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내 얼굴이 그녀의 짙은 향기 속에 휩싸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녀의 옷자락이 내 얼굴을 스쳤다. 시원하면서도 매끌매끌하여 편안했다. 여우는 미인으로 변할 수는 있지만 꼬리는 숨길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내게 엉덩이 좀 만질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꼬리가 없다면 당신이 여우가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거든요.” “어, 이 꼬맹이, 그 핑계로 아가씨 엉덩이를 만지려고?”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여우라는 게 들통날까봐 그렇죠?” 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만져 봐. 하지만 얌전히 만져. 가볍게. 나를 다치게 하면 물에 빠뜨려 죽여 버릴 테니까.” 그녀는 치마를 들어 올려 내 손을 뻗게
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억센 손아귀가 내 목덜미를 잡고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자그마한 진주 같은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내 가슴과 배, 번데기만큼 작은 고추에서 데굴데굴 수면 위로 떨어졌다. 나는 튼실한 두 다리로 물을 헤치고 잘바닥 잘바닥거리며 걷는 큰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내 몸은 내던져져, 허공에서 한 번 공중제비 넘어 도롱이 위로 떨어졌다. 삼촌이 물속에서 나를 건져 올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삼촌은 제방위에 단정하게 앉아 여전히 나뭇잎 피리를 부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털끝만큼도 움직인 기미가 없었다. “삼촌!” 큰 소리로 불렀다. 삼촌은 나뭇잎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확실히 낯선 사람의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자신의 연주를 방해라도 했다는 듯 화가 난 눈빛이었다. 물속에서 연꽃을 쫓
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랫동안 게들이 나타나지 않아 나는 초조해졌다. 삼촌도 낮게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켜 울짱을 살피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상하네, 이상해, 정말 이상하네. 오늘 밤은 게들이 지나가는 한사리가 맞는데? 그리고 서풍이 불면 게 다리가 간지러워지는데. 게들이 보이지 않는 게, 괴이하네’. 삼촌은 물가의 관목에서 흠치르르한 나뭇잎을 따서 입술에 끼고 풀잎피리 불듯 찍찍 기괴한 소리를 냈다. 나는 한기를 느꼈다. ‘삼촌 부르지 마세요, 어머니가 한밤중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나타난다고 했단 말예요’. 삼촌에게 말을 건넸다. 삼촌은 나뭇잎 피리를 불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그윽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이상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갑자기 삼촌이 낯설게 느껴졌다. 너무 추워 온몸이 덜덜
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마침내 아홉째 삼촌이 나를 데리고 게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보챈 후였다. 그때가 아마도 60년대 중반쯤이었다 싶다. 해마다 침수되면서 물바다가 되는 지역에는 게가 많았다. 마을에서 2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삼촌이 나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출발할 때 어머니는 내게 삼촌 말을 잘 듣고 촐랑거리며 돌아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삼촌에게도 나를 잘 보살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삼촌은, 형수님 걱정 마세요, 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절대 저 녀석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배가 고프면 먹으라고 파 전병 두 개를 만들어 줬다. 우리는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썼다. 나는 마대 두 개를 들고 삼촌은 바람막이 램프와 삽을 챙겼다. 마을을 나서서 오래지 않아 길이 끊겼다. 곳곳이 흙탕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