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秦漢)이 바뀔 때 유방(劉邦)은 군대를 거느리고 함곡관(函谷關)을 넘어 함양(咸陽)에 입성하여 진 왕조를 멸망시켰다. 유방이 진 왕조 황궁에 들어서서 웅장하고 화려한 궁실을 보고 미녀와 진귀한 보물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알고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궁에 남아 황제가 된 이후의 즐거움을 향유하고 싶었다. 유방을 따르던 초야 출신 번쾌1가 그걸 알아채고는 노기등등해 책망하였다. “패공(沛公), 천하를 얻으실 요량이십니까 아니면 부자가 되고 싶으신 겝니까? 황궁에 있는 모든 것은 진의 천하를 멸망케 만든 것입니다. 폐공께서는 패상(霸上)으로 급히 돌아가셔야 합니다. 절대 황궁에 남아서는 아니 됩니다.” 유방이 듣고는 반감이 일어 불쾌한 얼굴을 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얼마 없어 장량2이 도착해 유방에게 말했다. “진나라 왕이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인심을 얻지 못했던 까닭에 폐공께서 오늘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천하를 위하여 폭군을 제거한 바에야 검박한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지금 함양에 들어서자마자 진나라 왕처럼 향락을 누린다면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하는
전국(戰國, BC475~BC221)시기에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나라는 조나라에 태후의 막내아들 장안군1을 인질로 보내면 군대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나라 태후는 고집을 피워 승낙하지 않았다.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이 극렬히 권했는데도 아무 쓸모없었다. 결국 조나라 태후는 아예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다시 권하는 자가 있으면 그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이다.” 얼마 없어 좌사 촉섭2이 뵙기를 청했다. 태후는 그도 권고하기 위하여 만나기를 간청했다는 것을 알고는 노기 찬 얼굴을 하고 기다렸다. 촉섭은 태후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죄를 청했다. “소신의 발에 병이 나서 빨리 걸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태후를 뵙지 못하여 마음속에 늘 짐이 되었는데 오늘에서야 특별히 찾아뵙게 됐습니다.” 태후는 촉섭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지팡이에 의지해 걷노라고 말했다. 촉섭은 또 식사는 잘하고 계시냐는 등 일상적인 일을 묻자 태후도 답했다. 그런저런 일상사를 얘기하면서 태후의 노기는 점차 사라졌다. 촉섭이 태후에게 자신의 작은아들을 왕궁 호위
원래 동학이었고 친구였지만 나중에는 중요한 자리에 있게 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함께 있을 때에는 농담하면서 웃고 즐길 수 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의 체면을 살려주어야 한다. 친구의 자존감을 없애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진승1은 어릴 적에 집안이 빈곤하였다. 남의 집에 머슴살이 하며 살았다. 그는 원대한 뜻을 품고 있었지만 기구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언제 곤경에서 빠져나올지 알 수 없었다. 천리마가 마구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였다. 어느 날, 진승은 손에 농기구를 들고 일꾼들과 함께 언덕 위에 올라 쉬고 있었다. 막연하게 돌이켜 보고는 실망스러움에 탄식하며 말했다. “나중에 부귀(富貴)해지더라도 서로 잊지 말자.” 주변 앉아있던 일꾼들이 비웃었다. 그러자 진승은 탄식하였다.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겠느냐.” 나중에 진승이 반란을 일으켜 격문을 돌리자 천하가 응대해 일어섰다. 진승의 군대는 날로 강대해져서 나중에 스스로 왕이 되었다. 예전에 그와 함께 일했던
태감 이련영1은 영리하며 기지가 있었다. 말솜씨가 좋아 자희2태후를 즐겁게 해줬다. 기지를 발휘해 자희태후와 부하들을 위험에서 구해내었다. 자희태후는 경희(京戲)를 즐겼다. 늘 조그마한 선물을 예인에게 하사하였다. 어느 날, 자희태후가 유명한 연극인 양소루3의 경희를 관람한 후 양소루를 자기 앞에 불렀다. 탁자에 가득 놓여있던 케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이것을 네게 주마. 가지고 가거라.” 양소루는 고두하며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케이크는 마음에 두지 않고 대담하게 말했다. “태후님의 은혜, 너무 감사합니다. 이러한 존귀한 물건을 노재4는 감히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을 하사해 주시면…….” “무엇을 원하느냐?” 자희태후는 경희의 즐거움에 화를 내지 않았다. 양소루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홍복제천5, 태후께서 노재에게 ‘글자’를 하사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자희태후는 기뻤다. 태감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 하고는 일필휘지로 ‘복(福)’자
주운1과 장우(張禹)는 한(漢) 성제(成帝)의 스승이었다. 당시는 왕망2 일가가 정권을 농락하고 있을 때였다. 민간의 원망이 극에 달해 있었다. 각지의 상소가 중앙으로 빗발쳤지만 장우가 중간에서 막아 황제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주운이 황제 면전에서 장우에게 힐문하였다. “그렇게도 많은 아래의 주장을 성상에게 보여주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오사모(烏紗帽)만 보전하려고 하고 있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위 아래로 의견이나 소식이 통하지 않게 만들고 있으니, 죽어 마땅하오!”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가? 사회 조류에 맞춰 살아가면 천하를 구제하겠다는 자신의 신앙을 위배하게 되고, 범속을 벗어나 조류에 역행하면 곧바로 발걸음을 내딛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위기의 연속이다. 어쩌면 한 평생 먹을 밥도 없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하루 종일 도덕 이상을 강구하면다면 생계를 도모할 방법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입에 풀칠도 못하게 된다. 모든 공명을 바라는 것을 돌보지 않는다면, 관리가 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필요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길에서는 한 걸음 양보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10분의 3을 덜어내라.”1 숙손통2은 진시황에게 임용된 문학박사다. 진나라가 6국을 멸망시킨 후 6국의 문화명인을 함양으로 불러들여 현재로 말하면 최고 결책권자의 곁에서 책략을 제공하는 지낭단(智囊團)을 조직하였다. 그런데 그중 대다수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에 거의 사라졌지만 숙손통은 살아남았다. 숙손통은 어떤 방법으로 그 재난을 피해갔는가? 진이세(秦二世)가 황위를 계승한 후 진승(陳勝), 오광(吳廣)이 봉기를 일으키자 진이세는 당시에 남아있던 박사 30여 명을 소집해 물었다. “반란이 일어났다는데 사실인가?” 박사들은 이미 황제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려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기회에 천하의 어지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직 숙손통만 달리 말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그저 별 볼일 없는 작은 도적이 있을 뿐입니다. 군수가 체포했으니 재난이라 할 바 없습니다.” 진이세가 듣고는 기뻤다. 진이세는 봉기가 일어났다고 사실을 말한 박사들을 법관을 시켜 조사케 하고 숙손통에게만 큰 상을 내렸다. 조정에서 물러난
우리 주변에 자주 보이는 고양이를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다. 고양이는 평상시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축 늘어져 편안하게 바닥에 누워 졸고 있다. 그러면 쥐가 마음을 놓고 대담하게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쥐가 느긋하게 우쭐거릴 때 고양이는 잉어처럼 갑자기 뛰어올라 사납게 덮친다. 쥐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고양이의 먹이가 되어 버린다. 사람도 다름없다. 『주역(周易)·계사(繫辭)하』는 말한다. “자벌레가 몸을 움츠리는 것은 펴려는 것이요, 용과 뱀이 엎드려 있음은 몸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최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적아의 힘이 비교적 큰 차이가 날 때에는 위세를 부릴 필요 없다. 강다짐으로 부딪칠 필요도 없다. ‘완병지계’1를 이용해 칼끝을 피할 필요가 있다. 몸을 오그리고 꼬리를 말아 몇 발자국 물러서라. 몸을 일으킬 때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 찾으라. 더 먼 곳을 향하며 어떻게 돌진할지 생각하라. 완병지계는 상대방의 말과 안색을 살펴보고 의중을 헤아리는 것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기와 형세를 판단하고, 즉 시세(時勢)를 잘 살피고 서로 다른 대책을 마
명(明)나라 때 엄숭(嚴嵩)1은 쟁론이 많은 인물이다. 역사의 공과를 얘기하지 않고 개인의 발전만을 가지고 얘기하자면, 도광양회의 능력을 가졌고 권모술수에 능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嘉靖) 중기 때 하언(夏言)2은 조정 중신이었다. 뛰어난 문장을 잘 써서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그 당시 엄숭은 한림원(翰林院)의 하급 관리 직책에 있었다. 엄숭은 당시에 예부상서 직책에 있던 하언이 동향인 강서(江西)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서로 생명부지였던 엄숭은 하언이 강서 동향이라는 관계를 이용해 하언에게 접근하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엄숭은 여러 차례 하언의 집까지 찾아가 뵙기를 청했지만 매번 쫓겨났다. 엄숭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술잔치를 벌여 몸소 하언의 집까지 찾아가 하언에게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언은 시종 그 동향인을 눈에 두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핑계대고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엄숭은 하언의 집 앞에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서는 자신이 써온 초청장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하언은 마침내 감동하였다. 엄숭이 진짜 자신을 공경하고 있다고 여겼다. 문을 열어 엄숭을 일으키고 흔쾌히 술잔치에 참석하였다. 술좌석에서 엄숭은 얻기 힘든
“교룡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물고기나 새우 사이에서 몸을 낮추고 후일을 기약해야 하며, 군자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소인배 밑에서 허리를 굽혀 조아려야 한다.”(여몽정(呂蒙正)「파요부(破窯賦)」) 실력과 지위가 자기 발전 상황과 정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자기 실력과 뜻을 효과적으로 숨겨야 한다. ‘도광양회’1하며 기회를 노려야 한다. ‘도(韜)’의 원래 뜻은 칼이나 활의 집이다. 도광양회는 일부러 재능을 숨기는 것이다. 칼끝을 거두어 들여 타인의 이목을 흩어뜨리는 방법이다. 초(楚)나라에 양유기(養由基)2라는 사람이 있었다. 활을 잘 쏘았다. 백보 안에서 버드나무 잎사귀를 맞추면 백발백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후예(后羿)가 환생했다고 칭송하였다. 그때 그의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양유기에게 말했다. “기왕 그처럼 활을 잘 쏜다면 젊은이에게 재능을 전수해 줄 만하오.” 양유기가 듣고는 언짢아하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비할 데 없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당신은 젊은이에게 전수해 줄만하다고 말하다니. 그렇다면 나를 대신해 한 번 쏴보시오.&r
가식 없는 말을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즐겁지 않거나 타인이 꺼리는 일을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 각도에서 완곡하고 함축적이게 얘기를 꺼내어 듣는 사람을 편하게 만든다. 한 번 곱씹게 하여 그 뜻을 이해하게 만든다. 생각하면 할수록 함축된 뜻이 깊어지고 많아지게 한다. 그러면 흡입력이 갈수록 생기고 영향력이 강해진다. 동시에 갈등이 있거나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갈등이 완곡한 언어 속에서 자연스레 화력이 약해지고 갈등이 격화되지 않거나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화목하게 된다. 자기의 말을 타인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함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이다.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무궁하다.” “남은 뜻은 말하지 않는 가운데에 다 있다.” 중요한 것, 말해야만 하는 부분을 고의로 숨기거나 아니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타인에게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할 수 있다. “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함축은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언어를 부리는 기교를 체현하는 것이다. 구불구불한 작은 길이 한 눈
“약삭빠르게 굴면 제 꾀에 넘어간다.” 똑똑한 체 굴면 오히려 당한다는 속담이다. 사람이 총명하면 적지 않은 편리함이 있다. 그런데 너무 총명하면 다른 사람도 총명함을 가지고 방어하게 된다. 총명한 사람은 이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총명한 사람은 한 번 정도 총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아니 두 번은 그래도 된다. 하지만 세 번은 총명함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 한 번 총명함을 보이는 것은 계시요, 두 번 총명함을 보이는 것은 교훈이다. 세 번 총명함을 보이면 경계심을 가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교류하는 데에 단순한 사람과 사귀기를 원한다. 단순한 사람과 교류하는 것은 마음이 편하고 자연스러우며 속셈이 없기에 경계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순한 사람이 바보라는 말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속이고 우롱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단순한 사람은 마음이 순수하고 편안하며 담백하다. 단순한 사람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깊이 생각하며 명확하게 볼 줄 안다. 단순한 사람은 자기 지혜를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는 일에 쓴다. 이것이 순자(荀子)가 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부드러움이 옥과 같이 완미하고 순수하다.”
교우(交友)는 일생일대의 즐거움이다. 일단 지기(知己)를 만나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아진다. 희망은 좋은 것이지만 방법은 취할 것이 못된다. 도가에서는 말한다. “닭과 개의 소리 서로 들리는 곳에 있을 지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이 없을 것이다.”(『노자』제80장) 이런 ‘소국과민’ 사상은 극단적이라 취할 것이 못된다. 교우가 좋다하나 너무 친밀해서도 안 된다. 너나없이 친해지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무 친밀해지면 반드시 마찰이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 말이 불손해지고 주먹질 발길질이 오가게 될 수도 있다. 과거를 들춰내 약점을 찌르면서 소란스럽고 불안하게 될 수도 있다. 마을에서 잘 지내지 못하는 이웃 관계를 조사해본 결과, 예전에는 조금도 격의 없이 친밀하게 왕래하며 지냈던 사이였다. 그렇기에 친구지간에, 특히 가까운 친구 사이에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 한계를 지켜야 한다.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듯, 조화로운 사귐을 가져야 한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고 소인의 교제는 단술처럼 달콤하다.”(『장자·산목(山木)』) 장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