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는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외국인들을 직접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지방언론에 거창하게 보도된 내용과 함께 우영태로부터 외국인 투자자가 곧 투자한다는 얘기만 여러 차례 전해 들었다. 우영태의 부하였던 자칭 외자유치 ‘박사’라는 자는 회사와 대표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며 그들끼리도 서로 헷갈려서 뒤돌아서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박사’의 가족들이 프로빈스에 방문하니 호텔에 과일 바구니를 전달하고 관용차와 식사를 대접하여 깍듯이 모시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여러 번 지시를 받았지만 김철수는 뭉개버렸다. “이 자들의 정체가 도대체 뭐기에?” 라며 못마땅했지만 표현을 하지 못했다. 일부 지방 언론에는 조만간 막대한 외자가 곧 투자될 듯이 장식되었었다. 그러나 회사의 성격이나 규모와 매출액과 같은 내용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다. 김철수가 미국에 도착한 후 먼저 할 일은 이 회사를 찾는 일이다. 그 정도라면 적어도 번쩍거리는 대형 빌딩에 큰 간판이라도 걸려있거나 직원들도 수백명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찾아 갔었다. 인터넷으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여 찾아가서 인근 주민
프로빈스는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추구하고 있다. 김철수가 많은 관심을 가진 분야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학술자료도 충분하지 않고 오류도 많은 초보적인 분야라서 영국과 미국, 독일과 프랑스의 전문서적과 학술논문, 사법판결문과 관련 헌법과 법률들을 집중하여 검토하는 중이다. 원래 지방분권은 프랑스에서 유래된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 시민혁명이 발발한 직후에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중앙정부가 대리인(prefet)을 임명하여 지역공동체를 직접 통치하도록 중앙집권국가로 회귀하였다. 지역공동체는 ‘꼬뮌(communes)’과 ‘데파트망(department)’ 과 같은 소규모의 지방자치단체를 말한다.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야 제정된 ‘지방분권법’에 따라 주민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지방의원으로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중앙정부가 임명한 대리인의 감독 하에 있었던 지방자치 권한을 지역 공동체에 되돌려 주었다. 이를 지방분권(decentralization)이라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방분권의 고전적 의미는 지방자치 권한을 주민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에 이전하는 것
조배죽들은 예전에 총독이 집권하는 동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후 지도자가 바뀌었지만 피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지위가 향상된 기득권 세력이 되어있다. 그들은 과거와 같이 선심성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꼬질꼬질하게 끗발을 부리던 시절이 그리워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한 장짜리 문서에 토나 달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옛날이 좋았다!”는 푸념이 나온다. 그들은 하지도 말고 말지도 말고 뭉개며 시간을 보내고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선거를 앞두고 프로빈스에서는 총독이 다시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누가 발탁된다는 소문이 이미 공공연하게 전해지고 떠나야 할 사람들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일부는 이미 선거전략을 짜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정책과 관련되는 자료들이 전달되고 있다는 소식들이 전해진다. 김철수는 소문에 관심이 없이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면 그만이다. “내가 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조배죽에게 둘러 쌓였다면 사정이 다르다. 일에만 몰두하는 김철수에게 상급자는 자료를 요구하면서 자주 호
조배죽들은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던 총독이 아니라 다른 지도자이기 때문에 뒤로 돌아서 업신여기는 듯하다. 민주적인 지도자가 들어서면 자세를 바꾸어 민(民)을 향하여 돌아서 여러가지 민원을 해결하여야 하고 차원이 다른 봉사를 하려면 골치가 아프다. 반면에 독재적인 지도자에게 오히려 꽁지를 흔들며 스스로 충성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들은 조배죽이다. 옛날이 좋았고 항상 총독이 그립다. 조배죽들은 총독의 지위와 권위를 빌어 오직 한사람을 올려다보면서 충성을 바치고 프로빈스를 손쉽게 통치하는 방법을 익혔다. 권세의 차이도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고 뭔가 손해가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김철수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앉아 조용하게 사무처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독특하고 재미있는 다양한 조배죽의 캐릭터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우배식(㬂醅蒠)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볼펜을 손가락에 끼어 돌리며 멍청하게 딴청을 부리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 우배식은 국장이 출장을 가서 국장실을 비우면 자신이 국장이 된 듯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아 앉은 거만한 모습으로 책상
'꼰대'와 '갑질'은 한글에서 나온 말이지만 영어사전에도 소개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어다. 꼰대(kkondae)는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은 항상 틀리다고 하는 나이든 사람'으로 소개된다. 갑질(gapjil)은 '한국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오만하고 권위적으로 표현하는 태도와 행동'으로 소개된다. 나이 든 어른들이 깊은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훌륭한 가르침은 젊은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라 할지라도 항상 옳을 수는 없다. 꼰대의 갑질은 해외출장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고위관료들과 지방의원들에게 해외연수의 기회가 열렸다. 새롭게 나타난 특권이라 할 수도 있다. 부하직원들이 출장여비와 촌지(寸志)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고민하는 풍토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사는 어느 나라에 다녀왔는지 아니면 무슨 유흥을 즐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선진제도나 첨단과학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단순히 흘려들은 얘기로 허풍을 떨어댔다. 애초부터 목적과 비용이 없었는데도 현지에서는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요구된다. 유흥업소를 찾
조직 사회에서 보스(boss)는 부하직원들에게 '가라(go)‼'고 일방적으로 명령한다. 반면에 진정한 리더(leader)는 동료들에게 '같이 가자(let us go)'고 협조를 구한다. 보스는 듣는 귀가 없고 리더는 있다. 보스는 협박이 주요수단이고 리더는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차이가 크다. 카리스마(Charisma)가 있는 리더는 자신감과 정당성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으며, 자신감과 신념은 부하들의 신뢰감을 높이게 된다고 한다. '신의 은총(gift of grace)' 이라는 뜻이 있다.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은 선천적으로 타고 났거나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비하면 조배죽들의 통치방식은 보스가 지시하듯 부하 직원들에게 '가라(go)'가 아니라 '해라(do)' 한다. 김철수는 그들로부터 리더의 자세 혹은 더 나아가서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자질을 찾는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다가도 남는다. 그렇다고 보스의 기질이라도 있는지 찾을 이유도 없다. 조배죽은 조배죽일 뿐이다. 총독은 떠나갔지만 조배죽들은 차별받지 않고 공
김철수는 조배죽 전성시대가 지나간 이후 그들의 흔적을 보면서 혹시나 선(善)한 일이라도 있겠지 생각을 하였으나 포기하였다. 조배죽들은 자신의 충성심을 총독에게 믿게끔하는 면에서는 실력을 발휘하면서 매우 유능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랑할만한 정사(政事)가 없다. 그럼에도 지도자가 다르니 달라질 줄 알았으나 조배죽 시대 6년 동안 몸에 배인 행태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배운 습관대로 새로운 지도자의 취향이 어떠한지 ‘의중’을 파악하려 든다. 지도자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동물적인 감각이 필요하고 조배죽들은 그 감각을 타고났다. 그러나 혁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혁신하여야 한다는 구호만 난무한다. 그렇게 몸에 배인 습관이라면 혁신을 기대하지 못한다. 조배죽들은 사무의 문제점이나 개선방향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대신에 기본적인 문제가 아닌 문제를 문제라면서 직원들을 닦달하려 든다. 김철수는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상급자인 우지질(吽疻螲)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한번 있었던 일에 서너번 반복하면서 훈계하고 있다. &l
조배죽들은 총독을 받들어 모시면서 권세를 누리던 전성기가 사라지면서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프로빈스에는 조배죽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누리던 권세가 그립다. 프로빈스의 권세는 자신들의 물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사(政事)는 사치품이고 그들이 독점하여야 하는 장식품이다. 우공설(隅蛩碟)은 새로운 지도자가 못마땅하다. 좋은 시절 향수가 그리워 “이 X이 총독이 되든지 저 X이 되든지 받들어 모시면 그만인데 조배죽들의 권세를 누리게 해주어야 충성하지 ....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지‼”라며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우태만(雨怠慢)은 오랜기간 버티고 있는 김철수가 못마땅하다. 김철수를 마주치자 “아직도 살아있네‼”라며 비아냥 거렸다. 김철수는 조배죽들이 뭐라고 하던지 상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조배죽들이 ‘과연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목들인가?’ 의문을 품기로 했다. 우박철(楀狛餮)은 김철수가 해외 연수를 다녀 온지 오래되어
▲ 영화 '대부' 캡처' 이미지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는 마피아라는 범죄조직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주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었으나 범죄조직으로 진화하였다. 지역마다 패밀리(family)라는 조직을 갖추고 '돈(Don)'이나 '대부(Godfather)'라 불리는 두목(boss)이 있다. '돈'은 조직원들이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여야 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 조직의 일부는 미국으로 진출하여 범죄조직을 만들어 마피아로 불려지고,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범죄조직을 마피아라 부르기도 하며 다양한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피아에 대하여 '특정한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기 위하여 내부 공모자들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유지되는 조직'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을 “형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절대적인 복종의 대상이라는 점은 마피아와 같다. 최근에는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관피아’와 같이 인맥과 직책을 이용해 부적절한 권한을 휘두르는 집단을
김철수는 지독한 좀비(zombie)에 물려 감염된 듯 흐느적 거렸다. 좀비는 괴기영화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시체다. 한번 좀비에 물리면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되어 버린다. 현대의 관료화된 거대 조직에서 처세술만을 터득해 주체성이 없이 무산안일하게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을 일컬어 부르기도 한다. 프로빈스는 몇 년 동안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이 흘러가 버렸다. 이미 선거는 다가와 가는데 내세울게 없어서 걱정이 크다. '되는 일이 없어‼'라는 노래가 있다. '누가 시계를 되돌렸어‼ 나는 분명히 아무것도 안했는데‼'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김철수는 좀비처럼 프로빈스의 분위기에 맞추어 흘러가는 대로 맡겨버렸다. “머리를 쓰란 말이야‼ 머리를‼” 우중석(櫌重石)은 문서를 결재하면서 김철수에게 윽박질렀다. “머리를 써야 공무원이 되는 거다‼ 머리를 쓰란 말이야‼ 머리를‼”하면서 자신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툭툭 쳤다. 그런데 문서에 '~하시기 바랍니다.'
김철수는 잔인한 린치와 함정에 밀어 넣으려는 계획된 공작이 계속되었는데도 말려들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고 버티고 있던 정신마저도 무너질 위험에 놓여 있었다. 이제는 한계치를 넘어 그 경계선에 서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거나 일생이 파멸되어 버렸을 것이다. 포기하여 모두 놓아 버린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고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서?' 조배죽들의 목적은 김철수의 인격을 파괴시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가까운 이웃은 김철수가 중요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혹은 바닷가를 배회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고 기억한다. 말도 횡설수설하는 일이 잦아 졌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의 보살핌으로 순간을 버티고 있다. 경계선을 넘어가지 않은 것은 가까운 이웃의 조언 덕분이다. 독서량을 늘리고 책 한권을 읽으면 다시 반복하여 읽고, 다시 읽고 메모하면서 책을 외워 버리라고 권한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책방에서 읽을거리를 찾던 중 책방 주인이 “반품할 책이 한권 있는데 그냥 가지고 가세요.”하고 권하자 고맙게 받아왔
호접란 농장에 파견되었던 직원 집에 찾아갔지만 살았던 흔적만 확인하고 다시 만나질 못하였다. 급히 떠난 듯 주변이 어지러웠다. 이웃들로부터 안타까운 사연만 전해 들었다. 지구 반대편 이역만리 타국에서 떠돌면서 고향이 그리워 눈물 흘리기도 하겠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형편이 된 것 같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프로빈스가 그동안 추진하였던 사업들은 모두 좌초되거나 꼬여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조배죽들이 누리던 권세가 하루아침에 추락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 가시방석이라서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불안했다. 그렇다고 미래를 대비하는 원대한 사업은 아예 꿈도 꾸질 못한다. 그래서 유일한 방법은 선심성 예산을 쓰면서 생색을 내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선심성 예산을 집행하는 경우가 있어왔다. 이를 '돼지 여물통(pork barrel)'이라 한다. 옛날에 농부가 돼지 여물통에 먹이를 넣어주면 헐벗고 굶주린 노예들이 앞을 다투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다. 또는 '귀표(earmark)' 예산이라 하기도 한다. 농부가 가축을 자기의 소유로 선점하기 위하여 가축의 귀에다가 찍은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