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던 장면이 있다. 20년 전인 1994년 9월 서울살이를 접고 제주에 터 잡고 살게 된 뒤부터 줄곧 보고 싶었던 장면이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1995년 민선 1기 6·27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98년 6·4선거에서도, 2002년 6·13선거에서도, 2004년 6·5 재선거에서도, 2006년 5·31선거에서도, 2010년 6·2선거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2014년 6·4선거에서 그 장면을 봤다. 솔직히 잠시 가슴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가졌다. 울컥했다. 개표가 마무리되고 제주도지사 당선인이 가려진 4일 자정을 지나 지난 5일 한낮 격전을 치렀지만 패장이 된 장수 신구범과 승자 원희룡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패장인 신 후보가 원 당선인 캠프를 찾아갔고, 원 당선인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두 손을 꼭 쥔 두 사람의 얼굴은 화색이었고 시종일관 두 사람은 덕담을 주고 받았다. 원 당선인은 “선배님”이라며 깎듯한 호칭을 잊지 않았고, 신 전 지사 역시 당선인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은 물론 “이제 새 시대
긴 세월이 흘렀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따지고 보면 무수히 많은 말과 약속, 이벤트를 목도했지만 어쨌건 이젠 선택의 시간이다. 선택은 그동안 그렇게 흘러온 정치과정에 대한 판단이다. 결단이다. 물론 유권자의 몫이다. 선거판 얘기를 거론하자니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거론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 시점에서 재론할 만하다. 미국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다. 폴란드 출신으로 이제 만 74세다. 민주주의의 본질, 민주화 이행의 조건, 민주주의와 시장의 관계 등에 관한 주요저작을 냈다. 한국정치학계에서 이론가로 꼽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스승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미국 유학시절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이가 바로 그다. 그는 2010년 말 아프리카의 5개 신문과 인터넷 미디어 아프로온라인(Afronline)과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코트디부아르·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민중의 정치적 열망이 번지면서 정치적 위기와 대중혁명으로 나라마다 체제가 흔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선거’(election)와 &
그들은 뭉치는 걸 좋아한다. 이유불문이다. 조직엔 상명하복이 있고 조직에 충성을 다짐한다. 물론 그래야 일신의 안위와 영달이 보장된다. 문제를 지적하거나 맞서는 상대가 있다면 오로지 그건 제거의 대상이다. 철저한 응징만이 있을 뿐이다. 조직의 수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며,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 그것만이 비록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남은 가족의 안전과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들을 ‘조직폭력배’의 줄임말인 ‘조폭’으로 부르지만 미국의 이방인이자 이주민이었던 이태리 종마들은 그들을 ‘마피아’라고 불렀다. 마피아(Mafia)는 전세계적으로 최대 범죄 조직으로 널리 알려진 범죄 단체다. 원래는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인 ‘시칠리아 마피아’만을 말했지만 ‘미국 마피아’, ‘러시아 마피아’로 영역을 확대했다. ▲ 영화 <대부>의 한 장면 마피아란 용어가 세계적으로 통용된 건 19세기 말이다. 그 기원은 1282년 프랑스의 시칠리 침공에 대한 항거조직이었다. &lsquo
▲ 양성철/ 제이누리 발행.편집인 수년 전의 일이다. 어리둥절한 적이 있다. 늘상 어떤 군중행사가 있게 되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한민국의 의식이 있다. 국민의례다. 대부분 ‘국기에 대한 맹세’로 시작한다. 언제나 습관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쳐다봤다. 그런데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그 시절 알고 있던 그 맹세문이 아니었다. 초등생 시절을 거쳐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고서도 기억하는 국기의 대한 맹세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혹여 현재 시행 중인 국기에 대한 맹세를 초등생 기억에 갇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여기 다시 써본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그 시절 신문 한 켠에 조그맣게 자리한 박스기사에 불과한 지라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바뀐 사연을 몰라 동그란 눈을 떴지만 그런 허둥댐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웅성거리는 소리, 수군거리는
▲ 양성철/ 제이누리 발행.편집인 민선 5기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3월13일 오후 3시. 제주시청 인근 하나은행 3층 사무소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6년이란 야인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정치전선에 나선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예비후보 사무실 개소식 현장이었다. 우 지사는 그 자리에서 힘주어 말했다. 그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 무효화 된 2002년 6·13선거를 회상하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온갖 정치적 음해와 테러가 난무했고 ··· 성추행범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지만 ··· (도민들은)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셨다”며 그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현장에서 그는 자신이 당선된 2002년 6·13선거를 5·31선거라고 반복해 말했다. 취재하던 기자들이나 일부 유권자들은 그 기억까지 수정해줘야 했다) 그는 한술 더 떠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 시절 논란이 된 성추행 전력과 관련해 “저는 성범죄 전력을 갖고 있지 않고, 더더욱 성추행범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부가 &l
그곳에 오르면 멀리 국토최남단 마라도가 보인다. 산방산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곁에 있고, 우애 좋게 나란히 선 형제섬은 바로 코 앞이다. 마라도행 유람선의 선착장도 그 산 아래 포구에 있다. 산 아래 바닷가에선 낚시꾼들이 감성돔·벵애돔을 기다리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으로 과거 인기리에 방영됐던 TV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촬영무대도 이 산 자락이다. 한 마디로 비경(秘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이다. 해발 104m에 불과하지만 송악산은 지질학적으로도 이름 난 산이다. 120만년이란 형성사를 간직한 제주도에서 이 산은 고작 4000~5000년 전에 분출해 만들어졌다. 그것도 바닷속에서 화산폭발이 이뤄져 제주 본 섬과 몸을 합치더니 중심부의 2차 화산활동으로 ‘분화구 안에 분화구’를 갖춘 이중분화구 구조가 됐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경우이자 ‘한반도 최근세 화산’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지질학자들은 화산활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화산지질학 교과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산은 역사의 생채기마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해안절벽지대엔 15개의 인공동굴이 뻥뻥 뚫려 있고, 곳곳마다 참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양성철/ 발행.편집인 갑오년-. 역사의 교훈이 옷깃을 여미며 다가오는 새해다. 갑오경장과 갑오년에 벌어진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그 교훈은 서로 다르게 다가온다. 음미할 이유가 있다. 먼저 갑오년에 벌어진 동학농민혁명. 1894년 여름의 일이다.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동학 농민군이 삼남 지방 각처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던 무렵, 농민들 사이에 “갑오세(甲午歲) 갑오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거리면 병신(丙申)되어 못 가리”라는 노래가 떠돌았다. 문자대로 풀 수 없는 비문(非文)의 노래다. 그러나 누구나 그 뜻을 알았다. “갑오년에는 성공했으나 을미년(1895년)에 왜적이 공격할 것이니 병신년(1896년) 이전에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와 “이왕 난리를 일으켰으니 서울까지 가보자, 미적 미적대다가는 병신 되어 못 간다”는 선동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었다. 동학 농민운동은 병신년이 되기 전에 진압됐다. 임오군란을 진압한다고 청나라 군대를 끌어온 그 대가로 이번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들의 총부리에 스러졌다. 당시 1500만 조선 인구 중 100만명
▲ 양성철/ 발행.편집인 우선 진실추구의 ‘정론’을 펼치고 있는 <제주의 소리>에 경의를 표한다. 팍팍한 지역사회 현실에서 꾸준히 할 말을 다하고자 애쓰는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거니와 구성원들의 열정이 돋보여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그저 공치사나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언론으로서 제 몫을 다하는 <제주의 소리>에 대해 경쟁언론으로서가 아니라 동료언론으로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치고 싶어서다. 사실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제주에서 언론이 ‘제왕적 권력’과 ‘제왕의 시장’을 상대로 맞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스라이 잊혀질 뻔 했던 10여년 전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6개월 전 칼럼에서 살짝 언급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런지라 이 참에 아예 소상히 밝히고자 한다. 과거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도청을 출입하던 기자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13년 전인 2000년 초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역시 지금의 도지사가 지사로 재임하던 시절이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기초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산 하나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개발사업이 승인된 것이다
▲ 양성철/<제이누리> 발행.편집인 가관(可觀)이다. 참으로 볼만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선거판이 이렇게 간다면, 이게 민주주의라면 솔직히 부정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민의(民意)를 왜곡하는 것이고, 민주적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제주도 인구는 60만이다. 성인이자 유권자 수로 보면 40만 쯤 된다. 그런데 최근 집계된 새누리당·민주당 두당의 당원수를 합치면 10만명이나 된다. 새누리가 6만5000명, 민주가 3만3000여명이다. 도민 4명 중 한 명이 두 당의 당원이라는 소리다. 이 정도로 우리 제주가 정치의식이 높은 지 몰랐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을 놓고 대비해 보면 1250만명이 정당원이란 비례가 나온다. 전국 통계가 그 수준이 아닌데 제주도가 유독 이러니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두 당의 당원은 최근 3만여명이 불었다. 그것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경우는 2만여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서도 현직 우근민 도지사를 지원하는 측으로 분류된 경우가 1만7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관측된다. 새누리당 도당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