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영훈 비방 괴문자 발송 진원지는 '문대림 캠프'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제주에 연합캠퍼스 꾸린다
김영익 "애월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 '공정무역 로컬트레이드 특구' 공약
제주서 초등생 유괴 의심 사건 일주일새 2건 ... 경찰, 수사 착수
오영훈 측 “문대림 명의 문자는 '온라인 삐라' ... 사건 전모 밝혀야”
민주방 ‘3각 라이벌’ 책사 대격돌 ... 선거비무는 슬픈 드라마다
트럼프의 전쟁 … 이성으로 포장된 광기와 독단
감산 적용하니 격차 미미 ...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경선 '혼전'
국민의힘 청년 비례 오디션 ... 제주 출신 3명 결선 진출
민주당 제주도의원 후보, 여성 출마 8곳 경선 ... 4곳 단수 추천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서는 문대림 국회의원이 자신이 주도한 ‘농업민생 4법’ 성과를 기반으로 한 제주 농업 지원 정책의 실행 단계에 돌입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문 의원은 1일 발표한 자료에서 단순한 입법 성과를 넘어 제주 농민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집행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특히 ▶농업인 기본수당 인상 ▶최저가격 보장 체계 마련 ▶필수 농자재 지원 확대를 핵심 축으로 제시하며 농가 소득 안정과 경영 부담 완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현재 연 50만 원 수준인 제주 농민수당을 100만 원으로 두 배 확대해 최소한의 소득 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농산물 가격 하락에 대비한 최저가격 보장 시스템을 구축해 농가의 수익 불안을 줄이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생산비 부담 완화 대책도 눈에 띈다. 문 의원은 필수 농자재와 사료, 유류, 전기료 등 농업 경영에 필수적인 비용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자신이 대표 발의해 통과시킨 ‘필수농자재 지원법’을 근거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체계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농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언급했다. 제주 지역 특유의 높은 물류·에너지 비용 문제를 구조적으로 낮추겠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 농가 보호 대책도 함께 제시됐다. 문 의원은 ‘농어촌재해대책법’과 ‘농어촌재해보험법’ 개정 성과를 제주에 적용해 재해 대응 범위를 넓히고, 피해 발생 이전에 투입된 생산비까지 보전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보험 적용 대상 확대와 보험료 부담 완화를 통해 농업 재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재해 국가책임제’를 제주형 모델로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문 의원은 “입법 성과에 그치지 않고 조례와 예산, 집행 기준까지 정비하는 책임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제주 농업인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때까지 정책 추진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6·3 지방선거 제주도의원 선거 제주시 연동갑 선거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강권종 예비후보가 관광 중심지 연동의 쓰레기 문제 해결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강권종 예비후보는 1일 “제주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연동의 청결 문제는 단순한 지역 현안을 넘어 제주 전체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골목골목 깨끗한 연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시 연동은 제주국제공항과 인접한 대표 상권으로 누웨마루거리와 주요 숙박·상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관광객과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그러나 생활 쓰레기와 관광객이 버린 일회용품 등이 상권과 주택가 곳곳에 쌓이면서 도시 미관 저해와 환경 문제에 대한 주민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강 예비후보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청정 특별 관리지구 지정 및 거리 청결 지킴이 운영 ▶데이터 기반 클린하우스 운영 효율화 ▶재활용도움센터 확충 등 세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강 예비후보는 “현장을 직접 점검해 보니 주요 상권과 주거지역 모두 쓰레기 처리 용량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라며 “연동이 깨끗해야 제주 전체의 관광 이미지도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이어 “데이터 행정과 현장 중심 관리가 결합된 실질적인 정책으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며 “청정 제주에 걸맞은 쾌적한 연동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편 강권종 예비후보는 제주제일고와 제주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제민일보와 제주일보 기자를 거쳐 제주도 대변인 메시지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제20대·21대 대선 이재명 제주선대위 대변인 및 공보본부장, 더불어민주당 교육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으며 정책 및 홍보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성곤 의원이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화하며 제주 문화예술 정책의 대대적인 전환 구상을 내놓았다. 위 의원은 지난 31일 발표한 정책 자료에서 제주 예술인들이 겪고 있는 구조적 소득 불안을 핵심 문제로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예술인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예술인을 지역 문화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핵심 주체로 규정하고,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예술활동증명을 통해 확인된 도내 예술인 약 3000명을 대상으로 매달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예술인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추진 일정도 함께 공개했다. 올해 하반기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관련 조례를 정비하고 내년부터 시범사업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기존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도 포함됐다. 현행 예술활동증명 기준으로 인해 신진 및 청년 예술인들이 지원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형 활동증명제’를 도입, 정책 수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예술 활동 전 과정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예술노동 인정제’, 시설 중심 지원에서 예술인 인건비 중심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 지원 구조 개편도 제시됐다. 더불어 ‘J-컬쳐 크리에이터 300인’ 육성, 읍면 지역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 그리고 제주 4·3의 역사와 정체성을 계승할 차세대 예술인 양성 계획도 포함됐다. 예산 확보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위 의원은 현재 전체 예산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문화예술 분야 비중을 최소 3% 이상으로 유지하는 ‘최저 기준선’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10대 지적장애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제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사관이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형량을 줄이지는 못했다. 광주고법 제주형사1부(송오섭 부장판사)는 1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장애인 피보호자 강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50대 A씨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A씨는 제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 소속 조사관으로 근무하던 2024년 7월부터 올해 2월 사이 기관 상담실과 비품 창고, 가정 방문 자리 등에서 10대 지적장애 여학생 B양 등 2명과 지적장애 여학생의 여동생 1명 등 3명을 여러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또 지난해 2월 업무용 승용차 뒷자리에서 B양을 강간한 혐의도 있다. A씨와 검찰은 1심 선고 이후 각각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1심 재판에서 일부 혐의를 부인하던 A씨는 항소심에 이르러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들 권익을 보호해야 할 직무상 의무가 있었음에도 오히려 본인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며 "범행이 장기간에 걸쳐 반복됐고 수법과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일부 피해자 부모와 합의해 처벌불원서가 제출됐고, 동종 전과가 없는 점 등은 유리한 사정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형을 감경할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한국감귤수출연합㈜은 지난 30일 농협제주본부에서 2026년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고봉주 제주시농협 조합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했다. 한국감귤수출연합은 감귤류 수출 창구 단일화 및 통합마케팅을 추진하기 위해 2021년 12월 제주지역 19개 농·감협이 출자해 설립한 수출통합조직이다. 현재 생산자 23개사와 수출업체 28개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신임 고봉주 대표는 "올해 감귤 수출 목표 달성은 물론 수출통합조직 회원사 간 협업과 사업 공동 추진을 통해 감귤 수출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를 찾은 내외국인 관광객 재방문율이 높아졌지만 평균 지출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제주관광공사가 발표한 '2025 제주도 방문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를 방문한 내국인 관광객의 최근 3년 내 재방문율은 90.1%로 전년 86.5% 대비 3.6%p 증가했다. 관광 만족도도 평균 4.08점(5점 만점)으로 전년과 비교해 0.04점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내국인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 경비는 63만9285원으로, 2024년 66만9979원보다 3만694원 줄었다. 공사는 이처럼 내국인 관광객 지출 경비가 감소한 이유 중 하나로 항공·선박 요금이 저렴해진 영향을 꼽았다. 지난해 내국인 관광객 1인당 평균 항공·선박 요금은 14만8237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1만7850원 감소했다. 다만, 제주 상권에 직접 사용하는 식음료와 쇼핑 비용도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내국인 관광객은 지출 비용 중 식음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으며 이어 숙박비, 항공·선박료, 쇼핑비, 교통비 순이었다. 여행 불만족 사항을 살펴보면 '음식 가격이 비싸다'가 49.6%로 가장 높았다. 이어 '불만족하거나 불편했던 점이 없다'(39%), '숙박 가격이 비싸다'(7%), '쇼핑 품목이 다양하지 못하다'(5.6%) 등 순이었다. 공사는 "특가 항공권이 뜨면 당장이라도 짧게 여행 오는 경우가 늘면서 재방문율은 높아진 대신,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행하러 오면서 지출은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재방문율도 11.4%로 전년 10.1% 대비 1.3%p 높아졌다. 개별여행객 비중은 91.9%로, 평균 체류 일수는 전년과 비교해 0.06일 늘어난 4.79일로 나타났다. 제주 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평균 4.2점(5점 만점)으로 전년 대비 0.05점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 외국인 1인당 평균 지출 경비는 미화 919.28달러로 전년 961.3달러보다 42.02달러 감소했다. 가장 지출 감소 폭이 컸던 항목은 내국인 관광객과 마찬가지로 항공·선박료로 나타났다. 이외에 식음료(125.9달러)와 대중교통비(32.98달러) 등은 지출이 줄어들었지만, 쇼핑비는 2024년 230.5달러보다 7.49달러 늘었다. 주요 쇼핑 품목은 '간식류'가 65.7%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향수, 화장품'(64.7%), '패션잡화(33.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다이소나 올리브영, 편의점 등 시내 상점가에서 쇼핑을 즐기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 지난해 제주 방문 외국인 관광객은 시내 상점가(72.4%·복수 응답)에서 가장 많이 쇼핑했다. 2023년 이후 시내 상점가에서 쇼핑한 비율이 지속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도 2024년 35.4%에서 지난해 40%로 방문 비중이 높아졌다.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크루즈 방문 관광객도 1인당 평균 지출 비용이 감소했다. 지난해 크루즈 관광객 제주 관광 시간은 평균 5.11시간으로 전년 대비 소폭(0.07시간) 늘었다. 1인당 평균 지출 경비는 122.13달러로 2024년 157.1달러 대비 34.97달러나 줄어들었다. 특히 크루즈 관광객의 경우 지난해 쇼핑비가 2024년보다 34.31달러 감소해 지출 감소 폭 대부분이 쇼핑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관광공사 좌희선 연구조사팀장은 "이번 조사 결과 내외국인, 크루즈 모든 분야에서 만족도 긍정 비율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 제주 관광 이미지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체류시간과 1인당 지출 비용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관광정책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주도 방문관광객 실태조사는 제주관광빅데이터서비스플랫폼과 제주도청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국가폭력의 형사 공소시효·민사 소멸시효 배제 추진과 관련해 "아주 이른 시일 내에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제주 한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제가 제주 4·3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해 그때마다 약속했지만, 아직 그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4·3 평화공원 참배 및 희생자 유족 오찬 간담회에 이어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도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조속히 재추진하겠다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해당 법안은 2024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이 대통령은 "아주 오래된 생각이었는데 당 대표를 하면서 구체화해 입법으로 통과됐지만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며 "이제 대통령이 됐고 국회가 다수 의석(을 가졌으니) 이제는 가능하겠죠"라고 언급했다. 법안 취지를 두고는 "4·3과 광주 5·18, 12·3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형사 공소시효 폐지에 대해서는 "나치 전범처럼 죽을 때까지 반드시 책임을 묻고, 평생 쫓아다니며 추적 조사·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며 "공직자들이 역사와 국민과 국가에 두려움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사 소멸시효 배제와 관련해서는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가해자의 재산을 상속받아서 그것을 누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상속 자산의 범위 내에서는 자손도 연대 책임을 지게 하자"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4·3 사건에 대해 "대규모 국가폭력의 첫 출발점 같은 사건"이라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가해를 당했다"고 규정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야만적 사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그러려면 헌법이 명시하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나라', 민주주의라는 게 확고하게 정착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이 이재명 대통령 일정 이후 ‘이재명 효과’를 둘러싼 경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후보들이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보폭을 맞추며 국정 철학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30일 제주에서 열리는 타운홀 미팅을 앞두고 경쟁이 과열되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한 뒤 4·3 유족들과 오찬을 진행하며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했다. 이 자리에서 4·3 왜곡·폄훼 처벌 추진,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기간 연장, 4·3 아카이브 기록관 건립, 진압 공로자 서훈 취소, 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 확대 등 추가 해결 과제를 약속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일정에는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문대림 국회의원(제주시 갑), 위성곤 국회의원(서귀포시)이 함께했다. 이후 세 후보 측은 대통령 방문 의미를 강조하며 ‘이재명 정부와 함께 갈 후보’라는 점을 부각하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오영훈 지사 측은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이 치하한 노고는 도민과 유족, 그리고 오영훈 도정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며 “대통령이 약속한 정책 역시 민선 8기에서 추진해 온 과거사 해결 정책과 방향이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흙수저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 약자와 서민의 삶을 보살피는 국정 철학을 보여줬다”며 “4·3 유족 출신인 오영훈 지사의 삶 역시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궤적과 맞닿아 있다”고 이 대통령과의 공감대를 강조했다. 문대림 의원은 국가폭력 범죄 시효 배제 등 대통령이 제시한 4·3 해결 방안을 언급하며 입법 추진 의지를 밝혔다. 문 의원은 “국가 권력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완성해야 한다”며 “이재명 정부와 함께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문 의원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동캠퍼스 제주 유치 공약을 발표하며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AI 융합 인재 육성 정책을 제주에서 구체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책 연계 행보도 이어갔다. 위성곤 의원 역시 대통령이 제시한 국가폭력 시효 폐지와 4·3 유족회 법적 지위 부여 등을 언급하며 국회 차원의 입법 추진을 약속했다. 위 의원은 “이 대통령의 담대한 약속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4·3특별법 개정과 예산 확보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일정 이후 정책 연계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이재명 효과’를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한 셈이다. 특히 30일 제주에서 열리는 타운홀 미팅을 앞두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적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에서 대통령의 주목을 받기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타운홀 미팅 참가자를 사전에 파악하거나 특정 후보를 언급하는 발언이 나오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후보군 측이 참여자에게 발언 취지를 문의했다는 내용도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편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4·3 추념식 이후인 다음달 8일부터 10일까지 제주도지사 경선을 진행할 예정이다. 권리당원 투표 50%와 도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하는 방식이다. 오영훈 지사와 문대림 의원은 각각 20%, 25% 감점이 적용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다음달 16일부터 18일까지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식당 업주를 때려 다치게 한 40대 남성이 구속됐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업무방해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보복상해) 혐의로 40대 남성 A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31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6일 오후 5시 40분께 제주 서귀포시 한 건물에서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식당 업주 B씨의 얼굴을 여러 차례 때려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앞서 지난 3월 초 술에 취한 상태로 B씨의 가게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자 업무방해로 신고됐으며 이에 앙심을 품고 B씨를 폭행 것으로 드러났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경선을 앞두고 불거진 ‘정체불명 문자 발송’ 논란과 관련해 문대림 국회의원 측이 "실무진의 착오였다"며 공식 사과하고 수습에 나섰다. 다만 논란 초기 문 의원 본인은 해당 사안과 거리를 두는 입장을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문대림 의원 측은 27일 <제이누리>에 보낸 입장문 문자메시지를 통해 “문자메시지 발송 과정에서 혼선을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확인 결과 해당 문자는 캠프 실무진이 발송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어 “문자 내용은 언론 보도를 전달하고 입장을 묻는 수준으로 허위사실이나 비방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관리와 점검이 충분하지 못했던 점은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자 발송 절차를 전면 재정비하고 향후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확인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논란 초기 문대림 의원은 해당 사안과 선을 긋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문 의원은 18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열린 기자회견 직후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제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거리를 뒀다. 이어 “관련 내용을 접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판단하거나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문자는 지난 16일 오전 언론사 여론조사를 앞두고 다량 발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자에는 민선 8기 제주도정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언론 보도 기사 링크가 포함됐다. 같은 날 오후에는 다른 전화번호를 통해 오영훈 제주지사의 배우자를 겨냥한 문자도 추가로 발송됐다. 해당 문자에는 오 지사 배우자 관련 내용이 담긴 기사 링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가 발송된 휴대전화는 제주지역 한 SK텔레콤 대리점에서 지난 13일 신규 개통된 번호로 알려졌다. 개통 명의자는 문대림 의원으로 확인됐다. 2개의 전화번호가 발신번호로 사용됐다. 이에 따라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문 의원 측이 뒤늦게 실무진 책임을 인정하며 사태 수습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문 의원은 "문자 발송 이전에 법적 자문을 받은 결과 허위사실 유포엔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실무진이 실수한 것으로 안다. 향후 그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오영훈 지사 지지자들은 개인정보 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문자 발신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제주경찰청은 고발인 조사를 마친 뒤 문 의원을 상대로 피고발인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사건은 제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맡아 수사 중이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수집·이용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정보통신망법상 광고성 문자 발송 시 사전 동의를 받지 않으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어 향후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도가 4·3 역사왜곡 논란 비석을 철거하는 대신 4·3평화공원으로 옮기고 그 옆에 객관적 사실을 담은 안내판을 나란히 세웠다.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운다는 취지에서다. 제주도와 4·3평화재단, 4·3희생자유족회는 28일 함병선 공적비와 군경 공적비·충혼비를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으로 이설하고 그 옆에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을 세웠다. 지난해 12월 4·3 당시 민간인 강경 진압을 주도한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 첫 번째 안내판을 설치한 데 이은 두 번째 조치다. 함병선 공적비는 1949년 6월 '제주도치안수습대책위원회 남제주군지회' 명의로 세워져 제주시 오등동 특수전사령부 훈련장 내에 있던 것이다. 정부 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함병선은 제2연대장으로 부임한 뒤 1949년 1월 조천면 북촌리 주민 400명가량의 집단 학살을 주도했고, 두 차례 군법회의 최고지휘관으로서 재판 절차 없이 수많은 민간인을 처벌했다. 이 비석에 대해 4·3유족회 등 4·3 단체들은 "학살의 역사가 여전히 남아있는 제주 섬에 이런 추모비가 존재한다는 것은 4·3 왜곡의 또다른 증거"라며 올바른 안내판 설치를 요구해왔다. 함께 이설된 군경 공적비·충혼비는 제주지방기상청 부지에 방치돼 있던 것이다. 1949년 8월 세워진 공적비는 제2연대 장병과 경찰대원, 대한청년단, 민보단의 활동 성과를 기리는 내용이다. 그 이듬해 건립된 충혼비는 군경과 우익단체 희생자 860여명을 추모하는 비석이다. 제주도는 4·3 역사왜곡 대응 자문단 논의와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이 비석들을 4·3평화공원으로 이설하고, 위와 같은 사실들을 안내판에 적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 하성용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장, 임문철 4·3평화재단 이사장, 김창범 4·3유족회장 등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에서는 4·3영령에 대한 묵념과 경과보고에 이어 김수열 시인이 4·3의 비극을 어미 잃은 병아리에 빗댄 시 '죽은 병아리를 위하여'를 낭송했다. 도는 자문단과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경찰지서 옛터 표지석 등 4·3 역사 왜곡 논란 시설물에 대한 안내판 설치 또는 이설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산업육성본부장에 국토교통부 출신 인사가 새롭게 임명됐다. JDC는 30일 신임 산업육성본부장에 이경선 전 국토교통부 원주지방국토관리청 지역협력국장을 임명했다. 구병욱 본부장의 후임 인선이다. 이경선 신임 본부장은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와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제주도지원위원회 등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국토개발 및 제주 관련 정책 업무를 수행해 왔다. 특히 국토교통 정책과 제주 현안 업무를 함께 경험한 점이 산업육성본부장 적임자로 평가된 배경으로 알려졌다. JDC는 이 본부장이 중앙부처와의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 지역 산업 경쟁력 강화와 주요 개발사업 추진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경선 본부장은 취임 소감을 통해 “현장 중심의 소통과 실행력을 강화해 제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헬스케어타운 정상화 등 주요 현안을 안정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JDC 상임이사는 4명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서열 2위로 평가되는 경영기획본부장 인선도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임감사 인선 역시 막바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제주지역 당원 중 800명이 6·3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문대림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제주지역 당원 중 800명은 31일 오전 11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을 통해 문대림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혼란의 과거를 넘어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을 제주에 실현할 적임자는 문대림 후보”라며 “문 후보가 중앙정부와 제주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준비된 인물”이라고 밝혔다. 이날 지지 선언문은 제주의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 어부 김정도 당원이 낭독했다. 당원들은 “문대림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치적 가치와 방향을 함께하는 후보”라며 “이재명 정부와 가장 안정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제주 유일의 원팀 후보”라고 강조했다. 또한 “문 후보는 최연소 제주도의회 의장, 청와대 비서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중앙과 지역을 잇는 경험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며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와 국제 분쟁 해결 등 주요 현안을 해결한 경험을 통해 정책 추진력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당원들은 문 후보가 민생 문제 해결 능력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문 후보는 도민 삶의 현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정책 기조를 제주에 적용해 도민 삶의 질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강상수 의원(서귀포시 정방·중앙·천지·서홍동)이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재선 도전에 나선다. 강상수 의원은 30일 오전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깊은 고민 끝에 국민의힘을 떠나 무소속으로 6·3 지방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기자회견 직전 국민의힘 제주도당에 팩스로 탈당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2007년 12월 책임당원으로 입당해 약 19년 동안 당에 몸담아 온 강 의원은 “보수 정치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지역 주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최근 당의 방향과 가치에 대한 괴리감을 크게 느꼈다”며 탈당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중앙당과 제주도당이 주민 삶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치우쳐 있다”며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할 보수정당의 가치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정방·중앙·천지·서홍동 선거구 공천과 관련해 “도당공천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탈당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이 단수 공천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후 100% 당원투표 경선으로 방향을 바꿨다”며 “지역 주민 평가보다 당원 모집이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선거구 출마가 거론된 강하영 의원(비례대표)을 겨냥해 “언론 플레이로 갈등을 부추겼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정방·중앙·천지·서홍동 지역 여론조사에서는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당원 투표만으로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은 본선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천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무소속 출마 이후 복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강 의원은 “정치 철새가 되고 싶지 않다”며 “국민의힘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상수 의원의 탈당으로 서귀포시 정방·중앙·천지·서홍동 선거구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무소속 후보가 경쟁하는 3파전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국민의힘 문성유 제주도지사 예비후보가 민주당 내부 갈등을 정면 겨냥하며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 경선이 비방 논란과 관권선거 의혹 등으로 혼탁해지자 문 후보가 틈새 공략에 나서며 존재감 확대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은 오영훈 제주지사, 문대림 국회의원(제주시 갑), 위성곤 국회의원(서귀포시)의 3파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문대림 의원 측의 비방 문자 발송 논란과 오영훈 지사를 둘러싼 정무라인 공무원 선거 개입 의혹이 잇따르면서 경선이 정책 경쟁보다 갈등 구도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의힘 문성유 예비후보는 지난 28일 제주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경선 상황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문 후보는 “지금 제주 정치는 타락했다”며 “도지사라는 자리가 특정 정파의 선거 도구로 전락했고, 도민의 휴대전화는 정체불명의 비방 문자로 오염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 경선판에서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는 도민들의 가슴에는 분노와 수치심만 남았다”며 “도민의 이름으로 심판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오영훈 제주지사를 겨냥해 “현직 정무직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관권선거 의혹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라며 “측근 몇 명의 사직서로 꼬리 자르기를 한다고 해서 진실이 가려지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도정 마비와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도민 앞에 직접 나서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대림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공세를 이어갔다. 문 후보는 “도민들을 혼란에 빠뜨린 괴문자의 발신지가 문 후보 측 실무진으로 밝혀졌다”며 “정체불명의 문자로 상대를 헐뜯고 가족까지 공격하는 행태가 도지사 후보로서의 품격이냐”고 지적했다. 또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증거가 나오자 뒤늦게 사과하는 모습은 제주 정치를 과거로 퇴보시키는 구태 정치”라며 민주당 중앙당의 공식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문 후보는 “제주는 민주당의 전유물도, 권력 다툼의 놀이터도 아니다”라며 “민주당은 제주 정치를 타락시킨 후보들의 일탈에 대해 도민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경선 갈등이 심화될수록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제주에서도 경선 과정의 갈등이 이어질 경우 본선 경쟁 구도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경선이 과열될수록 국민의힘 후보가 틈새를 파고들 여지가 커진다”며 “문성유 후보가 민주당 내부 갈등 국면을 활용해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이 혼전 양상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민의힘 문성유 예비후보가 민주당 갈등을 집중 공략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어 제주도지사 선거 판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봄과 함께 꽃 소식이 전해오지만, 취업전선은 냉랭하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방불케 한다. 미국발 관세폭탄에 중동전쟁 격화로 ‘오일 쇼크’까지 우려돼 취업난은 가중될 전망이다. 청년고용 지표는 악화일로다. 2월 고용통계를 보면 전체 취업자가 23만4000명 늘어난 반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되레 14만6000명 줄었다. 청년층 실업률은 7.7%로 코로나19 팬데믹이 고용시장을 강타한 2021년 2월(10.1%)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다. 청년 실업자가 28만6000명,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쉬었음’ 청년이 48만5000명이다. 실업자와 그냥 쉬는 경우를 합친 사실상 실업 상태인 청년은 77만1000명에 이른다. 청년 취업자 감소폭은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폭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1년 새 15~29세 인구는 803만5000명에서 787만7000명으로 1.96% 줄었다. 반면 청년 취업자는 355만7000명에서 341만1000명으로 4.1% 감소했다. 청년 취업자 감소율이 인구 감소율의 두배를 웃돈다. 청년층 일자리 감소 요인은 복합적이다. ‘고용 저수지’ 역할을 해온 제조업과 건설
영화 ‘장미의 이름’은 ‘광적인 믿음의 질서’에 대항하는 ‘합리적 실증주의’의 도전을 담아낸다. 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모두가 공포에 질린다. 믿음에 충실한 수도원 수도사들은 성경 요한묵시록이 예언한 종말이 다가왔다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교황청은 이 두려움을 잠재워야만 한다. 교황청은 ‘바커스빌의 윌리엄(William of Bakersville)’이라는 이름의 수사修士를 ‘특별수사관’으로 임명해 문제의 수도원으로 파견한다. 윌리엄 수사는 교황청에서도 인정하는 최고의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인재다. 가끔은 성경도 합리적으로 해석해서 이단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던 인물이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교황청에서도 교회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명석함’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의 ‘작명 유희’가 흥미롭다. ‘바커스빌’이라는 이름은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탐정소설 「바커스빌의 개(The Hound of Bakersvilles)」에서 따오고 윌리엄이라는 이름은 13세기(영화의 배경과 동시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실증주의자 ‘윌리엄 오캄(William O
중동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의 대치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과 이란의 주변국 에너지시설 보복공격으로 치달았다. 석유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는 금지선(레드라인)이 깨지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았다. 중동전쟁 격화 소식에 19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9원 급등한 150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올랐던 주가도 급락했다. 이날 환율은 낮 거래 종가 기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0일 이후 17년만의 최고치다. 그만큼 고환율ㆍ고물가(유가)ㆍ고금리의 ‘3고高’ 파고가 거세졌다. 경제 및 외교안보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특히 석유ㆍ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자원 공급망은 불안정(Unstable)ㆍ불확실(Uncertain)ㆍ예측 불가(Unpredictable)의 ‘3U’ 상태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언과 달리 중동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장기전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석유 의존도, 특히 중동산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선 고유가 충격이 길어질 것이란 걱정이 더 커졌다. 전쟁이 3~4개월 지속되면 국제유가는 120달러를 웃돌고, 6개월까지 길어지면 150달러를 넘어서리란 관측이
장 자크 아노(Jean Jacques Annaud) 감독의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ㆍ1989년)’은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ㆍ1932~2016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기호학 외에도 에코의 분야는 철학, 해석학, 중세학, 문화비평, 사회비평, 소설 등에 걸쳐 있어서 그의 ‘전공’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에코를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에코에게 썩 어울리는 별호別號일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그 명민함으로 이름난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 분)가 교황청의 명을 받아 문제의 수도원으로 향하고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윌리엄 신부가 수도원 정문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 소설에서는 수도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담는다. 에코는 이 장면 속에 논문으로 치면 논문의 ‘문제 제기(research question)’를 담은 셈인데, 아노 감독은 이 장면을 과감하고도 난폭하게 쳐내는 이해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지른다. 원작 속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수
1994년 12월 초의 일이다.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에서 주재기자 신분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 시절 사무실에 묘한 편지가 배송됐다. 수신인만 적혀 있을 뿐 발송인 이름은 없었다. 내용은 현직 신구범 지사를 겨냥한 제보였다. 그해 구좌읍 이장단협의회의 동남아 여행이 시빗거리였다. “현직 신 지사가 이장단협의회 회장인 신모 이장에게 일화 30만엔을 줘 선거를 앞두고 그를 매수했다”는 내용의 제보가 투서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한 곳만이 아니라 여러 언론사로 그런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다. 그 다음해 첫 민선 1기 6·27지방선거가 예고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확인을 했지만 신 지사 측의 답변은 “이장단이 해외시찰을 한다고 할아버지 뻘 친족인 신 이장이 도와달라기에 공금을 지원할 순 없어서 과거 일본 방문 중 친족회에서 ‘활동비나 보태라’며 받은 일본 돈을 개인적으로 드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예산엔 도지사의 ‘재량사업비’가 있었지만 그는 예산을 쓰지 않았다. 스스로 사비로 처리했다. 그것도 나중 예기치 않던 구좌읍 관내 교통사고로 여행일정이 취소되자 보탰던 여행경비는 돌려받았다. 더 사안을 확인해보니 그 익명의 투서는 언론사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행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제주 정치권이 또다시 4·3 앞으로 몰려가고 있다. 4·3은 제주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함께 아파해야 할 역사다. 그런데 선거만 다가오면 이 역사는 어김없이 정치의 한복판으로 소환된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제78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다음달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다. 추념식 자체가 대규모 공적 공간이 되면서 정치권의 시선이 더욱 집중되는 구조다. 더 민감한 대목은 올해 4·3이 단순한 추모의 영역을 넘어 다시 선거 프레임의 중심에 놓이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주요 주자들은 하나같이 4·3의 의미를 말하고, 해결 의지를 강조하고, 자신이야말로 4·3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말만 놓고 보면 모두가 옳다. 문제는 그 말들이 쏟아지는 시점과 방식이다. 추념의 언어가 선거의 언어와 겹치는 순간, 4·3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수단으로 변하기 쉽다. 오영훈 지사는 현직 프리미엄 위에 4·3 관련 입법과 도정 성과를 함께 얹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2022년 도지사 선거 때도 그는 자신이 4·3특별법 개정에 역할을 했고, 추가 진상규명과 정명(正名), 보완 입법, 배·보상 사각지대 해
담쟁이가 뒤덮인 돌벽 한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색 방수포가 뒤덮은 객석 바닥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공연을 품던 무대는 무너진 채 흉터처럼 갈라진 흔적만 남았다. 한때는 웃음과 박수로 가득했던 자리에 이제는 공사 차량 자국과 철거 상흔만이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제 잔해와 철거의 상처로만 존재한다. 청춘의 기억을 간직한 무대, 가족과 함께한 영화 관람, 동네 아이들이 뛰놀던 객석의 풍경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건축물과 그것을 지켜보는 허탈한 눈빛뿐이다. 현장을 찾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무대를 배경으로 보낸 낭만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벽체를 손으로 짚으며 "아직 숨 쉬는 건물인데 왜 이렇게 급히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0일 오후 이중섭 거리를 찾은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멈췄다. 회색빛 공사판 가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무너진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이는 "관광지에 왔더니 왜 철거 현장만 남았느냐"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전국은 요동쳤다. 17개 시·도가 일제히 비상 체제로 흔들렸다.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그 때 제주에서는 도청 본관 출입문이 닫혔다. 밤 11시 17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3분까지다. 이 조치가 단순한 '출입문 통제'였는지, 아니면 '청사 폐쇄'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제주도정은 곧바로 '불법 계엄 동조' 의혹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부재'가 있었다. 오 지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날 저녁 저는 제주에 없었다. 서울에서 기업인들과 면담을 마친 뒤 오산에서 식사를 했고, 오후 9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택으로 이동해 비서실장과 특보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새벽 1시 30분 도청 회의를 소집해 "군·경은 상부 지시가 있더라도 따르지 말라"는 불복 지침을 명확히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단의 질문은 한 가지로 모였다. "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
“어둠의 무공, 마타도어 무공이 드디어 등장했어. 선거비무에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 근데, 문장이 살아 있어.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아. 도대체 누구지? 제주무림에 이 정도 문장을 쓸 무사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괴문자를 들여다보며 혼잣말하던 호검이 무릎을 쳤다. 무림플랫폼 애독자, 한평생 소설무공만을 수련한 콘치스검이 생각나서였다. 괴문자 문장을 한 자 한 자, 분해한 후 재조립하면서 그 속에 담긴 스토리텔링 기법도 찾아낼 수 있는 무사였다. 호검은 톡을 보내 긴급회동을 요청했다. 한식경이 지난 후였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에 2000원인 저비용 커피집에서 호검과 콘치스검이 마주 앉았다. 호검이 물었다. “문장이 예사롭지 않아.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 호소력도 짙어.” 한참 동안 괴문자를 들여다본 콘치스검이 말했다. “선거 선수무사군. 잘 봐. ‘영훈공은 사과해야 합니다.’라는 문장만 6번을 썼어. 전형적인 동어 반복 초식이야. 시(詩)무공에선 자주 쓰이지. 반복을 통해 운율을 만들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초식 말이야.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 듣는 상대무사는 세뇌될 수 있거든.” “그렇네. 수만에서 수십만 무사에게 보내는 문자비용을 감안 하면 단 한 자라도 줄이려고 할 텐데 말이야.” 콘치스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렇고보니 순번에 그냥 번호를 적지 않고 대괄호를 쓰고 띄어쓰기까지 했어. 가독성을 최대한 고려한 초식이야. 근데, 대괄호는 자주 애용되는 문장부호가 아니잖아? 강조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절로 모르게 나온 습관일까?” 호검은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을 씹으며 물었다. “소설무공에선 한 문장 초식만 봐도 금세 알잖아. 어떤 무사가 썼는지 말이야?” “그렇지, 글씨체만 무사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문장에도 무사의 지문처럼 짙게 배겨 나오지. 문장 하나만 읽어도 버릇, 실수, 왁꾸(틀), 스타일, 철학 등을 한방에 알 수 있어. 조정래공과 황석영공, 이문열공, 요새 뜨는 김기태주니어검의 문장을 비교해 봐. 단박에 알 수 있지.” 호검과 콘치스검은 괴문자 읽기에 몰두했다. 100번을 읽으면 단서가 보일 수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리필한 후였다. “찾았다!” 호검이 외쳤다. “뭔데?” 콘치스검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호검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이었다. “[5] 불통과 혼란으로 점철된 섬식 정류장, 오영훈 도지사는 사과해야 합니다. 여기에 뭔가 이상한 게 안 보이나?” “맞아! ‘점철된’ 이 단어는 70·80년대생들은 좀처럼 쓰지 않는 단어야. 아직은 아기무사인 90년대생은 아닐 것이고, 은퇴를 앞둔 50년대생 무사들도 아닐 것이야. 그렇다면 괴문자 작성무사는 60년대생이 분명하군.” “원숭이 무사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지. 전체 문장은 쉽고 담백하고 호소력 짙게 쓰다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어. ‘점철된’ 단어 말이야. 근데 ‘점철된’은 무슨 뜻이지?” “내가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를 어떻게 알겠어. 네이버 사전 검색해 봐.” ▶점철(點綴)된=(일이나 사건 따위가 무엇으로) 서로 이어진 디저트로 치즈케익 하나를 먹어치운 콘치스검이 말했다. “요새 캠프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보면 너무 올드해. 아무리 촌무림이지만 너무 한다고 싶었지. 새로운 무사가 혜성같이 등장한 거야. 어느 캠프에서 영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캠프 공보무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을 거야. 앞차기만 할 수 있는 무사들이거든. 공중제비차기, 다방향차기까지 가능한 새로운 공보무사가 등장한 거야.” 호검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오랜만에 만난 의문의 무사, 무공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고수는 고수를 한 눈에 알아본다. 간절하게 대련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고수와의 대련이 언제였던가. 하수들과의 대련으론 몸풀기도 못 했다. 호검이 비장하게 말했다. “나 몹시도 궁금해. 어떤 무사인지 우리 추적 한 번 볼까? 연령대는 60년대생으로 좁혀졌어. 무림검색엔진으로 찾아보면 어디엔가 분명히 있을 거야. 이 정도 문장내공이면 곳곳에 뿌려 놓았을지도 모르지. 500자 정도 분량만 있어도 단숨에 알 수 있어. ” 한참을 눈만 껌벅이던 콘치스검이 나직이 읊조렸다. “웬지 문장이 낯이 익어. 어디선가 분명히 읽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아. 그때도 몹시도 궁금했지. 제주무림에도 이런 문장무사가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었지. 그때 그 문장이 뭐였더라. 도무지 생각이 안 나네.” 호검이 말했다. “내일 이어지는 연재에는 셜록 홈즈 출신 기철검이 출연해. 국민의힘 제주도방 맹주지. 프로파일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총 하나는 잘 쏘아. 근데 직접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말이야. 상도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
제주도의 왜구 침략 일찍이 제주도는 일본과 중국, 한반도를 잇는 무역로 중간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왜구들의 중요한 약탈 대상 지역이 되었다. 바다의 해적활동에 필요한 물과 식량, 땔감 공급지로 중국이나 대만 베트남을 가려면 제주도는 중요한 지점으로 왜구들이 노리는 지정학적 거점이 된다. 추자도에 왜구가 처음 침략한 것은 고려 충숙왕 10년(1323)이다. 회원(會原)의 조운선을 군산도(群山島:현 고군산 군도)에서 약탈하자 내부부령(內府副令) 송기(宋頎)를 파견하여 왜구를 격퇴시켰다. 또 동년 10월 6일 추자도 등지에서 노략질하고 노약자와 남녀를 잡아갔다.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여 추자도에 사람이 줄어들자 고려 정부는 충정왕 2년(1350)에 추자도 주민들을 제주도 조공포(朝貢浦:도근천) 근처로 이주시켰다. 한편 그로부터 60년 후 조선이 개국 초기인 태종대(1413)에 제주도로 이주한 추자도 주민들의 절반을 추쇄하여 진도로 옮기려는 전라도 관찰사의 진도 목장 계획이 있었다. •추자도 왜구 침략 이후 제주를 침범한 사례를 내용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충혜왕 2년(1341)에 왜구가 정의현에 쳐들어 왔으며, 이듬해에는 무려 700여 척의 배가 내침을 했다. 충정왕 3년(1351)에 왜구가 귀일촌에 침범했다. •또 공민왕 원년(1401)에는 왜구가 우포(友浦:옛 이름이 범질포인 것으로 보아 화순포이다. 우포(벗개)라면 용수리를 말하기도 한다)를 침범하였다. •공민왕 8년(1359)에는 대촌(제주성안)까지 침범하였다. •우왕 2년(1376)에 왜적 600여 척의 대규모 왜구가 제주 주변을 맴돌다가 제주를 침범하니, 탐라 성주 고신걸(高臣傑)이 왜구와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부상당해서도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고는 왜구를 격퇴시켰다. 승전을 접한 고려 정부는 고신걸에게 특별히 정2품 호조전서(戶曹典書)의 벼슬을 내렸다. •우왕 3년(1377) 여름에 왜적이 다시 침입하였는데, 전라수군 도만호(都萬戶) 정룡(鄭龍) 등이 병선 2척으로 정탐하다가 왜선 1척을 포획하여 모두 죽였다. •태종 원년(1401)에 왜구들이 제주 서촌 마을인 곽지촌에 쳐들어가 노략질을 하였다. •태종 4년(1404) 왜구가 고내촌과 명월촌을 침범하였다. •태종 6년(1406) 1월에 왜선 16척이 제주를 노략질하니 제주 병사들이 이를 물리쳤다. 동년 3월에는 왜선 14척이 추자도에 정박하자 전라도수군절제사 구성미(具宬美)가 나아가 싸워 이를 격퇴하였다. 가을 7월에 왜적이 다시 쳐들어와 산남쪽에서부터 돛을 바람에 날리며 대정현 죽도(竹島:차귀도)에 다다랐는데 이때 안무사 이원항(李原恒)과 판관 진준(陳遵) 등이 이들을 맞아 공격하니 왜적들이 바로 물러갔다. •태종 8년(1408)에 왜적이 조공천으로 들어왔다. •태종 18년(1418) 왜적이 우둔(牛屯:구좌읍 행원 어등포 우목장), 우포(牛浦: 한경면 용수리), 차귀 등지를 침범했다. •세종 26년(1444) 왜구들이 제주(濟州)에서 노략질하다가 변방을 지키는 장수(邊將)에게 사로잡히고 나머지 도적은 대마도(對馬島)로 도망쳤다. 세종이 이예(李藝)를 파견하여 대마도주에게 도망쳐 간 나머지 도적들을 잡아서 보내라고 유시하니, 대마도주도 감히 숨기지 못하고 이예가 돌아올 때 도망간 왜구를 데려왔다. • 중종 5년(1522) 왜변으로 추자도 주민 30여 명이 살해되었다. • 중종 31년(1540) 가을 8월 제주 목사 권진(權軫)과 판관 한근(韓瑾)이 왜적이 침입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 죄과가 암행어사 원수장(元壽長)에게 적발되어 둘이 함께 파직되었다. •명종 7년(1552) 여름 5월 왜적과 중국 떠돌이 상인 등의 8척의 배가 표류하다가 정의현 하천리 천미포(川尾浦)에 도착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이 기록은 아래와 같다. 정의현 천미포 왜란 제주의 대표적인 왜구 침략 사건으로는 천미포 왜란(川尾浦 倭亂)을 들 수 있다. 천미포는 제주어로 지역 주민들은 ‘내끼’나 ‘내깍개’라고 하는데 ‘내(河川) 끝(尾)’에 있는 포구’라는 뜻이다. 또 이곳을 다른 이름으로 구진포(寇進浦)라고도 한다. 즉 ‘왜구를 물리친 포구’라는 뜻이다. 제주의 해안 지형은 아무 곳이나 배를 댈 수 없다. 오래전 어사 김상헌이 제주섬 지형이 날카로운 점을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암초들이 송곳처럼 숨어 있어서 배를 함부로 대었다간 파선의 위험이 커 왜구들은 포구가 있는 곳을 선택하여 상륙한다. 천미포도 외항은 만처럼 돼 있어 큰 파도를 막아주고, 포구는 천미천 하류가 돼 넓은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상륙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명종 7년(1552) 제주목사 김충렬(金忠烈, 1503~1569)은 정의현(旌義縣) 천미포에 왜구가 침략했다는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남쪽 대양(大洋)으로부터 황당대선(荒唐大船) 2척이 천미포로 상륙하여 주민(浦口民)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자 정의현감 김인(金仁)이 접전을 벌여 왜구 1인을 생포하였으나 날이 저물고 비가 와서 왜구가 물러가자 진을 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때 하륙(下陸)하여 싸움을 벌인 왜구의 수는 약 70여명, 배 위에 줄지어 선 왜구는 중국인을 포함한 수백 명이었다. 날이 밝자 왜구들은 험하고 단단한 암벽에 의지하여 방패로 앞을 가리고 조총을 쏘아대며 활로 쏘면서 방어를 계속하였다. 왜구들은 아군이 진격하면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와 대적하기를 반복하니 제주의 장졸(將卒)과 말이 모두 피곤하였고, 아군은 병기마저 부족하여 이들을 격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제주목사 김충렬은 수십일 동안 왜구와 싸워 성과를 올렸지만, 일부 왜구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갔고, 다른 왜구는 산 속에 숨어 주민과 군졸들을 사상케 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제주목사 김충렬은 고전(苦戰) 끝에 망고삼부라(望古三夫羅)를 사로잡았으나 나머지 왜구를 진멸(殄滅)하지 못하고 어선을 훔쳐 달아나면서 퇴로를 열어준 책임으로 정의현감 김인과 함께 죄인으로 유배되었다. 체포된 망고삼부라는 성천부(成川府)로 유배를 갔다. 왜란(倭亂)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제주목사 김충렬처럼 병무(兵務)에 어두운 문관(文官)보다는 무관(武官)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무관 출신 이정(李玎)을 제주목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정은 변방의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것이 두려워 부임을 미루다가 결국 왕명과 국법을 어겼다는 죄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죄가 감형되어 절도(絶島)의 군졸로 강등되었다. 다시 후임 제주목사는 무관 출신인 남치근(南致勤, ? ~ 1570)이 임명되었다. 남치근은 기개가 높은 장수로 담력이 크고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다. 남치근은 왜구 격퇴의 공으로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된 무장(武將)이며, 후에 그는 한성부 판윤(判尹)의 요직을 거쳐, 경기·황해·평안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가 되어 1562년 황해도 재령의 해서(海西)에서 난을 일으킨 임꺽정을 효수한 인물이기도 했다. 남치근은 곧바로 제주에 부임하면서 군비(軍備)를 증강하여 왜구의 재침략에 대비하였다. 1554년 5월 왜선 한 척이 천미포에 상륙하자 남치근은 배에서 내린 왜구 10여 명 중 1명을 사살하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1554년 6월에도 다시 제주목사 남치근으로부터 왜인 12급을 참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승정원은 왜구의 침략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염려하여 변방 제주를 지킬 보다 구체적인 계책을 논의하라고 비변사에 지시를 내렸다. 이의 대책중 하나가 유사시 가리포 첨사(僉使)의 신속한 군사 지원이었다. 같은 해 가을 7월에 제주 목사 남치근이 왜적의 배 2척을 포획하여 그 공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나쁜 일은 연이어 잘 일어난다. 이미 조성된 상황을 바로 해결하지 않을 경우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일이 평소에 대비해 놓지 않으면 마침내 작은 불씨가 번져 큰 불이 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은 늘 마른 대로 번지고 물은 언제나 젖은 대로 흐르는 것이다. 이미 길이 만들어져 흐름이 있어서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고온다습한 기후를 갖는 제주도에서는 어떤 시설이나 구조물, 형상을 나무로 만들 경우, 목재 부분이 쉽게 부식되어 1~2년마다 한 번씩 새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모든 걸 돌로 만들자, 주의였다. 제주도 각 마을 중요한 곳에, 세워지는‘거욱’이나 읍성 취락 입구에 세워졌던 돌하르방 역시 그랬다. 제주도의 대표 캐릭터 돌하르방의 주요 기능은 수호신적 기능, 주술 종교적 기능, 위치 표식 및 금표 기능 등이다.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동자석, 망주석, 옹중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완옹중 석상에서 유래했다 해서 옹중석(翁仲石)이라는 이름이 많이 통용되었다. 북촌 돌하르방공원에서 만난 김남흥 돌하르방 장인(1967년생)은 먼저 인문학적 소양 얘기부터 꺼내 들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15년 전 돌하르방에 인생을 걸면서 처음 매달린 일이 돌하르방에 관한 인문학적 탐구였다. 돌하르방이 어떤 연유로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유래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에 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때문에 김남흥 장인은 몇 년간 도서관을 찾아 관련 사료를 발굴하여 탐독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돌하르방 장인 김남흥 관장은 15년간의 열정과 노력으로 창조한 그의 ‘상상의 나래’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 줬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1754년 김몽규 제주 목사가 옹중석을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진시황 때 흉노족 등 북방 이민족을 물리쳤다는 거인 완옹중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죽은 후 진시황이 그의 동상을 아방궁 앞에 세웠다.” “김몽규 목사는 본토 사람으로 막상 제주에 와보니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당시 전염병이 돌아 8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이 상황에서 흩어진 민심을 모아야 했던 김몽규 목사 역시 완옹중이란 인물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삶이 든든해지기를 기대하며 관 주도로 옹중석을 만들어 동·서·남 성문 앞에 상징적 문지기를 세웠다. 우석목, 무석목 등으로 불리다가 1971년 제주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제주 목성을 지키던 돌하르방은 우락부락하고 무장을 한 모습으로 키가 크다. 반면 정의현성(서귀포시 성읍리)이나 대정현성(서귀포시 대정읍) 돌하르방은 각각 12기로 제주목 절반에 불과하며 키도 작다. 제주 목사가 주도했고 정의현과 대정현에서 따라 했다. 당시 지역마다 부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돌도 달랐기 때문에 석수들의 표현이 다르게 나타났다. 다만 돌을 가장 적게 깎아내면서 형태를 끌어낸 기법은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고등학교 시절, 당시 월남 참전용사 출신인 미술 선생님이 “돌하르방은 주변 현무암을 가져다가 대강 파놓은 예술적 가치가 별로 없는 싸구려 관광 공예품에 불과하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 때문에 여태껏 내가 '제주 돌하르방을 희화화하고 평가 절하했었구나'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제주의 돌인 검은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그 재질을 잘 살려 입체감을 더하며 조금씩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큰 눈, 자루 같은 코, 다문 입, 넓게 뻗는 귀 등 해학적이면서 인정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벙거지를 눌러쓴 머리는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하체는 옷자락으로 발이 보이지 않고, 배 중심에 위아래로 골이 있다. 두 손은 배에 올려놓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돌하르방은 손의 위치에 따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진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文人)을 상징하고, 왼손이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무인(武人)을 상징한다.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 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한때 돌하르방 코를 만지면 남자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한 기대로 혹은 재미 삼아 돌하르방 코를 만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하르방의 코 부분을 부수고 가루 내어 물에 타 마시는 풍습도 있었다. 2007년 작고한 제주도 마지막 석장(石匠) 고 고흥옥 옹은 돌 깨는 일을 하다 독학으로 동자석과 문인석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무덤에 동자석을 세우는 사람들이 줄었고 찾는 사람도 없어지면서 더 이상 동자석을 만들지 않았다. 동자석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 모습을 한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형상이다. 동자석은 동제석, 동ᄌᆞ석, 동주석, 동제상, 애기동자, 자석 등으로 부른다. 제주 민묘(民墓)는 부등변 사각형의 산 담으로 둘러 있고, 그 속에 둥근 봉분이 있으며 묘주(墓主)의 시중꾼이라 할 수 있는 아담한 동자석이 쌍으로 마주 서 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작고 귀여운 동자석은 제주의 대표적 석상이다. 무덤을 지키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를 지닌 제주 동자석은 현무암이나 화산암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 동자석과 다르다. 제주 동자석은 손에 홀, 부채, 문자, 수저, 붓, 칼, 술병, 술잔, 부채, 뱀, 새, 음양의 성기 등 다양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다이아몬드형, 타원형 등 기하학적 무늬도 있다. 2024년 고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제주 동자석과 문인석 55점이 국립제주박물관 옥외정원에서 선보였다. 이 동자석과 문인석은 2021년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2만1000여 점 작품 가운데 일부다. 2006년 제주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돌 문화를 집대성한 제주 돌문화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제주 지역 최초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조성 중이다. 제주 돌문화공원은 곶자왈 지대에 있는 326만9731㎡(100만 평) 부지에 야외 전시장뿐만 아니라 제주 돌 박물관, 설문대할망 전시관, 오백장군갤러리 등의 다양한 실내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 전시장을 제외하고 실내 전시실만 합쳐도 4만2900㎡에 달하는 전시시설이 들어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공간 3만7719㎡를 넘어서는 규모다.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돌 문화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돌 문화공원 야외 전시장에는 48기 돌하르방, 사악한 기운과 액운을 몰아낸다는 방사탑, 제주의 상징인 정주석,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 등이 망라돼 있어 제주의 풍성한 돌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조선의 해금(海禁)과 공도(空島)정책 한국 사료에 왜구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사료에 의하면 고종 10년(1223)이며, 이때부터 공양왕 4년(1396)까지 약 169년 동안 519회에 걸쳐 침략한 사실이 있다. 주로 조운선 약탈이나 납치를 시도한 것으로 보아 식량과 인적 자원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인 경우 『명사(明史)』와 명실록(明實錄)』에 의하면 홍무(洪武) 원년(1368)부터 홍무 7년(1374)까지 중국 연안에 왜구가 침략한 곳은 23회 이상이 되자 당시 신생왕조였던 명나라의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 이에 홍무 4년(1371) 연해민(沿海民)들이 아무 때나 바다로 나가는 것을 제한하는 해금령을 내렸으며, 연해 지역에 해구(海寇)·왜구(倭寇)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방정책을 실시하였다. 해금(海禁)은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 즉 “바다에 나가 오랑캐와 통교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말의 약칭이었다. 이러한 해금령은 중국 영향권에 있는 조선과 일본에 해방정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간혹 해금이 완화돼 해외무역을 허용하는 범위에서 개해(開解)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해금은 명·청 시대의 국가의 외교, 무역, 국방 등의 안보 정책이 되었다. 조선은 중국의 해금정책과는 다른 공도(空島)정책으로 주민들이 바다에 나가는 것을 통제했다. 원래 공도정책의 시초는 고려말 한반도 연안에 왜구가 극성을 부리면서 시작되었고, 원종 12(1271)년 왜구가 거제도를 공격하자 고려 정부는 거제도민을 내륙지방인 거창과 진주로 이주시키면서 사실상 시작되었다. 공도정책이란 말 그대로 섬에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두는 것을 말한다. 14세기 말엽부터 15세기 중엽에 이르도록 서남해 도서 지역에 출몰하여 미역을 채취해 가거나 배를 만들어 가는 등 섬주민들을 괴롭혔다. 사실상 15세기 조선 정부는 왜구들의 노략질 대상인 주민들을 섬에 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왜구들이 약탈할 것이 없으면 그들이 빈 섬에 오지 않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왜구나 수적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공도정책의 본뜻이었다. 바야흐로 성종 연간에 「도서거주금지령」과 「추쇄령」이 내려졌다. 이때에 주민들에는 강력한 단속이, 수령과 만호에게는 감독 책임이 주어졌다. “쇄환해온 자가 다시 섬으로 숨어들면 해당지역 만호나 수령은 이유를 막론하고 본인은 파직시키고 가족들은 변지(邊地:변방)로 보낸다.” 하지만 이 정책 또한 왜구들과 유랑민이 다른 피해를 끼치게 된다. 왜구들은 빈 섬을 점령하여 그곳의 나무로 배를 만들고 임시 생활 근거지로 삼는 것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포작인과 국내 유랑민들도 빈 섬을 드나들면서 숨박꼭질하듯 추쇄(推刷)와 쇄환을 피하기도 했다. 이주민들도 섬을 선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세금이 싸고 요역의 부담이 적어 섬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했다. 왜구에 대한 정의,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왜구는 누구인가? 왜구의 발생 원인과 그들의 활동 근거지, 왜구의 구성원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차는 매우 크다. 먼저 일본 고등학교용 6개의 역사 교과서에서 보이는 왜구에 대한 시각을 종합해 보면 왜구의 근거지로는 대체로 쓰시마, 이키, 마쓰우라 지방과 제주도의 해민, 히젠마쓰 우라, 고토(五島)열도의 삼도(三島), 북규슈와 세토내해, 마쓰우라 등지로 보고 있다. 왜구가 등장하게 된 발생 원인으로는 6개의 역사 교과서 중 4곳이 불분명하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2곳의 교과서에서는 ▲식량 자급의 어려움 ▲식량부족 내란기의 일본 국내 정치 혼란 상황을 이유로 들고 있다. 왜구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5가지가 있는데 ▲왜구라 불리는 해적집단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으로 구성된 일본인 중심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三島)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북규슈와 세토내해의 주민 ▲일본인 해적 집단, 쓰시마, 고토(五島) 등지의 일본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국내 정치 혼란기의 식량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왜구의 주체에 있어서 두 가지가 특이한데 왜구에 제주도의 해민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왜구를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학자들의 왜구를 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한국 연구자들은 왜구를 일본 해적, 혹은 일본인으로 보는 견해다. 왜구의 근거지를 일본의 삼도(三島)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서 삼도는 쓰시마(對馬島), 이키시마(壹岐島), 마쓰우라(松浦)를 말한다.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듯이 왜구를 해적집단으로 인식하면서도 규슈(북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제주도 해민, 쓰시마 고토 등지의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한·일간 왜구를 보는 이러한 시각적 편차는 급기야 무라이 쇼스케(村井章介)처럼 “왜구(倭寇), 왜인(倭人), 왜어(倭語), 왜복(倭服)이라는 말의 왜(倭)는 결코 ‘일본’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왜구는 “반(半)한국, 반(半)중국, 반(半)일본이라는 민족적으로 애매한 주변지역의 경계인”이라고 동아시아의 특수성과 시대상황을 무시하여 무리하게 뭉뚱그려 정의하기도 한다. 사실상 왜는 삼국시대부터 신라를 중심으로 자주 침략해 약탈한 사례가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도 ‘왜구(倭寇)’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왜구의 어원이 되고 있다. 여기서 왜구는 “왜(일본)가 약탈했다. 왜가 침략했다”라는 사실이 왜와 왜구가 중첩되고 있는데 단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한 점도 많다. 그래서 왜구의 정의가 매우 포괄적이며 다의적이어서 쉽게 개념을 내리기가 어렵다. 물론 왜의 침략은 일본 국가 차원의 행동이라는 사실 면에서 일본인 해적집단이기도 한 왜구와는 다르다. 왜라는 말이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 왜(일본)에서 쓰시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해적 무리인 왜구들에게 외교의 책임을 물어 체포해 고려로 압송한 사실도 왜구와는 다른 왜(일본)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1350년 경인년 왜구의 대규모 침략 이래 왜구들의 한반도 침략이 잦아졌지만, 후세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왜란의 성격이 '왜적이 침략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로 굳어버려 왜라고 하면은 바로 왜구를 연상하게 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특수성을 동시에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구들은 누구였는가가 항상 문제라는 사실이다. 대개의 왜구 연구자들은 일본 남북조 내전으로 규슈가 혼란해진 시기가 고려에 왜구들이 대거 출몰한다는 시기와 같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규슈 내의 남북조 내전으로 해상 세력의 공권력에 대한 통제력이 약한 데서 찾고 있다. 나아가 규슈 내 남조 세력을 지지하고 있는 군벌이 식량을 얻기 위해 자신의 휘하의 군사들을 고려에 투입한 것이 경인년 왜구의 실체라는 주장도 한다. 왜구의 근거지로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었지만, 다수의 연구자들 또한 쓰시마(對馬島)가 삼도(三島) 중에 하나이며, 더불어서 이키시마(壹岐島), 규슈 북부의 마쓰우라시마(松浦島), 또는 히라도(平戶島)를 꼽고 있다. 이와 같이 왜구의 근거지가 되는 지역들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제주에 가깝고, 언제라도 바다 해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해상 운용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세력 중 하나로 유력한 규슈 서북부 지역의 마쓰라토(松浦黨)나 쓰시마의 소다(旱田)씨 등이 있는데 이들 해상 집단이 쓰시마를 집결지로 삼아서 왜구를 이끌었다는 주장이 설득을 얻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