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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여행 (27)] 전쟁에 대한 만반의 준비

 

이순신은 준비에 만반을 기하고 싶었습니다. 경상 우수영과 좌수영이 보내온 정보로 볼 때 일본 전선의 수는 최소 400척 이상이었습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준비한 병력이 28만명이었습니다.

 

이중 1차 출진 부대의 규모가 15만8800명이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1번 부대 1만8700명이 타고 온 선박이 700여척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 측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임진왜란 개시 당시 일본 전선의 수가 400척, 500척, 1000척이라는 조선의 기록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수군이 수백척 규모라는 사실은 이순신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그가 이끈 조선 수군의 전력은 걱정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함선은 판옥선 24척, 협선중선 15척, 포작선소선 46척으로, 총 85척이었습니다. 1차로 출진한 전라 좌수영 산하 전체 병력 1만5000명 중에서 5000여명을 선발했습니다. 이 병력으로 수백척의 적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라 좌수영을 비울 수도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만일을 대비해 우후부관 이몽구를 전라 좌수영에 남겨 뒀습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방어를 든든히 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이순신은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 전라 우수영에 합류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전라 우수영의 준비가 이순신처럼 잘된 게 아니었는지, 합류하기로 한 이억기의 부대는 사흘이 지나도 기별이 없었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먼저 출진합니다. 이순신의 전라 좌수영 함대는 5월 4일 새벽에 출진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뒀습니다.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태산처럼 진중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

 

이순신은 생애 최초의 해전인 옥포해전에서 적선 42척을 부수고, 4000여명의 왜군을 죽이거나 부상입혔습니다. 그러나 아군 전선의 피해는 전혀 없었고, 사망자도 없었습니다. 이순신의 탁월한 공간 지능은 그에 관한 기록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1580년, 36세의 이순신은 전라도 발포 만호로 있었습니다.

 

…감사 손식이 참소의 말을 듣고 공에게 벌을 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가 순행차 능성(綾城), 전라남도 화순군에 이르러 공을 마중 나오라고 불러내서는, 진법에 관한 책의 강독을 끝내고 나서 공에게 진형(陣形)을 그려보라고 시켰다. 공이 붓을 들고 매우 정연하게 그리니, 감사가 구부리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는 말하기를, “어쩌면 이렇게도 자세하게 그리는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조상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말하기를, “내가 진작 몰라보았던 것이 한이로다”라고 했다. - 「충무공 이순신 전서, 이순신 행록」 [본사 제휴 The Scoop=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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