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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획] 현기영·김석범·강요배·오멸 등 4·3 문화예술 큰 족적
"2·3세대 작가들에 의해 갱신·도약이 이뤄져야"

 

제주4·3 70주년을 맞은 지난 2018년 4·3 희생자 추념식.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됐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며 문화예술인들의 이름과 작품을 일일이 열거했다.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고(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4·3을 망각이 아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이들의 작품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 "4·3, 주체적 삶 위한 공동체 항쟁"

 

「아,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오백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중략) 세월이 삼십년이니 이제 괴로운 기억을 잊고 지낼 만도 하건만, 고향 어른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잊힐까 봐 제삿날마다 모여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때 일을 명심해두는 것이었다.」(순이 삼촌, 창비 60∼62쪽)

 

제주4·3은 금기(禁忌)였다.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민간인 학살.

 

권력은 기나긴 침묵을 희생자들에게 강요했다.

 

그저 제삿날,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당시를 떠올리고, 숨죽여 죽은 이들을 애도할 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금기를 깬 것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었다.

 

외딴 섬 제주에서도 가족들에게만 은밀히 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를 문학의 힘을 빌려 세상에 터뜨린 것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현기영은 소설을 쓴 탓에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순이 삼촌'을 계기로 대학가와 지식인들이 4·3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문화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기영은 4·3 7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4·3을 이야기하지 않고선 문학적으로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겠다는 딜레마를 느꼈다"며 "4·3을 쓰고 싶었다기보다 의무감, 부채감이 무겁게 억눌렀다"고 '순이 삼촌'을 쓰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 역시 현기영만큼이나 큰 족적을 남겼다.

 

제주 출신 부모를 두고 일본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1957년 최초의 4·3 소설인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했고, 1976년부터 20여 년간 12권 분량의 대하소설 '화산도'를 연재해 국제사회에 4·3의 참상을 알렸다.

 

김석범은 '화산도'에 대해 '현실을 넘어서서 이겨내는 것이 순수문학"이라며 현실을 돌파하려는 힘이 화산도를 쓰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기영과 김석범은 4·3문학 1세대 작가로서 4·3을 망각이 아닌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들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4·3의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고 있다.

 

제주대학교 교수 김동윤은 저서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한그루, 2019)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당했다는) 희생담론이 4·3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제 다른 담론을 본격화해야 한다. 항쟁의 참뜻은 무엇인지, 거기서 어떤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지 되새겨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이어 "김석범과 현기영의 소설을 통해 적폐에 맞선 반제국주의 통일운동이자 주체적 삶을 위한 공동체 항쟁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2세대, 3세대 작가들에 의해 4·3문학의 갱신과 도약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문화예술 전반으로 뻗어나간 4·3

 

4·3은 문학을 넘어 미술·영화·음악 등 문화예술 전반으로 뻗어나갔다.

 

먼저 두각을 드러낸 건 제주 출신 서양화가 강요배다.

 

1992년 51점의 4·3 연작 화집 '동백꽃 지다', 이를 바탕으로 한 전시회 '제주민중항쟁사'를 통해 4·3의 참상과 아픔, 슬픔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대중에 알렸다.

 

강요배는 1988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현기영의 소설 '바람 타는 섬'의 삽화를 그리면서 제주 역사에 눈을 떴다.

 

제주4·3을 테마로 한 작품을 결심하고 이듬해부터 3년간 한 농가에 틀어박혀 그림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삼별초 전투와 왜구의 퇴치, 이재수의 난 등 4·3 항쟁의 뿌리와 같은 역사 속 제주민중의 모습과 해방 이후 치열한 이념 격돌의 한 가운데 벌어진 탄압과 항쟁, 학살의 모습을 기록화로 남겼다.

 

특히, 그는 연작의 마지막에 붉은 동백꽃이 지는 모습을 그려 넣어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당시 힘없이 쓰러져간 제주의 양민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동백꽃은 4·3의 상징이 됐다.

 

 

강요배는 화집 '동백꽃 지다'(1992, 학고재) 작가의 말에서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대해 검은 장막을 드리우고 산다. (중략) 역사의 맑은 바람을 쏘여 내 가슴속 응어리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시도한 것이 제주민중항쟁사 연작 그림"이라고 밝혔다.

 

이어 16년 뒤 8점의 작품을 더해 다시 펴낸 '동백꽃 지다'(2008, 보리) 작가의 말에서 "아직도 나는 4·3을 채 모른다. 내 상상력은 체험의 진실성 앞에 무릎을 구부린다.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끊임없는 숙고 속에만 있는지 모른다. (중략) 절망을 딛고 올라서는 곳에 새봄의 꽃처럼 생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하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2013년에는 세계가 4·3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4·3을 다룬 영화 오멸 감독의 '지슬'이 2013년 1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제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

 

한국 영화가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이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제주 출신인 오멸 감독과 제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이 2억5천만 원이라는 작은 예산으로 힘을 합쳐 만든 이 독립영화 '지슬'은 4·3 이후 잊힌 슬픈 역사를 65년 만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알렸다.

 

'지슬'은 제주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에게 바치는 '진혼제' 형식을 띠고 있다. 1948년 11월 제주에 내려진 '해안선 5㎞ 밖의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미군정의 소개령으로 시작해 네 개의 챕터로 나눠 주민들의 피난과 동굴 은신, 군인들의 마을 점령, 비극적인 최후까지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처럼 그렸다.

 

당시 선댄스영화제 측은 홈페이지에 이 영화를 소개하며 "전쟁의 불합리성을 그린 영화는 많지만, 이렇게 절묘한 디테일로 그린 작품은 드물다. 강렬한 흑백의 영상은 인물들의 인간성뿐 아니라 이 지역의 결까지 담아낸다"고 평했다.

 

오멸 감독은 영화제 이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역사를 모두가 알고 있다면 영화로 찍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올바른 재인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기영과 김석범, 강요배, 오멸 등 4·3 문화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 작품을 창작한 배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임에도 오랜 세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4·3과 희생자들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작품을 통해 제주가 암울한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다시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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