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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다시 등장한 '간첩단' 사건 ... 통일부가 북한영화 '공급책'이 되는 아이러니

 

『사기(史記)』는 중국 고대 왕국으로부터 전한(前漢) 시기까지 중국 1000년 역사를 다룬 책이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기술했다. 총 130권 52만6500자에 이른다. 방대한 분량도 그렇지만 『사기』가 빛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천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역사서의 귀감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 마지막 편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정치 지도자의 통치 형태를 5개 등급으로 나눈다. “고선자인지(故善者因之), 기차이도지(其次利道之), 기차교회지(其次敎誨之), 기차정제지(其次整齊之), 최하자여지쟁(最下者與之爭)!”

 

풀이하면 이렇다. “가장 좋은 것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순리(順理)의 정치며, 그 다음은 백성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다. 그 다음은 백성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정치며, 그 다음은 백성들을 단속하여 가지런히 하는 정치다.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들과 더불어 다투는 것이다."

 

백성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따르게 할 일을 놓아두고, 오히려 백성과 갈등을 일으켜 고통스럽게 하는 통치 행태가 최악이라는 것이다.

 

그렇게도 자신이 없나? 무에 두려울 게 있다고 이리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가? 이게 우리 존립의 근거인지 도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말 제주도내 진보정당 인사 3명이 압수수색을 받았다. 최근의 뉴스론 수사가 더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정작 제주에서 첫 뉴스가 나오던 지난해 말엔 중앙언론에서 별 반응이 없더니 연초부터 조선일보를 필두로 메이저 언론의 보도가 세세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948년 12월 1일에 제정된 이래 그 동안 여러 번 개정이 있었으며, 1997년 1월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종래의 「반공법」은 폐지되고, 「반공법」과 비슷한 규정이 이 법에 포함되었다. 이 법은 원래 북한의 공산집단의 구성원, 또는 그 지지자에게 적용되지만, 이들의 활동을 고무·찬양 또는 동조하는 자 등에게도 적용된다.

 

이 법에 있어서 근간이 되는 죄는 반국가단체의 구성 또는 가입하는 자 및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죄이다.

 

여기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잠칭(僭稱)하거나 국가를 변란(變亂)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結社)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 또 위의 목적으로 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도 반국가단체로 본다. 북한의 노동당 및 재일 조총련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최근 제주의 간첩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국정원과 경찰의 발표는 이렇다.

 

골자만 적는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박현우 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과 강은주 전 도당위원장,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등 3명의 자택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중 강씨는 2017년 7월29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옛 225국) 소속 공작원과 접선, 제주 지하조직 'ㅎㄱㅎ' 설립과 운영방안 등을 교육받은 후 박씨외 고씨 등 2명을 포섭해 실제 이 조직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ㅎㄱㅎ'의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조사중이다. 다만 ‘한길회’로 추정한다.

 

이들은 지난해 11월까지 북한으로부터 반정부, 반보수, 반미시위 등 구체적 지령을 받았고, 일부 지령은 실제 이행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들이 북한 문화교류국과 암호 프로그램, 클라우드를 이용해 통신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또 2019년 2월 제주에서 '북한 영화 상영식'을 여는 등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난 사실 자체가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에 해당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반론이 등장하고 있다. 제주도내 20여개 시민단체는 일찌감치 “정권위기 탈출용 공안몰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10일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제주본부가 반박성명을 내놨다.

 

내용이 주목된다. 국정원과 경찰이 발표한 ‘제주간첩단’의 친북활동 정황증거라고 판단한다는 ‘북한영화 상영회’ 자체가 통일부의 승인을 받은 행사란 것이다. “제주본부가 주관, 2019년 2월 제주에서 진행된 ‘북한 영화 상영회’에서 상영한 북한영화 ’우리집이야기‘는 통일부에 북한영화상영 승인 허가 후 통일부에서 직접 제작한 DVD를 받아서 상영했고, 상영회 이후 해당 DVD는 통일부로 반환했다”는 것이다.

 

남측 제주본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황당한' 상황이 된다. 우리의 통일부가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행사에 '북한영화'를 보내준 '공급책'이 되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다. 더 알아보니 영화 '우리집 이야기'는 2018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북한영화 특별상영작으로 정식 공개된 바 있다. 이쯤되면 국정원의 수사에 조금씩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의 발표가 모두 사실이라고 믿기에 미심쩍은 부분들이 등장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우리 정보기관이 밝혔던 그동안의 숱한 간첩단 사건이 ‘조작’으로 판명 난 경우가 많아 더 그렇다. 게다가 그동안 국가보안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란 말을 듣는 ‘괴물’이란 질타가 지속됐던 법이다.

 

국가보안법을 놓고 한국사회는 그동안 숱한 논란·논쟁을 벌여왔다. ‘폐지’를 외치는 국민·시민운동이 끊임없었다. 그런데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꼴일까? 만약 공산당이 한국사회에서 합법화된다면 무슨 큰 일이 벌어질까? 선진국 다수의 나라에 합법적으로 공산당이 설립돼 있지만 그렇다고 그 나라들이 공산정권으로 전복될 걸 염려하지 않는다. 한국사회 상식에서도 체제전복과 공산정권 수립을 외치는 공산당 후보에게 표로 밀어줄 유권자는 사실상 없다. 공산주의란 이념은 이제 케케묵은 역사의 창고에서나 볼 법한 낡은 유물이다. 한물 간 유산이다. 소련의 몰락으로 세계사에서 수명을 다했다. 그러다보니 원시의 도그마(dogma)로 현대를 압살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게 이미 국가보안법이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사회는 반공법이 제정되던 1948년은 물론 국가보안법이 개정되던 1997년과도 너무나 판이하게 변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세계 곳곳과 교류하는 ‘세계 최강 정보국가’다. 선진국 진입은 1인당 소득 4만달러란 경제적 수치보단 국민을 일상적으로 옥죄는 비합리적인 잣대와 기준을 걷어치울 때 가능한 것이다. 그게 지금의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미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나라를 이룬 우리가 아닌가.

 

백성과 갈등을 일으켜 고통스럽게 하는 최악의 통치행태 수단이 국가보안법이라면 이제 걷어치울 때가 됐다. 그 법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안위를 보장하는 법들은 이미 충분하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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