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내게는 행운이자 기회였다. 당선과 더불어 낙선도 있었기에 나는 독선의 해악을 알게 되고 비전과 가치공유의 미덕을 학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첫 선거에서 낙선한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반성과 회한을 내 삶의 성숙을 위한 자양분으로 비축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신조대로 살았다. 그의 신조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였다.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제29대 관선 제주도지사를 거쳐 초대 민선 제주지사를 역임한 신구범. 1942년생인 그는 모진 풍파와 시련의 삶을 뒤로하고 향년 81세의 나이로 2일 아침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는 풍운아이자 좌절한 혁명가, 최고의 기획가였다. 그의 유년시절 기억 하나. 누구나 그렇듯 '제주현대사'였다. 조천읍 신촌리 태생인 그는 초등생 시절 '4.3폭도의 수괴'로 불린 이덕구의 아들과 단짝이었다. 그 단짝은 그 참상의 시기에 홀연 사라졌다. 그 기억을 더듬어 좌.우파로 나뉘어 치러지던 4.3위령제는 그의 지사재임 시절 처음으로 '합동위령제'로 치러졌다. 장년기 기억. 그는 농림부 축산국장 시절 한국마사회의 체육부 이관을 반대하다 당시 6공의 황태자인 박철언 장관에 '찍혀'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2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그는 오현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4년을 중퇴, 1967년 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로 입문했다. 제주도 기획관,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농무관, FAO(국제식량농업기구) 한국교체수석대표,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농업구조조정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YS정부 시절인 1993년 12월 제29대 제주도지사로 취임했다. 이어 첫 민선 지방선거인 1995년 6·27선거에선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31대 지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98년, 2002년 두 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후 축협중앙회장을 거쳐 친환경 농업회사법인인 (주)삼무와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운영했지만 지사 재직시절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2년여 옥고를 치렀다. 삼무힐랜드는 그의 수감기간 중 문을 닫았다. 축협중앙회장 시절엔 정부의 강제적인 농.축협 통합에 반발, 국회에서 할복사건을 벌여 파란이 일기도 했다. 인생의 굴곡과 고비마다 정면도전을 하며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는 그의 신조를 지켰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제주삼다수와 관광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교역, 제주세
오광협 전 서귀포시장이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서귀포시 호근동 출신인 고(故) 오광협 전 서귀포시장은 제주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탐라대 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9대 서귀포시장에 당선되면서 초대 민선 서귀포시장을 지냈다. 아울러 삼성여고 초대 교장,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 (사)산악인 오희준기념사업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1남 3녀로 빈소는 서귀포시 한빛장례식장 연꽃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제주출신 한국문단의 원로 한기팔 시인이 3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 한기팔 시인은 서귀포시 보목동 출신으로 서라벌예대를 졸업했다. 향토적인 서정을 노래한 제주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5년 시 전문지 ‘심상’ 1월호에 '원경', '꽃', '노을' 등 3편이 추천되면서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1978년 첫 시집 '서귀포'를 발간한 후 '불을 지피며', '서러운 날 바람의 초상', '순비기꽃' 등 40여 년간 시집 8권을 펴냈다. 그는 제주도문화상, 서귀포시민상, 제주문학상, 문학아카데미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장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서귀포지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문화 예술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빈소는 서귀포 한빛장례식장. 발인은 6일 오전 7시다. 장지는 서귀포시 토평동 가족묘지.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문대탄 우리공화당 상임고문이 18일 타계했다. 향년 84세. 문 고문은 1939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과대학 법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 제주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문 고문은 문재인 정권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문 정권에 맞서온 대표적 인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는데도 주력해왔다. 가족으로는 배우자 이혜선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이중 차남 건식, 장녀 건영, 차녀 건민이 사법시험, 3남 건협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현재 나란히 법조인으로 종사하고 있다. 장녀 문건영씨는 현재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빈소는 제주시 연북로 부민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8시. 장지는 서부시립묘지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김영호 초대 제주연구원장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김 전 원장은 제주교육대학 학장과 제주도 공직자윤리위원장, 제주시자원봉사협의회장, 동원학원 관선 이사장,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 교육.문화계의 원로로 불린다. 그는 민선 1기 신구범 지사시절인 1997년 3월 설립된 제주연구원의 전신인 초대 제주발전연구원장을 맡아 1998년 8월까지 재임하며 연구원의 기틀을 다졌다. 고인의 빈소는 제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제1분향실에 마련됐다. 장지는 양지공원이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10시 중앙성당 미사)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부동석 제주도관광협회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57세. 27일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병을 앓던 부 회장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새벽 생사를 달리했다. 고인은 협회장 취임 전부터 오랫동안 관광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착한가게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했다. 제주도배구협회 회장을 역임한 고인은 2019년 김영진 전임 회장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 이후 처리진 관광협회장 보궐선거에 단독 출마했다.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 제35대 관광협회회장에 오른 고인은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를 마친 2021년 2월 제36대 회장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고인의 임기는 2024년 2월까지다. 하지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현직 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관광협회는 당분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제2분향실. 31일 오전 6시 영결식을 거쳐 발인은 오전 7시. 연락처는 부인 한혜선 010-9491-1696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기자촌 건설에 앞장선 강승훈(姜勝勳) 전 대한일보 편집부국장이 지난 11일 0시 30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평화신문 기자로 일하다 대한일보로 옮겨 사회·체육기자로 활동했다. 1968년 기자협회 부회장 시절 기자촌 건설을 촉구했고, 1972년부터 2007년까지 기자촌에서 살았다. 1970년 제8대 총선을 앞두고 공화당 공천을 신청했다. 1975년 제주관광 대표이사로 옮겼다가 1992년 14대 총선에는 민주당 후보로 서귀포시·남제주군 지역구에 출마했다. 이후 대한언론인회 수석부회장, 서울언론인클럽 회장 등을 지냈다. '신문은 가도 기자는 살아 있다'(2004, 다락원), '영원한 사회부장 오소백'(2009, 서울언론인클럽 편찬위원회), '우리 시대의 언론사관 거인 천관우(2011, 일조각) 등 저서를 남겼다. 유족은 부인 김지연씨와 사이에 3남(강형범·강상범·강석범)과 며느리 강보민·김민정·이현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 13일 오전 9시, 장지 파주 하늘나라공원. ☎ 02-2227-7591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암 투병 와중에 제주4·3의 아픈 기억을 사진에 담아온 고현주 작가가 4일 오전 2시50분께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 1964년 서귀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주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6년간 서귀포 한 중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했다. 이후 어릴 적부터 꿈꿨던 사진작가가 되려고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02년 '재건축 아파트' 시리즈로 제5회 사진비평상을 받으며 사진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 찍기를 가르치며 삶의 희망을 전하는 '꿈꾸는 카메라' 작업을 했다. 그 결과를 모아 2012년 같은 제목의 단행본을 펴냈다. 제주 바다를 마주한 여인의 모습을 담은 '중산간(重山艮)'에 이어 2018년부터는 제주 4·3 체험자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참상이 이뤄진 곳에 희생된 이의 수만큼 등불을 켜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2016년부터 암 투병을 하는 와중이었다. 그 결과는 지난해 허은실씨가 글을 쓴 책 '기억의 목소리: 사물에 스민 제주 4·3 이야기'(문학동네)로 나왔고, 제8회 고정희상을 받았다. 오는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류가헌 갤러리에서 '기억의 목소리Ⅲ-제주 4·3 현장에서 올
뱃길 탐험가이자 시인인 채바다 한국하멜기념사업회 회장이 지난 1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서귀포시 성산읍 출신인 고인은 우리나라가 일본 고대문명의 기원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1996년, 1997년, 2001년 세 차례에 걸쳐 제주의 전통 배인 떼배(테우)를 타고 대한해협을 세 번이나 건넜다. 대학(한양대 화학공학과) 졸업 후 서울에서 화학약품.기자재 판매점을 하던 그는 1991년 가게를 아내에게 넘기고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홀로 고향인 제주 성산포로 내려왔다. 바다를 무대로 살아온 옛 제주 선인들의 발자취를 확인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어릴 때부터 이 일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왔다는 그는 그때 자신의 이름도 '채길웅'에서'채바다'로 바꿨다. 그는 제주로 오자마자 제주의 전통 배인 '떼배'에 매달렸다. 삼나무를 뗏목처럼 엮어 만든 이 배는 제주에서 고대부터 연안 어로나 해조 채취에 쓰여왔다. 그는 이 떼배를 이용해 북태평양 한 가운데 우뚝 선 제주섬 사람들이 외부 세계와 문명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했다. 2006년에는 고려 말 사라진 탐라국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테우를 타고 제주시 화북포구를 출발, 3박4일간 전남 완도를 거쳐 강진을 잇는…
신용준 전 제주한라대학장이 24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인은 1955년 중등교육계에 발을 들여 일선학교 교장, 제주도교육청 학무국장 등을 지냈다. 1984~1988년 초대 제주대사대부중·고 교장과 제주한라대 3~5대 학장을 역임했다. 제주한라대 학장 재직시절엔 초창기 간호전문대학의 면모를 일신시키며 대학기반 확장, 전공학과 증설, 전문인력 양성 등을 통해 대학교육행정의 기틀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공로로 세종문화상(교육부문)을 수상했다. 1999년엔 제주도문화상 교육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모란장도 받았다. 고인은 저술활동도 활발히 펼쳐 '학교경영과 리더십' '이형상 목사 제주시문선'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석하(제주국제대 교수)·원하·종하·정심·진명·진화씨가 있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제주호국원이다. 연락처는 010-3692-0283(신석하).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고창실 전 한라학원 이사장이 지난 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씨 전고공파 종친회가 제주전문대(현 제주국제대) 부학장, 한국공법학회 부회장을 지낸 고창실 전 한라학원 이사장이 지난 4일 오전 11시31분께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고인은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서 태어나 오현고, 제주대 법학과, 동국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1980년 제주상고 교사를 거쳐 1981년부터 제주전문대 행정학과 조교수를 시작으로 1994년 제주전문대 부학장을 지냈다. 1996년 한국공법학회 부회장, 2009년 제주도 공직자윤리위원장, 2013∼2015년 고·양·부 삼성사재단 제39대 이사장, 2017∼2020년 고씨종문회총본부 겸 탐라종묘문화재단 회장, 2018∼2020년 한라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서순자씨, 아들 고동현(제주시교육지원청 장학관)·고동우(제주대 교수)씨와 딸 고은경(전 중등 교사)씨가 있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제4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전 6시, 장지는 제주 아흔아홉골 선영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