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부친의 유산 문제로 증헌재(曾憲梓)는 멀리 태국에 있는 형 증헌개(曾憲槪)가 여러 번 재촉하자 태국으로 건너갔다. 증헌재의 숙부 증도발(曾桃發)은 그 소식을 듣고는 증헌재가 그의 형과 힘을 합쳐 자신과 대적하려고 태국으로 온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새벽 일찍,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객가(客家) 손윗사람 세 명이 증헌개의 작은 점포에 찾아와 고집스레 증헌재를 “차라도 한 잔 하고 식사라도 하자고” 청했다. 증헌재는 정중하게 그들을 따라 증도발의 회사에 갔다. 모든 사람이 자리를 잡자 숙부들이 친근하고 온화하였던 처음 모습을 바꾸어 증헌재를 질책하기 시작하였다. “네 꼴 좀 봐라! 무슨 모양이 그러냐. 경우도 없이. 태국에 오고 나서 여태까지 숙부나 숙모를 찾아와 인사도 하지 않고. 네가 뭔데? 무례하기가 짝이 없구나. 사실 증헌재는 태국에 도착한 당일 아랫사람의 도리를 다하려고 숙부와 숙모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었다. 숙부들이 면전에서 훈계하는 것은 그야말로 증헌재를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숙부들이 아무 말도 못하는 증헌재의 모습을 보고 정말로 대역무도했다고 생각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전국시대 야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온다. 당시 북방에는 두 종류의 말이 특히 유명하였다. 하나는 몽골마로 힘이 대단히 세, 천여 근을 질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대완(大宛)마로 날듯 내달려 하루에 천리를 달렸다. 한단(邯鄲)에 몽골말과 대완마를 각 한 필씩 기르는 상인이 한 명 있었다. 몽골마로 화물을 운송하고 대완마로 편지 등을 전달하였다. 두 말을 한 마구간에서 기르니 한 구유에서 사료를 먹을 때마다 서로 물고 차고 하였다. 매번 서로 지지 않고 양패구상으로 끝나는 통에 늘 수의사를 초빙해 치료하여야했다. 그것 때문에 주인이 골머리를 앓았다. 때마침 백락(伯樂)이 한단에 도착하자 상인은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백락이 마구간에 가서 가만히 보고 있다가 살며시 웃으면서 두 글자를 써줬다. ‘분조(分槽)’였다. 구유를 나누면 된다는 간단한 말이었다. 상인은 그의 말대로 구유를 따로 나누어 먹이니 다툼이 없었다. 이때부터 아무 문제없이 두 말을 길렀고 사업에 제대로 활용하게 되면서 나날이 장사가 잘됐다. 후계자의 문제는 오랫동안 중국기업을 괴롭히는 문제였다. 특히 후계 대상자가
옛사람이 말했다. 자신이 가장 옳다고 하는 사람은 믿지 말고, 어질다 어질지 않다 시비하는 사람은 경계하라. 무슨 말인가? 우리가 주의하지 않을 때 어느 때 어디서든지 소인이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엄중한 손해를 입힌다는 말이다. 전국시대에 중산(中山, BC414~BC296)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국군(國君)은 많은 사인(士人)을 받아들였다. 어느 날, 중산국의 국군이 도성에서 국내의 명사와 인재, 현사를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의 주된 요리는 양고기 죽이었다. 창졸지간에 준비하여서 그랬는지 양고기 죽이 충분하지 못하여 죽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다. 당시에 국군도 몰랐고 여타 사람도 개의치 않았다. 단지 사마자기(司馬子期)라는 사람만 양고기 죽을 먹지 못하여 마음속에 원한을 품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오늘 여기에 온 사람은 모두 명사다. 나 사마자기도 아무 짝에 쓸모없는 사람도 아니고 범재도 아니잖은가. 모든 사람이 다 양고기 죽을 분배 받았는데 오직 나만 받지 못했다.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은 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오로지 나만 죽을 먹지 못한다니. 더욱이 어떤 사람은 한
통찰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작은 것을 관찰하는 데에 능하여 치밀한 것에는 깊은 경지에 이르지만 어떤 때에는 큰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리지차(毫釐之差)를 아주 분명하게 잴 수 있는 사람은 천하 형세를 이해하는 데에 소홀할 수 있다. 작은 일 한 가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은 큰일에는 늘 혼란스러워 한다. 항우(項羽)가 젊었을 때, 글공부도 중도에 그만두고 검술 배우는 것도 중간에서 흐지부지 그만두었다. 그러자 숙부 항량(項梁)이 화를 내자 항우가 말했다. “글공부는 자기 이름을 쓸 정도면 되는 것입니다. 검을 배우는 것도 한 사람과 우열을 가리는 데에 필요한 것일 뿐으로 검을 배우는 것보다 만인과 겨룰 수 있는 무술을 배워야합니다.” 항량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병법을 가르쳤다. 여러 가지 면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전체적인 것을 알고 대세를 읽어야한다. 자질구레한 사소한 일을 버릴 줄 알아야한다. 이 법칙은 대단히 중요하다. 동한(東漢) 명신 진번(陳蕃)이 말했다. “대장부는 마땅히 천하를 일소해야지, 어찌 집안의 자질구레한
사람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를 알 수 있을까? 성격 특징과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성격과 언행이 사람됨의 표현이다. 이른바 천성이란 운명이라고나 할까. 사람됨의 규칙이라 할 수 있다. 한고조(漢高祖)가 병이 들어 위급할 때 여후(呂后)가 곁에서 누가 승상이 되면 좋겠느냐고 묻자 답했다. “조참(曹參)이 좋소.” 조참 이후에는 누가 좋겠느냐고 묻자 유방이 답했다. “왕릉(王陵)이 좋소. 그런데 왕릉은 사람됨이 충실하고 무던하니 진평(陳平)이 그를 도울 수 있소. 진평은 지모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큰일을 맡을 수 없소. 주발(周勃)은 너그럽고 후하며 진중하나 문화 수양이 부족하오. 그러나 유 씨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주발이오. 그에게 태위(太威)를 맡겨 병권을 장악하도록 하시오.” 나중에 주발은 유방의 말대로 권력을 장악해 농단하던 여(呂) 씨 가족을 일거에 뿌리째 뽑아버리고 한나라 왕실을 구했다. 이것을 보면 유방은 사람 됨됨이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어 사람의 능력을 잘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가치 취향이 있다. 언행을 보면 다소 편중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이나 계책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길안주(吉安州)에 혼사가 있어 잔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틈을 타 도적이 동방에 잠입해 기회를 보고 도둑질하려고 침대 아래에 숨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3일 밤낮을 잔치하니 밝은 불빛 아래 손을 쓰기는커녕 움직이지도 못하여 도적은 배고픔을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스스로 침대 밑에서 나와 붙잡혔다. 관부로 이송돼 심문을 받았다. 그런데 그 도적이 자신은 의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의사요. 도적이 아니오. 신부가 병증이 있어 나에게 신부를 뒤따라 다니면서 병을 고치라고 하였소.” 그러면서 신부의 집안일이나 신부와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술술 풀어놓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진술은 모두 침대 밑에 숨어있을 때 엿들은 이야기였다. 관령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여 신부에게 대질신문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침대에서 나눈 개인적인 말을 신부가 어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신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나이 든 관리가 현령에게 말했다. “신부가 처음 시집왔으니 대질신문하면 신부의 부끄러운 일이 밖으로 새나갈 것입니다. 저 자가 만약 의사가 아니라 도
백거이(白居易)의 『천가도(天可度)』라는 시를 한 번 보자. 하늘은 헤아릴 수 있고 땅도 잴 수 있지만 오로지 사람 마음은 방비할 수 없구나. 단지 적성이 피처럼 붉다는 것을 알지만 거짓말이 쌍황처럼 교묘할 지 누가 알겠는가. 코를 막으라 하거들랑 막지 마시게 부부가 삼성과 상성처럼 멀리 떨어지게 될지니. 벌을 떼라 하거들랑 떼지 마시게 부자가 승냥이와 이리처럼 될지니. 바다 밑의 물고기나 하늘가의 새는, 높으면 쏠 수 있고 깊으면 낚을 수 있지만, 오로지 사람의 마음이 대비될 때에는 지척지간이라도 헤아릴 수 없나니.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이의부의 무리가 희색이 만연하게 웃지만 웃음 속에 칼을 숨겨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음양과 신비로운 변화는 모두 예측할 수 있지만 인간의 웃음과 성냄은 알길 없어라. 현재 세상에는 재산을 따지거나 교활한 무리가 강을 건너는 붕어마냥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얼굴에는 성실한 웃음을 띠고 불덩어리처럼 열정적이지만 뒤에서는 칼을 움켜잡고 허점을 찌르려 노리고 있다. 이때 지혜로운 눈이 없다면 성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인은 식칼과 도마가 되고 자신은 어육이 되어서 착취당하고 유린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한무제(漢
제(齊)환공(桓公, ?~BC643)은 아침 조회 때 위(衛)나라를 공략할 계책을 관중(管仲)과 상의하였다. 퇴청해 궁으로 돌아가자 위나라에서 바친 비(妃)가 그를 보고는 곁으로 다가와 절을 몇 번 하고 제환공에게 위나라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조용히 물었다. 제환공은 놀랍고도 이상해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물었다. 비가 답했다. “제가 대왕께서 궁으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왕께서는 발을 높이 쳐들고 보무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얼굴에는 횡포한 기색이 역역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조짐입니다. 대왕께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으셨는데 저를 보자마자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습니다. 분명히 위나라를 치려고 하는 까닭에 그렇게 되신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 조회 때 제환공은 관중을 보자 읍(揖)하고 그에게 들어오라고 하였다. 관중이 물었다. “대왕께서는 위나라를 공격하려는 생각을 버리셨습니까?” 제환공은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요 며칠 자신에게 무슨 마가 끼었는가? 어찌 보는 사람마다 자신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를 안다는 말인가? 관중에게 물었다. “그대
다른 환경에 따라 정세도 달라진다. 사람의 행동도 그것에 따라 달라져야한다. 판이하게 달라져야 할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미혹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특정한 환경에 따라 자신의 언동을 택하라는 말이다. 개인의 품성을 판정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인상여(藺相如)는 일찍이 환관의 우두머리 무현(繆賢) 문하의 식객으로 있었다. 무현이 한번은 사고가 생겨 인상여를 찾아가 상의하였다. 사건의 전후는 이렇다. 어느 날, 멀리에서 손님이 무현의 저택으로 찾아왔다. 옥벽(玉璧)을 팔기 위해서였다. 완전무결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옥벽을 보고는 무현이 500금을 주고 매입하였다. 나중에 옥장(玉匠)을 불러 옥을 감정했는데 옥장이 보고 놀랐다. 화씨지벽(和氏之璧)이었다. 무현은 대단히 기뻐 급히 옥을 숨겼다. 그런데 이미 그 일은 혜문왕(惠文王, BC356~BC311)에게 보고되었다. 왕이 무현에게 내놓으라고 독촉했으나 무현이 너무나도 화씨지벽을 좋아해 곧바로 왕에게 바치지 않았다. 왕은 대노해 사냥을 나간 틈을 타 무현의 가택을 수색하고 화씨지벽을 가지고 가 버렸다. 무현은 화가 돌아올까 너무 두려워 연(燕)나라로 도망갈 준비를 하였다. 인상여가 물
중국의 옛사람들은 ‘동(動)’과 ‘정(靜)’의 변증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정으로 동을 제압(以靜制動)”하는 수단으로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 능했다. ‘정(靜)’은 꼼짝하지 않는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고요함이다. 잠잠함이다. 평정이다. ‘정(靜)’할 때도 시간은 흐른다. 형세도 변한다. 기회도 시시각각 다가온다. 차량의 흐름에 따라 운행하면서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 멈춘 것 같으면서도 흐른다. 사물은 정지해 있으나 그것을 보는 차량 속의 시각은 각각 다르다. 당(唐, 618~907)나라 헌종(憲宗, 778~820) 때 배도(裴度)는 중서령의 직위에 있었다. 어느 날, 수하가 허둥지둥 달려와 인장(印章)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관리가 된 자가 인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실로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라 경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배도는 보고를 듣고도 당황하거나 허둥대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면서 좌우에 경고하며 말했다. “인신(印信)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보관하라고 했으니 호들갑을 떨지 마라.” 좌우에 있던 사람
일상생활에서 쾌도난마란 무슨 뜻으로 사용될까? 다른 사람이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돌발적으로 일어나서 미처 손 쓸 사이 없는 상태에서 전광석화같이 예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타격해 일패도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략의 관건은 상규(관습) 속박에서 벗어나 남이 생각이 미치지 않는 틈을 타 정예의 능력을 집중해 기세, 기량에서 정확하게 승리를 얻는 것이다. ‘출기불의(出其不意)’가 중요하다. 남북조시대 북위(北魏, 386~534)의 고양(高洋)은 어릴 적부터 자질이 총명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타인들은 그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지만 승상인 부친 고환(高歡)은 아들이 남다름을 느껴 자주 말했다. “이 녀석은 견문이나 생각, 지모가 나를 뛰어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아들 6명 중에 누가 제일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능력을 시험해 보기로 한 고환은 잔뜩 얽히고설킨 삼실을 아들들에게 하나씩 주고는 풀어보라고 하였다. 모두 얽혀 있는 삼실을 한 가닥씩 풀어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데 둘째 아들 고양(高洋)은 칼을 뽑아 단번에 실타래를 잘라버렸다. 그러
『손자병법(孫子兵法)』「군사(軍事)」는 말한다. “가까운 곳에서 먼 길을 오는 적을 기다리고, 편안하게 쉬면서 피로해진 적을 기다리며, 배불리 먹고 나서 적이 배고프기를 기다리라.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무슨 말인가? 편안하고 여유롭게 쉬면서 정예부대를 양성해 피로해진 적에게 기회를 틈타 승리를 얻으라는 말이다. 어사(御史)가 어떤 현(縣)에 파견돼 공무를 수행하다 그 현의 현령을 화나게 만들었다. 현령은 암암리에 총애하는 첩에게 어사를 시봉하게 하였다. 어사는 그 첩과 다정하게 지내게 되었다. 첩은 기회를 틈타 몰래 어사의 작은 상자에서 인장을 훔쳤다. 오래지 않아 어사가 인장을 찾았는데 상자가 비어있는 게 아닌가. 마음속으로 현령이 한 짓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함부로 발설할 수 없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정사를 처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지연시킬 수만은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방법을 찾던 중 현에 지모가 출중한 교관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교관이 병문안 온 때에 교관을 침대로 불러 교관에서 자기의 사정을 얘기한 후 해결책을 물었다. 교관이 다 듣고 나서 어사에게 이러이러하라고 말했다. 그날 밤, 어사는 주방에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