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역사특강’은 ‘TV', '역사’, ‘특강’ 이라는 세 단어가 어우러진 복합어다. 따라서 그것을 방영하는 프로그램은 그 세 단어가 지니고 있는 각각의 속성과 장.단점을 면밀히 유의하여 제작되어야 한다. ‘TV'를 접하는 대중은 그 수가 몇 10만 몇 100만 등 기하학적인 수에 이를 정도로 매우 많다. 그리고 그 계층 및 부류는 이념, 연령, 직업, 지역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므로 ‘어느 한 계층 또는 부류에 편향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강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하여야 하며 역사를 개진하는 사람의 주관적 관념이 섞여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근거하는 사실은 기록, 유물 등등 논란이나 이론(異論)의 학설이 없고, 검증된 물리적 실체여야 할 것이다. ‘특강’은 강의 시기(時期)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하고, 강의하는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성과 명망성(名望性)에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사여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투표의 권리행사는 저마다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다. 따라서 ‘좋은 유권자’ ‘나쁜 유권자’를 구분 짓는 것은 매우 시건방진 일이다. 나아가 굉장히 위험한 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감히 그것을 구분 짓고자 함은 투표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모르는 유권자가 더러 있기도 하고, 투표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잊고 있는 유권자가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좋은 유권자’ ‘나쁜 유권자’를 구분 짓는 글을 씀에 있어서 객관성과 일반성에 지극히 신경을 쓰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은 순전히 필자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는 점을 밝힌다. ‘기권’하는 유권자를 결코 좋은 유권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권은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일단 투표장에 가서 어느 후보자의 란(欄)에도 기표하지 않은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하고는 사뭇 다르다. 그런 행태는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없다는 의사표시의 정치행위라 할 것이므로 엄연히 투표의 권리행사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기권하지 않
‘3억원과 7500억원’에 대한 얘기는 잠시 미루자. “원래 일을 벌려놓는 사람이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마련이긴 한데…” 이 말은 원희룡 지사가 예래휴양형주거단지사업 관련, 토지수용재결처분에 대해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온 직후 어느 공식석상 발언의 한 구절이다. 원 지사가 이 말을 하면서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은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대법원이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사업에 대해 원인무효 확정 판결을 내리자 드러난 것이 있다. 제주도정이 국토법(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있는 ‘유원지’의 개념과 정의를 임의로 해석한 과오를 범한 것이 그 하나이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마치 무뇌인(無腦人)의 집단처럼 생각 없이 사업을 진행해 왔다는 사실이 또한 그 하나다. 국토법상 ‘유원지’는 광장, 공원, 녹지 등과 함께 공간시설 중 하나로서 ‘주로 주민의 복지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치하는 오락과 휴양을 위한 시설’이라고 법문(法文)에 개념정의가 분명히 명시되었다. 반면, ‘예래휴양형주거단지&rsqu
덜컥 겁이 난다. 제주시 당국의 민망하기 그지없는 우행(愚行)이 제주 섬 밖에 까지 새 나간다면 그 망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겁이다. 제주시 당국이 일본 군국주의 망령을 고발하기 위한 ‘야스쿠니 - 군국주의의 망령’ 이라는 제목을 내 건 사진전의 전시를 불허했다. 제주시 당국의 역사관이나 민족의식, 행정의 합리성 같은 것을 따지는 것은 너무 점잖은 따짐이다. 사안이 워낙 막장 코미디 같기 때문이다. 아시아권에서 가장 문제의식이 있는 보도 및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국내.외에서 널리 인정을 받고 있는 권철 작가의 이번 사진전의 기획의도와 배경에 대하여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의 언급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는 이 사진집 추천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모든 ‘과거사’는 미해결의 현재 진행형인 상태로 ‘현대사’로서 존재한다. 그게 바로 우리들이 이 야스쿠니 신사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고 사명이다. 그 사명을 영혼으로 담아낸 권철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의미가 깊이 녹여있는 이 사진
제주도민으로써 정말 다시 듣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용어가 있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이 바로 그것이다. 그 용어를 듣거나 활자로 볼라치면 부끄러움으로 모골이 송연해지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한 동안 그 용어를 접할 수 없어 그로 인한 상흔(傷痕)이 다소나마 가시는 듯 했다. 그런데 요즘 또 다시 ‘세계 7대 자연경관’이란 용어가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며칠 전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과정에서 부정투표 문제를 제기한 전 KT 노조위원장이 대법원에서 사측의 부당한 인사처리에 대한 취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는 요지의 언론보도를 접했다. 또 다시 부끄러움으로 모골이 송연해지고 있다. 왜 그토록(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그 용어가 부끄러운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장황할 수록 그 용어를 많이 사용해야 하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뇌리에 더욱 깊이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이 ‘희대의 사기극’이었다는 극명한 사실 몇 가지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제주의 ‘
▲ 정경호 전 제주도의회 의원 글의 서두로서 조금은 뜬금 없지만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신 전지사가 마지막 관선 도지사로 부임하여 1년 조금 못 미쳤을 때이니까 1994년 12월 초순쯤이었을 것이다. 제주의 기독교 교회와 교인들은 도지사의 처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널리 알려진 신구범 도지사가 그해 12월 10일 삼성혈(三姓穴)에서 봉행되는 탐라시조(耽羅始祖) 건시대제(乾始大祭)에 초헌관(初獻官)으로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가 큰 관심사였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신도가 아닌 일반 도민들이야 ‘종교적 신념’과 ‘공인의 처신’ 중 도지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하는, 어떻게 보면 호기심(?)으로 도지사의 처신에 관심을 보였지만, 교회와 신도들은 달랐다. 십계명 첫 계명인 ‘나 이외에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는 ‘기독교 유일신 사상’에 젖어있는 기독교신도들은 가슴조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해 12월 10일 ―. 흑관(黑冠)의 제모(制帽)를 쓰고 폐슬(蔽膝)과 중단(中單) 각대(角臺)로 장식된 제례복(祭禮服)을 입은
▲ 정경호 전 제주도의회 의원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지 못한 어느 집에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어찌어찌해서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짱’이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불안했다. 계속해서 오래오래 ‘짱’이 되고 싶은데 사정이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동네 아이들이 자신을 ‘짱’으로 여기게 한 것은 ‘말(言) 펀치(Punch)' 하나인데, 이게 언제 ‘뻥’이라는 것이 들통 날지 모를 일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짱’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말펀치’ 이외에 동네아이들의 환심을 살 그 무엇이 필요했다. 아이가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그 무엇은 동네 아이들에게 피자 같은 맛있는 군것질을 사주거나, 스케이트장 입장료를 호기롭게 대신 내주거나, 필요하다면 15금(禁)정도의 동영상 유에스비(USB)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는 그런 것들을 실행할 만큼의 돈이 없었다.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오래오래 ‘짱’의 자리를 누리려는 이 아이의 철부지 욕심은 급
“동의 여부만 말해요!” 라는 세 번의 거친 요구 ―. “퇴장 시킬 수도 있어요!”라는 경고 ―. “마이크 꺼!”라는 신경질적인 명령 ―. 그리고 어디에서 발언할 줄 몰라 어정쩡한 몸짓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그 ―. 엊그제였던가, 내년도 예산안을 다루는 제주도의회 정례회 실황을 중계한 TV의 비디오와 오디오다. 어디에서 발언할 줄 몰라 어정쩡한 몸짓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다름 아닌 제주도지사다. 그는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 SNS를 통하여 ‘참담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정작 참담함을 느꼈을 사람들은 따로 있다. 회의를 TV로 지켜본 ‘제주도민’인 바로 우리들이다. 회의주재자가 아니라 회의지배자로 변신한 제주도의회 의장이 열연하는 품위 낮은 드라마를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내용을 시시콜콜하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협치예산’과 ‘재량사업비’의 동질성 여부로 빚어진 이 극의 도입부는 저급했다. 그리고 너도 했으니 나도 한다는 식의 선심성 예산 경쟁을 벌리는 중간부분은 유치했다. 또한
제주엔 정당(政黨)이 없다 ―. 이 말에 제주의 여당과 거대 야당은 발끈할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깡그리 무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끈하기에 앞서, 그들은 “우리 도당(道黨)에 정강(政綱)은 있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볼 것을 권유한다. 필자의 이런 권유에, 그들은 어쩌면 “도당에 무슨 정강이야!”라고 더욱 발끈할지도 모른다. “도당에 무슨 놈의 정강이야!” ―. 이 말은 필자가 어느 정당에 몸 담고 있었던 십 수 년 전에도 들었던 말이다. ‘도지부(道支部)’가 ‘도당(道黨)’으로 바뀌고 얼마 있지 않아 개편대회가 열리도록 되어있었는데, 당시 대변인 노릇을 하면서 정책까지도 맡을 수밖에 없었던 필자가 대회에서 낭독될 결의문 초안을 작성했었다. 이 과정에서 도당위원장에 내정(?)된 인사와 실랑이가 있었다. 그 실랑이를 요약해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도당위원장 : 맨 마지막 항(項)에 이게 뭐예요? 필자 : 예, 도당에 독립적인 정강을 수립하겠다는 말입니다. 도당위원장 : 독립적인 정강?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긴가요. 필자 : 왜
▲ 정경호/ 전 제주도의원 소몰이―. 여러 마리의 소를 몬다는 뜻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래전 어느 재벌이 소떼를 몰고 북녘 땅을 찾았던 소몰이를 연상하지 않는다. 그 재벌의 소몰이에는 최소한 애틋한 인간의 정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연상하는 소몰이는 그 옛적 서부영화에 나오는 애리조나 카우보이의 소몰이이다. 그 카우보이의 소몰이에는 오직 형이하학적 목적만 있을 뿐이다. 그 소들을 다른 목장에 팔아넘기기 위해 몰고 간다거나, 쇠고기 공장으로 몰고 간다거나 하는 그런 목적의 소몰이인 것이다. 왜일까? 요즘 필자의 머릿속에 자꾸 그런 소몰이가 그려지니 말이다. 얼마 전, 언론에 다소 해괴하다 할 수 있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내년 도지사선거의 예상후보군 중 어느 한분이 일만(一萬) 명의 지지자를 이끌고 새누리당에 동반입당 하려한다는 설(說)이 퍼져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독자들은 그분의 그 행위가 그 당에 있을 도지사후보경선에 대비한 포석일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을 터이다. 그 설은 제법 구체성을 띄고 있었는데, 그 예상후보 측근들을 중심으로 입당원서 할당량이 떨어졌고, 그 입당원서를 몇 월 며칠까지 수합한 뒤 대규모 이벤트와 함께 입당
▲ 정경호/ 전 제주도의원 '이것은 세대 착취다.’ ―. 이 말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어떤 대학원생이 어느 인터넷신문에 쓴 기고문의 서두부분이다. 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박사과정 운운한 것을 보면 이 대학원생은 자기 현시욕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이 말에서 ‘이것’은 이른바 ‘제주판 3김’에 해당되는 세 분이 정치현실에서 떠나지 않고 있음을 이르고 있다. 그러니까 그 세 분이 제주의 정치현실에 머물고 있음으로 해서 세대를 착취했다는 얘기인 것이다. 아무리 용어의 인플레현상이 심한 요즘의 세태라 하더라도 너무 격한 표현이다. ‘착취’는 계급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생산수단을 갖지 않은 직접생산자로부터 그 노동의 성과를 앗아가거나 무상으로 취득한다는 뜻으로서 다분히 계급적이며 투쟁적이고 이념적 용어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쓸 수 있는 그런 용어가 아닌 것이다. 자칫 잘 못쓰면 대중의 정신적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용어가 되기도 한다. 그 대학원생은 자신이 현대문학을 전공한다고 그 기고문 말미에 스스로 밝혔다. 필자는 그 문학도가 현대문학 중에서도 Erotic
▲ 정경호 전 제주도의회 의원 ‘제주판 3김’ ―. 지방선거를 1년가량 앞두고부터 도민의 귀를 간질이고 있는 말이다. 어떻게 들으면 기발한 조어(造語)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엉뚱한 조어 같기도 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의 의도가 그렇게 선(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 3김의 끈질기고 지겨운 정권욕을 연상케 하여 그 말에 빗대어진 ‘제주의 세 분’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의도가 숨어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 의도가 어찌되었든 그 조어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가는 따져 볼 일이다. 그 조어는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혹은 크든 적든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고, 제주인의 삶의 질 향상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할 수 있는 그들의 역량을 자칫 움츠려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조어의 원조 격인 ‘3김’ ―. 이 말 역시 조어였다. 그렇지만, 조형(造形)의 적합성과 공공(公共)의 합리성을 함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제대로 만들어진 조어라고 할 수 있다. 세 분 모두 성(姓)이 김씨(金氏)였다는 사실, 직업 정치인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