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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의 제주풍향계(7) 역사행위와 문화행위에 끼어 든 종교

글의 서두로서 조금은 뜬금 없지만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신 전지사가 마지막 관선 도지사로 부임하여 1년 조금 못 미쳤을 때이니까 1994년 12월 초순쯤이었을 것이다. 제주의 기독교 교회와 교인들은 도지사의 처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널리 알려진 신구범 도지사가 그해 12월 10일 삼성혈(三姓穴)에서 봉행되는 탐라시조(耽羅始祖) 건시대제(乾始大祭)에 초헌관(初獻官)으로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가 큰 관심사였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신도가 아닌 일반 도민들이야 ‘종교적 신념’과 ‘공인의 처신’ 중 도지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하는, 어떻게 보면 호기심(?)으로 도지사의 처신에 관심을 보였지만, 교회와 신도들은 달랐다. 십계명 첫 계명인 ‘나 이외에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는 ‘기독교 유일신 사상’에 젖어있는 기독교신도들은 가슴조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해 12월 10일 ―. 흑관(黑冠)의 제모(制帽)를 쓰고 폐슬(蔽膝)과 중단(中單) 각대(角臺)로 장식된 제례복(祭禮服)을 입은 도지사의 모습이 도내의 TV 화면과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독실한 크리스천 신구범 도지사가 건시대제의 초헌관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종교적 신념’보다 100만 내외 제주도민의 대표라는 ‘공인의 처신’을 우선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기독교의 신도가 아닌 일반 도민들은 “아, 그랬구나.” 하는 다소 무덤덤한 반응이었고, 교회와 신도들은 “아니, 이럴 수가!”하는 격앙된 반응이었다. 그리고 신구범 도지사는 교회 집사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 민선 1기 도지사 재임시절 초헌관 복장을 한 신구범 도지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공인의 처신’보다 교회 신도들과의 형제애를 존중하는 ‘종교의 신념’을 더욱 우선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반 도민들은 “이건 아닌데.” 하는 다소 의아스러운 반응이었고, 교회와 신도들은 “그래, 그래야지.”하는 반가움과 안도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신구범 도지사는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다음 도지사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또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작금 ―.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는 ‘초헌관을 거부한 것은 나의 도지사 재임시절 처신 중 가장 나쁜 처신이었다.’라며 후회하고 있다.

 

요즘 원희룡 지사가 한라산신제의 초헌관으로 나서지 않는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필자가 이 글에서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왜 말들이 많게 하느냐하는 것이다.

 

도지사에게도 물론 사적인 영역(領域)이 있다. 그 영역을 어떻게 다스리느냐는 것은 순전히 내면적인 문제로 대중이 호불호(好不好)를 가리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린다는 것 자체가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그 사적인 영역의 것이 표출되어 공적인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면 대중으로부터의 찬사와 비난을 함께 감수해야할 것이다.

 

 

원희룡 지사의 ‘종교적 신념’은 그의 내면적 문제로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한라산신제의 초헌관되기를 거부하는 하는 행위는 사적영역의 표출이 공적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원 지사는 제주도민의 찬사와 비난을 함께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원 지사는 제주도민의 찬사와 비난을 모두 피하려 하고 있다. 초헌관되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는 까닭이다. 제례에 얼굴을 내밀었으면서도 초헌관이 되지못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제단 앞에서 인사연설을 하면서도 그 이유를 밝히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종교적 신념을 차마 버리지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라고 이유를 밝혔을 때, 비난하는 도민도 있을 것이고, 수긍하는 도민도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정치적 손익도 발생할 것이다. 원 지사는 그걸 감수하는 공인으로서의 용기와 덕목을 지녔어야 했다. 그런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그런 덕목이 모자라서 공연히 도민들 사이에 말들이 많아지고, 따라서 비난의 여론이 확산되는 것이다.

 

탐라국에서 비롯된 한라산신제는 탐라국이 해체되는 고려 숙종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한라산신제 장소는 제사를 지내는 데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라산 정상 북벽이었다. 고려 고종 때에는 국내 명산과 탐라의 신(神)에게 각각 제민(濟民)의 호를 내리고 춘추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때 예조에서 제주의 문선왕 석전제 의식과 함께 한라산제를 지냈다고 하며, 성종 때에는 이약동(李約東) 제주목사가 한라산신제 장소를 한라산 정상에서 산천단(山川壇)으로 옮겨와서 거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라산신제는 ‘역사행위’인 것이다.

 

제주의 무형문화 유산인 한라산신제는 우리 과거의 전통과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일 것이다. 한라산신제가 ‘문화행위’라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행위’와 ‘문화행위’에 도지사가 ‘종교적 신념’을 앞세우는 것이 과연 도민과 함께 호흡해야 할 도지사의 처신인지 헷갈리기는 한다.

 

☞정경호는? = 도의원을 지냈고 정당의 대변인 노릇을 하면서도 ‘제주타임스’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더불어 제주의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그래서인지 어느 전직 대학총장은 그를 두고 ‘정치인인지 문필가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는 4․3 연구가다. 1990년대 초 ‘월간제주’에 1년 동안 4․3을 주제로 한 칼럼을 썼으며, 4․3특별법의 제안자이자 기초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6년 동안 대변인을 지내면서 제주정가에 대변인 문화를 착근(着根)시킨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6.4선거에선 신구범 캠프의 대변인을 맡아 정가논평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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