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가 없던 6일간의 폭설. 폭설은 한파를 동반, 제주를 초토화시켰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사고와 재난.재해도 속출했다.
눈이 잦아지고 낮 기온이 영상을 회복한 9일의 제주는 모처럼 평화롭다.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폭설 기간 겪었던 피해와 상처가 너무나 컸고 후유증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정의 무능과 탁상행정, 그리고 안전시스템의 부재를 또다시 절감해야 했다. “재난이 올 때마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도민들의 몫”이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난 3일부터 도청과 각 행정시에 항의.민원 전화가 빗발쳤다. 폭설이 내렸던 지난달 11일과 12일보다 빈도수가 더 많을 뿐 아니라 그 강도에서도 비교할 없수 없을 만큼 격앙돼 있었다는 후문이다.
SNS상에 올라온 비난수위는 더 높았고 신랄했다. “제주도는 뇌가 없는 집단”, “눈이 그친 후 기온이 올라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는 걸 수십 년 지켜봤다”, “지난 번에도 그렇게 혼나고서도 반성이 없다”는 등 격렬한 반응이 들끓었다.
“제주도의 재난대책은 문자 메시지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번 폭설대응을 바라보는 도민들 심정을 단적으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철저한 대책을 세우겠다는 행정당국의 말이 빈번히 구호에만 그친다는 판단이다. 개선이 없다는 뿌리깊은 불신과 연결된다.
2016년 1월 폭설대란이 벌어졌을 무렵 원희룡 지사는 “재난 매뉴얼을 제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도지사 사표 내야 한다”고 했다. 그해 12월 제주도는 '겨울철 재난대응 총력체계'를 가동시킨다고 밝히며 24시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는 ‘폭설대비 완전무장’ 방안을 내놓았다.
겨우 1년여 시점이 흐른 후 제주도의 말은 허언이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올 1월 11일과 12일 폭설이 오자 제주도정은 속수무책이었다. 제주 도심 곳곳 도로가 눈세상인데도 제대로 된 제설작업은 찾을 수 없었다. 기상악천후가 예상되면 미리 제설제를 도로에 뿌리는 선진국식 대응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 처럼 제설작업에 총력대응을 하는 시스템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요도로에 눈이나 잘 치워주면 그만일 뿐인데 그게 도대체가 안된다.
폭설대응에 대해 뭇매를 맞은 뒤 제주도는 대책 마련을 또 약속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달 15일 이례적으로 폭설 대응과정에서 드러난 제주도의 안전 시스템 문제를 지적했다. 다음날 고경실 제주시장도 거들었다. 그는 “2년 전 이미 경험했던 사항이지만 이에 대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안이 마련돼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공무원들을 질책했다.
이어 18일에도 재난안전대책본부 종합평가 보고회에서 제설대책 등을 논의하며 안전관리 시스템을 점검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불과 한달도 지나지 않아 그 대책들은 ‘빛좋은 개살구’마냥 탁상용에 머물고 말았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도민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재산상의 피해도 컸을 뿐 아니라 극심한 교통불편은 물론 유례없는 고통스런 날들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수많은 농작물 및 농업시설 피해, 교통.낙상사고, 빙판 미끄러짐 사고와 그로 인한 크고 작은 인명피해, 정전.동파.고립 등으로 인한 피란 상태를 방불케 하는 비상사태가 연출됐다.
지난 1주일을 돌이켜 보니 제주도정의 재난대처는 여전히 무기력 그 자체였다. 지난달 폭설 때에 이어 대책본부를 꾸려 재난대응을 지휘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었다. 게다가 7일 오후엔 기상청 예보만 믿고 비상근무체제를 해제했다가 8일의 기상이변(?)에 부랴부랴 비상대책근무체제를 가동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소 잃고 고친 외양간’에는 도민들의 한숨과 분노만 남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제주도 관계자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이례적인 폭설.한파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난 1월 11일~12일 폭설대응에 대한 비난이 봇물처럼 터질 때 “너무나 갑작스런 폭설에 당황했다”면서 “계속 휘날리는 눈보라에 소수 인력으론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장면과 그대로 일치한다. 부족한 장비와 불가항력의 기상 탓으로 재난대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탁상행정과 안일한 공무원들의 기강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번 폭설.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단연 농가 주민들이다. 제주도 곳곳에서 레드향, 한라봉 비닐하우스들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됐다. 월동무는 90% 이상 냉해 피해를 입었다. 감귤류, 콜라비, 양배추, 브로콜리 등 채소농가의 피해도 극심하다. 7일까지 집계된 농작물 피해는 571개 농가, 1397㏊에 달하지만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본격적인 피해조사가 시작되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 재난피해론 사상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제주도는 아무런 사전예방 조치나 방재 대책을 갖지 못했다. 피해 신고 시한을 지난 4일에서 오는 10일까지 연장하고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만 사후에 밝힐 뿐이었다.
제설대책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 달 11, 12일에 투입된 제설차량 22대와 투입인력 46명이 장비 24대, 인력 69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른 게 있다면 읍.면.동별 자율방재단을 조직해 제설작업에 동원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이번 폭설을 감당하긴 턱없이 부족한 대책이다. 7일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자체보유장비 132대로 지역자율방재단 등 1378명이 제설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이 장비와 인력이 모두 폭설기간에 동원되었느냐는 질문에 제주도 관계자들은 “대책회의를 통해 말 그대로 10개 읍.면.동 조직에 지침을 하달하고 시행한 것”이라면서도 “정확히 동원된 인력은 파악이 안 된다”며 얼버무렸다.
실제로 SNS상에 올라온 도민들의 사진과 증언에는 자율방재단의 제설 작업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도민들이 자신의 집과 주변 도로의 눈을 치우며 사투를 벌여야 했다.
제주도의 안전 시스템 부족은 개발 중심에 치우친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제주도는 올해 예산 5조297억원 중 79%인 3조9775억원을 상반기에 배정했는데 이중 SOC사업, 일자리 창출ㆍ지원사업, 1차 산업 경쟁력 강화 등에 집중됐다. 도민들의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거의 방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아직도 안전불감증에 서 벗어나지 못하는 후진적인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옥 같았던 6일의 시간이 지났지만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9일의 기온은 올랐지만 또다시 주말(오는 10일과 11일)의 날씨는 눈 소식을 전한다.
기상전문가들은 전세계적인 이상 기후 현상으로 올해와 같은 폭설은 언제든지 재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경고를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전향적으로 변해야 제주가 발전하고 도민의 안전이 보장된다. 민선 6기의 유종의 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헌법의 가치를 최소한이라도 새기는 것이다. 국가와 지방정부는 주권자인 국민과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있는 시스템이다.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을 도민 개개인의 책임으로 내몰면 안 된다. 더불어 더이상 "따뜻한 제주도에서 어쩌다 있는 일 갖고 호들갑이냐"는 말은 관가에서 흘러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이누리=권무혁 뉴스콘텐츠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