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주시대를 연다.’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승리, 민선 1기 제주도지사에 오른 신구범 도정의 출발은 이 슬로건 하나로 함축됐다. ‘경쟁과 자존, 그리고 번영’이란 ‘서브 타이틀’이 붙은 그 슬로건이 던진 화두는 사실 위력적이었다. ‘변방사고’에 머물렀던 제주인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고취했다. 게다가 그 시절 등장한 다른 민선 지방정부가 내세우는 ‘늘푸른~’·‘맑고 아름다운~’·‘행복한 ○○ 건설’ 등의 천편일률적인 구호와는 아예 수준을 달리했다.
관선 지사를 거쳐 53세의 나이에 민선 1기 제주도백으로 오른 신 전 지사의 발상과 구상은 사실 그 시절엔 획기적이었다. 삼다수란 브랜드로 먹는샘물 국내시장에 진출해 현재까지 부동의 1위 상품으로 키워냈고, 지금으로선 금자탑으로 불리는 제주국제컨벤선센터를 만들어냈다. 제주만의 대표축제이자 세계인의 축제로 기획된 ‘세계섬문화축제’ 역시 신구범 지사시절 작품이다. 제주도가 매해 1천억원에 가까운 로또복권 배당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가 지자체로선 처음으로 관광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의 지위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8년 민선 2기 제주지사로 우근민 도정이 출범하자 슬로건은 바뀌었다. ‘100만 제주인 함께 열린 세계로.’ 1991~93년 관선지사로 일했던 그가 그 시절에 썼던 도정구호 ‘믿음과 희망을 심는 도정‘은 어느덧 그 덩치를 한껏 키웠다. 2002년 우 지사가 민선 3기에도 재선에 성공하면서 내건 도정 슬로건은 ‘세계를 향한 강한 제주’였다. 그가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 판결에서 결국 당선무효형을 확정받아 낙마한 2004년까지 6년을 끌고간 컨셉은 그렇게 ‘세계’였다.
그러나 그 6년을 ‘세계화’의 희망으로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2002년 선거를 앞두고 성희롱 논란이 불거진 것도 그렇고, 선거법 위반으로 그가 낙마하는 과정도 그렇지만 그 시절 제주도정은 사실 수많은 파행과 논란을 낳았다. 전임 도정의 업적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는 준공을 앞두고 회의장 수용인원이 축소되는 수모를 겪었고, 세계섬문화축제는 1998년 1회, 2001년 2회 행사를 치르고 폐지됐다. 1999년 12월 말 세계적인 이중분화구 구조의 대정읍 송악산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운명에 놓인 레저타운 개발사업 승인도 그의 작품이다. 그래도 그의 업적이 없지 않을진대 그 시절 지지자들에게 물어봐도 마땅히 돌아오는 답이 없다는게 그저 처연하다.
김태환 민선 3.5기 도정은 2004년 재선거를 통해 곧바로 등판했다. 우 지사의 낙마로 등장한 그에게 갈등과 분열, 혼란의 극복은 중대과제였다. 그래선지 그 시절 슬로건은 ‘제2도약 제주, 하나된 힘으로’다. 그러던 그가 2006년 다시 재선에 성공하면서 민선 4기 도지사에 오르자 내세운 슬로건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완성’이었다.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성공을 거둔 김태환 도정이 ‘특별자치도’를 얼마나 중요한 지상과제로 생각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특별자치도는 지금도 시·군 폐지에 따른 풀뿌리 민주주의 파괴·후퇴 등의 논란을 낳고 있지만 김태환 도정의 업적이란 걸 부인하기 어렵다.
2010년 민선 5기에 이르러 우근민 도정은 부활했다. 그리고 다시 취임한 우근민 새도정의 슬로건은 달랐다. 고리타분하지도 않았다.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 국제화 감각이 돋보이는 데다 그 시절 내세운 도정목표 역시 ‘세계인이 사랑하는 국제자유도시’였다. 언제나 '세계'를 들이대는 그이지만 민선 5기가 종료되던 2014년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여기서 또 거론하고 싶지 않다. 다만 딱 한가지 사례만 언급한다.
‘더 갤러리-카사 델 아구아’(더 갤러리)다. 제주컨벤션센터(ICC) 앵커호텔의 홍보관이자 모델하우스다. 2008년 8월28일 가설건축물로 지어졌다. 그 건물엔 세계적 명장의 숨결이 담겨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가 설계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유작이다. 멕시코 출신의 레고레타는 전 세계 곳곳에 지역적인 요소와 보편적인 예술 감각을 섞어낸 건축물(작품)을 60여개 남겼다. 사람이 편해야 좋은 건물이라는 지론을 고집했다.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물의 집)로 명명된 더 갤러리는 작가가 제주의 태양과 흙, 물을 꼼꼼히 살피고 연구한 건축작품이다. 이국적인 색감과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제주의 자연에 속해 있는 듯 설계됐다. 해외 건축가들은 "이 집은 땅에 본래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 작품은 2013년 3월6일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우근민 도정 시절 철거의 비운을 맞았다.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와 어떻게 격이 맞는지 알 도리가 없다. 기억해보면 ‘세계인이 사랑하는 국제자유도시’란 도정목표는 그 시절 슬그머니 ‘도민이 행복한 국제자유도시’로 바뀌었다. ‘세계’란 화두는 사라졌지만 그 시절 우리 도민은 과연 행복했을까? 무한중복전화투표로 얻어낸 ‘세계 7대 자연경관’이란 타이틀은 왜 이젠 부끄러움의 상징이 돼가고 있는지 그저 개탄할 뿐이다.
2014년 취임한 민선 6기 제주도정의 주인공은 원희룡 전 지사다. 그는 당선뒤 인수위 명칭부터 관행을 버렸다. 새 인수위의 명칭은 ‘새도정준비위원회’였다. 새도정 준비위원회는 새로이 시작할 민선 6기 도정의 슬로건도 ‘전국공모’를 선택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전국공모 결과는 민선 6기 제주도정의 슬로건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전임도정의 슬로건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다 제주미래비전 용역 등을 거치며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로 슬로건을 새로 내걸었다. 표현이 다소 달라졌지만 2018년 민선 7기 재선에 성공하면서 바꾼 슬로건 역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다.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안타깝게도 그 슬로건대로 제주가 흘러갔는지는 의문이다. 그리 먼 옛날 얘기가 아니기에 원희룡 도정에 대한 평가는 여기서 접는다. 그저 우리 모두가 곰곰이 기억하고 곱씹어 봐야 할 유산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정도로 말을 아낀다. 그가 제주의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웠는지는 의문이지만 대다수 도민들은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이 사실 '중앙정치무대'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국토부 장관에 기용된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선거판에서 '다함께 미래로'를 내세운 민선 8기 오영훈 제주도정이 출범을 앞두고 있다.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어 지금껏 역사를 정리했다. 도정 슬로건엔 사실 도정 철학이 담겨있다. 슬로건으로만 놓고 봐도 역대 지사직을 역임한 인물들의 면면이 읽힌다. 그리고 그 도정이 무엇에 중심을 두고 제주도를 이끌어갔는지를 기억하게 한다. 아울러 업적 역시 역사로 기록하게 한다.
오영훈 당선인이 이제 출발선에 섰다. 그가 어떤 도정 슬로건을 내걸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보단 모쪼록 제주사를 새로이 쓸 ‘위대한 제주시대의 새로운 전진’을 목도하고 싶다. 그가 출발선에 섰지만 따지고 보면 진짜 출발선에 다시 선 건 우리 제주도민이다. 이제 오영훈 당선인은 역사에 어떤 지사로 기록될까? 미래가 궁금하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