분명하군.” “원숭이 무사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지. 전체 문장은 쉽고 담백하고 호소력 짙게 쓰다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어. ‘점철된’ 단어 말이야. 근데 ‘점철된’은 무슨 뜻이지?” “내가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를 어떻게 알겠어. 네이버 사전 검색해 봐.” ▶점철(點綴)된=(일이나 사건 따위가 무엇으로) 서로 이어진 디저트로 치즈케익 하나를 먹어치운 콘치스검이 말했다. “요새 캠프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보면 너무 올드해. 아무리 촌무림이지만 너무 한다고 싶었지. 새로운 무사가 혜성같이 등장한 거야. 어느 캠프에서 영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캠프 공보무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을 거야. 앞차기만 할 수 있는 무사들이거든. 공중제비차기, 다방향차기까지 가능한 새로운 공보무사가 등장한 거야.” 호검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오랜만에 만난 의문의 무사, 무공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고수는 고수를 한 눈에 알아본다. 간절하게 대련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고수와의 대련이 언제였던가. 하수들과의 대련으론 몸풀기도 못 했다. 호검이 비장하게 말했다. “나 몹시도 궁금해. 어떤 무사인지 우리 추적 한 번 볼까? 연령대는 60년대생으로 좁혀졌어. 무림검색엔진으로 찾아보면 어디엔가 분명히 있을 거야. 이 정도 문장내공이면 곳곳에 뿌려 놓았을지도 모르지. 500자 정도 분량만 있어도 단숨에 알 수 있어. ” 한참을 눈만 껌벅이던 콘치스검이 나직이 읊조렸다. “웬지 문장이 낯이 익어. 어디선가 분명히 읽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아. 그때도 몹시도 궁금했지. 제주무림에도 이런 문장무사가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었지. 그때 그 문장이 뭐였더라. 도무지 생각이 안 나네.” 호검이 말했다. “내일 이어지는 연재에는 셜록 홈즈 출신 기철검이 출연해. 국민의힘 제주도방 맹주지. 프로파일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총 하나는 잘 쏘아. 근데 직접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말이야. 상도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
제주도의 왜구 침략 일찍이 제주도는 일본과 중국, 한반도를 잇는 무역로 중간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왜구들의 중요한 약탈 대상 지역이 되었다. 바다의 해적활동에 필요한 물과 식량, 땔감 공급지로 중국이나 대만 베트남을 가려면 제주도는 중요한 지점으로 왜구들이 노리는 지정학적 거점이 된다. 추자도에 왜구가 처음 침략한 것은 고려 충숙왕 10년(1323)이다. 회원(會原)의 조운선을 군산도(群山島:현 고군산 군도)에서 약탈하자 내부부령(內府副令) 송기(宋頎)를 파견하여 왜구를 격퇴시켰다. 또 동년 10월 6일 추자도 등지에서 노략질하고 노약자와 남녀를 잡아갔다.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여 추자도에 사람이 줄어들자 고려 정부는 충정왕 2년(1350)에 추자도 주민들을 제주도 조공포(朝貢浦:도근천) 근처로 이주시켰다. 한편 그로부터 60년 후 조선이 개국 초기인 태종대(1413)에 제주도로 이주한 추자도 주민들의 절반을 추쇄하여 진도로 옮기려는 전라도 관찰사의 진도 목장 계획이 있었다. •추자도 왜구 침략 이후 제주를 침범한 사례를 내용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충혜왕 2년(1341)에 왜구가 정의현에 쳐들어 왔으며, 이듬해에는 무려 700여 척의 배가 내침을 했다. 충정왕 3년(1351)에 왜구가 귀일촌에 침범했다. •또 공민왕 원년(1401)에는 왜구가 우포(友浦:옛 이름이 범질포인 것으로 보아 화순포이다. 우포(벗개)라면 용수리를 말하기도 한다)를 침범하였다. •공민왕 8년(1359)에는 대촌(제주성안)까지 침범하였다. •우왕 2년(1376)에 왜적 600여 척의 대규모 왜구가 제주 주변을 맴돌다가 제주를 침범하니, 탐라 성주 고신걸(高臣傑)이 왜구와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부상당해서도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고는 왜구를 격퇴시켰다. 승전을 접한 고려 정부는 고신걸에게 특별히 정2품 호조전서(戶曹典書)의 벼슬을 내렸다. •우왕 3년(1377) 여름에 왜적이 다시 침입하였는데, 전라수군 도만호(都萬戶) 정룡(鄭龍) 등이 병선 2척으로 정탐하다가 왜선 1척을 포획하여 모두 죽였다. •태종 원년(1401)에 왜구들이 제주 서촌 마을인 곽지촌에 쳐들어가 노략질을 하였다. •태종 4년(1404) 왜구가 고내촌과 명월촌을 침범하였다. •태종 6년(1406) 1월에 왜선 16척이 제주를 노략질하니 제주 병사들이 이를 물리쳤다. 동년 3월에는 왜선 14척이 추자도에 정박하자 전라도수군절제사 구성미(具宬美)가 나아가 싸워 이를 격퇴하였다. 가을 7월에 왜적이 다시 쳐들어와 산남쪽에서부터 돛을 바람에 날리며 대정현 죽도(竹島:차귀도)에 다다랐는데 이때 안무사 이원항(李原恒)과 판관 진준(陳遵) 등이 이들을 맞아 공격하니 왜적들이 바로 물러갔다. •태종 8년(1408)에 왜적이 조공천으로 들어왔다. •태종 18년(1418) 왜적이 우둔(牛屯:구좌읍 행원 어등포 우목장), 우포(牛浦: 한경면 용수리), 차귀 등지를 침범했다. •세종 26년(1444) 왜구들이 제주(濟州)에서 노략질하다가 변방을 지키는 장수(邊將)에게 사로잡히고 나머지 도적은 대마도(對馬島)로 도망쳤다. 세종이 이예(李藝)를 파견하여 대마도주에게 도망쳐 간 나머지 도적들을 잡아서 보내라고 유시하니, 대마도주도 감히 숨기지 못하고 이예가 돌아올 때 도망간 왜구를 데려왔다. • 중종 5년(1522) 왜변으로 추자도 주민 30여 명이 살해되었다. • 중종 31년(1540) 가을 8월 제주 목사 권진(權軫)과 판관 한근(韓瑾)이 왜적이 침입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 죄과가 암행어사 원수장(元壽長)에게 적발되어 둘이 함께 파직되었다. •명종 7년(1552) 여름 5월 왜적과 중국 떠돌이 상인 등의 8척의 배가 표류하다가 정의현 하천리 천미포(川尾浦)에 도착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이 기록은 아래와 같다. 정의현 천미포 왜란 제주의 대표적인 왜구 침략 사건으로는 천미포 왜란(川尾浦 倭亂)을 들 수 있다. 천미포는 제주어로 지역 주민들은 ‘내끼’나 ‘내깍개’라고 하는데 ‘내(河川) 끝(尾)’에 있는 포구’라는 뜻이다. 또 이곳을 다른 이름으로 구진포(寇進浦)라고도 한다. 즉 ‘왜구를 물리친 포구’라는 뜻이다. 제주의 해안 지형은 아무 곳이나 배를 댈 수 없다. 오래전 어사 김상헌이 제주섬 지형이 날카로운 점을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암초들이 송곳처럼 숨어 있어서 배를 함부로 대었다간 파선의 위험이 커 왜구들은 포구가 있는 곳을 선택하여 상륙한다. 천미포도 외항은 만처럼 돼 있어 큰 파도를 막아주고, 포구는 천미천 하류가 돼 넓은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상륙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명종 7년(1552) 제주목사 김충렬(金忠烈, 1503~1569)은 정의현(旌義縣) 천미포에 왜구가 침략했다는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남쪽 대양(大洋)으로부터 황당대선(荒唐大船) 2척이 천미포로 상륙하여 주민(浦口民)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자 정의현감 김인(金仁)이 접전을 벌여 왜구 1인을 생포하였으나 날이 저물고 비가 와서 왜구가 물러가자 진을 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때 하륙(下陸)하여 싸움을 벌인 왜구의 수는 약 70여명, 배 위에 줄지어 선 왜구는 중국인을 포함한 수백 명이었다. 날이 밝자 왜구들은 험하고 단단한 암벽에 의지하여 방패로 앞을 가리고 조총을 쏘아대며 활로 쏘면서 방어를 계속하였다. 왜구들은 아군이 진격하면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와 대적하기를 반복하니 제주의 장졸(將卒)과 말이 모두 피곤하였고, 아군은 병기마저 부족하여 이들을 격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제주목사 김충렬은 수십일 동안 왜구와 싸워 성과를 올렸지만, 일부 왜구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갔고, 다른 왜구는 산 속에 숨어 주민과 군졸들을 사상케 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제주목사 김충렬은 고전(苦戰) 끝에 망고삼부라(望古三夫羅)를 사로잡았으나 나머지 왜구를 진멸(殄滅)하지 못하고 어선을 훔쳐 달아나면서 퇴로를 열어준 책임으로 정의현감 김인과 함께 죄인으로 유배되었다. 체포된 망고삼부라는 성천부(成川府)로 유배를 갔다. 왜란(倭亂)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제주목사 김충렬처럼 병무(兵務)에 어두운 문관(文官)보다는 무관(武官)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무관 출신 이정(李玎)을 제주목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정은 변방의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것이 두려워 부임을 미루다가 결국 왕명과 국법을 어겼다는 죄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죄가 감형되어 절도(絶島)의 군졸로 강등되었다. 다시 후임 제주목사는 무관 출신인 남치근(南致勤, ? ~ 1570)이 임명되었다. 남치근은 기개가 높은 장수로 담력이 크고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다. 남치근은 왜구 격퇴의 공으로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된 무장(武將)이며, 후에 그는 한성부 판윤(判尹)의 요직을 거쳐, 경기·황해·평안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가 되어 1562년 황해도 재령의 해서(海西)에서 난을 일으킨 임꺽정을 효수한 인물이기도 했다. 남치근은 곧바로 제주에 부임하면서 군비(軍備)를 증강하여 왜구의 재침략에 대비하였다. 1554년 5월 왜선 한 척이 천미포에 상륙하자 남치근은 배에서 내린 왜구 10여 명 중 1명을 사살하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1554년 6월에도 다시 제주목사 남치근으로부터 왜인 12급을 참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승정원은 왜구의 침략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염려하여 변방 제주를 지킬 보다 구체적인 계책을 논의하라고 비변사에 지시를 내렸다. 이의 대책중 하나가 유사시 가리포 첨사(僉使)의 신속한 군사 지원이었다. 같은 해 가을 7월에 제주 목사 남치근이 왜적의 배 2척을 포획하여 그 공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나쁜 일은 연이어 잘 일어난다. 이미 조성된 상황을 바로 해결하지 않을 경우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일이 평소에 대비해 놓지 않으면 마침내 작은 불씨가 번져 큰 불이 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은 늘 마른 대로 번지고 물은 언제나 젖은 대로 흐르는 것이다. 이미 길이 만들어져 흐름이 있어서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고온다습한 기후를 갖는 제주도에서는 어떤 시설이나 구조물, 형상을 나무로 만들 경우, 목재 부분이 쉽게 부식되어 1~2년마다 한 번씩 새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모든 걸 돌로 만들자, 주의였다. 제주도 각 마을 중요한 곳에, 세워지는‘거욱’이나 읍성 취락 입구에 세워졌던 돌하르방 역시 그랬다. 제주도의 대표 캐릭터 돌하르방의 주요 기능은 수호신적 기능, 주술 종교적 기능, 위치 표식 및 금표 기능 등이다.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동자석, 망주석, 옹중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완옹중 석상에서 유래했다 해서 옹중석(翁仲石)이라는 이름이 많이 통용되었다. 북촌 돌하르방공원에서 만난 김남흥 돌하르방 장인(1967년생)은 먼저 인문학적 소양 얘기부터 꺼내 들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15년 전 돌하르방에 인생을 걸면서 처음 매달린 일이 돌하르방에 관한 인문학적 탐구였다. 돌하르방이 어떤 연유로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유래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에 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때문에 김남흥 장인은 몇 년간 도서관을 찾아 관련 사료를 발굴하여 탐독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돌하르방 장인 김남흥 관장은 15년간의 열정과 노력으로 창조한 그의 ‘상상의 나래’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 줬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1754년 김몽규 제주 목사가 옹중석을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진시황 때 흉노족 등 북방 이민족을 물리쳤다는 거인 완옹중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죽은 후 진시황이 그의 동상을 아방궁 앞에 세웠다.” “김몽규 목사는 본토 사람으로 막상 제주에 와보니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당시 전염병이 돌아 8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이 상황에서 흩어진 민심을 모아야 했던 김몽규 목사 역시 완옹중이란 인물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삶이 든든해지기를 기대하며 관 주도로 옹중석을 만들어 동·서·남 성문 앞에 상징적 문지기를 세웠다. 우석목, 무석목 등으로 불리다가 1971년 제주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제주 목성을 지키던 돌하르방은 우락부락하고 무장을 한 모습으로 키가 크다. 반면 정의현성(서귀포시 성읍리)이나 대정현성(서귀포시 대정읍) 돌하르방은 각각 12기로 제주목 절반에 불과하며 키도 작다. 제주 목사가 주도했고 정의현과 대정현에서 따라 했다. 당시 지역마다 부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돌도 달랐기 때문에 석수들의 표현이 다르게 나타났다. 다만 돌을 가장 적게 깎아내면서 형태를 끌어낸 기법은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고등학교 시절, 당시 월남 참전용사 출신인 미술 선생님이 “돌하르방은 주변 현무암을 가져다가 대강 파놓은 예술적 가치가 별로 없는 싸구려 관광 공예품에 불과하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 때문에 여태껏 내가 '제주 돌하르방을 희화화하고 평가 절하했었구나'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제주의 돌인 검은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그 재질을 잘 살려 입체감을 더하며 조금씩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큰 눈, 자루 같은 코, 다문 입, 넓게 뻗는 귀 등 해학적이면서 인정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벙거지를 눌러쓴 머리는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하체는 옷자락으로 발이 보이지 않고, 배 중심에 위아래로 골이 있다. 두 손은 배에 올려놓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돌하르방은 손의 위치에 따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진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文人)을 상징하고, 왼손이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무인(武人)을 상징한다.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 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한때 돌하르방 코를 만지면 남자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한 기대로 혹은 재미 삼아 돌하르방 코를 만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하르방의 코 부분을 부수고 가루 내어 물에 타 마시는 풍습도 있었다. 2007년 작고한 제주도 마지막 석장(石匠) 고 고흥옥 옹은 돌 깨는 일을 하다 독학으로 동자석과 문인석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무덤에 동자석을 세우는 사람들이 줄었고 찾는 사람도 없어지면서 더 이상 동자석을 만들지 않았다. 동자석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 모습을 한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형상이다. 동자석은 동제석, 동ᄌᆞ석, 동주석, 동제상, 애기동자, 자석 등으로 부른다. 제주 민묘(民墓)는 부등변 사각형의 산 담으로 둘러 있고, 그 속에 둥근 봉분이 있으며 묘주(墓主)의 시중꾼이라 할 수 있는 아담한 동자석이 쌍으로 마주 서 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작고 귀여운 동자석은 제주의 대표적 석상이다. 무덤을 지키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를 지닌 제주 동자석은 현무암이나 화산암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 동자석과 다르다. 제주 동자석은 손에 홀, 부채, 문자, 수저, 붓, 칼, 술병, 술잔, 부채, 뱀, 새, 음양의 성기 등 다양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다이아몬드형, 타원형 등 기하학적 무늬도 있다. 2024년 고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제주 동자석과 문인석 55점이 국립제주박물관 옥외정원에서 선보였다. 이 동자석과 문인석은 2021년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2만1000여 점 작품 가운데 일부다. 2006년 제주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돌 문화를 집대성한 제주 돌문화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제주 지역 최초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조성 중이다. 제주 돌문화공원은 곶자왈 지대에 있는 326만9731㎡(100만 평) 부지에 야외 전시장뿐만 아니라 제주 돌 박물관, 설문대할망 전시관, 오백장군갤러리 등의 다양한 실내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 전시장을 제외하고 실내 전시실만 합쳐도 4만2900㎡에 달하는 전시시설이 들어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공간 3만7719㎡를 넘어서는 규모다.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돌 문화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돌 문화공원 야외 전시장에는 48기 돌하르방, 사악한 기운과 액운을 몰아낸다는 방사탑, 제주의 상징인 정주석,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 등이 망라돼 있어 제주의 풍성한 돌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조선의 해금(海禁)과 공도(空島)정책 한국 사료에 왜구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사료에 의하면 고종 10년(1223)이며, 이때부터 공양왕 4년(1396)까지 약 169년 동안 519회에 걸쳐 침략한 사실이 있다. 주로 조운선 약탈이나 납치를 시도한 것으로 보아 식량과 인적 자원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인 경우 『명사(明史)』와 명실록(明實錄)』에 의하면 홍무(洪武) 원년(1368)부터 홍무 7년(1374)까지 중국 연안에 왜구가 침략한 곳은 23회 이상이 되자 당시 신생왕조였던 명나라의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 이에 홍무 4년(1371) 연해민(沿海民)들이 아무 때나 바다로 나가는 것을 제한하는 해금령을 내렸으며, 연해 지역에 해구(海寇)·왜구(倭寇)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방정책을 실시하였다. 해금(海禁)은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 즉 “바다에 나가 오랑캐와 통교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말의 약칭이었다. 이러한 해금령은 중국 영향권에 있는 조선과 일본에 해방정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간혹 해금이 완화돼 해외무역을 허용하는 범위에서 개해(開解)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해금은 명·청 시대의 국가의 외교, 무역, 국방 등의 안보 정책이 되었다. 조선은 중국의 해금정책과는 다른 공도(空島)정책으로 주민들이 바다에 나가는 것을 통제했다. 원래 공도정책의 시초는 고려말 한반도 연안에 왜구가 극성을 부리면서 시작되었고, 원종 12(1271)년 왜구가 거제도를 공격하자 고려 정부는 거제도민을 내륙지방인 거창과 진주로 이주시키면서 사실상 시작되었다. 공도정책이란 말 그대로 섬에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두는 것을 말한다. 14세기 말엽부터 15세기 중엽에 이르도록 서남해 도서 지역에 출몰하여 미역을 채취해 가거나 배를 만들어 가는 등 섬주민들을 괴롭혔다. 사실상 15세기 조선 정부는 왜구들의 노략질 대상인 주민들을 섬에 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왜구들이 약탈할 것이 없으면 그들이 빈 섬에 오지 않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왜구나 수적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공도정책의 본뜻이었다. 바야흐로 성종 연간에 「도서거주금지령」과 「추쇄령」이 내려졌다. 이때에 주민들에는 강력한 단속이, 수령과 만호에게는 감독 책임이 주어졌다. “쇄환해온 자가 다시 섬으로 숨어들면 해당지역 만호나 수령은 이유를 막론하고 본인은 파직시키고 가족들은 변지(邊地:변방)로 보낸다.” 하지만 이 정책 또한 왜구들과 유랑민이 다른 피해를 끼치게 된다. 왜구들은 빈 섬을 점령하여 그곳의 나무로 배를 만들고 임시 생활 근거지로 삼는 것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포작인과 국내 유랑민들도 빈 섬을 드나들면서 숨박꼭질하듯 추쇄(推刷)와 쇄환을 피하기도 했다. 이주민들도 섬을 선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세금이 싸고 요역의 부담이 적어 섬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했다. 왜구에 대한 정의,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왜구는 누구인가? 왜구의 발생 원인과 그들의 활동 근거지, 왜구의 구성원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차는 매우 크다. 먼저 일본 고등학교용 6개의 역사 교과서에서 보이는 왜구에 대한 시각을 종합해 보면 왜구의 근거지로는 대체로 쓰시마, 이키, 마쓰우라 지방과 제주도의 해민, 히젠마쓰 우라, 고토(五島)열도의 삼도(三島), 북규슈와 세토내해, 마쓰우라 등지로 보고 있다. 왜구가 등장하게 된 발생 원인으로는 6개의 역사 교과서 중 4곳이 불분명하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2곳의 교과서에서는 ▲식량 자급의 어려움 ▲식량부족 내란기의 일본 국내 정치 혼란 상황을 이유로 들고 있다. 왜구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5가지가 있는데 ▲왜구라 불리는 해적집단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으로 구성된 일본인 중심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三島)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북규슈와 세토내해의 주민 ▲일본인 해적 집단, 쓰시마, 고토(五島) 등지의 일본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국내 정치 혼란기의 식량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왜구의 주체에 있어서 두 가지가 특이한데 왜구에 제주도의 해민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왜구를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학자들의 왜구를 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한국 연구자들은 왜구를 일본 해적, 혹은 일본인으로 보는 견해다. 왜구의 근거지를 일본의 삼도(三島)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서 삼도는 쓰시마(對馬島), 이키시마(壹岐島), 마쓰우라(松浦)를 말한다.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듯이 왜구를 해적집단으로 인식하면서도 규슈(북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제주도 해민, 쓰시마 고토 등지의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한·일간 왜구를 보는 이러한 시각적 편차는 급기야 무라이 쇼스케(村井章介)처럼 “왜구(倭寇), 왜인(倭人), 왜어(倭語), 왜복(倭服)이라는 말의 왜(倭)는 결코 ‘일본’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왜구는 “반(半)한국, 반(半)중국, 반(半)일본이라는 민족적으로 애매한 주변지역의 경계인”이라고 동아시아의 특수성과 시대상황을 무시하여 무리하게 뭉뚱그려 정의하기도 한다. 사실상 왜는 삼국시대부터 신라를 중심으로 자주 침략해 약탈한 사례가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도 ‘왜구(倭寇)’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왜구의 어원이 되고 있다. 여기서 왜구는 “왜(일본)가 약탈했다. 왜가 침략했다”라는 사실이 왜와 왜구가 중첩되고 있는데 단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한 점도 많다. 그래서 왜구의 정의가 매우 포괄적이며 다의적이어서 쉽게 개념을 내리기가 어렵다. 물론 왜의 침략은 일본 국가 차원의 행동이라는 사실 면에서 일본인 해적집단이기도 한 왜구와는 다르다. 왜라는 말이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 왜(일본)에서 쓰시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해적 무리인 왜구들에게 외교의 책임을 물어 체포해 고려로 압송한 사실도 왜구와는 다른 왜(일본)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1350년 경인년 왜구의 대규모 침략 이래 왜구들의 한반도 침략이 잦아졌지만, 후세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왜란의 성격이 '왜적이 침략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로 굳어버려 왜라고 하면은 바로 왜구를 연상하게 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특수성을 동시에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구들은 누구였는가가 항상 문제라는 사실이다. 대개의 왜구 연구자들은 일본 남북조 내전으로 규슈가 혼란해진 시기가 고려에 왜구들이 대거 출몰한다는 시기와 같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규슈 내의 남북조 내전으로 해상 세력의 공권력에 대한 통제력이 약한 데서 찾고 있다. 나아가 규슈 내 남조 세력을 지지하고 있는 군벌이 식량을 얻기 위해 자신의 휘하의 군사들을 고려에 투입한 것이 경인년 왜구의 실체라는 주장도 한다. 왜구의 근거지로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었지만, 다수의 연구자들 또한 쓰시마(對馬島)가 삼도(三島) 중에 하나이며, 더불어서 이키시마(壹岐島), 규슈 북부의 마쓰우라시마(松浦島), 또는 히라도(平戶島)를 꼽고 있다. 이와 같이 왜구의 근거지가 되는 지역들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제주에 가깝고, 언제라도 바다 해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해상 운용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세력 중 하나로 유력한 규슈 서북부 지역의 마쓰라토(松浦黨)나 쓰시마의 소다(旱田)씨 등이 있는데 이들 해상 집단이 쓰시마를 집결지로 삼아서 왜구를 이끌었다는 주장이 설득을 얻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