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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당시 주민 200여 명 목숨 구한 경찰영웅 ... 지난해 참전유공자로 서훈 받아

 

제주4·3 당시 무고한 민간인을 살려 '제주판 쉰들러'로 불리는 고(故) 문형순(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이 국립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의 길에 들어갔다.

 

제주경찰청은 10일 오후 2시 제주시 오등동 국립제주호국원에서 참전유공자인 고(故) 문형순 전 모슬포경찰서장의 안장식을 열었다.

 

문 서장은 평안남도 안주 남평 문씨 출생이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해 1920년대 만주로 넘어가 의용군과 고려혁명군 군사교관 등으로 활동했다. 1947년 5월 경찰에 경위로 입문했다.

 

문 서장은 1947년 7월 경감 계급 경찰로 제주도에 부임했다. 문 경감이 모슬포경찰서장으로 근무했던 1948년 12월, 군경이 대정읍 하모리에서 좌익총책을 검거해 관련자 100여명의 명단을 압수했다. 

 

토벌대는 주민들에게 "과거에 조금이라도 무장대에 협조한 사실이 있으면 자수해 편히 살라"고 말하며 이미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거나, 자수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자수자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고 토벌대는 이들을 가차없이 학살했다.

 

모슬포에서도 주민 100여명이 자수했고 서북청년단(서청)이 조서를 날조해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모슬포경찰서에 있던 문 전 서장이 나서 주민을 구했다. 경찰에 주민을 강요하거나 때리지 말 것을 지시했고, 서청 대원이 조서를 받을 때 날조할 것을 염려해 마을 서기가 조서를 쓰도록 조치해 주민들을 무사히 돌려보냈다. 

 

1950년 8월 30일에는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 중령이 제주경찰국 성산포경찰서장 앞으로 '예비검속자 총살집행 명령의뢰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제주도에 계엄령 실시후 예비구속중인 D급 및 C급 중에서 현재까지 총살 미집행자에 대해서는 귀경찰서에서 총살집행 후 그 결과를 9월 6일까지 육군본부 정보국 제주지구 CIC(방첩대) 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의뢰할 것'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정부는 당시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놓는 것)했다. 4·3 토벌작전이 이어지던 제주에서는 과거 한 번이라도 군·경에 끌려갔다 온 적이 있거나 무장대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대거 구금돼 대부분 집단 희생됐다.

 

그러나 성산포 지역만은 예외였다. 김 중령이 성산포경찰서장 앞으로 보낸 공문이 실행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초대 성산포 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은 전시 상황에서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는 명령서 상단에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履行)'이라는 글을 써 돌려보내 상부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200여 명의 주민 목숨을 구했다.

 

당시 제주도내 다른 읍면에서 수백명씩 희생자가 나왔던 상황에서 문 서장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성산포경찰서 관할지역의 희생자는 모두 6명에 불과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마을 주민 수백명이 총살되거나 다른 지역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인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컸다.
 

뿐만 아니라 문 서장은 제주4·3 이전에도 일제강점기 광복군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펼치며 청춘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도 했다.

 

문 서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에는 경찰청 올해의 경찰영웅에 선정됐다. 같은 해 11월 문 서장을 추모하는 흉상이 제주지방경찰청사에 세워졌고, 2019년 10월 아시아태평양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수여하는 평화상 수상자로 문 서장이 선정됐다.

 

경찰청은 그간 문 서장의 독립운동 사료를 발굴해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심사를 여섯차례에 걸쳐 요청했으나 입증자료 미비 등의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이에 경찰청은 문 서장이 6·25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재직하며 지리산전투사령부에 근무한 이력에 착안해 지난해 7월 독립유공이 아닌 참전유공으로 보훈부에 서훈을 요청했다.

 

보훈부는 지난해 12월 문 전 서장에 대한 참전유공자 등록을 마쳤고 그 결과를 경찰청에 통보했다. 비로소 국가유공자 및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인정된 것이다.

 

 

앞서 제주경찰청은 10일 새벽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문 서장의 묘를 찾아 파묘제를 지낸 후 유골을 양지공원으로 옮겨 화장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충호 제주경찰청장, 김애숙 제주도 정무부지사 및 도내 주요 기관장, 이북5도민연합회, 4·3희생자 유족회, 4·3평화재단 등이 참석해 예우를 다했다.

 

70여 년 전 문 서장의 총살 거부 명령에 의해 목숨을 부지한 제주4·3 생존자 강순주씨도 참석해 지팡이를 짚고 헌화와 분향했다.

 

 

문 서장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이충호 제주경찰청장의 조사, 김애숙 제주도 정무부지사와 윤희근 경찰청장의 추모·추도사가 이어졌다.

 

이충호 제주경찰청장은 조사를 통해 "문형순 서장은 4.3때 총살 명령을 거부해 소중한 생명을 구했고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외압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경찰의 본보기가 됐다"며 "제주 경찰도 불의와 부당에 굴하지 않고 국민만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애숙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의로운 경찰 문형순 서장의 고귀한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제자리를 찾아 영면할 수 있게 된 문형순 서장에게 예우를 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제주도도 문형순 서장을 본 받아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추모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역대 경찰영웅 중 유일하게 국립묘지에 모시지 못한 마음의 짐이 이제야 가벼워진 것 같다. 영웅을 존중하고 기억하자는 노력에 대한 보상같아 더욱 뜻깊다"고 소감을 밝히며 "14만 경찰이 문 서장님과 같이 언제나 국민을 지키는 우리의 사명을 굳건히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1953년 9월 제주청 보안과 방호계장을 끝으로 퇴직한 문 전 서장은 1966년 6월 20일 제주도립병원에서 향년 70세로 유족 없이 생을 마감했다. 별세 이후 제주 평안도민 공동묘지에 영면하다 드디어 국립제주호국원으로 새 안식처를 찾았다. [제이누리=문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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