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병법(兵法)이다. 미국도 인정하는 베트남의 전쟁 영웅 보응우옌잡이 얼마 전에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면서 그의 3불(三不) 전략은 더욱 유명해졌다. ‘적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지 않는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적이 생각하지 못하는 전술로 싸운다.’ 이 3불 전략이 바둑에 그대로 있다고 본다. 바둑에 성동격서(聲東擊西)가 있다. 물론 병법 ‘36계(計)’ 중 6번째 승전(勝戰) 계책으로 ‘소리는 동쪽에서 지르고 서쪽을 공격’하는 것이다. 동쪽을 쳐들어가는 듯하면서 적을 교란시켜서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 바둑에 있어서 이 전략을 미리 파악해 늘 이에 대비한다. 바로 적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지 않는 것과 같다. 바둑에 장고(長考)와 속기(速棋)가 있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빨리 시간차 공격으로 상대방을 흔든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이다. 바둑에 기사형(棋士型)을 실리(實利)와 세력(勢力) 형으로 나눠 그것을 기사의 기풍(棋風)으로 친다. 실제 대국에서는 실리형이 때론 세력형이 되고 세력형이 실리로 돌아서는 전법을 구사한다. 야구에 빗대, 투수가 공략하는 돌직구,
“바둑은 인생사와 같습니다. 바둑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바둑을 두어보면 상대방의 인격과 품성이 드러나 좋은 벗을 만나게 됩니다” 1983년 12월 18일 제주시 칠성통 제주기원에서 창립총회와 바둑대회를 열어 백록기우회의 초대회장에 선출됐던 박동일(朴東日, 45년생, 제주시 일도2동 371) 법무사의 말이다. 백록기우회는 제주 바둑을 사랑하는 김형유 왕위, 한용철 아마4단과, 박동일, 이우순, 홍영기 아마 3단, 홍성칠, 이기탁 등 아마 2단, 오행조 아마 초단 등 아마 2급 기력을 가진 23명이 창립했다. 제주도병무청에 근무하던 김형유는 제주일보사가 주최하는 왕위전 2기(1968년)에 이어 12기(1978년)~14기(1980) 왕위 등 5차례 왕위를 차지한 제주바둑계의 최강자였다. 김형유는 83년부터 89년까지 끊겼다 부활한 1990년의 17기 왕위전 준우승을 끝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 제주를 떠났다. 왕위전이 열리지 않게 되자 바둑동호인들이 백록기우회를 만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2000년 9월 박카스배 한-중전 결승이다. 좌로부터 홍성칠 전 바둑협회 전무, 백록기우회 박동일 회장, 이창호, 창하오, 황태문 교장, 이
창간 2주년을 맞은 <제이누리>의 새 연재물입니다. 흑돌과 백돌의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입니다. [제주바둑의 향기]는 바둑돌을 놓고 명멸한 인생사와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냅니다. 30여년 언론계에 몸을 담으며 그들의 인생사를 추적했던 장승홍 조선일보 전 사회부 차장이 제주바둑협회의 도움을 얻어 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고수(高手)의 세계와 더불어 바둑판 세상에서 만나는 인간사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바둑은 나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의 전부이며 기쁨입니다” 제주가 낳은 꿈나무, 미녀(美女) 기사 오정아(93년생) 2단의 말이다. 오정아가 바둑을 ‘인생의 낙’으로서 바둑이 기쁨이고 즐거움일 때 그녀에게 큰 타이틀을 딸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프로골퍼 박세리가 미 LPGA에서 한창 잘 나갈 때 국내 칼럼을 통해 “천재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특히 승부의 세계에서 즐거웁게 승부를 펼쳐나가야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학문의 세계까지 이 논리가
박영수(朴永洙, 46년생, 제주시 이도2동 1167-11)는 1990~2002년까지 한국기원 제주지원장, 제주지부장 등을 맡는 등 제주 바둑을 위해 태어났다. 그의 은퇴식이 도지사 공관(우근민 도지사)에서 치러질 정도로 바둑인의 사랑을 받았다. ▲ 한중 교류전에 나섰을 당시 착용했던 박영수의 명찰이다 박영수, 그가 한국기원 지원장을 맡게 된 것은 제주신문에서 해마다 제주바둑의 왕위를 뽑는 왕위전이 중단된 것을 부활키 위해서였다. 당시 제주신문 양주하 상무 등은 일반 기우회의 명칭으로 부활하기에는 곤란하다며 공식적인 한국기원의 명칭이어야 한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 한국기원 관계자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쉽게 풀렸다. 기원 건물 평수가 30평 이상에 정식 프로기사 사범을 두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제주시 칠성로 입구 옛 산호다방 3층에 있던 칠성기원 자리에다 기원을 차리고 윤기현 국수를 사범으로 위촉하여 그가 한국기원 제주지원장을 맡았다. 그가 회장이던 백록기우회 주관으로 90년 제17기 왕위전은 8년 만에 부활됐다. 그의 삶은 기구했다. 때문에 누구보다 독립심이 강했고 리더십을 갖추게 됐다. 그의 부친 박세원(당시 20세)은 1948년 주정공장에
▲ 김석범 사범 김석범(32년생, 제주시 노형동 부영2차 APT 203동 104호)은 제주바둑계의 1인자로 많은 바둑인을 양성했던 원로다. 1959년 한국일보 제주지사(지사장 장용하)가 연 전국 아마추어 바둑선수권 제주대표 선발대회에서 전승을 거두며 우승, 제주바둑계의 1인자가 되었다. 제주시 칠성로 칠성다방 서쪽의 2층 칠성기원(강진화 경영)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제주바둑계의 고수(高手) 격인 2급 이상 김봉수(金奉洙, 서예가, 제주도 초대 왕위), 박창재 전 초등교장, 허두병 전 제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 고두표(*고두형‧高斗衡 고바우농원 대표의 형) 등 10여 명이 참가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기사는 문명택 제주측후소장으로, 그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 대회에 조남철(趙南哲) 국수가 참석하여 지켜보았었고 기사들을 초단격이라고 인정했다. 김석범은 한국일보사 사옥에서 연 전국대회에서 3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때 조남철 국수는 김석범에게 “1주일 뒤에 프로 입단대회가 있으니 참가하라. 너의 실력으로 입단할 수 있다”고 권유했다. 김석범은 많이 고민했지만 당시 바둑으로는 앞길이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조남철 국
창간 2주년을 맞은 <제이누리>가 또 새로운 연재물을 시작합니다. 흑돌과 백돌의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입니다. [제주바둑의 향기]는 바둑돌을 놓고 명멸한 인생사와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냅니다. 30여년 언론계에 몸을 담으며 그들의 인생사를 추적했던 장승홍 조선일보 전 사회부 차장이 제주바둑협회의 도움을 얻어 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고수(高手)의 세계와 더불어 바둑판 세상에서 만나는 인간사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제주가 낳은 강동윤(姜東潤, 89년생)은 세계바둑의 제왕(帝王)을 했고, 여류 기사 고주연(高周延, 89년생)은 유럽 바둑붐을 위한 바둑 사절(使節)을 맡았었으며, 오정아(吳政娥, 93년생)는 세계바둑 여왕을 꿈꾸고 있다. 천재소년 강동윤은 2009년 세계바둑 1위라는 이세돌 9단을 꺾어 제13기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을 거머쥔 뒤 대망의 제22기 후지쯔배에서 이창호 9단을 이겨 우승의 대업을 이뤄냈다. 그에게 따라붙었던 ‘국내용’이란 꼬리표를 뗀 세계대회 첫 우승이었다. 이창호의 키즈가 이창호를 꺾은 승리로, 제주인의 큰 영광이었다. ▲ 강동윤 2009년 7월 강동윤의 세계 제왕
창간 2주년을 맞은 <제이누리>가 또 새로운 연재물을 시작합니다. 흑돌과 백돌의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입니다. [제주바둑의 향기]는 바둑돌을 놓고 명멸한 인생사와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냅니다. 30여년 언론계에 몸을 담으며 그들의 인생사를 추적했던 장승홍 조선일보 전 사회부 차장이 제주바둑협회의 도움을 얻어 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고수(高手)의 세계와 더불어 바둑판 세상에서 만나는 인간사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 한국바둑의 대부 고 조남철 9단 한국바둑의 개척자, ‘현대바둑의 대부’는 조남철(趙南哲)이다. 한국바둑은 초대 국수 조남철에 이어 김인(金寅), 조훈현(曺薰鉉), 서봉수(徐奉洙), 이창호(李昌鎬) 등 국수산맥이 이어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조남철이 15세 때인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일본 프로 수업을 거쳐 입단하고 1943년 귀국하여 현대바둑 보급을 위해 한성기원을 설립한 1945년 11월이 한국기원의 원년이 된다. 한성기원이 설립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현재의 바둑과는 달리 여덟 곳의 장점(將點)에 각각 네 개의 돌을 먼저 놓고 대국을 시작하는 순장(巡
창간 2주년을 맞은 <제이누리>가 또 새로운 연재물을 시작합니다. 흑돌과 백돌의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입니다. [제주바둑의 향기]는 바둑돌을 놓고 명멸한 인생사와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냅니다. 30여년 언론계에 몸을 담으며 그들의 인생사를 추적했던 장승홍 조선일보 전 사회부 차장이 제주바둑협회의 도움을 얻어 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고수(高手)의 세계와 더불어 바둑판 세상에서 만나는 인간사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전 세계의 바둑 인구는 70여 개 국 4,00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바둑계가 2010년에 4,200만 명으로 추계했다가 2012년 12월 추계는 3,800여만 명으로 추계했다. 이 추계에서 바둑 인구의 감소세를 보이지만 실상은 2010년 때 추계에서 중국의 바둑 인구를 2,500만 명으로 보았다가 2012년에 2,000만 명으로 낮춘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중국의 바둑 열풍으로 보아 바둑 인구의 감소세라는 의미는 적다. 오늘날 ‘일본 바둑계가 사망기’라는 일본 내의 바둑 위기설에 잔뜩 움츠린 추계라는 지적이다. 세계 2위의 바둑국은 한국으로 900만 명이다. 일본 500
창간 2주년을 맞은 <제이누리>가 또 새로운 연재물을 시작합니다. 흑돌과 백돌의 만들어낸 제주의 역사입니다. [제주바둑의 향기]는 바둑돌을 놓고 명멸한 인생사와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냅니다. 30여년 언론계에 몸을 담으며 그들의 인생사를 추적했던 장승홍 조선일보 전 사회부 차장이 제주바둑협회의 도움을 얻어 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고수(高手)의 세계와 더불어 바둑판 세상에서 만나는 인간사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사람의 삶인 인생을 바둑과 같다고 한다. 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 흑과 백돌을 모두 놓을 곳은 361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둑의 수(手)는 지구상의 인간의 수(數)보다 훨씬 많아 항하의 모래수 같이 많다고 한다. 서양의 장기인 체스의 경우 컴퓨터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눌러 이겼다는 세계 토픽을 본적이 있다. 허나 바둑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 컴퓨터의 바둑 실력은 아마의 고수는 꺾을 수 있지만 프로 기사(棋士)는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바둑의 수(手)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과학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을 만큼 빠르게 진보하지만 바둑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