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에서 5살짜리 꼬마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데이비드가 등장하는 분량이나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할 모두 할머니 순자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능가하는 듯하다. 나이 어리다고 조연상 자격이 안 된다면 조금은 억울한 일이다. ▲ 바람은 하늘의 뜻일 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영화 포스터에서도 나타난다. 남녀 주연배우들을 모두 제치고 포스터에 단독으로 등장한다. 포스터에서 데이비드는 대형 성조기가 벽면을 덮은 농장 건물 배경의 풀밭 위를 나뭇가지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나뭇가지다. 데이비드가 소중하게 들고 있는 구부러진 나뭇가지 하나에 영화의 핵심 주제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제이콥은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근근이 모은 돈과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합쳐 아칸소 외진 곳에 척박한 땅을 산다. 그렇게 농장주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 농장을 건설하려면 우선 물이 문제다. 우물을 파주겠다는 전문가가 두개의 나뭇가지를 들고
정치인을 가리키는 politician은 셰익스피어 시대에 처음 쓰였다. ‘신중한’이란 의미의 형용사 politic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그 단어는 점차 부정적 의미로 변모했다. ‘교활하다’거나 ‘철저히 자기 잇속만을 차린다’는 뜻으로 굳어져갔다. 그래서 politician은 모사꾼의 의미로 뒤바뀌었다. 정치인(statesman)이 아니라 정상배(政商輩)라는 의미다. 셰익스피어는 어떤 사람을 모욕적으로 묘사할 때 politician이라고 했다. 리어왕은 politician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지칭했다. 햄릿은 무덤 파는 광대가 해골을 던지며 장난치는 것을 보면서 "그 해골이 politician의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그런 정치꾼은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도구가 아니면 적이다(A politician divides mankind into two classes: tools and enemies).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침침해지는 눈 탓을 할 생각도 했다. 그런데 떡하니 인터뷰 기사까지
▲ 전력 공급이 부족해질 위기에 처하지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정비 중이던 원전을 전력 생산에 투입하기도 했다. 아이러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정부청사와 공공기관에 낮 시간 중 30분씩 돌아가면서 에어컨 가동을 멈추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기업들에는 전기 사용을 줄이면 보상금을 주는 ‘수요반응(Demand Response)’ 제도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여름 더울 때 에어컨을 끄고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도 생산라인 가동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은 전력 공급이 부족해질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에어컨 가동중단이나 전력사용 감축 요청은 2013년 이후 8년 만의 이례적 조치다. 여유 전력을 나타내는 전력예비율은 1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일부 발전소가 고장 등으로 멈춰 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정전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평소 20~30%를 유지하던 전력예비율이 7월 둘째주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위험주의보다. 올여름 전력수급 불안은 2017년 대선 공약인 탈(脫)원전의 아집에 갇힌 문재인 정부가 자초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지난 1910년 8월 29일, 경복궁에 일장기가 걸려있다. [연합뉴스]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뜻을 품은 치매, 해당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정착된 용어이기도 하지만, 기억력이 약한 사람을 놀릴 때 "너 치매 걸렸니?"라고 하는 등 실제 치매환자와 가족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치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엔 치광으로 불렸다. '미친 사람'이란 뜻이다. 모두 일본에서 처음 사용됐다. 영어와 독일어에서 유래된 Dementia(디멘시아)라는 명칭을 일본의 정신의학자인 '쿠레 슈우조'가 지난 1908년, 한자로 바꾸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치매'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치매도 그나마 치광에서 순화된 용어다. 이후 지난 1919년, 일본의 소설책에서 '치매'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됐고, 1927년엔 일본어 사전에 첫 적용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만든 병명인 치매를 그들은 이미 '인지증'으로 개선했
영화 ‘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온 한 한국인 가정을 보여주지만 이름만 ‘한국인 가정’일 뿐, 그들이 보여주는 가족관계는 전형적인 한국인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국적이라기보다는 ‘미국적’이고 ‘세계적’이다. ▲ 과거 욕망과 니즈의 ‘서열화’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가 미국과 세계 각국의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 가정의 모습이 ‘미국적’이거나 ‘세계적’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면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라는 ‘국뽕’에 불을 지피는 엄청난 ‘버프’에도 국내 흥행이 기대에 못 미쳤던 건 한국 관객들이 보기에 ‘미나리’ 가족의 모습이 왠지 ‘한국적’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듣게 되는 ‘가장 한국적인
▲ 때마다 노사간 대립으로 치닫는 최저임금 결정 제도를 방치하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사진은 12일 공익위원의 안에 반발하며 전원 퇴장하고 있는 사용자위원들.[사진=연합뉴스]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13일 새벽에야 가까스로 결정됐다. 올해(8720원)보다 5.1% 많은 시간당 9160원이다. 이번에는 조금 달라지나 기대했는데, 노사 양측은 변함없이 벼랑 끝 전술로 버티다가 결정된 뒤에도 반발하는 구태를 답습했다.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35차례 결정과정에서 노사가 합의한 경우는 5분의 1인 단 7회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하지만 위원회 앞에 붙는 ‘사회적 대화기구’다운 합리적 근거에 입각한 제안과 협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노사가 요구하는 인상안의 격차가 큰 데다 주장을 굽히지 않아 법정시한을 넘겨 허겁지겁 투표를 통해 공익위원 중재안대로 결정해왔다. 이번에 노사 양측이 제시한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 인상률은 23.9%(1만800원) 대 0
▲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에서 10대 남학생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허술하다’. 치밀하지 못하고, 엉성하여 빈틈이 있다는 뜻이다. 무심하고, 소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찰의 치안활동은 결국 결과로 말하게 돼 있다. 단순 사건이 아닌 살인사건의 경우라면 경찰의 예방치안 활동은 그 정점에 있어야 한다. 그것도 이미 '신변보호' 요청을 한 인물에게 벌어진 사건이라면 사실 경찰로선 더이상 할 말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할 말이 많았다. 차이가 있다면 단 하루 간격으로 말을 바꾼 게 다르다. 18일 밤 10시 51분께 제주시 조천읍 한 주택에서 A(16)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A군은 당시 집에 혼자 있었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해 사건화됐다. 경찰은 A군 시신에서 타살 흔적과 A군의 집 앞뒤로 설치된 CCTV 영상을 근거로 살해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CCTV 영상 속에는 18일 오후 3시께 40대 남성 2명이 옆집 담벼락을 밟고 올라서 주택 다락방으로 침입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영상에 포착된 용의자 중
‘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간 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제목은 어디에 갖다 심어놓아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미나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제목만 봐선 미나리처럼 강인한 한국인 이민 가정이 미국에서 억척스럽게 뿌리내리는 희망찬 이야기를 짐작하게 한다. ▲ 명분이 사라져도 방향이 바뀌진 않는다. 또다른 명분을 내세워 욕망을 향할 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속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급파’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분)는 한국에서 미나리 씨를 가져와 딸네 부부가 아칸소주 어디쯤에서 일구는 농장 한편에 뿌려 가꾼다. 씨앗과 열매는 통상 외국여행 반입이 불가한데 이 문익점 같은 할머니는 어떻게 미나리 씨앗 한움큼을 ‘밀반입’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공항 검색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미국의 생태계는 한 세대도 못 견디고 붕괴될지도 모르겠다. 순자가 밀반입한 미나리는 과연 그 이름답게 아칸소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나 정작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가정생활은 그다지 순탄치도 못하고 정말 미나리처럼 미국땅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 4차 대유행의 원인은 젊은층,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이다. 원인이 드러난 만큼 처방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백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2030세대의 접종에 속도를 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4차 대유행에 진입했다. 확산 추세로 볼 때 1500명대를 거쳐 2000명대로도 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이번 대유행은 시기나 지역적으로 좋지 않다. 여름 방학과 휴가철, 2학기 전면 등교를 앞둔 시점이다. 국토 면적의 12%밖에 안 되는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수도권이 가장 심각하다. 코로나 사태 1년 6개월, 끝내 4차 대유행 단계에 접어든 것은 지난해 1~3차 대유행을 겪으면서도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한 측면이 적지 않다. 4차 대유행을 조기에 진정시키고, 5차 대유행을 막기 위해선 4차 대유행에 이르기까지의 실패 경험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1차 대유행의 정점은 하루 신규 확진자가 900명대를 기록한 지난해 2월 말.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 초기로 마스크 대란을 겪는 등 대책이 미흡했고, 대구 신천지교회발 집단감염이 확산됐다. 정부는 강력한 사회
정이삭 감독의 화제작 ‘미나리’는 사실 감독부터 주연배우들까지 모두 생소하다. 오히려 ‘Plan B’라는 제작사 이름이 브래드 피트 이름값에 힘입어서인지 익숙한 편이다. 영화 출연진 중에 그나마 눈에 익은 이름은 조연으로 이름을 올린 윤여정뿐이다. ▲ 영화의 배경은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바람이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레이건 대통령 시대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로 알려진, 미국에 이민 온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 그렇듯 그저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다. 호화 캐스팅에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해서 때려부수는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독립영화’ 같기도 한 ‘미나리’는 조금은 따분하기도 할 듯하다. 그럼에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까지 안겨줬다. 외국 관객들에겐 무명에 가까운 감독과 배우들이 200만 달러란 저예산으로 이뤄낸 대단한 성과다. 당연히 무엇이 수많은 영화제와
▲ 일자리는 소득과 소비를 늘리는 등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세계 각국이 일자리 마련을 위해 적극적인 리쇼어링 정책을 펼치는 이유다.[뉴시스] 정부가 6월 28일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슬로건은 ‘완전한 경제회복+선도형 경제로의 구조 대전환’이다. 여기서 완전한 경제회복은 4% 이상 성장과 고용 회복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127쪽 두툼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연간 성장률 4.2%, 취업자 수 25만명 증가를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낙관할 수 없다.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 재확산이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췄다. 소득 하위 80%에게 1인당 25만~35만원씩 코로나19 위로금을 지급한다. 이를 위해 33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다. 또한 신용카드를 2분기 월평균 사용액 대비 3% 이상 더 쓰면 증가한 사용액의 10%를 캐시백으로 돌려준다. 코로나가 확산하며 중단한 소비쿠폰도 추가 발행한다.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돈을 더 푸는데 코로나19가 계속 기승을 부리면 이미 위험수위인 자산 거품을 더 키울 수 있다. 백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감싸고 보듬어준다. 하지만 상대방의 아픈 곳을 잘 후벼 파는 사람들도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남이 아파하는 걸 공감해야 남의 아픈 곳을 찌를 수 있어서다. 문제는 공감능력을 후자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가 시끄러워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떨까. ▲ 사회가 다양화·파편화하면서 ‘공감’의 문제가 제기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멜빈 유달(잭 니콜슨)은 ‘잘나가는’ 소설가다. 그것도 로맨스 소설 작가다. 그렇다면 유달은 당연히 뛰어난 공감능력의 소유자라야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미묘한 ‘사랑’ 감정을 정교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로맨스 소설 자체가 성립되지 못하고,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 영화에서 멜빈 유달이 벌이는 행각을 언뜻 보면 ‘공감능력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유달의 공감능력은 소설가답게 뛰어난 편이다. 지정석이 있는 것도 아닌 일반 식당에서 매일 자신이 앉는 자리를 고집하다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