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주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구덕과 차롱. 구덕과 차롱은 대나무를 주재료로 만든 '대그릇'(竹器)으로, 오늘날 바구니 또는 그릇 용도로 쓰였다.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구덕과 차롱에는 제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잊히고 사라지는 구덕과 차롱에 얽힌 생활문화와 전통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구덕 없이는 아기 키우기도 힘들어 "웡이 자랑 자랑 자랑 우리 애기 잘도 잘다 어서 자랑 어서 자랑 자랑 자랑 저래 가는 검둥개야 이래 오는 검둥개야 우리 애기 재와도라 느네 애기 재와주마 (중략) ᄒᆞᆫ저 먹엉 ᄒᆞᆫ저 자랑 ᄒᆞᆫ저 먹엉 자불어사 니네 어멍 물질 가곡 니네 아방 밧디 가곡 헐꺼 아니가"(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제주민요 중 일종의 자장가라 할 수 있는 '애기구덕 흥그는 소리'의 일부다. 애기구덕에 아기를 눕히고 흔들어 잠재우는 모습은 옛날 제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애기구덕을 지고 밭이든 바다든 어디에든 나가 일을 하며 아이를 돌봐야 했던 제주의 여인들. 지나가는 검둥개에게조차 아기를 재워달라 부탁하고, '얼른 먹고 자야 너의 엄마 물질 가고 너의 아빠
제주시 원도심에 탐라국(耽羅國) 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칠성대'(七星臺) 유적이 최근 발굴됐다. 옛 도심 일대 북두칠성 모양으로 일곱 곳에 세워진 칠성대 중 하나로 추정되는 유적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항해가들의 길잡이가 된 북두칠성처럼 베일에 가려진 탐라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탐라국에 세워진 일곱개의 별 '칠성대' '칠성도(七星圖)는 주성(제주읍성·현재의 제주시 원도심 일대) 안에 있는데, 돌로 쌓았던 옛터가 있다. 삼성(三姓)이 처음 나왔을 때 삼도(三都, 일도·이도·삼도)로 나눠 차지하고 북두칠성 모양을 본떠 대(臺)를 쌓아 분거했다. 이 때문에 칠성도라 부른다.'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편찬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칠성대에 관한 첫 기록이다. 칠성대는 이후 선조 34년(1601) 왕명을 받아 안무어사(安撫御史) 신분으로 제주에 온 김상헌의 기행문 '남사록', 효종 4년(1653) 이원진이 제주목사로 부임할 당시 기록한 '탐라지' 등에도 나온다. 이외에도 임제와 홍천경, 김상헌, 이형상, 김정 등 제주에 부임한 지식인과 관료의 개인 시문(詩文)에도 등장한다. 옛
적갈색 또는 흑갈색으로 고급스러운 빛깔을 자아내는 갈옷. 가끔 멋스럽게 디자인된 갈옷을 보면 꽤 대중적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입어도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날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가 옛날 서양 광부들의 작업복이었다는 걸 떠올리기 쉽지 않듯 갈옷이 제주 사람들의 노동복이었다는 사실도 10대 청소년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하다. 제주의 자연과 제주 선인들의 땀과 정성이 빚어낸 갈옷을 들여다본다. ◇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갈옷의 계절 '凌雨枾染衣 冒雪皮爲帽'(릉우시염의 모설피위모) '장맛비 올 때 옷에 감물 들이고, 추운 겨울에는 가죽으로 모자를 만드네' 조선 후기 문신인 윤봉조가 1728∼1729년 제주에 유배됐을 당시 남긴 한시 '도중잡영'(島中雜詠)의 일부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뜻하는 '凌雨'(릉우)는 시(詩)에서 '장맛비'를 통해 '제주의 여름'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마가 끝나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을 일컫는다. 장마가 물러가고 가마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로 이맘때쯤이면 제주에선 옷에 감물 들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갈옷을 만들기 위함이다. 갈옷은 목면 등의 천을 제주 토종 풋감
헌법재판소가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 장관 탄핵 심판 사건의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피청구인(이 장관)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청구인의 참사 원인 등에 대한 발언은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어 부적절하다"면서도 "발언으로 인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재난안전관리 행정 기능이 훼손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심판은 국무위원에 대한 헌정사상 첫 탄핵 심판이었지만 기각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만, 올해 2월8일 국회가 이 장관의 탄핵 소추를 의결한 날로부터 167일 만이다. 탄핵 심판은 선고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직무 정지 상태인 이 장관은 즉시 장관 직무에 복귀한다. [연합뉴스]
올여름 기나긴 장마 속에도 제주는 한낮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열대야가 밤낮으로 이어지고 있다. 높은 습도와 기온 탓에 밖을 나서면 끈적끈적한 땀이 흐르고 불쾌지수는 덩달아 올라간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날씨가 더욱 무더워지고 있다지만 한여름 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냉감 소재를 이용한 기능성 속옷도, 에어컨과 같은 각종 냉방기기도 없던 옛날 제주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냈을까. 예로부터 이어져 오는 제주만의 색다른 피서방법을 알아보자. ◇ 가지각색 제주 전통 피서법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 제주. 낮이든 밤이든 더위를 피하기 좋은 안성맞춤 장소는 사계절 푸른 '바다'다. 아이들은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하루해가 저문다. 반면, 어른들은 바닷가에서 일명 '모살뜸'을 즐겼다. 모살은 모래를 뜻하는 제주어로, 모살뜸은 쉽게 말해 모래찜질이다. 공항에서 동쪽으로 10㎞가량 떨어진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은 검은모래로 유명하다. 해안 현무암 지대를 덮은 흑사장이 아담하게 펼쳐진 이곳은 예부터 여름철만 되면 신경통과 피부병 등 각종 질환을 치료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모래찜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름철 복날만 되면 전국의 삼계탕 가게를 비롯한 보양식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을 보하는 차원에서 기운을 북돋워 주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이를 '복달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복날이 아닌 흔히 '닭 잡아먹는 날'이 따로 있다고 하는 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 초·중·말복 삼복이 더운 이유? "초복 중복 말복 질기게 견뎌야 할 복더위에는 질기게 견뎌야 할 이 세상 된장 발라버릴 것들 대신 개장국이든 삼계탕이든 뱀탕이든 뙤약볕보다 더 드센 장작불로 푹푹 삶는 게 젤이다. 누가 더 질긴가 보자고 질긴 게 이기는 법이라고 뙤약볕도 이 세상을 푹푹 삶는다" (정양의 시 '복날' 중)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시'로 표현한 시인 정양은 '복날'이란 시에서 안 그래도 열 받을 일 많은 세상살이 속에 맞닥뜨린 삼복더위를 일컬으며 이열치열로 맞서는 게 제일이라면서 결국엔 '질긴 게 이기는 법'이라고 말한다.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극성이다. 1년 중 무더위가 가장 심하다는 삼복(三伏) 가운데 첫 번째 복날인 올해 초복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삼복은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뜻한다. 올해는 7월 11일 초복과 21일 중복을
28일 제주 한라산 성판악 탐방로 남쪽에 자리한 사라오름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차 탐방객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해발 1324m에 있는 사라오름은 둘레 2481m, 면적 44만1000㎡, 높이 150m다. 성판악 탐방로 입구로부터 5.8km 지점 갈림길에서 사라오름 방향 표지판을 따라 600m를 더 가면 만날 수 있다. 사라오름은 오름분화구에 물이 고이는 몇 안되는 산정화구호(山頂火口湖)를 갖고 있어 장마철에 이 곳을 찾으면 분화구에 물이 고여 둘레 250m가량의 호수가 생긴다. 오름 산정화구호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비가 많이 내리면 호수를 두른 목재 데크 산책로가 잠겨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려 건너야 할 정도로 물이 차오르기도 한다. 사라오름 산정호수는 산딸나무와 굴거리나무, 꽝꽝나무 등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낸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4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한라산 삼각봉에 509.5㎜, 진달래밭 350㎜, 성판악 312.5㎜의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오는 7월 1일까지 제주에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고 예보했다. [연합뉴스=백나용 기자]
1950년 한국전쟁의 판도를 단숨에 역전시켰던 인천상륙작전. 사람들은 2016년 7월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성공확률 5천분의 1'이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작전의 숨은 공로자인 한국 해군 첩보부대와 켈로부대(KLO·한국인으로 구성된 연합군 소속 스파이 부대) 대원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에는 그들 외에도 숨은 공로자가 많다. 인천상륙 및 서울수복작전에 참여했던 제주 출신 해병대원들도 대표적인 숨은 공로자로 꼽힌다. 그리고 그들의 참전 이면에는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 4·3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 ◇ 인천상륙작전의 주역 제주 출신 해병 제주 원도심인 동문로터리 한가운데 세워진 '해병혼탑'(海兵魂塔). 많은 사람이 찾는 동문재래시장이 바로 인근에 있어 타지역에서 온 관광객들도 한번쯤 눈여겨 봤을 법하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 오벨리스크처럼 하늘 높이 솟은 삼각뿔대 모양의 첨탑의 높이는 기단 1.83m를 포함해 10m에 이른다. 탑의 북쪽 면에는 해병혼(海兵魂)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휘호는 서예가 김광추 선생이 쓴 것으로, 그는 해병혼이란 글자 중 혼(魂)의 우변인 '鬼'(귀신 귀) 위에 붙은 꼭지(′)를 떼지 않으
20년간 꼬닥꼬닥 걸어왔다. 교사, 화가, 해양경찰, 회사원, 주부 등 각기 다른 일을 하며 제주에 사는 사람들…. 그들이 그림책을 통해 제주를, 제주의 문화를 알리고 있다. ◇ 그림책으로 소통하며 20년간 제주문화 알려 "저희는 제주 연구자는 아니었지만 (중략) 거창하게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제주 연구자가 된 셈이죠." 지난 5일 오후 제주한라도서관 1층 전시실에서 만난 제주그림책연구회 초대 회장이자 퇴직 교사인 이현미씨는 흘러간 20년을 돌이켜보며 이같이 말했다. '꼬닥꼬닥 걸어 온 제주그림책 이야기' 창립 2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린 장소는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2003년 처음 '그림책'을 매개로 이들이 모였을 때만 해도 '제주'라는 주제로 그림책을 낼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1년간 공통의 관심사인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무얼 그리고 무얼 써야 할까…'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듬해인 2004년에 펴낸 '제주가나다'였다.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14개의 자음으로 제주를 풀어낸 그림책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어찌보면 너무나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물 하면 많은 사람이 '돌하르방'을 떠올린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벙거지를 쓰고,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눈에 넓적한 주먹코, 꾹 다문 입을 하고 있어 어딘지 모르게 범접할 수 없는 근엄함을 풍기면서도 묘한 친근감을 준다.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은 제주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만큼 5년에 한번씩 세척하며 세심하게 관리된다. 조류 배설물이나 이끼 등으로 인해 지저분해지거나 오랜 세월 거치는 동안 인위적인 훼손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지난 2017∼2018년 마지막 세척이 이뤄진 돌하르방을 제주문화진흥재단 제주역사문화재돌봄센터가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해 제주도내 관공서와 공항, 학교 등에 흩어진 돌하르방을 일일이 찾아 세척 관리를 하고 있다. 지난해 30여기의 돌하르방을 세척한 데 이어 올해에도 8일 현재까지 KBS제주방송총국 입구 앞에 있는 돌하르방 2기 등 총 44기를 세척했다. 제주역사문화재돌봄센터는 오는 19일 제주돌문화공원에 있는 1기의 돌하르방을 끝으로 세척·관리를 마무리한다. 문화재인 돌하르방 세척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 문화재 수리기능자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들이 일일이 작업을 진행하며
설문대할망 이야기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는 바로 그의 '죽음'(?)이다.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대해선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설문대할망이 자식인 오백명의 아들(일명 '오백장군')을 위해 죽을 쑤다가 죽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라산 산정호수인 '물장오리'의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려고 들어갔다가 그곳에 빠져 사라졌다는 이야기 등이다. 신(神)의 죽음에 관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해오는 건 왜일까. ◇ 설문대할망 이야기 조작 논란 제주신화와 전설을 연구한 고(故) 현용준 제주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제주도 사람들의 삶'(2009, 민속원)을 통해 그 원인을 밝히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인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교수에 따르면 민속학자인 A씨는 과거 제보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1959년 7월 제주관광안내소 출판부 발행으로 책을 냈다. 책에는 '옛날에 한 할머니가 아들 오백형제를 데리고 거기에 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일명 오백장군 이야기가 담겼다. 하지만 A씨는 5년 뒤인 1964년 5월 개정판을 냈는데, 문제는 같은 이야기를 '옛날에 설문대할머니가 아들 오백을 거느리고 살았다'로 바꿔
2020년 9월 13일 제주 동남부 지역인 표선면에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졌다. 낮 시간대 1시간여 동안 40㎜가량 퍼부은 폭우로 도로에 물이 차 차량들이 한때 고립되고 주택 일부가 침수됐다. 반면 같은 날 한라산 동북쪽 월정리에는 아예 비가 내리지 않았고 서부지역인 고산리에도 1.7㎜의 약한 비만 내렸다. 2017년 7월 5일에는 동부지역(난산)에 시간당 90㎜가량이 비가 내려 하루 누적 강수량이 244㎜를 기록했다. 같은 날 제주 북부와 서부지역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거나 약한 비만 내렸다. 제주 섬은 가로 길이가 70㎞가량이고 세로로는 30여㎞ 거리쯤 되나 지역별 강수량 편차는 이처럼 크게 나타난다. 특히 제주 동남부 지역에는 5월 말부터 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9월 중순까지 일부 지역에 국한돼 단시간에 기습적인 폭우가 종종 쏟아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2000∼2018년 6∼9월 시간당 20㎜ 이상 강수 횟수 분석 결과 제주 남부(서귀포 동지역)에서는 6월 22회, 7월 34회, 8월 64회, 9월 38회 등 총 158회나 많은 비가 쏟아졌다. 동부지역(성산)에서도 6월 20회, 7월 37회, 8월 67회, 9월 31회 등 총 155회 가량 강한 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