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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태의 [퓨전제주무림(武林) 시즌 2] (5) ‘제주판 3김 시즌2’의 서막인가

짙은 안개가 대림검 수련실 빌딩을 감싸던 날이었다. 빌딩 옥상에서 하이 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욱한 안개비무는 버럭검으로 베면 알 수 있지. 버럭!”

 

무사가 공중으로 솟구친 순간이었다. 직선으로 찌르는가 싶더니 정교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안개를 걷어냈다. 그제야 보였다. 대림검 수석보좌무사 옥만검이었다.

 

대림검이 아끼는 누나 책사, 필살기는 버럭검. 도의회무림의원 시절, 불성실 공무원무사들에겐 버럭, 버럭, 화를 내며 몰아붙이며 갈고 간 검을 보유한 무사였다. 당시 옥만검은 대림검과 성곤검, 영훈공과 함께 ‘386 무사 4인방’ 밀실 멤버이기도 했다. 멤버들은 옥만검을 누나검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이유가 있었다.

 

제주대무림 81학번인 옥만검. 대학무림 시절부터 유명세를 떨쳤다. 주니어 여검 3인조를 조직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 뿌리기 무공’을 선보여 포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것이었다. 여기서 피는 페이퍼(Paper, 유인물 은어). 대학무림 졸업 이후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신문배달무공을 익혔다. 대충 던지는 것 같았지만, 신문은 어김없이 정확한 지점에 꽂혔다. 민심 정밀타격 득표 무공이었다.

 

이후, 차근차근 무공을 쌓은 후 경희검(전 제주시맹주 지훈검의 아내)과 함께 제주여민회방을 창방한다. 당시 제주무림엔 생소했던 페미니즘무공을 보급한 것이었다. 대림검으로선 피 뿌리기 무공에 페미니즘 무공까지 연마한 그야말로 ‘일거양득, 일타쌍피, 원 플러스 원’ 수석 보좌 무사를 영입한 것이었다.

 

수련을 마친 옥만검은 마음이 급해졌다. 대림검이 낸 숙제가 있었다. ‘초미니 자서전 쓰기’. 옥만검은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봤다. 제이누리방에 접속해 영훈공과 성곤검 초미니 자서전을 탐독했다.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영훈공(현 제주맹주)과 삭발초식을 벌이는 성곤검(중원무림 의원)의 대학무림 시절 사진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아우들, 참, 푸릇푸릇하군, 대림검도 비장의 사진이 있어. 벚꽃이 만발한 봄날이었지. 최루탄 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린 교정에서 마스크 하나로 무장한 채 전투포졸과 대치 중인 한 컷이야.”

 

옥만검은 대림검 수련실 비책방으로 내려왔다. 모아보니 회의 테이블에 산처럼 쌓인 문서들. 눈처럼 소복소복 쌓인 먼지를 후후 불어내며 대림검 스토리를 추렸다.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자신의 SNS에 썼다. 리얼타임 대림검 초미니 자서전.

 

◆성곤검 키운 대림검은 누구인가

 

무림 1965년 11월생.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출생. 초등무림 시절 속칭 ‘짱’이었다. 운동무공은 대적 상대가 없었다. 철없던 시절, 비무대회 우승무사에겐 황소 한 마리를 상금으로 준다는 말에 혹해서 초등 4학년 시절부터 씨름무공을 익혔다. 호미 하나로 밭을 가는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먼 훗날, 대학무림 1학년 시절이 돼서야 꿈에 그리던 우승을 했다. 하지만 상금은 쌀 한 포대. 씨름무공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였다.

 

다시 초등무림 시절, 영화배우가 꿈이었다. ‘아비요~’ 기합 한 마디면 MZ세대 빼곤 누구나 아는 소령스타검. 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사망유희를 전 세계 무림에 흥행시키며 무사의 신이 된 소령스타검을 추종했다. 하지만 일찍 꿈을 접어야 했다. 도무지 ‘이소령’과 짝퉁인 ‘여소령’을 분간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대학무림학력고사 하루 전, 친구 한 녀석이 시비를 걸자, 한 시간 동안 격렬한 격투기 비무를 벌인다. 결국 다음날, 피곤이 쌓여 꾸벅꾸벅 졸다 졸도하고 만다. 이날의 기행은 전국무림방송 9시 뉴스에 상세히 보도되며 영화배우 스타가 아닌 무림학력고사 ‘스타(?)’로 등극한다.

 

제주대학무림 법학과에 입학, 사회과학대 주니어맹주를 거친다. 당시 포졸의 수배령을 피해 신문지 깔고, 현수막 덮고 잠 청하기 무공을 익힌다. 내공은 날이 갈수록 급상승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후배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총학 주니어맹주 후보로 출격해 줍써!”

“후배무사에게 길을 터 주자.”

 

대림검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곤 성곤검을 추천한다. 현 중원무림의원 성곤검이었다. 성곤검은 총학비무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해 그를 흐뭇하게 했다.

 

“여기서 잠깐!” 옥만검의 SNS를 읽던 호검이 외쳤다. 앞 회에서 설명했듯이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대림검이 후배 무사들의 요청을 수락하고 총학 주니어맹주로 출격했다면, 성곤검 대신 다른 후배 무사를 추천했다면 제주무림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까? 대림검은 성곤검과의 연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초박빙 경선비무. 연대만이 살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오래전부터 얽히고 설킨 깊은 인연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옥만검이 “버럭!” 하더니 호검의 댓글을 멈춰 세웠다. 그리곤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엔 러브스토리였다.

 

대림검 아내 맹숙낭자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내 인생의 듬직한 동반자, 첫 만남은 제주대무림에서 수련할 당시였어. 같은 과 친구무사가 동네 오빠무사라고 소개했지. 흰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어. 전형적인 무사의 의복. ‘오빠검!’ 그렇게 부르며 시작했어.

 

혼인 전, 친정인 곽지해수욕장 수련장엔 지금은 귀한 대합조개가 많이 나왔어. 해녀무사 엄마를 둔 덕분에, 냉장고에 쌓아둔 대합조개를 몰래 갖고 나올 수 있었지. 오백 년 넘은 곰솔 정기를 흡수할 수 있는 제주시 산천단에서 같이 삶아 먹으며 서로의 내공을 키웠어. 난, 대림검의 아내를 뛰어넘은, 정치무림인 대림검의 적극 지지무사야!”

 

맹숙낭자의 내레이션이 끝나자 옥만검은 진중해졌다.

 

대림검 엄마가 위암 수술을 받은 후였다. 대림검은 모든 일을 작파하고 100일 동안 숙식을 같이하며 간호한다. 엄마가 퇴원한 뒤에는 반년 동안 아침저녁 밥을 지으며 곁을 지켰다. 엄마가 좋아하는 옥돔국과 소화가 잘되는 반찬을 수소문해서 뚝딱 만들기도 했다. 지금처럼 검색만 하면 백종원검 황금레시피를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 정성 덕분이었을까. 대림검 엄마는 건강을 회복하곤 그 후로 20여 년 동안 대림검 곁을 지켰다.

 

◆험난했던 정치무사의 길

 

무림중원의원이었던 진부거사 보좌무사를 거쳐 도의회무림비무에 첫 출전한 무림 2006년 발표된 여론조사. 대림검은 성곤검처럼 눈만 껌벅, 껌벅거려야 했다. 인지도 1.8%, 지지율 1.6%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 성곤검은 인지도 2%, 지지율 0.9%. 인지도에선 0.2% 뒤졌지만, 지지율은 0.7% 앞선 것이었다. ‘도토리 표(票)재기’가 아니었다. 단 한 표로도 승부가 갈리는 비정한 무림에선 예민,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다.

 

그해 비무. 대림검은 뒤집기 한판 초식을 쓴 덕분에 34.48% 득표율을 얻어 승리한다. 이후 재선 도의회무림비무에선 81.8%를 얻어 중원무림 통틀어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다. 정치무사로선 아동무사라고 치부되는 40대 나이에 최연소 도의회무림 의장을 역임하곤 무림 2012년 전격 사퇴, 중원무림의원 도전이란 험난한 길을 선택한다.

 

또다시 잠깐. 옥만검이 글쓰기를 멈췄다. 동서고금 핵심은 무사의 승률이라고 여겼다. 경선 비무까지 포함해서 승률을 계산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경마무림장도 아니고, 인간무사의 승률은 덧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림사는 ‘한 방’이 중요했던 것이었다. 일희일비하는 참, 가여운 무사들, 수많은 패배를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있다는 것을 도무지 모르는 무사들. 옥만검은 푸념하고는 무의미한 승률계산을 접고선 다시 자서전 집필을 이어갔다. 그러다 꽁꽁 봉인된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심호흡하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개봉했다.

 

봉인된 문서엔 무림 2026년까지 영향을 끼친 ‘공천 불복 감점 25% 적용’ 씨앗이 된 내용이 있었다. 당시 중원무림의원 민주통합방 경선에 나선 대림검은 현역인 재윤검에게 단수 공천을 주자 불복, 무소속방으로 출전했다. 결과는 31.65%, 2위로 선전. 1위와는 불과 5.54% 차이였다. 문서엔 대림검이 남긴 어록도 쓰여있었다.

 

“(공천관리위원회는) 총선비무 출마를 위해 현직에서 사퇴한 지방무림의원에게 (경선 배제) 불이익을 줬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나와 같이 도의회무림 의원을 사퇴해 출전한 영훈공(현 제주맹주)에겐 경선 자격이 주어진 것만 봐도 그 원칙을 받아들일 수 없다!”

 

대림검은 무림 2024년 4월까지 무려 12년 무림 생활 동안 패배에 패배, 또다시 패배, 밤하늘에 별처럼 헤아릴 수 없는 패배를 겪는다. 물론 그 와중엔 청와대방 비서관, JDC 방주를 지내기도 했지만 말이다. 결국, 무림 2024년 대림검은 62.88%의 득표율로 총선비무에서 승리하며 화려하게 재기한다.

 

◆ ‘시즌 2, 제주판 3김’ 등장인가

 

대림검 초미니 자서전을 자신의 무림플랫폼에서 생중계하던 호검이 말했다.

 

“무사의 비무 예상 승패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 감점 25% 예상설도 뒤집기 한판이 가능할지도 몰라. 지금 제주무림 초미의 관심사는 성곤검과의 연대지. 보아하니 오랜 인연이 있군. 성곤검을 제주대무림 주니어맹주로 추천하며 키워낸 무사. 그 시절엔 미래의 경쟁무사가 될 것이라고 꿈에 선들 상상이나 했을까. 근데, 대림검 라인은 누구인가? 민주방 청래방주인가, 재명지존인가? 도무지 모르겠어. 이번 판은 왜 이렇게 판세 전망이 어려운지도 정말 모르겠어.”

 

같은 시각, 호검 무림플랫폼 애독자 콘치스검이 댓글을 달고 있었다. 한평생 소설무공만 수련하는 은둔무사였다.

 

“시즌 2, 제주판 3김의 등장인가? 스타트는 근민·구범·태환 전 제주맹주들이 끊었지. 앞으론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무사들의 전성시대인가. 요샌 맹주 퇴직 연령이 높아진다는 첩보가 있어. 의학무공이 급격히 높아져 정치장수무림인이 전 세계무림에서 속출하고 있거든.”

 

댓글을 본 호검이 급히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몹시도 두려워졌다. 미국무림 트럼프(79), 러시아무림 푸틴(73), 중국무림 시진핑(72), 무림 2026년 3월 5일, 현시점이었다. 한국무림 대중 전 지존은 79세까지 권좌를 지켰다. 근민 전 제주맹주는 71세까지 권좌를 지키다 중원무림서 희룡공을 낙하산으로 투하하는 바람에 조기(?) 퇴임했다. 종합하면, 동서고금 70대 정치무사 전성시대인 것이었다.

 

호검이 탄식하듯 말했다.

 

“맹주 고령화는 전 세계무림의 유행이야. 시즌2, 제주판 3김이 앞으로 20년 넘게 정치장수무공을 펼친다면 우리 7080생 무사들은 어쩌란 말인가. 우리의 소원은 조국통일 아니야, 세계평화도 아니지. 지극히 소박한 염원인 세대교체야. 홍택검이 펴낸 비급서 ‘90년생 무사들이 온다’ 탓에 잠 못 드는 밤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말이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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