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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프로빈셜 홀(Provincial Hall)(24)] '꼰대와 갑질' ... 서유견문의 교훈

 

'꼰대'와 '갑질'은 한글에서 나온 말이지만 영어사전에도 소개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어다.

 

꼰대(kkondae)는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은 항상 틀리다고 하는 나이든 사람'으로 소개된다. 갑질(gapjil)은 '한국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오만하고 권위적으로 표현하는 태도와 행동'으로 소개된다. 나이 든 어른들이 깊은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훌륭한 가르침은 젊은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라 할지라도 항상 옳을 수는 없다.

 

꼰대의 갑질은 해외출장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고위관료들과 지방의원들에게 해외연수의 기회가 열렸다. 새롭게 나타난 특권이라 할 수도 있다. 부하직원들이 출장여비와 촌지(寸志)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고민하는 풍토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사는 어느 나라에 다녀왔는지 아니면 무슨 유흥을 즐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선진제도나 첨단과학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단순히 흘려들은 얘기로 허풍을 떨어댔다.

 

애초부터 목적과 비용이 없었는데도 현지에서는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요구된다. 유흥업소를 찾았는지, 소주와 안주를 가져왔는지, 외국 사람들과 사진 찍는 기회를 만들었는지, 양주와 선물을 챙겼는지, 골프용품 가게를 알아보았는지 질책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심지어는 외국에는 없는 단란주점을 찾아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게 요란을 떨면서도 그들의 가방 속에는 중요한 자료는 없는 대신에 양주들로 가득 채워진다.

 

라면과 김치, 고추장이나 멸치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추궁이 이어지기도 한다. 꼰대 하나는 양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가져 온 고추장과 김치를 풀어 놓는 순간 강한 냄새가 식당에 퍼져버렸다. 놀란 식당 종업원이 소독약을 가져와서 방역 처리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귀빈대우를 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호텔 로비와 같이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들락날락하는 곳에서 목청이 터지게 떠들어댄다. 높은 사람이라는 점을 과시하려는 모양이다. “아시아 사람들은 왜 저리 시끄럽지?”하고 한번 쳐다보고 혀를 찰 노릇이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꼰대의 갑질은 그들의 행동에 비하면 매우 순화된 표현이다.

 

김철수에게 해외출장의 기회가 생겼다. 국내외 지방자치단체의 하급 실무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논의하는 자리이다. 우만득(偊謾嘚)은 고위관리들에게 주어지는 해외출장 기회가 실무자에게 주어졌으니 기분이 나쁘다.

 

즉각 다른 인사들과 같이 가는 기회를 만들어 내라는 갑작스런 지시에 허둥대면서 본래의 목적은 뒤로하고 손님들 모시기에 준비가 바쁘다. 예전에는 김철수가 '잘난 척' 해외유학을 간다며 자신에게 “그런 것도(해외유학 방법을) 안고라 줬다(얘기 안 해 줬다)”면서 면박을 줄 정도로 항상 못마땅했다.

 

문제는 현지에서다. 공식행사를 바쁘게 준비하는 김철수를 찾아와 우만득은 돈을 달라며 징징거렸다. 지갑에서 공금으로 써야 할 돈과 개인의 여비를 한 푼도 남김없이 털렸다. 그 돈으로 우만득은 그가 데리고 온 일행들과 질펀한 유흥을 즐겼다. 그들은 어느 나라에 가서 무엇을 즐겼는지 허세를 부리기 위한 경험담이 필요했다.

 

이후 김철수는 느닷없이 늘어난 상전들의 수발을 들어주느라 시간과 비용을 모두 빼앗겨 출장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우만득은 귀국한 이후에도 이 사무를 짓뭉개버렸다. 공적 비용과 개인 여비를 모두 개인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바람에 채무로 남아버렸다. 그들의 유흥에 사용된 비용은 공금으로 충당할 수도 없다.

 

서유견문의 교훈

 

1895년 조선이 개화(開化)가 시작되던 시기, 유길준은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개화는 실용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양주나 마시고 양담배를 피우면서 주워들은 외국의 풍습을 따라하며 허세를 부리는 지도층들의 풍토를 꾸짖은 적이 있다. 선진국의 겉모습을 흉내 내 폼을 잡아가며 배운 것 없이 배운 척 하지 말라는 뜻이다.

 

김철수는 프로빈스의 현실을 이해 못하여 분에 넘치는 해외유학을 가게 된 것이 다시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잘난 척 하는 것으로 주변사람들에게 비쳐지고 그로인해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면 큰 실수다.

 

프로빈스에 어울리지 않는 높은 이상을 찾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게 소모하였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가계(家計)에 큰 타격을 입혀버렸다. 그렇게 인생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큰 대가를 치르면서 잃어버린 10여년이 흘러가고 있었다.

 

“당신의 앞길을 가로 막은 자들을 용서하였습니까?”

 

김철수는 부서져 버린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오래 전에 잠시 다녔던 성당을 찾았다. 그러나 “당신의 앞길을 가로 막는 자들을 용서하였습니까?”라는 신부님이 강론을 시작하기 전에 성당을 나서버렸다. "그들을 용서하라‼”는 계시 같았지만 그들을 용서할 만큼 너그럽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 대신에 스스로 다른 사람의 앞길을 가로 막았는지 돌아보았다. 학(鶴) 처럼 고고하게 살아오진 않았으니까 남들에게 불편을 끼쳤다면 용서를 구하고 참회를 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성당을 나서면서 지워져 버리고 이후 다시 성당을 찾지 못했다.

 

새 살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은 큰 상처를 입은 후로부터 10여년이 지나서다. 사람의 모습을 약간 되찾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실수가 잦아지는 현상을 스스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많이 회복되는 증상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에 과장은 6개월마다 인사이동에 따라 바뀌어졌다. 벌써 3년간 6명이 거쳐 가고 있었다. 개탄스럽지만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이 김철수에게 “(승진이) 너무 늦었다‼”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근무평정을 하려니 후배들을 앞 순위에 점수를 매기게 되어 불편한 모양이다. 김철수가 고참이라 할지라도 앉아 있는 순서에서 말석(末席)이기 때문에 맨 마지막 순위가 된다.

 

우철통(雨鐵桶)은 “똥차(김철수) 때문에‼” 가로막혔다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내가 똥차?) 시일이 지나면서 이미 나이가 들어 후배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앉은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십시오‼” 김철수는 과장의 고민을 풀어 주었다. 후배의 앞길을 가로 막고 싶지 않았다. 이미 무거운 짐을 하나씩 내려놓고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에서 조용히 있으니 한결 가볍다.

 

집에서는 장편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는 중이다. 통째로 다 외워 버리려고 반복해서 읽지만 제대로 되질 않아서 '내일은 오늘이 아니다'라는 마지막 문구를 새겼다. ‘내일‼’이 빨리 와서 사라질 기회를 기다리는 중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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