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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획] 역사·풍속·자연·문화·방어실태 그림으로 한눈에
"전형성 탈피…보물 넘어 국보 될 필요성·가능성 커"

조선시대 제주의 모습을 그린 기록 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보물 제652-6호)의 국보 승격 논의가 다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9년 11월 문화재청에 탐라순력도의 국보 지정 신청서를 낸 바 있지만 이뤄지지 않은 탓에 제주도가 최근 들어 재차 건의했다.

 

조선 숙종 1702년 3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도내 각 고을 순시를 비롯해 한 해 동안 거행했던 여러 행사 장면을 화공(畵工) 김남길에게 그리게 하고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 만든 화첩인 탐라순력도.

 

지금으로부터 320년 전 제주의 모습을 담은 41가지 그림을 담은 화첩이 제주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 300년 만에 제주에 돌아온 탐라순력도

 

지난 1998년 12월 30일 탐라순력도가 약 300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 경북 영천 이형상 목사의 종가(宗家)에서 보관해 오다 1979년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다.

 

제주시가 탐라순력도를 소장하고 있던 이 목사의 10대손으로부터 3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당시 일부 시민들은 '탐라순력도를 실물 크기 그대로 사진 촬영한 영인본이 만들어져 배포됐는데, 재정난에 허덕이는 시가 굳이 거액을 들여 화첩을 사들이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는 끈질기게 소장자를 설득한 끝에 매입을 성사시켰다.

 

제주의 옛 모습을 담은 귀중한 문화재를 직접 관리하며 영구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탐라국부터 조선시대까지 정치·문화·행정의 중심 역할을 했던 제주목(濟州牧) 관아의 복원을 위해서라도 건물 배치와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탐라순력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탐라순력도가 제주로 돌아온 직후 제주목관아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앞서 1991년 제주시 삼도2동의 한 지하주차장 공사 과정에서 목관아 흔적이 발견됐지만, 이후 7년 넘게 복원을 위한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1999년 1월 복원 조성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목관아의 출입문 외대문(外大門)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목사의 집무실인 연희각을 비롯해 연회장인 우련당, 군관들이 근무하던 영주협당 등 건물과 연못, 담장이 차례로 조성됐다.

 

43면으로 된 가로 35.5㎝, 세로 55㎝ 크기 화첩의 복귀는 제주 문화 부흥의 신호탄이었다.

 

탐라순력도를 바탕으로 과거 각종 제주 행사가 하나씩 재연되기 시작했던 것.

 

우선 1999년 5월 제주의 12가지 빼어난 풍광을 일컫는 '영주 12경' 중 하나인 '용연야범'(龍淵夜泛)이 처음으로 재연됐다.

 

 

용연야범은 7∼10m 높이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 제주시 한천 하류에서 옛 선비들이 밤에 뱃놀이하며 풍류를 즐기던 모습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탐라순력도에 그 모습이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용연 선상 음악회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해마다 이 행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탐라순력도를 바탕으로 제주목사의 행렬, 지방의 덕망 있는 문신 경로잔치인 '기로연' 등이 하나씩 재연됐다.

 

또 조선시대 제주의 방어유적 중 하나인 '서귀진'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의 옛 정의현 관아였던 '일관헌' 등의 복원도 시도됐다.

 

탐라순력도는 단순한 화첩이 아니었다.

 

유배지로 악명이 높아 뭇사람들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자 '피하고 싶은 변방'으로 여겨졌던 제주를 모두가 찾고 싶은 자연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섬으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 제주 역사·풍속·자연·방어실태 한눈에

 

제주의 역사, 문화, 풍속, 자연, 방어실태 등 옛 사회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인 탐라순력도를 자세히 살펴보자.

 

탐라순력도는 총 43면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41면이 그림이다.

 

현존하는 제주도 지도 중 가장 오래된 '한라장촉'이 맨 처음 등장하고 이어 이형상 목사가 제주를 돌아다녔던 행사 장면을 기록한 그림이 39면, 마지막으로 제주를 떠나는 장면을 담은 '호연금서'라는 그림 한 폭을 포함해 총 41면의 그림으로 이뤄졌다.

 

'순력'(巡歷)이란 매년 봄·가을 절제사가 직접 방어 실태와 군민의 풍속을 살피는 것으로 조선시대 순력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이렇게 그림으로 남겨진 것은 탐라순력도가 유일하다.

 

탐라순력도는 지금으로부터 320년 전 제주의 해안방어를 담당했던 군사 요새들과 아름다운 명승지, 풍물, 문화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한 탓에 방어시설이 발달했다.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방어시설을 정비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시대 제주의 행정구역은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등 1목 2현으로 이뤄져 있다.

 

자연스레 제주의 방어시설도 3성(城), 9진(鎭), 25봉수(烽燧), 38연대(煙臺)로 요약된다.

 

탐라순력도는 제주읍성, 정의현성, 대정현성, 별방진성, 명월진성, 화북진성, 조천진성, 모슬진성, 수산진성, 애월진성, 서귀진성, 차귀진성 등 군사시설을 점검하며 훈련을 독려하고 활쏘기 대회를 여는 지방관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주요 군마공급지 답게 말을 기리는 목장의 모습, 말과 귤을 임금에게 진상하는 과정을 담은 장면, 동헌에서 베풀어진 양로잔치 등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제주의 아름다운 절경을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잘 담아냈다.

 

성산일출봉에서 해 뜨는 광경을 입체감 있게 표현한 '성산관일'(城山觀日), 산방산의 산방굴 안에서 술잔을 드는 모습을 그린 '산방배작'(山房盃酌), 귤이 무르익을 무렵 제주목관아 망경루 후원 귤나무숲에서 풍악을 즐기는 모습인 '귤림풍악'(橘林風樂), 용이 사는 연못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용연(龍淵)의 다른 이름 취병담(翠屛潭) 배를 타며 풍류를 즐기는 '병담범주'(屛潭泛舟) 등이다.

 

 

제주의 유명 폭포인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를 각기 다르게 표현한 '정방탐승'(正方探勝), 천연사후(天淵射帿), 현폭사후(懸瀑射帿) 등도 눈여겨 볼만하다.

 

또 '김녕관굴'(金寧觀窟)은 이형상 목사가 조천진성에서 별방진성으로 가던 중 용암동굴을 구경하는 모습을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굴을 마치 사람의 눈 또는 입술 모양으로 그려 넣고, 그 안에서 횃불을 밝혀 가마를 타고 앉아 굴을 구경하는 이 목사의 모습이다. 게다가 땅 위의 소나무 뿌리가 굴속까지 뚫고 들어간 모습까지 자세하게 그려 넣었다.

 

탐라순력도의 가치에 대해 모든 전문가가 '조선시대 순력의 내용뿐만 아니라 300년 전 제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한목소리로 평가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탐라순력도를 그린 화공 김남길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상황이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가인 최열은 자신의 저서 '옛 그림으로 본 제주'에서 "김남길은 제주도 출신 인물로 그곳에서 후배, 제자를 기르며 활동한 토박이 화가였을 것"이라며 "기존의 기록화 또는 주류 회화 양식이 지닌 전형성을 탈피하고 제주지역 또는 김남길만의 양식, 그 토박이 화풍을 기어코 성취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술사 안팎의 여러 가치로 볼 때 이 작품(탐라순력도)이 '보물'에서 더 나아가 '국보'가 될 필요와 가능성은 더 커져만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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