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
억센 손아귀가 내 목덜미를 잡고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자그마한 진주 같은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내 가슴과 배, 번데기만큼 작은 고추에서 데굴데굴 수면 위로 떨어졌다. 나는 튼실한 두 다리로 물을 헤치고 잘바닥 잘바닥거리며 걷는 큰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내 몸은 내던져져, 허공에서 한 번 공중제비 넘어 도롱이 위로 떨어졌다.
삼촌이 물속에서 나를 건져 올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삼촌은 제방위에 단정하게 앉아 여전히 나뭇잎 피리를 부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털끝만큼도 움직인 기미가 없었다.
“삼촌!” 큰 소리로 불렀다.
삼촌은 나뭇잎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확실히 낯선 사람의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자신의 연주를 방해라도 했다는 듯 화가 난 눈빛이었다. 물속에서 연꽃을 쫓아갔던 경험이 있는지라 두려운 감정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삼촌이 사람이든 귀신이든 개의치 않았다. 삼촌은 그저 나를 기이한 세계로 이끄는 사람일 따름이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그의 존재도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삼촌이 부는 나뭇잎 피리 소리도 귀기鬼氣스럽지 않고 은근한 게 들을 만해졌다.
램프의 어스레한 불빛이 우리가 게잡이를 왔음을 일러주었다. 머리를 숙여 이리저리 살펴보니 게 떼가 무리를 지어 수숫대 올망을 따라 기어오르고 있었다. 게들의 크기는 말굽 정도로 일정했다. 파란 등딱지, 기다란 눈, 녹색 털이 잔뜩 난 집게발을 높이 쳐들어 위엄이 있으면서도 흉칙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크고, 이렇게 많은 게들이 떼 지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흥분되면서도 위축이 되었다. 삼촌을 쿡쿡 찔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게들이 오지 않는다고 조급해하더니 막상 게들이 오는데도 나뭇잎 피리나 불며 앉아 있고, 그것도 하필이면 한밤중에 여기까지 와서 불어 제쳐? 나는 삼촌이 이미 나의 삼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보드라운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둥근 달처럼 생긴 젊은 여자가 서있었다. 숱이 많은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귀밑머리에는 달걀 크기만 한 하얀 꽃이 꽂혀 있었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나는 그 꽃이 연꽃인지 아닌지 분별해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품고 있었다. 이마 가운데에 검은 점이 있었다. 넓으면서도 커다란 하얀 도포를 입고 있었다. 달빛 속에 우뚝 서있어 자태가 늘씬하고 무척 아름다웠다. 전설 속의 신선하고 꼭 닮았다.
그녀는 낮으면서도 달콤한 목소리로 물었다.
“얘야. 여기서 뭐하니?”
“게를 잡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녀는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조그만 녀석이 게 잡는 법을 알어?”
나는 “아홉째 삼촌하고 같이 왔거든요. 삼촌은 우리 마을에서 게를 가장 잘 잡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엉터리. 네 삼촌은 세상 최고의 얼간이인데.”
나는 “당신이야말로 얼간이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 “요 꼬맹이. 내가 얼간이인지 아닌지 보여 줄게.”
그녀가 손을 뻗어 이삭이 달린 수숫대를 잡아당겨서 개울 속 울짱을 향해 휘두르니 청색의 게들이 수숫대를 따라 날듯 기어왔다. 수숫대의 하단을 마대에 찔러 넣자 게들이 잇대어 마대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홀쭉했던 마대가 금세 불룩해졌다. 마대 안은 게들이 서로 긁는 발소리와 거품을 내뱉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마대 하나가 가득 차자 그녀는 발 앞에 있던 풀줄기를 잡아당겨 두세 번 꼬고서 마대를 묶었다. 다른 마대도 금세 가득해졌다. 그녀는 또 풀 노끈으로 묶었다.
“어때?” 그녀는 만족한 듯 내게 물었다.
“당신, 신선이 틀림없어!”라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나는 신선이 아니야.”라 말했다.
“그럼 여우인 게 틀림없어!” 나는 확신 한 듯 말했다.
그녀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여우는 더욱 아닌데! 여우가 얼마나 추한 건데. 마른 얼굴에, 긴 꼬리에, 온몸에 지저분한 털이 나 있고, 구린내를 풍기잖아.” 그녀는 몸을 가까이 하며 “네가 맡아봐. 내 몸에서 구린내가 나니?”라고 말했다. <삽화=오동명/ 4편으로 이어집니다>
※모옌(莫言 Mò Yán 1955~)= 중국 소설가. 본명은 관모예(管謨業, Guǎn Móyè). 필명 ‘모옌’은 중국어로 “말을 하지 않는다.” 혹은 “말을 말라.”를 뜻한다. 민담, 역사, 현대 중국의 사회상을 섞어 글을 쓰는 독특한 스타일인 환영적 사실주의(Hallucinatory realism)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산둥山東 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화 대혁명 때 학교를 중퇴하고 정유 공장에서 일했다. 20살 때 인민해방군에 입대했으며 1981년 군인 신분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중국 인민해방군 예술학과 문학과 졸업, 1991년 베이징 사범 대학을 졸업했으며, 루쉰 문학원 창작 연구생반 졸업과 함께 문예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표 작품으로 『붉은 수수밭』, 『홍까오량 가족』, 『술의 나라』, 『사십일포』, 『탄샹싱』, 『풍유비둔』,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풀 먹는 가족』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노르웨이어 등 10여 개 언어로 출판되었다. 20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옮긴이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