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래 전, 어딘가에 써두었던 것인데, 우연히 발견하였다. 하루 종일 고개를 수그리고 졸고 계신 어머니를 지켜보며 시간을 헤아리는 요즘, 왜 김광협 시인께서 ‘유자꽃 피는 마을’에서 ‘백발을 인 조모님은 조을고’라고 읊었는 지를 알겠다. 어머니와 하루 하루를 버텨내면서, ‘사는 게 무언가’ 싶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정신이 좋으셨을 때 늘 하시던 말씀대로 어머니의 삶을 요약하면, ‘싸는 물 이시민 드는 물 이신다’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 해녀, 어머니들의 삶이다. 그 어머니와 20년을 같이 살아내는 동안, 나 또한 이 말에 인생사를 싣게 되었다. ‘밭을 폴 때 이시민, 살 때도 이신다’는 말과 함께. 이 긍정의 정신, 인내, 기다림....으로 우리 어머니가 살아 낸 인생. 이제는 내가 그 바통을 그러쥐고 달려갈 차례다. 그런데, 벌써 지쳐버린 나. 이 글을 쓰는 동안 다시 어머니의 이름으로 일어서고저!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는 왜 그렇게 눈이 많이 내렸을까? 겨울밤은 왜 그다지도 살이 에이게 추웠을까? 새벽 서 너 시, 어머니가 “정옥아, 밤바르 가게” 하고 소리쳐 깨우면, 나는 그 밤바르가 죽기보다 싫었다. 밤바르는 겨울밤에 썰물이
김종두 시인께서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전화를 주셨다. 보아하니 내가 보는 당신의 시집이 많이 낡았을 것 같으니, 한 권 보내주고 싶으시다고. 어떻게 아셨을까. ‘사는 게 뭣 산디’라는 제목의 시집이 내 손에서 닳고 닳아 있음을. 하도 많이 인용해 온 ‘제주여인’ 1에서 6까지는 시 속의 글자들에게 미안스러울 정도로 손때가 묻었음을..... 지금, 시인께서는 멀리 가셨으나 보내주신 시집은 내 손에 있다. 하루 종일 100세 어머니와 씨루느라 고단하고 쓸쓸해진 나에게, ‘제주여인 1’이 ‘살암시믄 살아진다’라고 속삭인다. 그러고 보니 김시인께서는 이미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주시고 가셨다. 적어도 나에게는 다음의 시에서 보여주는 우리 할망, 우리 어멍, 아〜 제주여인들의 일생이 내 인생의 답으로 다가온다; ‘시집 왕 보난 돌렝이 호나, 살아 갈 일 생각 호난 귀눈이 왁왁호여도, 우리 할망 살아 온 시상, 고슴에 새기멍 살았수게. 조냥호여사 밥 먹은다, 호다 멩심호영, 이실 때 애끼곡 젭저 놨당, 어신 듯 존디멍 살라. 올레 밖까지 좇아 오멍 고라주던 우리 어멍의 혼 시상. 아명호믄 못사느냐, 조롬 붙이지 마랑, 탕근도 졸곡 물질도 호멍 시집 어른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