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넘게 살아낸 후에는 다시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걸까. 마치 한 살 아이처럼 하루 종일을 끄덕끄덕 조시는 어머니가, 잠꼬대를 하신다. “장로님, 날 찾아줍서! 나 손 잡아 줍서...”. 아버지께서 대포교회의 장로가 되신 후로,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우리 장로님’이라고 불렀다. 아, 어머니가 몹시도 외로우시구나. 가슴이 저리도록 그리우신 게다. “어머니, 아버지는 천국에서 하루 종일 어머니를 지켜봠수게.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를 한순간이라도 잊으시쿠과? 보지 않고 어떵 살 수 이시카, 예?” 그럴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동서녘으로 이웃해서 사셨다. 마을 사람들은 리사무소가 있는 못동네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을 따라 ‘동동네, 섯동네, 알동네, 웃동네’라 불렀다. 아버지는 해가 떠오르는 동동네 허 장 할으방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그 유명한 동의보감의 허 준, 홍길동전의 허 균처럼, 양 천 허씨들은 이름을 외자로 썼다. 아버지는 1923년 1월 20일생, 양천 허씨 가문의 34세손이자, 제주도로 들어온 조상의 계보로는 24세손이다. 입도조(入道祖)인 송암공 허손(許愻)은 고려말에 대제학의 벼슬을 지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같이 조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