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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자본의 탐욕 앞에 흔들리는 제주국제청소년의집을 바라보며

한라산의 허리를 감싸고 도는 1100도로는 제주가 가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길입니다. 안개 자욱한 그 숲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는 제주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던 보금자리, ‘제주국제청소년의집’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땀방울이 배어 있는 그곳이 지금,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습니다. 아니, 귀를 기울이면 숲은 통곡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꿈이 자라야 할 신성한 터전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난도질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려온 소식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시설의 소유주인 한국YMCA전국연맹이 이곳의 운영권을 서울 소재 민간 사기업인 ‘주식회사 더숲’에게 20년간 장기 임대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유스호스텔’로의 용도 변경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나 이용 가능한 숙박업과 카페 영업 등 상업적 이익을 좇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청소년 수련 시설이라는 껍데기만 남긴 채, 실제로는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버는 상업 시설로 전락시키겠다는 발상은 과연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분이라면 결코 이러한 계획에 동의를 못할 것입니다. 시계를 1985년으로 되돌려보겠습니다.

 

당시 제주YMCA 이사장이셨던 고(故) 김봉학 제주YMCA이사장께서는 본인 소유의 천마목장 부지 4000여 평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으셨습니다. 척박한 땅에 씨앗이 뿌려지자, 물을 준 것은 바다 건너 오사카의 동포들이었습니다. 4.3의 광풍을 피해 혹은 가난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차별과 설움을 견디며 살았던 그분들입니다. 그분들은 '고향의 후세들만은 우리처럼 살게 하지 말자', '내 고향 제주 아이들이 맘껏 뛰놀 곳을 만들자'며 피눈물로 모은 3000만 엔을 쾌척해 주셨습니다.

 

그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었습니다. 타국에서 흘린 제주 사람들의 ‘한(恨)’이자, 고향을 향한 사무치는 ‘정(情)’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제주의 소상공인, 종교계, 그리고 수많은 도민께서 벽돌 한 장을 쌓는 심정으로 십시일반 힘을 보태어 세운 곳이 바로 제주국제청소년의집입니다.

 

그렇기에 이곳은 등기부 등본상의 명의가 누구로 되어 있든 실질적인 주인은 70만 제주도민과 재일동포, 그리고 미래의 청소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YMCA전국연맹은 이 숭고한 역사를 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제주YMCA와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서울의 밀실에서 민간 기업과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는 지방 분권 시대에 역행하는 중앙 패권주의의 전형이자, 제주의 공공 자산을 식민지 시대의 전리품처럼 여기는 오만함입니다. 도민의 피와 땀으로 세운 건물을 중앙 연맹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삼으려는 작태에 분노를 넘어 비애를 느낍니다.

 

영리 기업인 더숲에게도 정중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습니다. 공공의 숭고한 뜻으로 세워진 청소년의 성지(聖地)에 흙발로 들어와 카페를 차리고 숙박 장사를 하려는 것은, 기업 윤리 차원에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주의 시민사회와 청소년 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곳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강행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익이 아니라 불명예뿐임을 아셔야 합니다.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입니다. 입시 경쟁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카페나 관광객 북적이는 숙소가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뒹굴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진정한 배움과 치유의 공간’입니다. 그것이 40년 전 고 김봉학 이사장님과 오사카 제주동포들이 간절히 바랐던 꿈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자본의 편리함과 화려함을 쫓아 역사를 지울 것인가, 아니면 다소 투박하더라도 아이들의 영혼이 쉴 수 있는 숲을 지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제주국제청소년의집 사태는 단순히 하나의 시설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제주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YMCA 사무총장으로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한국YMCA전국연맹은 지금이라도 고 김봉학 이사장님과 기증자들의 뜻을 받들어 상업화 계약을 철회하고, 도민들에게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행정 당국 역시 이 사태를 방관하지 말고, 청소년 시설이 본래의 목적대로 쓰일 수 있도록 관리 감독의 칼을 빼 들어 주십시오.

 

지금도 제주국제청소년의집 입구에는 1986년 2월 1일 세워진 정초석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돌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집은 YMCA 운동을 통하여 세계평화에 헌신하는 청소년 지도력을 양성하려는, 뜻있는 이들의 꿈의 결실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래에는 이 문장을 새긴 주체로 ‘대한YMCA연맹’이라는 이름이 선명합니다.

 

스스로 새긴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일 수는 없습니다.

 

‘뜻있는 이들의 꿈’이 자본의 탐욕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1100도로 숲속에 서린 ‘오사카의 눈물’을 도민 여러분의 손으로 닦아주십시오. 제주의 자존심과 미래를 지키는 이 싸움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제주국제청소년의집이 가야 할 길은 단 하나, 기증자들의 유지와 건립 취지를 받들어 청소년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송규진 제주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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