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뉴스 진행자건 대담 프로그램 사회자건 연속 방송극 출연자건 가릴 것 없이 걸핏하면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밤!”을 외칩니다. 이 “좋은 아침!”이라는 어색한 인사말을 들을 때마다 이제 정말 지구촌 시대가 되었나 보다 싶으면서도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아침’이란 말은 영어 인사인 ‘Good morning!’을 고스란히 풀어 놓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는 결코 바른 우리말 표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단어 하나하나를 떼어 놓고 보자면 당연히 우리말이겠지만, 전체를 보자면 원래 우리 민족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표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차라리 영어 그대로 “Good morning!”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굳이 ‘우리말 아닌 우리말’로 번역해서 이상한 줄도 모르고 쓰는 것이 더 우스꽝스럽다는 이야기지요. 저는 이렇게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데 앞장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설픈 지식인
며칠 전 파나마의 국회의원 엑토르 카라스키야 씨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그 말이 왜 생겼는지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도 별 생각 없이 가끔 쓰는 ‘사전오기(四顚五起)’란 말이 생겨나게 한 카라스키야가, 권투선수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회의원으로서 방문한 겁니다. <'17년 만의 재회' 홍수환-카라스키야의 뜨거운 포옹 기사 바로보기> 우리나라가 아직 여러모로 시원찮던 1977년의 일입니다. (그 전 해에 양정모란 레슬링 선수가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 1936년 손기정이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이후 처음이자 대한민국 수립 후 처음이었으니까, 금메달 열 개쯤은 따야 본전으로 생각하는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홍수환이란 권투선수가 멀리 파나마까지 나가서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더 멋지게……. 그 경기에서 홍수환 선수는 2회에만 네 번이나 다운되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이야 얼떨결에 당한 거겠거니 하고 숨을 죽이면서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세 번, 네 번…… 잇따라 큰대(大)자로 뻗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는, 이젠 다 끝났
‘플루오린’, ‘소듐’, ‘아이오딘’, ‘브로민’, ‘포타슘’, ‘제논’, ‘망가니즈’……. 이게 무슨 말일까요? 힌트를 하나 드리지요. 모두 중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운 원소들의 이름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무슨 말인지 선뜻 알아듣지 못한다면 아마 30대를 넘긴 분일 겁니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플루오르(불소)’, ‘나트륨’, ‘요오드’, ‘브롬’, ‘칼륨’, ‘크세논’, ‘망간’ 등으로 알고 있는 원소들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10여 년 전 교육부에서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 등 화학 용어를 개정하면서, 주로 독일식이었던 용어들을 주로 미국식인 국제 기준에 맞추어 정리한 까닭에 이런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만, ‘소듐’, ‘포타슘’ 등은 ‘나트륨’, ‘칼륨
우리말은 한자뿐 아니라 일본말, 서양말 등 다른 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근대 서양 문명을 일본을 통해 들여온 까닭에 새로운 개념어들은 거의 다 일본 것을 받아들였다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일본은 서양 문물을 들여오면서 그에 어울리는 표현을 동양 고전에서 찾아내거나 새로 이름 지어 붙였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체육’, ‘환경’, ‘~주의’, ‘~식’, ‘~적’ 같은 말들이 다 그런 것들이지요. 이런 용어들은 한중일 3국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것도 많거니와 이제 와서 우리식 용어로 바꾸자고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과는 달리 버젓이 우리말이 있는데도 일본말이나 일본식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멋대로 섞어 쓰는 것은 별로 보기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음식점(사라, 스시, 쓰끼다시, 소바…)이나 옷가게(나시, 가라, 마이…), 공사장(단도리, 와꾸, 데모도…) 등 일부 업종에서 누가 보아도
맞춤법을 전면 개정한 지 거의 30년이 가까워 오지만, 나이 든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직도 바뀐 맞춤법에 적응하지 못해서 헷갈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편 젊은 세대들은 또 그들대로 일일이 맞춤법을 지키기보다는 그냥 편한 대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사소한 맞춤법조차도 곧잘 틀리곤 합니다. 그 보기들 들자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동사나 형용사 같은 용언의 어미 가운데 ‘~ㄹ~’ 뒤에 이어지는 말은 된소리로 소리 나는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요? 다음 보기들을 소리 내어 읽어 봅시다. ① 이제부터는 내가 할게(할께). ② 그럴 줄 알았으면 밥이나 먹을걸(먹을껄). ③ 얼씨구, 우리 강산 좋을시고(좋을씨고). ④ 그대들은 서로 믿고 사랑할지어다(사랑할찌어다). 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속일찌라도)… ⑥ 그놈이 하는 모양을 볼작시면(볼짝시면)… ⑦ 정말 그래도 괜찮을가(괜찮을까)? ⑧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고(좋을꼬)? ⑨ 겉이 검다고 속까지 검을소냐(검을쏘냐)? 직접 읽어 보면 ‘ㄹ’ 받침
올해로 환갑인 저는 한글전용 세대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한자를 배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딱 50년 전인 1966년,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서 ‘국민(國民)’, ‘자유(自由)’ 식으로 표기된 한자 이삼백 자를 만났을 뿐입니다. 이후 한글전용정책이 시행되면서 한자는 교과서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그런데 나중에 대학에 가니, 신문마다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걱정하고 꾸짖는 칼럼과 사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교수님들조차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신문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것이었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들이야 애매한 욕을 먹은 셈입니다. 제대로 가르쳐 준 적도 없으면서 책이고 신문이고 한자를 잔뜩 섞어 써서 도무지 읽을 수 없게 만든 기성세대들이야말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요? 그때만 해도 100만 명 가까운 동갑내기 가운데 겨우 6만 명 남짓만 대학 가던 시절이니, 대학생이라면 선택받은 계층이었는데도 그들조차 읽을 수 없는 신문이라면, 그 잘난 대학도 못 간 나머지 90% 이상에게 신문이란 어떤 존재였을까요? 대학 시절, 잠시 야학에서 국어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저보
앞선 글에서 국한문 혼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를 요약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은 주장들이 충분한 논거를 갖추지 못한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자를 섞어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한자를 쓰지 않으면 동음이의어가 많아진다는 주장은 특히 일본어와 비교해 볼 때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입니다. 일본어는 음절문자로서 발음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동음이의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즉, 일본어는 청음, 탁음, 반탁음, 요음을 모두 합쳐도 106가지 발음에, 받침이라고는 ‘ん’ 하나뿐이라 최대 212개 음절까지 발음할 수 있습니다((45+20+5+36)×2=212). 이에 비해 우리말은 초성 19개, 중성 21개에다가 받침소리 7개와 받침 없는 경우까지 더하면 최대 3천개가 넘는 음절을 발음할 수 있습니다(19×21×(7+1)=3,192). 이걸 다시 두 음절짜리로 확대해 보면 그 차이는 무지막지하게 벌어집니다. 일본어는 212개의 제곱이니 5만이 채 안 되는 데 비해(44,944가지) 우리말은 3,192개의 제곱이니 1000만이 훌쩍 넘습니다(10,1
몇 년 전 어느 어문단체에서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 문자를 한글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모든 공문서와 교과서 등에서 한글만을 쓰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우리말의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위해서는 한자 사용이 필수적’인데, ‘한자 혼용을 금지한 국어기본법은 어문 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잠잠한가 했더니, 지난 5월 12일 헌법재판소에서 이 문제를 두고 공개변론을 벌이면서 다시금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요약해 보면 대략 이러합니다. ① 2000년 넘도록 한자를 사용해온 결과, 사전에 실린 표제어의 70% 이상이 한자어일 만큼 우리 국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한자를 알아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② 한자는 그림글자이므로 글자만 보고도 쉽게 뜻을 알 수 있고 조어력도 뛰어나 소리글자인 한글의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다. 특히 동음이의어 때문에 생기는 혼란을 줄여 준다. ③ 중국과 일본 등 여전히 한자를 쓰고 있는 이웃 한자문화권 나라들과의 소통과 문화 교류에도 도움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들판에 나가 보면 길가나 냇가, 논둑 밭둑 등 어디서나 흔히 며느리밑씻개 또는 그 형제 격인 며느리배꼽의 가시 돋친 덩굴이 제멋대로 벋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는 여전히 헷갈리지만, 가벼운 여름 옷차림으로 무심코 풀섶에 들어섰다가 거꾸로 난 날카로운 가시에 쓸려 팔다리에 피가 맺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뒷면에 가시가 가득하면서도 새콤한 삼각형 이파리를 쉽게 잊지 못할 겁니다. 저는 고마리 닮은 조그만 분홍빛 꽃들이 올망졸망 한데 모여 피어 있는 모습,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서 꽃이 진 자리마다 열 몇 개씩 달린 팥알만 한 동그란 열매가 파란빛, 보랏빛을 거쳐 검게 변해 가는 모습이 어쩌다 눈에 띄면, 그 앙증맞은 모습에 홀려 가던 길을 잊은 채 잎을 한두 장 뜯어 그 새콤하고 까칠한 느낌을 혀로 느끼면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며느리밑씻개’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다 그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저 또한 얼마 전까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누구나 ‘심술궂은 시어미에게 구박받는 불쌍한 며느리의
흔히들 “우리말은 소리글자이므로 적힌 대로만 발음하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말을 하다 보면 늘 그렇지는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적힌 대로 발음하기가 생각보다 힘들거나, ‘자음동화’라든지 ‘구개음화’, ‘된소리되기’ 등 일정한 규칙에 따라 소리가 바뀌어 나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그런데 이런 규칙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발음도 몇 가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중모음 ‘의’입니다. ‘의’는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는 게 원칙이지만 그렇게 발음하기가 힘든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민주주의의 의의’를 한번 발음해 보세요. 네 번 연달아 나오는 ‘의’ 자를 모두 표기대로 발음해야 한다면, 말하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듣는 사람도 거북살스러울 것입니다. 표준발음법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의’의 발음을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 정리해 놓았습니다. 먼저 첫음절에 나올 경우는 있는 그대로 [의]로 발음해야 합니다. ‘의사’, &lsq
산업자원부(지금은 산업통상자원부라고 하던가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름이 바뀌니…)에 속한 기술표준원에서는 기본색을 열다섯 가지로 정하고 그 표준 이름을 일부 개정하여 지난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KS 규격’에 따른 기본색은 빨강, 주황, 노랑, 연두, 초록(이전의 녹색 대신), 청록, 파랑, 남색, 보라, 자주에다가 새로 추가한 분홍, 갈색 등 열두 가지 유채색과 하양, 회색, 검정 등 세 가지 무채색을 합쳐 모두 열다섯 가지입니다. 굳이 나라에서 색 이름까지 간섭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지만, 우리말은 색채 표현이 워낙 다양한 데다가 제각기 미묘한 느낌 차이가 있으니 인쇄업 등 여러 산업에서는 표준이 될 만한 정확한 이름이 필요할 것도 같습니다. 색깔 이름을 국립국어원이 아닌 기술표준원에서 정한 까닭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색깔 이름에도 ‘KS 규격(한국산업규격)’이 있다는 것을 저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하양’은 흔히들 ‘흰색’, ‘하얀색’, ‘하양’, ‘하양색&rs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영원한 민족시인 김소월의 시 ‘접동새’입니다. 그러면 여기 나오는 ‘접동새’는 과연 어떤 새일까요? 여기저기 뒤져 보면 거의 다 ‘두견이의 경남 방언’이라고 나옵니다. 그나마 오래된 사전에서는 아예 나와 있지 않은 경우도 흔하고, 가장 믿을 만한 사전이라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두견이의 방언(경남)’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난 김소월뿐 아니라 경상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저 또한 어려서부터 ‘접동새’를 들어 본 적이 있고, 시의 소재가 된 접동새 전설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기도 하니, 접동새를 굳이 경남 사투리라고 못 박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제 아무리 표준국어대사전이라도 아닌 건 아니지요. 두견이의 별명으로는 접동새뿐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