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에 전중(田仲)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향촌에서 은거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지혜로운 일이라고 여겼다.
송(宋)나라 사람 굴곡(屈谷)이 전중을 찾아가서 말했다.
“저는 선생님이 인품이 높고 절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남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들었습니다. 저는 별다른 능력을 가지지 못하여 그저 밭에서 농사나 짓고 있습니다. 특히 조롱박을 재배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게 큰 조롱박이 있습니다. 돌멩이처럼 딱딱할 뿐 아니라 껍질도 너무 두꺼워, 속에 과육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제가 유달리 남겨두고 싶어 보관하고 있던 커다란 호롱박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전중이 듣고는 말했다.
“호롱박이 연할 때는 먹을 수 있고, 오래 돼 강하게 되어 먹을 수 없을 때에는 그릇으로 만들어 물건을 담으면 되지요. 그런데 당신이 가지고 온 조롱박은 크기는 크지만 껍질이 너무 두터울 뿐 아니라 과육도 없고 절개할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합니다. 이런 호롱박은 물건을 담을 수 없고 술도 담아낼 수 없습니다. 무슨 쓸모가 있겠소이까?”
굴곡이 말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곧바로 내다버리지요. 그런데 선생님도 이런 문제를 고려해 보셨습니까?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살고는 계시지만, 여기에 은거하면서 쓸데없는 학문을 하고 자신만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으니, 던져버려야 하는 이 호롱박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복잡한 사회 속에서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물에 따라 서로 다른 책략을 구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바깥세상과 관계를 좋게 맺을 수 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인생의 상식 아닌가.
도덕이 허용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나쁜 놈이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자. 어떤 상황에서 모든 규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아야 한다.”
라고 한다면, 바보나 그렇게 하는 게 아니겠는가?
나쁜 놈과 바보는 그게 그거다. 바보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나쁜 짓을 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나쁜 놈에게 당한 게 몇 번 있는가? 나쁜 놈들이 어찌 우리를 두려워하겠는가. 제멋대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큰소리로 외쳐보자.
“나는 나쁜 놈이 무섭지 않아!”
전해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작은 여관에서 한 청년이 화장실로 들어서자, 바람에 흔들거리는 활짝 핀 꽃가지처럼 아름답게 치장한 소녀가 번개처럼 뒤따라 화장실로 들어서서는 신속하게 화장실 문을 잠갔다. 청년에게 말을 건넸다.
“가지고 있는 돈과 시계, 내놔! 아니 그러면서 겁탈했다고 소리를 지를 거야.”
화장실에는 둘밖에 없었다. 꼼짝없이 누명을 쓸 판이었다. 소녀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겁탈했다는 죄를 뒤집어 써, 평판이 나빠질 것은 자명하였다. 그때 청년을 기지를 발휘한다. 침착하게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가리킨 후 연이어 귀를 가리키면서 “어버버”하기 시작하였다.
소녀는 상황이 순탄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때 청년이 볼펜을 꺼내 소녀에게 건네주면서 자기 손바닥에 글을 써달라는 몸짓을 했다. 소녀가 방금 자신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써달라는 말이었다.
청년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렇게 하자, 소녀는 정말로 벙어리를 만난 것으로 여기고 경계심을 늦췄다. 소녀는 계속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고자 볼펜으로 청년의 손바닥에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천천히 썼다.
“돈과 시계, 내놔! 안 그러면 겁탈했다고 소리를 지를 거야.”
청년은 소녀의 범죄 증거를 얻자마자 사로잡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강도야!”
소녀는 나쁜 짓을 범했다. 자기보다 더 ‘나쁜(?)’ 놈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약점을 잡혔으니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사건이 만약 전중과 같은 사람에게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강에 뛰어든다하여도 씻어낼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게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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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례물시,비례물청(非禮勿視,非禮勿聽) :
안연이 물었다.
“인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사심)를 이기고(극복해)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극기복례하면 천하가 어질다고 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지 남에게 달려있겠는가?”
안회가 물었다.
“그 세부 항목을 말씀해 주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하지 말라.”
안회가 말했다.
“제가 불민하지만 그 말씀을 받들어 힘써 행하겠습니다.”(『논어(論語)·안연(顏淵)』)
○ 굴곡거호(屈谷巨瓠) :
제나라에 전중이라는 거사가 있었다. 송나라 사람 굴곡이 만나러 와서는 말했다.
“제가 선생의 의로움을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지금 제게는 큰 박이 있습니다. 돌처럼 견고하고 두껍기가 틈이 없습니다. 이를 바칩니다.”
전중이 말했다.
“박이 귀한 것은 담을 수 있기에 그렇게 말한다. 지금 두껍기는 하나 틈이 없으면 쪼갤 수 없어 물건을 담지 못한다. 돌처럼 견고하니 쪼갤 수 없어 술을 담지 못한다. 나는 박으로 할 게 없다.”
(굴곡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이것을 버리겠습니다.”
지금 전중이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 사는 나라에 무익하니 딱딱한 박과 같은 부류라 하겠다. (『한비자(韓非子)·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