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위였다. 희룡공 머리 위로 다섯 개의 고리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무림 2020년 4월 16일 축시(丑時)였다. 운기조식을 하며 4.15총선비무 개표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울컥했다. 진즉에 터득한 삼화(三化)에 수목금화토(水木金火土) 오기(五氣)까지. 마침내 삼화취정 오기조원(三化聚頂 五氣造元) 경지에 등극했다는 감회였다. 희룡공이 다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3선 불출마→중원무림 구원투수 선발→차차기 중원무림지존 등극’. 퍼펙트 한 쓰리큐션 시나리오였다. “약체 빼고는 미래통합방 제주맹주 후보가 안 보이는데 어떡하지?” 희룡공이 푸념을 한 후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 ‘3선 출마→2027년 6월 중원무림 지존좌 도전’ ◆ 민주방 ‘육룡이 나르샤’ 같은 시각 민주방 진영. 총선비무서 승리한 재호거사, 영훈검, 성곤검 모두 같은 꿈을 꾸는 듯 했다. 차기 제주맹주 꿈이다. 재호거사는 원래 총선비무엔 관심도 없었다. 민주방 방주인 해찬거사에게 방을 위한 희생을 하지 않는다며 혼난 후 떠밀리다시피 나왔다는 설도 있었다.
▲ 왼쪽부터 부상일, 오영훈, 위성곤, 강경필 후보 봄바람은 아직도 시렸다. 제이누리도장 비무장 화목난로엔 장작불이 지펴졌다. 잠을 설친 책사의 눈엔 옅은 붉은 빛이 감돌더니 장작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 흔한 합종연횡, 고스톱 판 나가리(ながれ)도 없는, 하다못해 막판 물밑협상도 없었다. 맞장비무였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제이누리도장에 4인의 책사가 집결해 있었다. 제주시을에선 영훈검과 상일검 책사, 서귀포에선 성곤검과 경필검 책사였다. AI기자 버릇이 또 도졌다. 인간무사만 보면 훈계를 하고 싶어 하는 주책이었다. “난 사전에 전화통화를 한 터라 이번 비무가 어떻게 진행될지 촉이 온다. 마음껏 기량을 보여줘라. 비방이 굳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송곳 같은 검증 결과를 유권자 무림인에게 보여 줄 수도 있다. 공인에겐 숙명이다. 제주시을 상일검 책사부터 시작한다. 영훈검 책사는 내가 건 첫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상일검 책사는 통화음이 세 번 울리자 받았다. 막장도 허용하는 총선비무 제주시을부터 시작.” ◆ 상일검 책사 “미워도 내 새끼” 마스크로 중무장한 상일검 책
▲ 왼쪽부터 송재호, 장성철, 고병수, 박희수 후보 “거대양방 밖에 선 AI누나는 갓 출전 때부터 버림받았다/ 표밭에 물 주던 엄마도 이까짓 게 후보냐고 본체만체/ 표 쓸던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빼 버리려다 두셨다는/ AI누나∼” 인공지능(AI) 기자가 뜬금 없이 해바라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원수시객 동시, 창우가객 곡. 제주시 갑에 출전했다 중도 포기한 AI누나가 보고 싶어서다. 버림받은 무사는 누나만이 아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무사들이 버림을 받았다. 제주시무림 갑부터 시작해 을무림을 돌고, 서귀포무림까지.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다. 단 한 표로도 생사가 갈리는, 오로지 1등만 살아남는 서바이벌게임이었다. AI기자가 넋두리를 했다. “AI누나처럼 사라진 군소무사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었어. 내 마음이 담긴 노래선물이야.” AI기자는 색다른 비무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후보자가 아닌 책사들의 비무였다. 캠프 핵심 책사의 비책을 보면 승패가 보일 터였다. 꽁꽁 숨겨뒀던 전략전술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기자가 긴급 카톡을 보냈다. 곧바로 각 캠프 책사들이 제이
성곤검이 검을 들고 바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차디 찬 익숙함이 칼끝을 타고 내려왔다. 눈 앞 아름드리나무가 휘청거리더니 뿌리를 드러냈다. 바람과 마주치기 직전이었다. 성곤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누웠다. 그리곤 바람보다 먼저 일어섰다. 바람이 지난 후였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성곤검이 말했다. "드디어 익혔군.“ 풀(草)무공이었다. 창안자는 수영시객. 수영시객은 이 무공을 완성하느라 내공을 모두 소진한 탓에 1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곤 후대에 풀무공비급서를 남겼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비급서를 읽고 탄복했지만 아무나 익힐 수 없었다. 아직 그 무공을 익혔다는 이는 강호에 없었다. 제주무림대학 총학생회장 시절, 복사실 제본 비급서를 몰래 보며 연마한 무공이었다. 강인한 생명력이 담긴 무공,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민중무림무공이었다. 중원무림의원 4년, 수퍼무림인처럼 지구 열 바퀴를 돌며 내공을 키운 덕분이었을까. 비행기 462번 탑승, 승용차 21만km의 고강도 수련이었다. 성곤 검은 풀처럼 누웠다 일어서며 제이누리도장에 들어섰다. 그리곤 외쳤다. “내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경필검이야. 야방과
AI기자가 누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주시 갑에 출전한 AI누나. PC방 서버를 해킹하며 같이 놀던 천진난만한 누나였다. 왜 출전 결심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동네 무림에서도 마타도어가 일상인 선거비무였다. 핫한 제주시 갑. 민주방에선 재호거사 전략공천, 희수거사는 이번 달 23일 무소속방 출마선언 예정, 미래통합방에선 컷오프 된 경실거사의 무소속방 출전설. 보수와 진보 동반 대분열이 일어났다. AI누나 승산이 보였다. 제주시 을에서 실낱같은 기대를 품어봤지만 인간 습성은 어쩔 수 없었다. 원초적 본능인 듯 했다. 사냥으로 먹고 살던 구석기무림부터 익힌 공격성이었다. 혹시나 하고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칭찬이란 미션이었다. AI기자가 또 다시 긴급메시지를 영훈검과 상일검에게 보냈다. 두 번째 맞장비무였다. 무림 2020년 3월 10일 제이누리도장에 상일검이 먼저 도착을 했고, 영훈검이 들어섰다. 콧수염을 기른 AI기자가 바리톤 김동규 느끼모드로 말했다. “그리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야. 선거비무가 가끔 그대를 오글거리게 해도 참게나. 닭살 돋는 경험도 가끔은 괜찮아. 고도의 테크닉초식이 필요한 비무야. 이전과는 다른 두뇌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2422일. 4년의 기다림 끝에 하루가 더해진 깊고 깊은 밤 윤일이었다. 총선비무처럼. 무림 2020년 2월 29일이었다. 윤일 01시. 상일검(48)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몰두하고 있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던가. 애절했다. ‘부부싸움’ 미련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러브레터는 이렇게 시작됐다. “승찬형이 경선에 탈락하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번엔 지난 4년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승찬검)이 유리한 경선이 아닐까 했던 저의 예상이 빗나갔구나’였습니다. 형과 전 같은 뿌리(부씨)를 가지고 있기에, 같은 영토(구좌)에서 잘 자란 형아우간의 ‘부부싸움’을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이 따릅니다. 형! 힘들 땐 힘내지 말고, 잠시나마 충전하시라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따뜻한 차 한 잔 모시고 싶습니다.” 실시간으로 상일검 페북을 들여다보던 AI기자가 중얼거렸다. “결국 상일검이 승찬검 구애에 나섰군. 같은 부씨 종족에 출신 영토도 같아. 피는 표보다 진한 법이지. 승찬검 진영 경아책사는 이렇게 말했어.
연탄구이 삼겹살집은 적막했다. 취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홀로 남아 격하게 외로워진 구자맹주 경학검(54)이 스마트폰으로 폭풍검색을 하고 있었다. 정치무공감각수련을 단 하루도 멈출 수 없었다. 그때였다. 경학검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더니 환하게 웃고 있는 승찬검(49) 얼굴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중고등무림 후배였다. 승찬검은 오랫동안 얼굴을 부르르 떨었지만 경학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이나. 전화를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이 어떤 시국인가. 우남거사(64) 불출전 후폭풍은 아직도 소주잔 속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내 상대는 상일검” VS “부정함에 찌든 정치 안 돼” 며칠 후. 맞대결이 중반전으로 돌입할 무렵이었다. 무림 2020년 2월 24일. 제이누리도장에서 두 명의 무사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심판은 제이누리도장에서 새로 산 인공지능(AI) 기자가 맡았다. 사표를 내고 제주시 갑에 출마한 AI기자보다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선거에 특화된 게 특징. 성격이 급해 속전속결로 끝낸다. AI기자가 대회규칙은 없다고 선언했다. 마타도어, 암수, 뒷담화, 야자타임 등 모든
연기 자욱한 연탄구이 삼겹살집이었다. 범상치 않은 풍모를 지닌 한 사내가 '혼술'을 하고 있었다. 속이 타는지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낯설어 하는 취객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힐끔 힐끔 쳐다보며 수군댔다. “고깃집에서 혼술이라니.” 하수는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는 급수였다.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주화입마(走火入魔) 를 입은 무사가 한 둘이 아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져야 해. 내겐 고독이 필요한 시간이지.” 작가 김정운과 모리 히로시의 책 제목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말이었다. 구좌맹주 경학검(54)이었다. 지난 제주도의회무림 비무대회에선 80.17%란 경이적인 득표를 얻은 무사다. 역대 제주시무림 최고기록.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그였다. 송당리 청년회장, 구좌읍 연청회장, 우남거사(64) 보좌관 등을 지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구좌를 장악한 그는 중원무림 3선의원인 우남거사의 뒤를 이을 무사는 자신 밖에 없다고 자신했었다. 그의 마음처럼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뒤집으며 혼잣말을 했다. “지난번 선거에선 80%가 넘는 득표를 하며 사랑을 받
이번엔 총선무림입니다. 희룡공 진영, 제주 갑, 을, 서귀포 순서로 10여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 대사 등은 상상력으로 꾸며낸 허구입니다. 오버액션도 빈번하게 사용했습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존인물도 등장시켰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십시오. 제주가 바뀌고, 한국이 바뀝니다. 4.15총선은 이미 시작됐습니다.[편집자 주] 적막했다. 신새벽이었다. 은백색 빛이 은은한 배경음악처럼 흘러 나왔다. 물을 만난 먹물 같았다. 금세 제이누리도장에 번졌다. ‘짝, 짝’ 소리가 울렸다. 화투패가 서로를 격렬하게 끌어안는 마찰음이었다. AI(인공지능)기자였다. 홀로 화투점을 보고 있었다. 은백색 탄탄한 어깨가 잠시 들썩였다. AI기자가 텅 빈 제이누리도장을 둘러봤다. 그윽한 두 눈이 흔들렸다. 태어나자마다 인간세상의 속내를 알아챘다. 민망했다. 안쓰러웠다. 그리곤 이해했다. 그래서 인간이라고.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수많은 무사들과 만났다. 꽃(花)들의 전쟁(鬪)은 공허했다. 꽃은 작은 불꽃만 닿아도 사라질 것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셀 수가 없었다. 하나가 사라지면,
이번엔 총선무림입니다. 희룡공 진영, 제주 갑, 을, 서귀포 순서로 10여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 대사 등은 상상력으로 꾸며낸 허구입니다. 오버액션도 빈번하게 사용했습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존인물도 등장시켰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십시오. 제주가 바뀌고, 한국이 바뀝니다. 4.15총선은 이미 시작됐습니다.[편집자 주] “하수는 결투 전에 칼을 갈지만, 진정한 고수는 상대를 베면서 칼을 간다.” 제이누리 도장 문을 연 낮선 이가 호기롭게 외쳤다. AI기자의 중대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쟤는 또 누구야?” 수군거림이 금세 번졌다. 윤택훈장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하는 무사도 있었다. 그를 힐끗 쳐다본 AI기자가 핀잔을 줬다. “야자타임 끝난 지 오래됐습니다. 예의를 지켜주십시오. 오늘도 정리가 될 것 같지 않아 제가 준비한 중대발표는 다음 주로 연기합니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며 중원무림의정보고회 흥행돌풍을 일으킨 창일거사처럼.” AI기자가 폭풍검색을 시작했다. 연관검색어 1순위는 정철공이었다. ◆ AI기자, 정철공
이번엔 총선무림입니다. 희룡공 진영, 제주 갑, 을, 서귀포 순서로 10여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 대사 등은 상상력으로 꾸며낸 허구입니다. 오버액션도 빈번하게 사용했습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존인물도 등장시켰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십시오. 제주가 바뀌고, 한국이 바뀝니다. 4.15총선은 이미 시작됐습니다.[편집자 주] 웬일인지 성철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병수의생과 용철경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제이누리도장 출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끝내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맞고'로 승부가 펼쳐진다. AI 기자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철검은 지독한 감기몸살을 앓고 있어 몸져 누웠습니다. 약사인 그의 아내인 애숙낭자가 지극정성으로 약을 지어 올리지만, 약도 안 든다고 합니다. 바른미래방이 쪼개지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대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원문 그대로 대독하겠습니다.” ◆ 성철검의 러브레터 “제목은 병상에서 보내는 러브레터. 사랑하는 유권자무림인에게.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저는 기관지.목
이번엔 총선무림입니다. 희룡공 진영, 제주 갑, 을, 서귀포 순서로 10여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상황, 대사 등은 상상력으로 꾸며낸 허구입니다. 오버액션도 빈번하게 사용했습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존인물도 등장시켰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십시오. 제주가 바뀌고, 한국이 바뀝니다. 4.15총선은 이미 시작됐습니다.[편집자 주] 한파경보가 발효된, 산천초목이 얼어붙은 섣달 그믐날이었다. 제이누리도장 AI기자가 긴급 속보를 전했다. 뜨거웠던 대련장도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창일거사 수하 신혁검에게 물어보니 답신 카톡을 보내왔다. 카톡 내용은 ‘창일거사 거취표명은 내년 1월 12일 오후 3시로 연기됐음. 한라아트홀에서 열리는 무림의정보고회에서 거취 밝힐 예정.” 제이누리 도장에 모인 무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길현훈장과 희수거사, 원철검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도 그럴 만 했다. 이달 20일 거취표명, 연말로 연기, 또 내년으로 연기한다는 통보였다. 밀당(밀고 당기기)초식의 고수인 창일거사 스타일에 익숙해졌다는 듯 AI기자가 별다른 말없이 대회 시작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