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공연이 한창이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음악ㆍ연극 공연 대신 '굿판'이 무대에 올려졌다.
24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동안 제주시 아라동 간드락 소극장에서는 설쇠와 장구, 북, 징소리가 울려 퍼졌다. 간드락 소극장과 제주밥상연구소 주관으로 '시왕맞이' 굿이 열린 것이다.
본주로는 제주밥상연구소 김양희(49) 대표가 나섰다.
이번 굿은 제주도 무형문화재 13호 ‘제주 큰굿’전수자인 서순실(51) 큰 심방과 정공철(52세) 심방이 맡았다.
정 심방은 지난 10월 13일부터 27일까지 성읍민속마을 내 옛 마방집에서 재현된 제주 큰굿 본주다. ‘신굿’(당주맞이)을 치른 후 처음으로 하는 굿이다.
신굿(당주맞이)이란 굿법에 따라 개인집에서 큰굿을, 심방 집에서 신굿을 집행할 수 있는 심방이 제대로 굿을 배우기 위해 평생에 걸쳐 세 번을 하는 굿이다.
이번에 열린 굿은 ‘시왕맞이’로 하늘의 두 번째 궁전 시왕당클에 모신 저승 명부의 신인 '시왕'을 모시고 기원하는 맞이굿.
'시왕맞이'는 저승길을 바로잡으면서, '시왕'의 명을 받은 차사가 망자를 데리러 오는 길을 닦는 질치기(길닦이)이다.
심방은 이 길닦이로 저승길을 돌아본 뒤 가시밭길을 베고, 벤 것들을 작대기로 치운다.
또한 나비다리를 뿌리고, 구르는 돌을 치우며 미레깃대로 땅을 고른다.
이 길은 본주가 하얀 광목천을 깔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저승길을 편히 갈 수 있도록 아름답게 꾸미는 과정인 것이다.
1948년 무자년에 4·3사건이 있었던 제주에선 시왕맞이를 통해 영혼을 달래곤 했다.
제주의 현대사와 같이 한 굿의 역사인 것이다.
정 심방은 “신굿을 치른 이후 처음 하는 굿이라 긴장됐다”며 “제주 큰굿은 제주도민의 전반적인 생활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또 “제주 큰굿의 무형문화재 계승자들이 사라져 가는 만큼 시급히 전승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여러모로 유네스코에 등재 될 만한 문화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제주전통문화연구소 문무병 이사장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바카스처럼 술은 신의 음식 중 하나다”며 “굿은 신과 이야기, 사람, 꿈, 술 등이 등장하는 지금의 연극이다. 제주 큰굿이 유네스코에 등재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가 뭐라고 해도 굿이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언젠가는 반드시 제주 큰굿이 유네스코에 등재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확신했다.
간드락 소극장 오순희(44) 대표는 “굿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생활의 문화”라며 “지난 10월에 재현된 제주 큰굿이 사라져 가는 전통을 기록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라면, 이번 굿은 무속적인 것이 아닌 일반인들과 교류하기 위한 한 마당을 만든 것”이라고 이번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본주인 김씨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생뚱맞다 하겠지만, ‘굿’은 영어로 'good'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우리 조상들의 삶과 오랜 생활문화가 담겨 있는 전통문화를 되살려 보고자 본주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