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산만한 모습을 보이던 아동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른 아동에 비해 유난히 산만하여 수업 등 단체 활동 참여가 어렵거나, 충동적인 행동으로 또래관계 형성이나 단체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아동들은 부모나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말썽장이로 오인 받아 늘 꾸중을 듣게 되지만, 아동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문제행동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대략 일반아동의 3-5%에서 이러한 주의력결핍이나 과잉행동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이런 아동들은 뇌의 기능 중 주의집중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 내거나 행동을 조절하는 부위의 기능발달의 지연으로 인해 자신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자극들을 무시하는 것이 어렵고 차분하게 행동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런 아동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서는 집중을 잘하면서도, 학습과 같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주의집중시간이 짧고 쉽게 산만해지며 부주의한 실수를 많이 합니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거나 해야 할 일을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아동들은 ‘모터를 단 것’처럼 산만하여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며, 질문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불쑥 대답을 하거나, 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환경적 스트레스가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아 희망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으며, 타인과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stress)란 어떤 자극에 대한 각성반응으로 인해 심신의 불균형 상태가 초래된 것으로,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은, 개인이 오랫동안 지속해온 생활양상을 변화시켜 심리적, 생리적 적응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나 자극 즉,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유발됩니다. 사람에게 심리적이든 신체적이든 어떤 변화가 주어진다면 이를 수용하여 다시 평형을 되찾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요인의 세가지 범주 첫째는 심리사회적 원인으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자극 1)심리적 적응을 강요하는 사건(예를 들자면 가까운 사람의 질병이나 사망, 직장내의 갈등이나 변화, 경제적 변화, 가족관계의 변화 등) 2)좌절의 경험(목표달성의 실패, 편견과 차별, 경제적 빈곤, 비인간적인 관료주의) 3)가정 직장 학교에서의 과잉부담(시간 압박감, 지나친 책임감
강준만 교수는 <오버하는 사회>(인물과사상사, 2003년)를 쓴 바 있다. 지금도 시의적절한 지는 좀 더 따져봐야하겠지만 여전히 좋은 책이다. 인터넷에 소개된 내용은 이렇다. “지금 대한민국이 정치, 사회, 언론, 문화 영역 가릴 것 없이 오버(Over)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을 그럴 듯한 명분으로 미화하지만, 그 열정의 이면과 표면에 어른거리는 오버의 실체에 대해서는 둔감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사회와 개인에 필요한 열정이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열정을 넘어 과도한 오버로까지 치닫는 자기독단과 아집에 대해 비판한다. 크게 바뀐 환경에서도 '오버'를 요구하는 반(反)독재 투쟁의 심성이 남은 것을 지적하는 정치의 '오버'를 비롯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오버'를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 등을 담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대’는 사춘기로서 족하다. 물론 엄마들은 “내가 미쳐...”하겠지만 사춘기의 오버는 한편 귀하고 예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성인이 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하나의 관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선배
요전에 간호사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다중인격 장애를 다룬 드라마를 하더라고요. 재방송이겠죠. 제목이 <킬미,힐미>던가요? 과거에는 다중인격 장애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라고 합니다. ‘정체성 해리장애’가 더 좋은 번역 같은데요. 아무튼 dissociation을 해리라고 번역한 것도 아마 일본 학자일 거예요. 경의를 표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니 ‘해리(解離): 풀려서 떨어짐 또는 풀어서 떨어지게 함’이라고 나와 있네요.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딱 한번 경험한 바 있습니다만 이 병에 대해서는 인터넷 여러 군데에서 충분히 소개되었기 때문에 제가 보탤 것까지는 없는 것 같고요. 어쭙잖지만 한자에 대한 감상평이나 그려볼까 합니다. 제목만 보고 들어와 실망하셨다면 제가 이른바 낚시질에 성공한 겁니다. 한자 풀 해(解)를 보면 전 <장자>에 나오는 그 예술가 레벨의 백정을 떠올립니다. 소를 잡는데 절도 있는 춤 동작과 설겅설겅 음률에 맞는 칼질 소리에 살과 뼈가 척척 떨어져 나오며 물 흐르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선택만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없는 많은 도덕적 딜레마를 만나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김영사. 2009)에도 도덕적 판단과 관련된 유명한 딜레마들이 나온다. ‘전차 딜레마’도 그 중에 한 가지다. “탈선한 전차가 다섯 사람을 향해 달리고 있다. 현재대로 계속 간다면 모두 죽게 된다. 이들을 구할 방법은 스위치를 눌러서 전차의 방향을 다른 선로로 바꾸는 것뿐이다. 이 경우 다섯 사람 대신 한 사람이 희생된다. 한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차의 방향을 돌려야 하나?” 이 상황에서는 전차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 20만 명 이상의 사람 중 89%가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철학적으로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른 딜레마다. “전차가 다섯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당신은 선로 위를 지나는 육교 위에 덩치 큰 낯선 사람과 함께 서 있다. 앞에서는 전차가 다가오고 있고, 아래 선로에서는 다섯 명의 인부가 있다. 몸집이 큰 낯선 사람을 육교에서 밀어 선로로 떨어
우울병은 자기경과가 있습니다. 한번 오면 평생 계속 우울병 상태로 가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르락내리락 몇 개월 지속되다가 ‘저절로’ 좋아집니다. 극단적으론 한번 수개월 앓고 다신 재발하지 않고 사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울병은 재발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저절로 호전되어 잘 지내다 재발하면 병의 기간이 더 오래고 정도도 심할 수 있습니다. 드문 경우겠지만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수많은 재발과 호전을 겪으면서도 운이 좋아 아무런 ‘사고’ 없이 평생을 살았다고 칩시다. 우울병으로 점철된 삶이죠. 삶의 본질 자체가 고통이라는 말이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해(苦海)의 인생입니다. 하물며 결국 자살로 매듭 짖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울병이 ‘질병’으로 규명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고 밝혀지기 전에는 ‘누구나 인생은 어차피 고독해’ 테마에 묻혀갔을 겁니다. 세간에선 뭉뚱그려 말하지만 진단분류학에선 우울병도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임상에선 이런 분류도 중요합니다. 치료 접근에 있어서 미묘하지만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성격 형성을 유년기 양육 환경과 관련해서 설명한다. 인과 관계처럼 설명하는 것이다. 정신분석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사회 통념이기도 하다. “잔정이라고는 요만큼도 없고 매우 엄격하기만 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쟤가 부모 사랑을 못 받아서 성격이...” “반장님. 사이코패스로 추정되는 범인의 어린 시절 환경을 조사해 봤는데요. 아버지가...” 유년기에 경험한 부모, 자식 간의 상호작용이 그의 인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신경증이나 특히 성격 장애에 대한 관점은 흔히 크게 ‘갈등모형’과 ‘결핍모형’으로 나뉜다. 대표적 갈등모형은 <프로이트 학파>다. 인간의 무의식은 갈등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자아의 방어기제를 통해 갈등을 타협한다는 것이다. 그 타협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을 신경증이라고 부른다. 타협을 위한 방어기제가 비교적 적응적이라서 일상으로 정착되었다면 그것을 성격이라고 부르는데, 원시적인 방어기제가 주로 나타나는 경우를 성격 장애라고 한다.
기억과 망각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 책을 본 적이 있다. 통상적으로 기억(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특히 삽화적 기억)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이라고 믿게 하는 근거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어떤 철학이든지 ‘존재’나 ‘변화’에 관해 말할 때 ‘기억’이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관심은 많지만 그런 부분은 어쭙잖게 거론할 능력은 없고 나는 기억에 관한 너무나 유명한 과학사(科學史) 하나와 짧은 설명을 붙여 보려고 한다. 읽는 동안에 재미나 있었으면 좋겠다. 1953년.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어떤 민간요법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의 난치성 간질을 앓던 헨리에게 외과의사 스코빌은 실험적 치료를 제안한다. 그것은 헨리의 간질 근원지로 추정되는 해마(hippocampus)를 제거하는 수술이었다(실제로는 해마와 편도체(Amygdala)를 포함하는 양측 측두엽의 안쪽 부위였다고 한다. 최근 편도체는 어떤 기억에 감정을 채색하는 것과 관련된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 슬레이터는 문학적 표현, 여성의 감성에다
성격의 분류도 선명하게 떨어지지 않지만, 분류된 각 성격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과 비정상(非正常)에 ‘장애’라는 진단을 붙이는 것 모두 쉽지 않습니다. 당장 ‘정상’이란 도대체 뭘 정상이라고 하는 걸까요? 통계적 정상, 주관적 고통을 기준으로 한 정상, 사회적.문화적 기준의 정상, 이상적 관점에 따른 정상, 임상적 관점에 따른 정상.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부교수 김병수는 월간「인물과 사상」2월호에서 정상성의 5가지 관점을 이렇게 소개했었지요. 이 부분 소개 및 논평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성격의 분류 성격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여기선 미국정신의학회 분류기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선 사람은 모든 성격 요소를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이런 분류는 장애(질병)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입니다. 대략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두드러지고 또 그것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문제가 되는 정도를 말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리 진단기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진단에는 정신과 의사의 직관이나 인상(impression)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격장애는 크
송영길 의원은 지난 8일 한 인터넷 방송에서 “인천시장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간담회를 하는데 ‘대통령이 쉬어야 하니 시장실을 빌려달라’는 말에 기꺼이 시장실을 비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박 대통령이 변기를 쓰기 전에 청와대 비서실이 시장실 화장실 변기를 뜯어냈다”며 “깜짝 놀라 왜 변기를 뜯어가느냐 했더니, (박 대통령이) 내가 쓰던 변기를 못 쓴다는 말이었다. 소독하고 닦든지 깔개를 깔면 될 텐데 변기까지 뜯어갈 사안인가 신기했다”고 과거 일화를 소개했다. [2016. 12. 16. 인터넷 신문 이데일리] 기사를 읽으며 조금 유별나다 싶었지요. 최근 여러 언론에 화장실에 관련한 박대통령 기사가 쏟아집니다.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제4차 핵 안보정상회의가 있었어요.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들의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박 대통령이 빠진 겁니다. 외교 문제, 한국정상 예우 문제, 의전 문제 등 여러 의혹이 난무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것은 박대통령이 정상회담 장소에 있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현지 숙소의 화장실까지 가느라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 [구글]
흔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 복잡한 감정을 두고 패닉(Panic) 상태라고 말한다. “그 소식 듣고 나 지금 완전 패닉이야.” 패닉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 판(Pan)은 숲의 신이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산양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외모는 산양을 닮아 무섭게 생겼고 판이 소리치면 알 수 없는 공포에 빠졌다. 올림포스 신들과 티탄 신들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에서 판의 소리에 티탄 신들은 공포에 빠졌다. “티탄 족이 패닉(Panic) 상태에 빠졌다.” “꼭 죽을 것 같았어요” H씨는 2주일 전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어지러워 119를 통해 응급실에 갔다. 링거액과 함께 안정제 주사를 맞고 좋아졌다. 여러 내과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다. ‘과호흡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후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사한 증상이 한 두 차례 있었다. 어제는 버스를 타고 가다 또 증상이 발생하려는 것 같아 바로 내렸다. 근처 벤치에서 숨을 천천히 쉬며 안정을 찾았다. ▲ 불안(Die Angst, Life Anxiety) -뭉크, 1894년. 이런 병을
블러그 이웃인 ‘마혼’님은 위대한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건 ‘광기의 이성’이라며 이를 부족하나마 ‘예술이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고 한다. 마혼님 글을 읽으며 <창조는 좋은 기분에서 시작된다>(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교수 김병수, 월간 인물과 사상 2015년 3월호)라는 글이 생각났다. 김병수는 창조적 인물들과 조울병(양극성 감정장애, bipolar disorder)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소개했다. 결론을 말한다면 창조적인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은 조울병 환자가 많았고,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도 일반인에 비해 조울병 환자가 뚜렷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 심하다 싶지만 어떤 연구에선 시인들의 경우 거의 50퍼센트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대게 조울병이었다.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은 우울 시기에는 거의 할 수 없었고 조증manic(혹은 경조증hypomanic) 시기에 맹렬하게 이루어졌다. 우울기의 경험을 에너지가 상승하는 조증 시기에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더 진행해서 생각해 본다면, 과거엔 위대한 인물들은 조울병을 앓았음에도 병을 이겨내고 특출한 성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