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명라인 순정품(?) 성곤검, SWOT 분석을 해보니 ...
민주당, 오영훈 '하위 20% 이의신청' 기각 ... 문대림 '25% 감점'도?
보훈부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원점 재검토 ... 직권등록 사례 전수조사"
제주4·3 단체·정치권, 박진경 유공자 '원점 재검토'에 “늦었지만 당연”
6·3지방선거 D-90일 ... 3월 5일부터 딥페이크 영상 선거운동 금지
제주한라병원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선정 ... 24시간 최종치료 제공
고부건 변호사, 2차 특검에 오영훈 지사 고발 ... "내란 부화수행 혐의"
서귀포서 80대 몰던 승용차 음식점 돌진 ... 3명 다쳐
제주 성산고·한국수산회, 해양산업 인재 양성 맞손
구조 현장서 폭행까지 ... 도 넘은 행태에 소방당국 "무관용 대응"
제주공항 인근지역 초등학교 입학생에게 입학축하금이 처음 지급된다. 제주도는 제주국제공항 항공기 소음으로 피해를 겪는 공항소음대책 및 인근지역 11개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에게 입학축하금 20만원을 지급한다고 24일 밝혔다. 입학축하금은 지역화폐 ‘탐나는전’ 포인트로 입학생 보호자에게 지급된다. 공항소음 피해 주민 지원사업으로 추진된다. 지원 대상은 도리·도평·물메·백록·제주북·제주서·신광·외도·월랑·하귀일·한천초 등 11개 초등학교 입학생 약 740명이다. 신청은 다음달 3일부터 4월 3일까지 해당 학교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학교 확인 절차를 거쳐 도에서 최종 대상자를 확정한 후 5월 중 포인트가 지급될 예정이다. 다음달 31일 기준 지원 대상 학교로 전학 온 학생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타지역 학교로 전학간 경우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삼용 제주도 교통항공국장은 “공항소음으로 불편을 겪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현장 의견을 반영한 체감형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올해 공항소음대책지역 주민지원사업으로 자체사업과 한국공항공사 매칭사업을 포함해 총 56개 사업, 5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지난 겨울 제주 한라산 설경 탐방객을 위한 '한라눈꽃버스' 이용객이 8만6000여명을 기록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올해 이달 2일까지 운행한 한라눈꽃버스에 도민과 관광객 등 모두 8만6334명이 탑승했다고 4일 밝혔다. 이용객 현황을 살펴보면 주말과 휴일에는 하루 평균 1412명이 이용해 모두 3만9547명이 탑승했다. 평일에도 하루 평균 1337명(모두 4만6787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2024년 12월 21일∼2025년 3월 3일) 이용 인원 5만8262명에 비해서는 48%(2만8072명) 증가했다. 한라눈꽃버스는 겨울철 설경 명소인 한라산 1100고지 일대 교통난을 해소하고, 도민과 관광객이 편하게 설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시즌에는 이용객 폭증에 대비해 운행 횟수를 전년보다 대폭 늘렸다. 1100번 노선은 휴일 기준 최대 36회까지 횟수를 늘려 운행했다. 서귀포 노선인 1100-1번 또한 평일 운영을 도입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지난 겨울 제주도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제주지방기상청이 발표한 지난해 겨울철(2025년 12월∼2026년 2월) 제주도 기후특성 자료를 보면 지난 겨울 제주도 강수량은 88.7㎜로 평년(184.7㎜)의 48.1%에 그쳤다. 역대 5번째로 적었던 양으로 2024년 겨울(2024년 12월∼2025년 2월, 103.5㎜)에 이어 2년 연속 평년의 절반 수준 강수량을 기록했다. 강수일수는 22일로 평년(30.8일)보다 8.8일 적었으며, 역대 4번째로 적었다. 상대습도는 61%로 2001년(60%)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낮았다. 전반적으로 평년에 비해 비가 적게 내리고 상대습도도 낮아 건조한 경향이 겨울철 내내 지속됐다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기상가뭄 발생 일수는 14일로, 최근 10년 중 2번째로 많았다. 지난해 12월 평년보다 적은 강수량으로 10일 이상 기상가뭄이 발생했고, 올해 1월까지 적은 강수량이 이어지면서 제주시에는 지난달에도 기상가뭄이 발생했다. 기상가뭄은 지난달 하순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해소됐다. 눈 일수(눈, 소낙눈, 가루눈, 눈보라, 소낙성 진눈깨비, 진눈깨비, 싸락눈 중 어느 하나가 관측된 일수)는 14일로, 평년(16.7일)보다 2.7일 적었다. 내린 눈의 양도 6.1㎝로 평년(9㎝)보다 적었다. 특히 1월 2일, 1월 11일, 2월 7∼8일 등 세 차례 제주도 전역에 강하고 많은 눈이 내려서 산지뿐만 아니라 해안 지역에도 대설특보가 발표됐다. 겨울철 제주도 평균기온은 8.1도로, 평년(7.2도)보다 0.9도 높았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에는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으나 1월에는 하순에 추위가 열흘 이상 지속되면서 기온이 평년보다 낮았다. 12월 20일, 1월 15일, 2월 22일에는 우리나라 남동쪽의 고기압과 북서쪽 저기압 사이에서 따뜻한 남서풍이 유입되면서 지점별로 일 최고기온 극값을 경신하기도 했다. 서귀포 지점은 12월 20일 최고 22.5도까지 올라 12월 중 1위를 기록했고, 2월 22일에는 일 최고기온 22.5도로 2월 중 2위를 기록했다. 겨울철 월별 기온 변동도 컸으며, 하루 내 변동 폭도 컸다. 올해 제주도 겨울철 일교차는 7.1도로 역대 5위를 기록했고, 일교차가 10도 이상인 일수도 14.8일로 역대 3번째로 많았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4·3 당시 강경진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이 원점에서 재검토된다. 국가보훈부는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이후 자격 요건과 절차 적정성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제기됐다”며 “관련 법령과 등록 과정 전반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법률 자문을 진행한 결과, 절차적 하자 보완을 위해 해당 사안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6일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으로 부임해 같은 해 6월 18일 부하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한 달여간 제주도에서 좌익 무장대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정부는 박 대령 암살 2년 후인 1950년 12월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보훈부는 지난해 11월 4일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증서를 유족에게 전달했다. 유족 측은 고인이 국가로부터 무공훈장을 수훈한 사실을 근거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한 바 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과 그 유족·가족을 예우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6조는 국가유공자 등록을 희망하는 경우 보훈부 장관에게 신청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령의 행적을 둘러싼 역사적 평가가 재조명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진경 대령은 부임 이후 제주 중산간 마을을 대대적으로 수색하며 주민들을 체포했고, 당시 체포 인원은 3000명에서 최대 6000명에 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보고서는 “한 달 사이 수천 명의 ‘포로’를 양산한 작전이 주민들을 산으로 내몰았고, 결국 본인의 암살로 이어지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서술했다. 또 박 대령의 참모였던 임부택 대위는 암살 사건 재판 과정에서 강경 진압 명령이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박 대령이 법률에 규정된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보훈부는 그간 무공수훈자에 대한 등록을 서훈 사실과 범죄 여부 확인 중심으로 처리해 왔다. 박 대령의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등록이 이뤄졌다. 법률 자문 결과, 법 제6조 제5항에 따른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결정은 절차상 하자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보훈부는 박 대령 건을 포함해 직권으로 등록된 무공수훈자 사례 전반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앞으로는 직권 등록 사안에 대해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의무화하고, 위원회 내에 무공수훈자 심의를 전담할 팀을 신설해 공적 내용을 보다 면밀히 검토하기로 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가유공자 제도가 갖는 상징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감안해 더욱 신중하고 공정한 등록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 우도 해안가로 흘러들어온 정체불명의 목선에서 북한 노동신문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수사당국이 조사하고 있다. 4일 오전 9시 40분께 제주시 우도면 해안가에서 폐목선이 발견됐다는 주민 신고가 해경에 접수됐다. 발견된 목선은 길이 4m, 폭 1m 크기로 별다른 유류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선내 찌그러진 틈 사이로 북한 노동신문으로 추정되는 종이가 발견됐다. 제주경찰청과 국정원, 해경 등이 현장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목선은 지난해 12월 30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해안가에서 발견된 이후 올해 1월 12일과 29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해안가와 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 해안가에서 연이어 발견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대공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공공과학기술연구노조 제주테크노파크(제주TP) 지부가 지영흔 제주테크노파크 원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노동청에 고소했다. 노조는 지난달 27일 지영흔 제주TP 원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고소했다고 4일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당시 지부장이던 A씨가 인사 운영과 관련한 건의 사항을 이메일로 전달했으나 해당 내용이 관련자들에게 공유되면서 A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후 경찰 수사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노조는 이를 두고 “노조 간부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전형적인 지배·개입 행위”라고 규정했다. 노조는 "2024년 근무성적평정 과정에서도 노조 지부장에게만 감점이 부여되는 등 표적성 평가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또 "승진 심사를 앞두고 사실관계 조사를 선행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공정성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가 강행됐고, 그 결과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기관장의 대응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노조는 “사안의 중대성을 알고도 내부 조사 역량 부족을 이유로 자체 조사를 거부했다”며 “오히려 외부 감사위원회에 직접 신고하라고 한 것은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TP는 이에 대해 사실관계 설명 자료를 내고 노조 주장을 반박했다. 기관 측은 “인사 관련 메일을 인사팀과 공유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통상적 업무 절차”라며 “특정인을 겨냥한 조치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근무성적평정 감점 논란과 관련해서는 “해당 감점은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인사위원회 심의를 통해 원상 회복됐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9월 정기 인사에서 해당 지부장이 1급으로 승진했다”며 “결과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이나 차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사 방식에 대해서도 “근무성적평정의 가·감점은 기관장 고유 권한에 해당한다”며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급 기관인 감사위원회 판단을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제주TP는 현재 감사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이며, 문제점이 확인될 경우 제도 개선과 책임자 조치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3·1절 연휴 마지막 날 제주 해상에 풍랑경보가 내려지면서 제주도와 다른 지역을 잇는 여객선이 모두 결항했다. 2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현재 제주도 북부·동부·남부앞바다와 남쪽먼바다, 남해서부서쪽먼바다에 풍랑경보가 발효 중이며 서부앞바다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 풍랑경보 발효로 이날 완도, 목포, 진도 등 제주도와 다른 지역을 잇는 여객선은 모두 결항했다.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가파도 등 부속섬을 잇는 여객선도 모두 결항이다. 또 제주도 육상 전역에는 강풍주의보, 추자도에는 강풍경보가 각각 발효 중이다. 이날 현재 지점별 최대순간풍속은 가파도 초속 27.4m, 한라산 사제비 초속 25.6m, 추자도 초속 25.5m, 우도 초속 24.5m, 대정 초속 24m, 유수암 초속 22.4m 등을 기록하고 있다. 강풍주의보 발효로 한라산 탐방도 일부 통제됐다. 현재 돈내코 탐방로는 전면 통제됐고 관음사 탐방로는 삼각봉대피소까지, 성판악탐방로는 진달래대피소까지, 어리목과 영실 탐방로는 윗세오름까지만 탐방할 수 있다. 기상청은 풍랑과 강풍으로 인해 항공·해상 운항에 차질이 있을 수 있으니 항공·해상교통 이용객은 사전에 운항 정보를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또한 강풍에 따른 시설물 피해에 유의해야 하며, 당분간 해안에 너울이 강하게 유입되면서 높은 물결이 갯바위나 방파제, 해안도로를 넘는 곳이 있겠으니 안전사고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야간에 노인이 사는 집에 침입해 강도행각을 벌인 40대가 구속됐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특수강도 혐의로 40대 A씨를 구속해 조사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0일 오후 9시께 서귀포시의 한 노부부가 사는 주택에 침입해 당시 혼자 있던 70대 할머니를 위협, 지갑에 있던 현금 8만원을 빼앗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근처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일주일 뒤 서귀포시 모처에서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여러 건의 동종 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달 1일 구속됐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고태민 제주도의원(애월읍갑)에 이어 양용만 의원(한림읍)까지 오는 지방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1950년대생 정치인들이 모두 물러난다. 양용만 의원은 4일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지금 제주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정치적 경쟁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농업 경제 기반을 굳건히 지켜내는 일"이라며 "고심 끝에 다음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고, 본인은 한 발 뒤에서 지역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양 의원은 "도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지역 주민의 삼과 산업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피고자 노력해온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이제는 의사당을 떠나 한 사람의 농업인이자 도민으로서 한림과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양 의원은 "그동안 보내주신 과분한 신뢰와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제주가 더 나은 미래로 나가는 길에 늘 함께하겠다"고 덧붙였다. 1959년생인 양 의원은 한림읍 귀덕2리에서 태어나 옛 제주전문대(현 제주국제대)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32세에 귀덕2리장으로 선출되며 지역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귀덕새마을금고 이사장, 한림라이온스클럽 회장, 한림청년회의소(JC) 회장, 한림읍발전협의회장 등을 맡아 다양한 지역 현안에 앞장서며 기반을 다졌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새누리당 소속으로 한림읍에 도전장을 냈지만 고배를 마셨고, 8년 뒤인 2022년 지방선거에서 재도전에 성공하며 도의회에 입성했다. 1956년생인 고 의원은 지난달 24일 “개인의 정치 일정에 앞서 애월과 제주의 앞날을 고민했다”며 “공동체를 위한 선택”이라고 밝히고 불출마 의사를 전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애월읍갑에 강재섭 전 제주도 농수축식품국장, 한림읍에는 이남근 비례대표 의원이 각각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올해 3·1절 연휴 기간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제주도관광협회는 다음달 2일까지 나흘간 항공과 선박을 이용해 16만5000명이 제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3·1절 연휴 기간(2025년 2월 28일∼3월 3일) 12만4395명보다 32.6% 증가한 수치다. 날짜별로 보면 27일 4만5000명, 28일 4만2000명, 3월 1일 3만8000명, 3월 2일 4만명 등이다. 국내선 도착 항공편은 모두 864편으로 지난해 774편 대비 11.6% 늘었다. 국제선 항공편은 지난해 75편보다 54.7%나 증가한 116편이다. 국내선 항공기 공급 좌석은 16만7253석으로 지난해 14만5826석과 비교해 14.7%, 국제선 항공기 공급 좌석은 2만1512석으로 지난해 1만3796석보다 55.9% 늘었다. 제주도관광협회는 3·1절 연휴 국내선 항공편 평균 탑승률을 90.1%로 예상했다. 아울러 연휴 기간 탑승객 7600명을 실은 크루즈 3편이 입항할 예정이다. 제주도관광협회는 "작년 3·1절 연휴 기간 기상악화로 국내선 항공 13편과 선박 9편이 결항했었다"며 "올해는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도 작년보다 증가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각종 성범죄를 저지른 40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제주지법 형사2부는 4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 착취물 제작·성 착취물 배포·성 매수·성 착취 목적 대화 등)과 미성년자의제강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40대 A씨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했다. A씨는 2024년 1월 21일부터 지난해 2월 27일까지 경기 성남시 주차장 등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게 된 12∼16세 아동·청소년 피해자 6명에게 돈과 아이패드, 담배 등을 제공하고 15차례에 걸쳐 성매매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지난해 1월 19일 제주지역 한 무인텔에서 16세 피해자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등 같은 해 6월 3일까지 아동·청소년 5명을 상대로 9회에 걸쳐 성 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도 있다. A씨는 피해자들이 미성년자인 줄 알면서도 범행했으며 성 착취물 일부를 SNS를 통해 배포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상당한 금액을 형사 공탁했으나 피해자 대부분이 수령을 거절하고 엄벌을 원한다"며 "다만 일부 피해자와는 합의하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로 제주에서 해마다 1000명 안팎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면허 자진 반납률은 2%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4년간 65세 이상 가해자 교통사고로 47명이 숨지고 4101명이 다쳤다. 연도별 사상자를 보면 2021년 975명(사망 9명·부상 966명), 2022년 993명(17명·976명), 2023년 1081명(13명·1068명), 2024년 1099명(8명·1091명) 등으로 연평균 사망 11.75명, 부상 1025.25명이다. 사고 유형은 차대차 3394명(사망 19명·부상 3375명), 차대사람 518명(12명·506명), 차량단독 236명(16명·220명) 순이다. 차량 단독 사고는 사상자 대비 사망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최근에도 80대 이상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 사고가 연이어 이어졌다. 지난 26일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 중앙로터리 인근에서 8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상가로 돌진해 3명이 다쳤다. 23일에는 80대 남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제주시 한 주민센터로 돌진해 운전자가 다쳤다. 하지만 고령운전자의 면허증 자진 반납은 저조한 실정이다. 최근 5년간 도내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31만8962명 중 자진 반납자는 6741명으로 연평균 반납률은 2.11%다. 연도별 반납률은 2021년 1.87%(5만3685명 중 1004명), 2022년 2.27%(5만8585명 중 1330명), 2023년 2.05%(6만3559명 중 1421명), 2024년 2.06%(6만8648명 중 1421명), 2025년 2.25%(7만4485명 중 1682명)다. 도는 올해부터 '고령운전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지원 사업'을 개선해 반납자에게 교통비 20만원을 지원한다. 운전 경력이 없는 경우엔 10만원을 지급한다. 신청은 읍·면·동 주민센터나 제주운전면허시험장에서 하면 된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김창식 제주도의회 교육의원(제주시 서부 선거구)이 제주도교육감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김 교육의원은 27일 오후 제주도의회 기자실을 찾아 “오는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교육의원은 “주변의 권유와 기대 속에 제주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며 출마를 준비해왔지만 깊이 숙고한 끝에 출마하지 않는 것이 도민과 교육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은 정치적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과 직결된 공적 약속”이라며 “선거를 통한 승패보다 제주 교육의 방향성과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육의원은 “이번 결정이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선택이 되길 바란다”며 “비록 후보로 나서지는 않지만 제주의 동반자로서 교육 발전을 위해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사가 존중받는 학교 현장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제주 정가에선 이번 지방선거부터 교육의원 제도가 일몰제로 폐지되면서 현직 교육의원들의 교육감 선거 출마 가능성에 관심이 쏠려왔다. 김 교육의원을 포함해 고의숙·오승식 교육의원 등 3명이 잠재 후보군으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제주지역 언론 5사 공동 여론조사에서 김 교육의원의 후보 선호도는 4%에 그쳤다. 현직인 김광수 교육감이 30%로 가장 높았고, 고의숙 교육의원 10%, 송문석 전 교장 4%, 오승식 교육의원 3% 순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지지율이 불출마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지지 후보 없음·모름·무응답’이 49%에 달해, 향후 판세는 여전히 유동적이라는 분석이다. 해당 조사는 제주지역 언론 5사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일까지 만 18세 이상 제주도민 80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6.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6·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도지사 선거판에 변수가 등장했다. 소나무당 소속이던 양윤녕 예비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복당과 함께 도지사 경선 참여를 공식 요청하고 나섰다. 양 예비후보는 27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영길 대표가 소나무당 해체와 민주당 복당 의지를 밝혔고, 이날 복당이 의결됐다”며 “저 역시 11년 만에 민주당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이 민주당 도지사 경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당 차원의 절차 마련을 촉구했다. 양 예비후보는 “소나무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한 만큼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정정당당히 경쟁할 기회를 달라”며 “민주당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성공을 뒷받침하고, 도민 곁에서 제주를 위한 일꾼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또 “제주를 위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며 “중앙 정치 경험을 제주 발전으로 연결하겠다는 약속은 말이 아닌 실행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지사를 향한 견제도 이어졌다. 양 예비후보는 “4년간의 도정 성과는 당과 도민 앞에서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며 “자리의 이동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무게를 따져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송영길 대표의 복당은 분열을 넘어 통합과 확장의 정치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라며 “지금 제주에는 갈등보다 통합, 분열보다 결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출신인 양 예비후보는 1987년 평화민주당을 시작으로 새정치국민회의 기획조정국장, 민주당 민원실장 등을 지내며 오랜 기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해왔다. 이후 탈당해 민주평화당 제주도당위원장, 민생당 총무부총장, 소나무당 제주도당위원장 등을 맡으며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6·3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 예정인 국민의힘 문성유 전 기획재정부 실장이 3일 더불어민주당 공천경쟁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도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의 권력 보험과 집안싸움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지적했다. 문 전 실장은 “민주당 정치인들의 '무능'이 제주 경제를 고사시키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지난 4년 민주당 도정은 서로 협력하여 제주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기는커녕, 사사건건 주도권 다툼과 엇박자로 일관해 왔다"고 비판했다. 문 전 실장은 "도지사는 70만 도민의 삶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자리는 정치 경력의 확장 수단이나 선택 가능한 경로 중 하나로 가볍게 다뤄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만약 도지사에 출마하겠다면 그 선택은 분명한 책임과 각오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선 결과에 따라 다시 기존 직위로 복귀하는 방식은 도지사직의 무게를 가볍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경쟁자가 되는 것은 정치의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으나 정책 경쟁 대신 인신공격과 과거 들추기가 앞서는 모습은 제주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며 "경쟁에 눈먼 정치꾼이 아니라, 제주민생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실행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의 모든 지식을 ‘영끌’해서 생명창조의 야망에 쏟아붓는다. 그의 피조물은 그의 또다른 자아인 셈이다. 모든 창작자(철학자ㆍ음악가ㆍ작가 등)들에게는 자신을 대표해줄 자신의 ‘대표작ㆍ걸작(Magum Opus)’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에게 자신의 ‘매그넘 오푸스’는 자신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의 매그넘 오푸스는 곧 그 ‘피조물’이고, 그 피조물이 실패로 규정되는 순간 프랑켄슈타인의 인생 자체도 실패로 규정될 수밖에 없이 둘은 한 몸으로 엮여버린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끔찍한 실패로 확인된 ‘대표작’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고 작품목록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한다. 그러나 피조물은 자신이 프랑켄슈타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기를 원한다. 그 갈등은 결국 프랑켄슈타인이 북극 끝까지 도망치고, 괴물은 북극 끝까지 추적하는 ‘복수극’으로 이어진다. 한 몸이 벌이는 참으로 기이하고도 처절한 아귀다툼이다. 하나의 몸에서 2개의 서로 다른 자아들이 벌이는 끔찍한 갈등은 ‘암피스바에나(Amphisbaena)’적이다. 암피스바에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페르세우스가 잘라버린 머리 9개 달린 메두사의 머리를 독수리가 물고 갈
요즘 사람들은 모이면 주식 아니면 인공지능(AI) 이야기다. 설 연휴에도 상당수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천피’ ‘천스닥’을 넘어선 증시에 일찍이 투자한 경우나 다양한 기능의 AI 도구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이들에게나 흥미롭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대학을 나오고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불안해한다. 이런 판에 11일 발표된 1월 청년층 고용률은 2021년 이후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체 고용률은 61.0%로 1년 전과 같은 반면 청년층 고용률은 1.2%포인트 하락한 43.6%로 전체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 수가 3년 3개월째 감소하는 ‘취업 빙하기’가 이어졌다. 일도, 구직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는 278만명으로 1월 기준 역대 최대다. 특히 청년층은 46만9000명으로 지난해 1월 대비 8.1%(3만5000명) 증가했다. 그만큼 취업문을 두드리다 포기하는 청년이 많다는 의미다. 청년층에게 고용시장 벽은 갈수록 높아지는 모습이다. 기업들이 경기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에 경력직ㆍ수시 채용으로 바꾸면서 신입 공채를 줄인다. 그 영향으로 대학 등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아버지 역할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아버지(찰스 댄스 분)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메리 셸리는 아마도 이 아버지의 역할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사고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델 토로 감독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는 전혀 다른 아버지를 등장시킨다. 이 정도의 변주라면 전혀 다른 곡에 가깝다.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혹한 체벌을 동반하는 강압적 교육방식을 택한다.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피가 나도록 채찍으로 갈긴다. 그러나 원작 속 아버지는 온화하고 도덕적이고 합리적이며 윤리성이 결여된 아들의 ‘선을 넘는’ 과학적 열정을 경계하는 합리적인 계몽주의자로 그려진다. 원작자인 메리 셸리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장면이 있는데, 델 토로 감독은 이 부분은 아예 들어내 버린다. 원작에서 과학자인 아버지는 어린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하인리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Heinrich Cornelius Agrippaㆍ1486~1535년)라는 중세의 괴도사(怪道士) 연금술 책을 탐독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사춘기
10대 그룹이 앞으로 5년간 270조원을 지방에 투자하기로 했다. 아울러 올해 5만16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청년채용 기회를 늘리고 지방투자를 확대해달라고 요청하자 이같이 화답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놓던 투자ㆍ고용 보따리라서 새롭지 않지만, 올해 규모는 더 크다. 이 대통령은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에도, 지방에도,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세대에도 골고루 온기가 퍼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5극3특(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체제로 지방에 새로운 발전의 중심축을 만들고 집중 투자할 테니 기업들도 보조를 맞춰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에 지원을 늘리는 ‘가중지원 제도’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특별법 도입을 내세우며 지방에 더 기회 요소가 있다고 강조했다. 10대 그룹은 반도체 설비,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ㆍ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지방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대로 투자가 이뤄지면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0대 그룹 외에 다른 기업들 투자를 합치면 3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이끌기를 법으로만 하고 다스리기를 형벌로만 하면 백성이 법과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다. 이끌기를 덕(德)으로 하고 다스리기를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바로잡아 선(善)에 이른다.” 『논어』(論語) 위정편 제3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 ‘공정’과 ‘상식’의 대명사였다. 국내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 법대 출신이란 점에서도, 검사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기개에서도, 그리고 검찰총장이 되고 나서도 권력에 굴하지 않는 풍모에 그렇게들 생각했다. 물론 동의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지지자들은 그랬다. 오늘(1일) 대통령의 담화를 보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서다. 대통령의 말이 그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많은 수치와 통계적 이유를 들어 의사단체의 부당한 논리를 공박하는 지금의 판단 때문이다. 지금이 이런 수치와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인지 의문이 들어서다. 윤 대통령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틀린 말도 아니지만 지금 그런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이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일 때인지도 의문이다. 정부와 의료
담쟁이가 뒤덮인 돌벽 한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색 방수포가 뒤덮은 객석 바닥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공연을 품던 무대는 무너진 채 흉터처럼 갈라진 흔적만 남았다. 한때는 웃음과 박수로 가득했던 자리에 이제는 공사 차량 자국과 철거 상흔만이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제 잔해와 철거의 상처로만 존재한다. 청춘의 기억을 간직한 무대, 가족과 함께한 영화 관람, 동네 아이들이 뛰놀던 객석의 풍경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건축물과 그것을 지켜보는 허탈한 눈빛뿐이다. 현장을 찾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무대를 배경으로 보낸 낭만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벽체를 손으로 짚으며 "아직 숨 쉬는 건물인데 왜 이렇게 급히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0일 오후 이중섭 거리를 찾은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멈췄다. 회색빛 공사판 가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무너진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이는 "관광지에 왔더니 왜 철거 현장만 남았느냐"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전국은 요동쳤다. 17개 시·도가 일제히 비상 체제로 흔들렸다.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그 때 제주에서는 도청 본관 출입문이 닫혔다. 밤 11시 17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3분까지다. 이 조치가 단순한 '출입문 통제'였는지, 아니면 '청사 폐쇄'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제주도정은 곧바로 '불법 계엄 동조' 의혹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부재'가 있었다. 오 지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날 저녁 저는 제주에 없었다. 서울에서 기업인들과 면담을 마친 뒤 오산에서 식사를 했고, 오후 9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택으로 이동해 비서실장과 특보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새벽 1시 30분 도청 회의를 소집해 "군·경은 상부 지시가 있더라도 따르지 말라"는 불복 지침을 명확히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단의 질문은 한 가지로 모였다. "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달 3일 새벽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속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제주남초)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이었다. 정당 참관인과 투표 사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5시 30분, 개시 준비가 본격화되자 사무원은 참관인을 상대로 투표지와 도장, 봉인 스티커를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봉인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고, 투표소는 긴장감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6시 35분. 한 50대 남성이 조용히 투표소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내민 그에게 여성 사무원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던 순간, 전산 시스템에는 이미 '사전투표 완료'로 명시돼 있었다. "혹시 사전투표 하지 않으셨어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원은 옆 동료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재차 "29일에 혹시 사전투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분증을 챙겨 빠르게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관인과 사무원들
글을 열며 페르낭 브로델은 말한다. “한반도는 일본 열도, 만주, 시베리아, 중국에 둘러싸인 독특한 전략적 위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맞는 말이다. 한반도에 속한 제주도는 어떤가? 바다 한가운데 섬 제주도는 과거 고려(원나라), 조선의 유형지가 되었고, 말이 주인이 되는 섬이었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일본의 대륙 진출이나 남태평양,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되는 지역이다. 왜구들만이 아니라 동인도 회사의 네덜란드·영국·프랑스인들이 바타이유-나가사키 혹은 인도-홍콩-상하이-오사카 항로 중 물, 식량, 땔감 등을 공급받을 수 있는 중간 거점지역으로 이용되었다. 특히 군사적으로 중국의 일본 침략과 일본의 중국 침략을 위한 전략적인 섬이었기에 조선의 변경은 곧 안보의 최전방이 되었다. 한편 역사적으로 한반도 본토 정부는 제주 섬 주민들의 숨통을 한시라도 놓지 않는 바람에 생산력이 매우 낮았다. 과다한 진상으로 인력의 강제 동원되고 말(馬)과 남자들이 필요한 만큼 부족해지자 남자가 비어있는 자리에 여정(女丁)이라는 이름으로 여자들을 성담에 올렸으나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끝내 200여 년 동안 출륙금지령을 내리고 중앙집권화의 길을 갔다. 성리학의 예의는 과도한 요역(徭役)과 진상이 필요하면서 사람의 경작할 노동력과 노동시간을 빼앗아버려 생산력이 낮아져 섬의 경제적 규모가 빈약하게 작아졌다. 그러므로 제주인들은 자신의 역할 부담을 위해서는 여러 개의 계를 들어야만 충당할 수 있었고 지금도 생활 속에 그 여진이 남아있다. 또한 왜구들은 바깥 세력으로써 급작스러운 곤란을 가져다주는 환난이었다. 해안 지역을 수시로 침략하여 살인, 납치, 강간, 약탈을 일삼고는 동쪽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서 왜구는 사라져도 왜구의 본성은 그대로 남아있어 조선 말기에도 왜구는 사라져도 일본인이라는 이미지 속에는 여전히 왜구의 얼룩이 드리워져 있었다. 외세의 일관된 특징이 있다면 분명 어떤 구실과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약소국의 생존도 약자처럼 유리한 위치에 제대로 설 수 없으므로 늘 불안하다. 섬의 안보는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 비로소 지켜지고, 국가는 그 이름을 앞세워 안보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힘의 토대는 규모 있는 경제가 말해준다. 한번 사람이 어딘가에 발자국을 남기면 꼭 누군가도 그 길을 따라간다. 처음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 대로(大路)가 되는 것처럼 처음의 침탈이 어려운 것인데 두 번, 세 번이 될수록 지리·지형·정보가 축적돼 더욱 손쉽게 다시 그곳을 지배하려고 한다. 제주라는 지형이 왜구의 상륙을 더디게 하는 천연 요새이기는 했으나, 섬사람들이 스스로 편의를 위해 만든 물길을 열어버려 포구나 하천 하구가 다시 그들의 적당한 상륙 지점이 되었다. 대개 왜구가 침략한 마을들은 앞바다가 트이고 선박이 드나들기 좋은 지형을 가진 곳이다. 화북포가 그렇고, 천미포가 그렇고 모슬포가 그러했다. 편리한 대신 매우 쉽게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물며 외부적 요인이 어려움을 가져다줄 때는 내부적 요인은 더욱더 큰 위기를 빨리 부른다. 21세기 제주를 새로운 문명의 땅으로 이끌지는 못해도 여전히 제주인들은 상상 속에서라도 이어도를 꿈꾼다. 그러나 우리는 구식이 될 수는 없다. 상상은 결코 현실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에서 있음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현실은 현실적으로만 사고할 때 이루어진다. 왜구는 한때 역사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 집단, 국가인 한에서는 언제라도 왜구의 길과 같은 본성을 숨기고서 다른 어떤 이름으로 혹은 어느 장소에 제2, 제3의 왜구의 모습으로 재등장할 수가 있다. 서양 세력을 보면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시대정신이 또 다른 왜구를 분쇄하는 것이다. 동맹도 이익을 위해서는 협박하는 오늘날 국제정치에 또 다른 왜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기우(杞憂)일까? 왜구의 구분에 대하여 왜구라는 말은 원·명나라 혹은 고려·조선의 기록에서 살상과 약탈을 저지르는 일본인 혹은 일본인 집단체로 부르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왜구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전기(前期)에 걸쳐서 일본인으로 구성된 무장 집단에 의해 행해진 약탈 및 납치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본 학계에서는 왜구의 구분을 전기 왜구(前期倭寇)와 후기 왜구(後期倭寇)로 나누어 말한다. 전기 왜구란 14~15세기의 왜구를 통칭하며, 후기 왜구는 16세기의 왜구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전기 왜구는 일본인으로 구성된 집단인 데 반해, 후기 왜구는 일본인이 10~20% 정도이고 대부분은 중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 일본 왜구 연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사실 왜구를 전기 왜구(前期倭寇)와 후기 왜구(後期倭寇)로 처음 구분한 일본인 학자는 1959년 다나카 다케오(田中健夫)로 이 말을 유행시킨 인물이다. 왜구에 대한 이 이분법적 구분은 지금도 왜구 연구자들에게 즐겨 사용하는 역사 개념이 되고 있다. 또 다케오는 왜구라는 개념이 성립되고 고려인이 그것에 대한 인식이 고정된 시점을 1350년 경인년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14~15세기 왜구가 전기 왜구의 출발이라고 설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라이 쇼스케(村井章介)는 다나카가 전기 왜구 구분에서 누락시킨 13세기 왜구를 문제 삼아 다시 ‘초발기 왜구’라고 새롭게 규정하면서 3분법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해 역사학자 김보한은 다나카의 전기·후기 왜구 구분과 누락된 13세기 왜구를 보강한 초발기·전기·후기 왜구라는 무라이의 구분이 시대적인 전개 과정에서 불안정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논지에 대한 대안으로 일본사 시대 구분을 새롭게 적용하여 가마쿠라기·무로마치기·센고쿠기 왜구라는 개념으로 3구분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마쿠라기 왜구는 1223년부터 1323년까지 왜구를 말한다. 무로마치기 왜구는 시기적으로 고려말과 원말·명초가 겹치는 시기에 출현하기 시작해 지역적으로는 고려의 남해·서해안을 거쳐 산둥반도와 중국 연해로 연결되는 무역로를 따라 동아시아까지 활동했던 15세기 왜구를 말한다. 센고쿠기의 왜구는 16세기에 활동했던 왜구로 설정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이제, 학문으로 구걸하는 방식의 거지를 살펴보자. 기록에 따르면 청대에 항주(杭州) 전당문(錢塘門) 밖 소경사(昭慶寺)는 향불이 끊이지 않았다. 유람객이나 참배객이 많을 때마다 거지들이 들끓었다. 하루는 소흥(紹興)에서 온 거지가 나타났다. 여위어 파리한 얼굴에 해학이 있고 전고를 알았으며 소학에도 능통하였다. 그는 다른 거지들하고는 달랐다. 다른 거지들처럼 시장에서 소리 지르지도 않았고 길거리에서 구걸하지도 않았다. 매일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담소를 즐기며 타인의 갈등도 중재하였다. 글자의 음과 글자의 뜻을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게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꺼이 보시하였다. 10문을 주는 사람도 있었고 20문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돈을 얻으면 밥을 실컷 먹는 것 이외에 남은 돈으로 술을 사서 통쾌하게 마신 후 술에 취하면 곤한 잠을 잤다. 그렇게 반년을 생활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는 나타나지도 않았고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청나라 말기에 상해에 팔고문(八股文)을 읊으며 구걸하는 30여 세 난 거지가 있었다. 뛰어난 팔고문을 1문과 바꾸는 것을 본 서생이 가련하기도 하고 한스럽기도 하여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자 거지가 대답하였다. “나는 중년에 곤궁해졌소. 주머니에 한 푼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실로 수치스러우니 다시는 묻지 마시오. 당신이 내게 낡은 신발이라도 한 켤레 주신다면 고맙기 그지없겠소.” 낡은 신발이 없던 서생은 절구 두 수를 짓고 읊으면서 수십 청부(靑蚨, 돈의 별칭)1)을 건넸다. 그가 읊은 시는 이렇다. “초췌한 청삼에 눈물이 계속 흐르나니, 문인이 곤궁하게 되니 가장 애처롭구나. 퉁소를 부는 재주 배우지 못해 명가의 팔고문을 낭송하는구나. 어휴, 나 역시 가난한 서생이라 당신께 청부를 주노니 적다고 책망하지 마소. 같은 문인으로 의론하고 싶으니 오늘부터랑 절대 가난한 집에 가지마소.” 거지는 시를 받아들고는 즉흥시를 읊었다. “더덕더덕 기운 옷 백번 기워 세상에 나섰으니 곤궁에 빠진 이 몸 누가 연민을 느낄까. 세상사 험난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오늘 당신을 만나니 가난한 사람 구제해주시는 구려.” 곧바로 자리를 뜨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궁상스런 가난한 서생의 처지가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옛날 서생은 시문과 같은 학문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생계 수단이 없어 거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배운 학문이 구걸하는 밑천이 되었을 뿐이다. 위 둘을 비교하면 소흥 출신의 젊은 거지보다 중년 거지가 처세관을 보면 트여있기는 하지만 그저 몰락한 서생일 뿐이다. 이쯤 되면 노신의 단편소설 『공을기(孔乙己)』가 떠오를 것이다. 공을기가 전형적인 거지로 전락한 서생이 아니던가! 공을기는 결국 부상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공을기가 사회 변화를 읽지 못한 비참한 독서인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거지의 구걸 방식을 종합해보면 사람이 일단 곤궁해져 몰락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여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아가게 되면 염치를 헤아리지 못하고 온갖 추태를 부리게 되고 타락해 죄악을 저지르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해지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되면, 거짓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인간세상의 여러 세태가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한, 먹기 위한, 욕망을 위한 본능이 낱낱이 드러나고 세상의 추태와 비극이 만들어진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역시 거지 현상을 없애야 한다. 단체적인 병환은 언젠가는 치료해야만 한다. 인류가 살아가는 무대에서 거지가 차지했던 자리는 영원히 역사의 유산으로만 남길 수 있도록 하여야한다. 고금에서 거지가 구걸하는 그림, 거지도(圖)는 인간 사회 생활사의 변태적 투영이며 하층사회의 생활사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청부(青蚨)는 전설 중의 곤충 이름이다. 별칭은 ‘부선(蚨蟬)’, ‘모와(蟱蜗)’, ‘포맹(蒲虻)’, ‘어부(魚父)’, ‘어백(魚伯)’ 등이 있다. 원형은 ‘물장군’일 가능성이 크다. 청부가 아들을 낳았는데 모친과 아들이 헤어지면 반드시 만난다고 전한다. 청부 모자의 피를 돈 위에 뿌려 놓으면 모친의 피를 묻힌 돈이나 아들의 피를 묻힌 돈은 사용하고 난 후에도 반드시 돌아온다고 전한다. ‘청부환전(青蚨還錢)’이란 전설이다. ‘청부(青蚨)’는 돈의 별칭이 되었다. 우리 말 뜻은 ‘파랑강충이’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무협소설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연재했던 무협소설의 시즌 2입니다. 무협은 무술(武)로 협(俠, 의기로울)을 이룹니다. 창작인 소설이 더해져 무협소설이 됐습니다. 퓨전무협 소설입니다. 무협의 묘미는 살리기 위해 일상적인 무협용어는 사용했지만, 해석이 힘든 용어는 현대어로 풀어썼습니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습니다. 이름을 차용 당한 인물들은 제주에서 ‘공인’입니다. 공인다운 아량으로 소설인 점을 이해 부탁합니다. 무협소설 주인공들이 매번 외치는 기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갈(喝)∼” [편집자 주] 영훈공의 시간은 빠르게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달력이 보이는 순간 멈칫했다. 1968년 12월이었다. 양팔과 양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갈(喝)∼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응앵!’ 소리밖엔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생시(生時)인가, 꿈인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포근해졌다. 영화를 보듯 마음 느긋하게 관람하기로 했다. 영상이 100배속으로 흐른 후였다. ◆총학 주니어맹주 등극 비하인드 스토리 초등 수련생 시절이 보였다. 집에서 왕복 6km에 달하는 흥산초등수련장을 걸어 다니며 축지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수련장에서 돌아오면 농사무공도 익혔다. 지금 같으면 아동수련생 학대였다. 하지만, 그 시절 시골무림에선 다들 그랬다. 남원중·서귀포고무림을 거쳐 제주대무림에 입학했다. 그의 첫 수련장은 한라산 교지편집위원회. 당시 학생무림 최대 쪽수(인원수)를 자랑했던 NL(민족해방) 계파에 신진 이론을 수혈하는 전위(前衛)조직이었다. 운동무림 엘리트 코스에서 출발했던 것이었다. 다시 100배속. 무림 1993년. 자타공인 제주학생무림 총학 주니어맹주로 등극하고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기억났다. 총학캠프에선 기환 수련생(현 민주노총 제주방주)을 비무 후보로 내세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환 수련생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반대 시위를 벌이다 갑작스레 포졸에게 붙잡히고 만다. 캠프에선 급히 다른 후보를 찾았고, 간택된 것이었다. 단독 후보여서 찬반 비무로 진행됐고, 학생 무림인 선택을 받았다. 무림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 정치무림 한길만을 걷게 된 운명의 서막이었다. 대학무림을 졸업한 직후인 무림 1994년 3월, 도자무공을 연마하는 선희낭자와 혼인하고 있었다. “내 나이 만 25세였어.” 영훈공은 흐뭇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선희 낭자와는 CC(캠퍼스 커플)였다. 더 좁히면 운동무림 동아리 커플. 신념과 이론을 격렬하게 공감한 동지가 혼연일체가 된 최고 수준의 관계. 동지와의 연애가 최종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속도위반설이 난무했지만, 묵언초식으로 대응했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다. 영훈공은 영상을 잠시 멈추고 채널을 돌렸다. 선희 낭자 특집프로였다. ◆선희 낭자는 누구인가? 제주대무림 88학번. 제주무림 도예무공 1세대로 꼽힌다. 도예무공 수련을 시작하면서 본인과 약조했다. ‘1일 1그릇(1표)’ 빚기, 신혼 초엔 갓난아이의 요람을 흔들며 물레를 돌려 그릇(표)을 빚었다. 한때는 내조의 여왕이라고도 불렸다. 지금도 회자된다. ‘선(先) 선희 낭자, 후(後) 영훈공’. 영훈공이 비무장에 도착하기 전엔 어김없이 선희 낭자가 있었다. 미리 도착해 분위기를 돋우는 방식으로 유권자 무림인에게 어필한 것이었다. 이후 은유의 달인, 명언 제조무사로 불리며 영훈공 정치 동반자급으로 올라섰다는 평도 있다. 무림 2023년 2월 월간리뷰무림에서의 인터뷰.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고도의 언어무공 진수를 선보이며 증명했다. “도자기(도백) 하나가 나오기까지 깨질 수 있는 요인은 수백 가지다. 그걸 다 통과하고 1000도가 넘는 불(마타도어)을 견디는 작품(무사)만이 살아남아 결과물(당선)을 낸다! 그게 도예(정치무림)의 세계다!” 무림 2025년 11월 18일이었다. 영훈공이 석열 전 지존 계엄무공을 펼칠 당시 자택수련을 했다며 정적들에게 협공받을 당시였다. 자신의 SNS에 어록을 남겼다. “도예무공인만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운명은 불이 굽는다는 것을…. 흔들리고 깨져도 나는 그 길을 간다. 그이(영훈공)도 그러하리라.” 무림 2025년 12월 29일 그의 SNS에 때아닌 갈(喝)∼ 기합이 울려 퍼졌다. ”어디에서든 흙과 이쑤시개만 있으면 그 무엇(재명지존 라인)이든 만들어 낼 수 있게 됐어!“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도예무공 득도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이었다. 영훈공은 선희 낭자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며 화답했다. ◆‘와신상버섯’ 대반전 드라마 영훈공이 다시 채널을 고정시켰다. 중원무림 민주화를 이끈 근태거사 라인이었던 20대 후반 모습이 보였다. 새정치국민회의방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사회 무림에 뛰어든 것이었다. 직책은 근태거사 특별보좌무사. 낭만적인 학생무림이 아니었다. 비정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될지 모르는 실전 무림이었다. 병법서를 손에 놓지 않으며 조금씩 공력을 높이고 있었다. 너덜거리는 병법서를 빨래집게로 집으며 표 계산을 했다. 출전 가능할 정도로 표가 쌓여 있었다. 무림 2002년. 제주도의회 무림비무에 새천년민주방 무사로 첫 출전했다. 실전은 높디높은 벽이었다. 한나라방 석현검에 밀려 패배했다. 하지만 4회와 5회 비무에선 연달아 승리. 2선 도의회무림 의원이 됐다. 무림 2012년 도의회무림 의원직을 전격 사퇴하곤 첫 승부수를 던졌다. 중원무림 의원 경선에 나선 것이다. 상대는 중원무림 2선 의원 우남거사였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패배했다. 졸지에 백수가 된 것이었다. 곧바로 낙향했다. 아버지 버섯 농장에서 일을 하며 값비싼 웅담 대신 갓 딴 표고버섯을 날것으로 씹으며 검을 갈았다. 표고버섯으로 단련한 ‘와신상버섯’이었다. 무림 2016년에 치러진 총선무림 경선에서 ‘국회 무림의 꽃’이 된 3선 우남거사와 다시 만났다. 표고버섯이 공력을 급상승시켰던 덕분이었을까. 우남거사를 누르는 대반전 드라마를 썼다. 여세를 몰아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이후 2선 중원무림의원이 되어 있었다. 무림 2020년 낙연거사 라인을 부여잡았다. 수석비서 수하까지 맡으며 중원무림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뿔싸. 낙연거사가 대권 경선비무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대권무림 경선 후보였던 재명거사 라인으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현타의 아침’ 영훈공 기합의 의미는 희룡공이 변방의 용이 아닌, 중원의 용이 되고 싶다며 제주맹주직을 사퇴한 후 대망의 무림 2022년 시점이었다.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중원무림 의원 전격 사퇴. 경선비무에서 대림검과 붙어 승리했다. 53.13%. 격차는 6.28%. 본선은 너무나 쉬웠다. 무림여론조사 지지율이 워낙 높았다. 뜨끈뜨끈한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 마시며 여유롭게 유세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벌일 정도였다. 55.14%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때였다. 영훈공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묘시(卯時)였다. ‘현타의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현실 자각 타임. 잠을 잘 때도 손에 쥐고 자는 스마트폰을 켰다. 요새 들어선 하루에 2~3번도 SNS에 쓰곤 했다. 음성모드로 전환한 뒤 짧고 강렬한 기합을 질렀다. 갈(喝)∼. 같은 시각 밤을 지새우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호검이 영훈공 SNS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맹주의 고뇌가 한없이 응축된 문장, 갈(喝)~. 고수는 단숨에 안다. 단 한 자 안에 고농축된 수십 년 무림사가 읽혔다. 호검이 이해 가득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영훈공이 잡은 중원무림 라인은 누구인가?” 몹시도 궁금했다. 호검은 급히 정가의보검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가의 보도’를 살짝 비튼 이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 오랫동안 중원무림 책사로 활약하다 낙향해 한라산 중턱에서 은둔 중인 무사였다. 정가의보검은 기다렸다는 듯 초스피드로 답변을 보냈다. “으하하!! 영훈공은 무림 2026년 2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모처에서 서울시맹주 출격 예정 무사와 밀실 회동할 예정이다. 재명지존이 공들여 키우는 최애(最愛) 무사 원오 성동구방주다. 제주무림 판을 뒤흔들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
무협소설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연재했던 무협소설의 시즌 2입니다. 무협은 무술(武)로 협(俠, 의기로울)을 이룹니다. 창작인 소설이 더해져 무협소설이 됐습니다. 퓨전무협 소설입니다. 무협의 묘미는 살리기 위해 일상적인 무협용어는 사용했지만, 해석이 힘든 용어는 현대어로 풀어썼습니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습니다. 이름을 차용 당한 인물들은 제주에서 ‘공인’입니다. 공인다운 아량으로 소설인 점을 이해 부탁합니다. 무협소설 주인공들이 매번 외치는 기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갈(喝)∼” [편집자 주] 호검이 더불어민주방 라인 분석에 몰두하던 시각이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중원무림과 제주무림의 라인.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라인은 단숨에 잘라내면 간단했지만, 현실을 그리 녹녹지 않았다. 같은 시각.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자시(子時). 제주맹주 영훈공은 제주도청방 집무실에서 홀로 병법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자병법과 함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오자병법. 격하게 고독할 때 펼쳐보면 위안이 됐다. 중국무림 전국시대의 명장, 평민 백수에서 시작해 재상이 된 무사 오자(吳子). 성씨도 같은 오(吳)씨를 썼다. 자신의 무사 이력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승률만 빼곤 말이다. 오자는 76전 76승, 승률 100%다. 영훈공의 본선비무 공식 승률은 학생무림(제주대무림 총학) 포함 7전 6승이다. 85.71428571429%. 학구파 무사는 소수점 뒤 자릿수에도 예민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초식은 정밀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단 한 표도 놓칠 수는 없었다. 시간은 어느덧 축시(丑時)를 가리키고 있었다. 예전 ‘젊은 학구파 386세대 무사’로 주목받을 당시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새워도 거뜬했다. 영훈공은 눈을 비비며 잠을 쫓았다. 지금은 한가하게 졸 때가 아니었다. ◆연이은 협공, 고립무원의 위기 중원무림 의원 대림검과 전 의원 재호검이 ‘반(反) 영훈공’을 외치며 뭉쳤다. 당혹스러웠다. 한때 사투를 벌였던 그들이 협공을 펼치고 있었다. 더민주혁신회의방, 기본사회제주본부방, 국민주권도민행복실천본부방, 먹사니즘 제주네트워크방 등 온갖 민주방 성향 계파들도 ‘영훈공 도정은 뺄셈의 정치, 실패한 도정’이라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고립무원. 언제나 든든했던 후원무사들의 모임 용암회. 제주대총학 주니어맹주 출신 모임이었다. 학생무림에선 총학 주니어맹주를 성골, 부총 주니어맹주와 단대 주니어맹주를 진골로 치는 이도 있다. 용암회 가입 티켓도 일 년에 단 한 장, 총학 주니어맹주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성골만의 철옹성이었다. 주요 멤버 공개는 지금은 천기누설이다. 정 궁금하면 <퓨전제주무림 시즌 1>에 상세히 나와 있다. 어쨌든, 서귀포무림 성곤검의 제주맹주 출전선언으로 쪼개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영훈공은 습관처럼 제주도청방 홈피에 접속했다. 민망하고 불편한 게 있었다. 아내 선희 낭자에게도 말 못 할 게 있었다. 제주맹주 소개 페이지였다. 프로필엔 1968년 12월생. 걸어온 길엔 1968년 1월로 적혀 있었다. 자신들의 주군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레임덕 징후인가? 정전이 됐다며 암흑천지로 변한 제주도청방에서 ‘해피 버스데이 투 유!’하는 깜짝 파티는 못 해줄지언정. 격한 고독이 층층이 겹쳤다. ◆반로환동과 상일검의 극찬 영훈공은 반로환동(反老還童) 기억을 복기했다. 중원무림 재선 의원 출마 선언을 하던 2020년 1월이었다. 육체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반로환동 무공을 익힌 시기이기도 했다. 백발무사에서 짙은 검은머리 무사로 변신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보다 힘들다는 가르마 위치도 바꿨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화룡점정은 정밀한 2대 8 가르마. 정치 모범생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다. 클래식하고 세련된 멋으로 유권자 무림인에게 강한 어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지금은 무림에서 은퇴했지만, 당시 대항마였던 미래통합방 상일검과의 ‘숨 안 쉬고 칭찬 필리버스터‘ 맞짱 대결에선 극찬도 들었다. 이 또한 <퓨전제주무림 시즌 1>에 상세히 나와 있다. “영훈공은 마을의 촌로를 만나면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했으며, 목소리는 한없이 나긋나긋해지고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하지만 영훈공이 검을 뽑아 들기만 하면 그 날카로움이 바위를 가를 정도로 날카로웠으니 위기 대처 능력은 천하무림을 통틀어 대적할 자가 많지 않다.” 영훈공은 조금 위안이 됐다. 밤은 더 깊어만 가고, 시간은 인시(寅時)를 가리키고 있었다. 영훈공은 다시 오자병법을 폈다. 속임수 전술의 손자병법과는 달리 정공법 전략의 병법서였다. 지금은 무림의 신이 된 명장 충무공 순신사부 명언도 오자병법에서 따와서 변용시킨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영훈공은 다시 오자병법을 독파했다. 그리곤 잠시 명상에 잠긴 뒤 무릎을 쳤다. 역시 오자였다. 영훈공은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마음 깊은 곳에 봉인하기로 했다.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한결 마음이 놓인 영훈공이 창밖을 쳐다봤다. 순백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옛 기억이 소복소복 쌓이는 듯했다. 눈을 감고 회상했다. 겨울 동백꽃이 찬란하게 핀 1968년 동백마을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영훈공은 잠이 들고 말았다. 깊고 깊은, 달콤한 잠이었다. 타임무공을 하듯 자신의 무림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